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잊힌 퇴조의 출발점 - 자유주의적 전환의 실패와 촛불의 오해
백승욱 지음 / 북콤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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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현재 한국사회의 전환점이 1987년이 아니라 1991년이라는 점을 주장한 책으로 특히 소위 ‘민주’진영이라고 불리는 586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 뼈아픈 대목이 많습니다.

현재 기형적으로 무능한 소위 ‘보수’진영은 차지하고라도 민주진영의 무능함과 안이함을 지적합니다. 보수가 기획한 2016년의 촛불을 민주당이 ‘가로챘다’는 입장이며, 수긍이 되는 분석입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퇴행적 행태들이 1987년이후 ‘절차적’민주화를 실현했으나 거기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운동권출신 정치인들의 철학부재와 안이함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실패로 끝난이유는 소위 ‘87체제론’에 입각해 자신과 적을 구별하고 윤리적으로 우월한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맹목적인 주장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걸 ‘승리사관’이라고 규정하죠. 이런 사고는 한국사회의 자유주의적 ‘제도화’에 소홀하게 된다는 단점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가지게 된 시작점을 1991년으로 보고 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는데도 그 당시 사회변화의 요구는 ‘잊혀진’상황으로 이후 벌어진 IMF 구제금융사태 등 한국을 뒤흔든 큰 변화의 시작점으로 봅니다.

요새 많이 잊혀진 역사적 사실 중 하나가 보수세력인 민정당에서 추진한 ‘북방정책’입니다. 군인출신으로 신군부의 핵심이던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공산주의국가인 소련과 수교를 했고 당시 중공과도 수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공산권 몰락도 한몫했으나 다분히 전략적 경제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문민정부와 민주당 정부에서 이를 계승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검사출신 대통령은 자신이 소속한 정당에서 30여년 전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러시아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스스로 걷어차는 어처구니없는 외교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실리’가 뭔지 모르는 무지한 행태입니다. 바보처럼 한국의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일본과 미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현정부의 행태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일제가 심어놓은 패배주의적 ‘정체사관’에 찌들려 있는 극우 성향 대통령이 국익훼손과 역사의 퇴행에 앞장선 겁니다. 미국의 푸들을 자처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려는 최근의 행태는 대통령의 권한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대로 촛불이 보수의 ‘궁정쿠데타’성격을 가졌다면 그 쿠데타를 주도한 소위 보수세력들도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현재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말로 자유를 떠들지만 사실 얼치기 전체주의자에 불과합니다. 공화제 정치가 뭔지 법치가 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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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자이신 강명관씨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초기저작인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2003)’이후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한문이 전문이시다보니 조선시대 전반에 결친 한문전적(典籍)을 해석하시는데 탁월하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제자체가 조선후기의 사회사, 신분사, 상업사, 재정사와 연관이 있지만 저자는 이책이 ‘상업사’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이 분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또 사회과학적 견지에서 조선, 특히 조선후기 사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책은 제목에서 보듯, ‘노비’신분의 쇠고기 도살 및 판매자와 그 수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쇠고기를 도살하고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노비는 다른 어떤곳도 아닌 조선의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이 될 수 있는 조합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우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17-18세기의 상황을 2023년 현재로 대입하면, 국가가 교육관련된 재장을 서울대에 보내지 않아 서울대에서 소를 잡아 판매한 돈으로 학생을 교육하고 기숙사 및 식비를 대며 고시를 준비시키는 상황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체제가 19세기 말 갑오경장(甲午更張,1895)으로 조선의 신분제(身分制)가 혁파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괴이(怪異)하다고 생각한 점 몇가지를 아래에서 정리하려 합니다.

첫째, ’조선이 제대로된 행정력(行政力)을 갗춘 사회였는가?‘ 에 대한 점입니다. 신분제사회인 조선에서 수많은 양반들이 과거(科擧)를 본 이유는 그들이 국가를 왕과 ‘함께’ 다스리는 관료(官僚)가 되기 위해서였죠. 이를 위해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경전을 읽었고 결국 관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결국 노비들을 경제적으로 수탈( exploitation)하면서도, 노비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제도적인 개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관료의 최악의 경우인데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해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무려 300년 이상을 말입니다. 조선이 유교적 법치국가니, 유교적 도덕정치를 한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어려움을 300년 이상 방치하고 있었다는 건 조선의 양반 위주의 관료행정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양반관료들은 하물며 국왕이 시정명령을 내려도 시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두번째, 성균관을 케이스로 본 조선의 재정체제가 너무 허술해서 놀랐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성균관이라는 최고교육기관에 초기부터 국가재정을 충분히 배정하지도 않았고, 군주도 고위관리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에서만 일을 할 수 있는 노비인 반인(泮人)들에게 그들의 노동제공 댓가로 소를 도살하고 쇠고기를 판매할 수 있는 푸줏간인 현방(懸房)에 대한 독점적 운영권을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반인들이 먹고살길을 도모하라는 것이 원래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성균관은 자신에게 속한 노비들을 착취해 쇠고기를 팔아 모은 이익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고 조선후기들어 이들의 수탈은 점점 가혹해져 갔습니다. 평소 생각하던 성균관이란 고등교육기관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셋째, 반인들을 수탈하던 기관은 성균관만이 아닙니다. 소위 삼법사(三法司)로 불리던 권력기관으로 한성부(漢城府), 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에서 속전(贖錢)이라는 면목으로 반인들의 현방에서 수탈을 해왔습니다. 속전이란 말은 쉽게 법을 어긴 사항에 대한 벌금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또 기막히고 낯선 조선사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넷째, 조선은 농업기반의 사회로 소를 잡는 일은 기본적으로 불법이었습니다. 조선개국이후 1895년 갑오개혁이전까지 그랬습니다. 반인들이 생계를 위해 현방을 열었지만 불법인 쇠고기를 팔았기 때문에 일종의 영업세인 속전을 권력담당기관인 삼법사에 내지 않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농업이 산업의 근본이고 나라의 근본이라는 명분에서 소를 잡는 것이 불법이지만 쇠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양반층 특히 고위관리와 벌열들이었고 특히 선현을 위한 제사에 쇠고기는 필수였습니다.

