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한림대학교에서 한국현대사회사를 연구하시는 김아람 교수의 신작입니다. 2023년 3월 출판된 책으로 이 시리즈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또한 2023년을 대표하는 연구서로 선정된 바 있는 책입니다. 이책은 우리가 흔히 부모세대와 조부모세대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피난민(避難民)에 대한 이야기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피난민이라고 하면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등지고 공산사회를 피해 월남(越南)한 북한출신 주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책에서 다루는 난민 중에는 물론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난민 그리고 월남민도 있지만 한국전쟁이전 미군정 당시의 제주도 4.3 사건으로 인한 난민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과 뒤이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도 포함됩니다. 모두 민간인들이 심각한 국가폭력(國家暴力)에 노출되어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생존을 위해 고난을 감내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당시 정부는 발생한 난민들을 전쟁의 장애물로 인식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서 이렇게 발생한 난민을 감소시키는데 정책적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해방이후 만주와 일본에서 들어온 난민이나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내부난민 모두 체제 변동으로 발생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부는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고아 부랑인 등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책으로 정착사업을 시행한 측면이 큽니다. 이렇게 체제형 난민이든 사회형 난민( 부랑아 깡패 고아 등)은 최초에 사회정책의 하나로 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실시했던 농촌정착사업을 점차 농촌의 생산력향상을 도모하는 경제정책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러한 난민의 농촌정착사업의 정책주체인 정부의 목적은 1> 난민을 정착시켜 난민을 줄이는 것으로 이는 난민의 자발적 노력으로 실시한다(?)는 원칙입니다. 2> 농촌정착사업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에 의존한다는 겁니다. 이상한건 중앙정부 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면서 본인들의 책임을 모두 난민과 지방정부 지역사회에 전가시켰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그때도 고위관료들은 무책임하고 영혼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1960년대에 사회형 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농촌정착사업은 도시에 있던 고아 부랑아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간척사업과 농지개발사업에 투입하고 지방정부 그리고 심지어 중앙정보부까지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던 ‘동원’된 사업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이렇게 몰상식하게 사람을 동원하고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시키는 정착사업이 성공할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례는 1960년대 이후 군사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폭력과 인권유린을 한 ‘범죄’지요. 웃픈 건 이런 농촌정착사업장에 부랑아들과 짝을 맺어주기 위해 도시에 있던 윤락여성들과 ‘합동결혼’을 시킨 사례까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강제로 한 결혼생활이 원만할리가 없었지만 이 모든 게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라는 데 그 ‘후진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당시 공무원들이 사회하층민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볼 수 있는거죠. 사회악으로 척결대상인 부랑인들은 고위관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도시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였고, 이들의 노동력을 험하고 어려운 간척사업이나 농지개량사업에 활용하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마찬가지로 척결대상인 윤락여성들과 짝을 먖어주자는 기막힌 발상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으로 심지어 매우 계급지향적이기까지 합니다( 하류는 하류들끼리…). 이런 권력지향적 관료들이 추진한 정책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건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아무튼 책에 실린 당시 간척사업 참가자들의 구술을 보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들을 아무데나 묻고 장례식도 치루지 않은 경우가 많고, 식량도 충분히 주지 않아 허기진 상태에서 노역을 했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간척사업의 경우 간척이후 토지분배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애초 사업의 목적이 간척지를 농지로 만들어 간척에 참여한 난민들에게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그 땅에 정착시키려는 의도였는데 문제는 간척이 끝나고 난민들에게 토지무상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겁니다. 농지에 대한 소유권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근거를 갖추지 못해 소유권 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고, 간척 후에 지주가 나타나 사유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경우에도 한국정부와 사법당국은 마찬가지로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간척지에 대한 모든 부담을 난민들에게 돌리거나 지주의 손을 들어줍니다. 1960년대에 끝난 간척사업지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30여년을 끌어오다 1990년대에 마무리된다든지, 2010년대까지도 분쟁이 지속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개척한 간척지에서 자신 소유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소작을 하는 경우가 나타나거나 결국 농지를 유상매입하는 경우까지 나타납니다. 에 책은 해방과 4.3 사건, 여순반란 그리고 한국전쟁같은 격동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내전으로 황폐화한 땅에서 북한을 떠나 온 난민들, 해방이후 해외에서 들어온 난민들을 어떻게 정착시키고 먹고 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정책과 당시를 경험한 난민들의 삶을 추적한 기록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농업생산력을 올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출발점에서 시작한 사업이고 자본과 자원이 없었던 당시 미군정의 무상원조를 통한 잉여생산물이 일단 그 시작이었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기 이전이라 최초 사회정책적 측면이 강하고 구호사업의 측면이 강했지만 1960년대 이후 점차 경제정책적 측면이 부각되긴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고된노동에 비해 소유권 보장도 되지 않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난민 출신 정착민들은 살기 위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따라서 생각한만큼 성과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전쟁이후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무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특히 관료들의 무책임을 방기하는 듯한 정부의 조직문화는 심각하게 국격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관료들은 본인들이 국민의 머슴( civil servant)이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봉급이 세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