연세대에서 빈곤을 연구하시는 인류학자 조문영 교수의 책입니다. 총 9장으로 본문 398쪽인 이 연구서는 저자의 지난 20여년간의 빈곤 연구의 중간결산 같은 성격의 책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서 관찰하고 인터뷰한 연구로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취약계층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합니다.

보통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사회학이나 경제학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인류학자가 빈곤의 현장에서 빈곤의 역사성과 관계성에 주목해 빈곤문제를 잘 설명해 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의존(dependency)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에 맞서 사실 이 세상의 누구도 상대방에 대한 의존없이 살기 힘들다는 지극한 명제를 상기시켜주는 대목은 인상적이었습니다(p64).

개인이 가족에 의존하거나 속한 공동체에 의존하는 건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경제개발이 시작된 한국에서 스스로 살수 없는 사람들을 무능력하다고 ‘낙인(烙印)을 찍고 경멸해 온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마지막 9장은 코로나 19 팬데믹과 기후위기로 서구의 학자들이 개념화하기 시작한 인류세 (Anthropocene, 人類世)시대에서의 빈곤에 대한 담론으로 단순히 인간사이에서의 빈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주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빈곤활동가들이 현장에서 같이 살며 삶을 살아가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계몽이 아니라 활동가들이 사회의
일부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고 스스로도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봅니다.

경제현상과 경제정책의 역사, 정부와 정치의 역할, 민주주의가 어떻게 왜곡되어왔는지, 디지털 생태계가 사회와 경제구조를 어떻게 바꿔왔는지에 주로 주목을 한 반면 최근에 읽은 빈곤에 대한 이 책과 대한민국 초기 정치적 혼란으로 국내에서 난민으로서 삶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에서의 난민 을 다룬 연구서 , <난민, 경계의 삶, 역사비평사,2023>은 먹고 사는 문제와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정치권력의 통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으로 생각합니다.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은 생각보다 매우 가까이 있는 분야고 둘다 사회구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밀접한 분야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사회정책을 너무 등한시하는 건 국가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세금 낸 만큼 국가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특히 인류학(anthropology)은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경영을 위한 통치방식의 하나로 비서구사회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서구학문인데, 그 방법론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복지구조와 관료와 복지수급의 관계를 살핀다던지, 중국 선전(Shenzhen深圳)의 폭스콘 노동자의 삶을 추적해 노동자로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중국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 그리고 저자 자신도 중국학을 하는 정체성이 있어서 그런지 옆나라 중국의 사회에 대한 글은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국 하얼빈(哈尔滨)을 배경으로 하얼빈에 자리잡은 여러 한국인들의 다양한 삶의 양태와 중국과 한국의 수교이후 한국에서 돈을 벌어 신흥 부자가 된 소위 ’신조선족‘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조선족‘의 이미지와 매우 달라 매우 전복적입니다. 영화에서 보던 거친 조선족이 아니라 중국인으로서 하얼빈에 새로정착한 ‘찌질한’한국인의 서사가 소개됩니다. 이런 개별적 사례는 조선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립니다.

연구서이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학자들의 빈곤담론과 인류학자들의 연구인용(citation)으로 가볍게 읽기는 분명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사회를 접근하는 다양한 시각을 보고 인류학자들이 심층인터뷰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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