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잘못 없다 - 신민재 건축가의 얇은 집 탐사
신민재 지음 / 집(도서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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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남아있는 작고 비정상적으로 잘린 필지에 들어선 얇은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건축가이신 신민재 작가가 서울의 이런 특이한 건축물을 답사하고 쓰신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내신 결과물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건물이 들어설수 없을 것 같은 작은 필지( 대체로 삼각형모양으로 잘리거나 지나치게 얇고 좁게 남은 자투리 필지) 에 지어진 건축물을 보고 작가께서 그
건축물이 그 자리에 들어선 사연을 옛지도와 건축물 대장을 토대로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건축물이 들어설 공간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경제적 입지가 건물 자체만큼 중요하지만 쉽게 중요성이 간과되곤 해서 설명이 생략되거나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데 이 책은 건물을 둘러싼 여러 환경적 요인들을 설명해주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책에 소개된 이런 작은 필지들은 대체로 복개된 옛하천의 지형에 영향을 받았거나 옛시가지의 길이 새로 나거나 확장되면서 기존의 건물들이 헐리면서 생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이책에 소개된 건물들 자체의 특이한 외관에 일차적 관심이 쏠리지만 결국 그 건물의 입지와 필지에 대한 추적이 이어지면서 지난 시간동안 서울에서 일어난 도시계획과 개발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조선사대 이래 서울의 각 입지의 경관이 변해온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는 각각의 건물들이 왜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건축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수가 아파트, 재개발, 부동산 등 주택시장에 대한 담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주거생활이나 공간 자체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한말이후 일제를 거쳐 이루어진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답사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한 게 이 책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서울이라는 공간의 변화요인에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겠지만 경제적 요인만으로 공간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니다.

도시는 이전 시대의 흔적을 이 책에서 소개한 이런 좁고 기형적인 필지와 건물형태를 통해 남기고 있는 것이죠.

저자가 책이름을 ‘땅은 잘못없다’라고 지으신 건 그래서 이런 정상적이라고 볼수 없는 작고 좁은 팔지들의 입장을 대변한 센스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가 있었던 파트는 서울에 흐르던 작은 하천들이 복개되어있는 지역들을 소개한 ‘물길의 흔적’입니다.

현재 한강의 지류로 탄천이나 중랑천 그리고 얼마전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 정도만 알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용산과 마포, 서대문 등에도 한강의 지류인 만초천과 후임천(용산) 그리고 홍제천과 세교천( 마포), 월곡천( 강북)주변과 복개후 달라진 도심의 이야기는 처음 접해본 이야기라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 동네에 있던 개울가가 복개되어 도로로 변하던 모습을 목격했던 터라 이 책에 보이는 여러 하천들이 도시개발을 이유로 모습을 감춘 이유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아 알수가 없었다고 해야겠죠.

서울은 지난 40여년간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급격하게 변화해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살던 일반적인 주거형태의 흔적을 찿기는 더 어렵습니다.

일제시대 지어졌던 적산가옥부터 1960-70년대 지어졌던 수많은 양옥집들이 대부분 없어지고 초기 서울개발 당시 지어졌던 자층 아파트들이 헐린 자리에 위압적인 20-30층 짜리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것도 경기침체( recession)과 고물가 시대를 맞아 과연 아파트만 주택으로 지어서 공급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증폭되는 상황입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그리고 아파트 살 사람도 없는데 건설사가 PF끼고 고분양가를 내걸고 후분양 장사를 하는지 맞냐는 겁니다.

초기 아파트는 서울에 인구가 폭증하고 주택문제가 심각했을 때 고육지책으로 나온 정책으로 압니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 아이들이 최소 2명에서 3명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자녀가 1명이거나 아이가 없는 딩크족도 많고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 1인 가족도 많습니다.

인구감소로 주택수요가 줄었는데 건설사가 예전 사업방식을 고수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개발시대 주택건설모델은 이제 시장에서 더이상 통용될 수가 없다고 보는데 답답합니다.

물론 이 책이 가정집에 국한된 건축물을 보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수 주택가에서 도시개발이후 남은 자투리 땅에 지은 건물이라는 점이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시간의 흔적을 모두 밀어버리고 그저 새것만을 쫓아 크고 비싼 건물만 지으려는 풍토는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물러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도시의 건축물들에 대한 그리고 도시계획에 대한 다양한 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너무 조선왕조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관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눈앞에 남아있는 우리 당대의 멀지않은 과거 ( 예를 들어 1980년대)의 건축물이 없으면 지금 세대들은 그 당시의 삶을 직접적으로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망한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건축물보다 일제가 이땅에 세운 건축물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개발시기 한국의 건축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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