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미국인으로 러시아사를 공부한 저자가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게되는 과정을 미국과 소련의 패권다툼과정으로 설명한 책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특히 아시아 태평양 전쟁( Asia Pacific War)의 종전과정을 연구한 국제정치사입니다.
본문이 보론포함 총 628쪽에 달하는 책으로 일본출신 러시아사 연구자답게 미국 일본 러시아의 일차사료를 인용해 논지를 전개합니다.
논지는 간단명료합니다.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 이유는 통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발의 원자폭탄 때문이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설명이었습니다. 연합국은 1945년 7월 열린 포츠담 회담( Potsdam Conference)에서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원폭을 맞은 일본이 결국 무조건 항복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죠.
하지만 저자는 연합국이 포츠덤에서 요구한 무조건 항복을 천황의 통치권을 의미하는 국체(國體)를 수호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거부하고 조건부 항복을 요구했고 원폭을 맞은 이후에도 종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소련의 극동전선 참전 ( 만주와 랴오뚱 반도 침공, 사할린과 쿠릴열도 침공 및 홋카이도 침공계획)이 일본이 무조건 항복에 계기( momentum)를 제공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무조건 항복( unconditional surrender)는 조선의 식민지해방과 관련이 있기때문에 한국현대사에서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재해석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논의 자체를 한반도에 좁혀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독립은 분명 제2차세계대전 종전과 관련되어 발생했고 국제정치와 외교 전반에 걸친 맥락( context)를 이해하지 못하면 편협해지거나 반쪽짜리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항복에 앞서 유럽전선에서 나찌 독일이 먼저 항복을 했고, 미국 영국 중국 소련 등 열강은 이미 패전한 독일을 분할점령하고 통치하려 했다는 선례가 있었다는 걸 간과하면 안됩니다.
거기에다 소련은 결국 나찌 독일을 패전으로 이끈 독소전쟁를 이끌었고 그 유럽전장에서 싸웠던 적군 ( Red Army) 지휘관들이 만주와 일본을 공격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스탈린은 얄타에서 연합국이 약속한 다렌항의 실질적 점유를 위해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뺐겼던 사할린을 되첯기 위해 1945년 8월 아시아전선에 참전합니다.
위의 세가지 선행조건( pre condition)때문에 소련은 미국과 일본을 분할점령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사할린과 쿠릴열도 점령 후 홋카이도에 진격하려 했습니다. 연합국이 유럽전선에서 독일을 분할점령한 선례가 있는데다가 독소전쟁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를 본 소련이어서 소련이 생각한 일본의 분할점령은 그 연장선에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군의 만주진격이 부담스러웠고 중국공산당과 협력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에 소련의 일본 분할점령구상을 거부하게됩니다.
조선의 해방이후 소련군이 현재 북한지역인 청진 등으로 미군보다 먼저 진주하게 되는 이유도 소련군의 만주침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사항입니다. 미국과 38도선을 경계로 선을 분할점령하기로 합의한 후 소련은 관동군의 퇴로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조선 점령이 불가피했던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소련이 조선의 남쪽으로 진격하지 않을까 매우 불안했습니다.
미국의 트루먼과 소련의 스탈린은 아시아전선에서의 종전을 둘러싸고 서로 각축을 벌였고, 미국은 독일에서와 달리 일본을 미국 홀로 단독점령하기를 바랬고 실제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일본이 미소 양국간 분할점령될 수 있었는데도 조선이 분할점령된 이유는 결국 미국 정책당국의 의지 때문인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분할점령과정은 다시 살펴봐야하겠지만 미국이 소련과 여러면에서 갈등을 빚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그리고 독소전쟁이후 소련이 동유럽 국가들을 영향권에 넣어 위성국가로 만든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미국은 일본을 점령하면서 전쟁책임이 있는 히로히토 천황의 지위를 유지시키고 그를 폐위시키지 않았습니다. 일본 본토탈환작전을 세우면서 일본군이 오키나와와 이오지마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경험을 해서 천황의 폐위를 너무 큰 위험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해야한다는 미국의 여론이 비등했는데도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
1945년의 역사를 복기하는 건 불편하지만 2024년 현재의 한국과 북한의 기원이기때문에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국일본의 내각과 관료제가 얼마나 더 유유부단하고 종전을 미루었던 경과를 보면서 이미 일본이라는 나라의 비효율성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원폭을 맞고도 천황의 통치권을 부르짖고, 법률의 합법성을 따지는 전근대적 충성과 조직의 경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합리적으로 보여도 국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다는 점에서 매우 야만적입니다.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무모하게 전쟁을 계속하려던 군국주의 일본 육군을 내각은 전혀 통제하지 못했고 관료제의 기제하에 결정을 미루던 내각은 결국 히로히토 천황에게 종전의 결단을 요청합니다.
무모함과 비효율은 현재 일본 조직을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보고 있고 이 책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체론으로 설명되는 일본의 천황제에 대해 언급하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의 패전 이전의 천황제는 신정일치 정치제도로 전혀 근대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원시적이고 고루합니다( archaic). 1945년 9월 패전 이전까지일본인들은 천황을 현인신(現人神), 즉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 여겼습니다. 일본의 전후는 신이었던 천황이 인간이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서구의 어느국가도 전근대시기 왕이 신의 은총을 받고 신권을 행사한다고 생각했지 왕을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낡은 개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 이런 국가의 체계를 만든게 조선초대통감이자 일본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입니다. 애초 근대적 민주주의와 관계가 없는 절대왕권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봉건적인 제후국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던 에도막부가 명실상부한 신정일치 철대왕조국가가 되도록 개조한 정치인일 뿐입니다.
따라서 패전이전의 천황제 즉 메이지헌법하의 천황제로 회귀를 주장하는 전범의 후손 출신 일본의 국우정치가들의 국가 인식방식도 지극히 전근대적이고 고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구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일본의 신정잂치정치체제눈 중동의 강국 이란의 신정일치정치체제와 매우 유사합니다. 따라서 일본의 정치체제가 근대적이고 서구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 의회에 아직도 메이지유신 당시의 정치 지도자의 자제들이 대를 이어 정치를 거의 세습적으로 하고 있고 상당수 전범의 후손들이 정치를 대대로 하고 있는 걸 보면 껍데기만 민주주의일뿐 사회 자체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2006년 미국에서 영어판으로 발표되고 이후 일본에서 일어판으로 새로 쓰여졌습니다.
Hasegawa Tsuyoshi, Racing the Enemy (Harvard University Press,2006)
또 한가지, 이책은 2023년 출간된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님의 신간 <1945년 해방직후사>의 참고문헌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의 국제정치적 배경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책입니다.
정병준, 1945년 해방직후사 ( 돌배게,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