결국 쇠고기 도축이 불법이라는 명분과 쇠고기 소비 사이의 현실적 간극을 무시한 상태로 수백년을 지내오게 됩니다. 반인들은 속전을 피할 길이 없었고 결국 구조적으로 착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속전 수탈을 위해 불법상태를 방치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양반계층은 나이브하고 졸렬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책만 읽을 줄 알았지 비현실적인 몽상가들이었죠.

다섯째, 조선후기 재정의 허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재정부족에 시달려 자신에게 속한 반인을 착취할 수 밖에 없었던 성균관은 물론이고 법률을 집행하던 권부인 형조, 한성부, 사헌부도 현방을 착취하는 방법이외에 재정문제를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군주도 고위 양반관료도 명분만 이야기하고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노비들을 무엄하다고만 할 뿐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해결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성적인 재정문제를 온전히 노비들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얼마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없는 명분론자들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제5장은 반인들이 당하던 수탈의 온갖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책의 가장 긴 글이기도 하죠.

여섯째, 노비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한 조선의 권부와 성균관의 사례는 직접적으로 한 미국학자의 논쟁적 주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미국의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교수(James B. Palais)는 조선이 ‘노예제 사회‘라고 주장해서 한국의 학자들을 분개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선형적 역사발전사관으로 볼 때, 조선이 노예제사회라는 주장은 그보다 진보한 서양의 자본주의사회보다 ‘정체된’사회라는 의미여서 한국학자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선형적 역사관은 그저 19세기 서양에서나온 시각의 하나일 뿐 그대로 믿는 이들도 별로 없어 위의 주장에 너무 감정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팔레교수는 조선후기 조선인구의 상당한 부분 즉 약 절반 이상이 노비들이었고 이들이 위의 예에서 보듯 실질적으로 성균관과 삼법사의 경제적 재정적 기반이 된게 사실이라면 학자의 주장으로 음미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 아는바처럼 조선의 양반들을 수신(修身)을 한다고 전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육체적 노동은 모두 노비를 포함한 상민계층에서 전담했습니다. 이 책에서 보듯 성균관의 관노비인 반인들은 자신이 속한 성균관과 권부인 삼법사 그리고 나중에는 궁궐의 궁방까지도 일부 재정을 책임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고위층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후기 인구 증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가 되는지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조선이 노예제 경제를 물적기반으로 하는 ‘노예제 사회’라고 해석하는 건 논리적으로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국학자들이 할일은 반박자료를 찿아 반론을 제기해야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한 반인들과 현방 그리고 권력기관들의 수탈관계를 보고는 조선은 최소 경제적, 재정적 측면에서 ‘노예제 사회’가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끝으로 책의 물리적 면을 보겠습니다.

책은 총 9장이고 본문만 540여쪽입니다. 그 뒤로 약14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주석이 있습니다.

2023년 2월에 나온 책이고, 조선후기 사회와 신분제 그리고 조선후기 상업과 특히 쇠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흥미로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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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s :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Paperback, 영국판) - 『사피엔스』원서
Harari, Yuval Noah / Vintage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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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2015년 영국에서 출판된 판본으로 읽었는데 총 20장에 걸쳐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고, 어떻게 생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지를 저자 자신만의 논리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생물학과 고인류학(Paleoanthropology)부터 진화론(Evolutionary Biology), 고고학, 전쟁사, 심리학, 과학사 등등 수많은 분과학문의 내용을 포괄한데다가 영어식 유머까지 포함되어 내용이 결코 쉽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이후 역사의 ‘진보’라고 배워왔던 논업혁명 ( the agricultural revolution)이 과연 진보인지를 논의하는데서 시작되어 과연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현재의 삶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까지 이 책은 전체가 ㅇ 이가 흔히 배워왔던 역사에 대해 그리고 문명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서양국가들이 현재의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이유가 아프리카로부터의 노예무역에서 비롯되었다는 밝히기 꾸려하는 초기 자본주의 발전의 원인도 거리낌없이 밝힙니다.

아무튼 우리가 알고있던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 유기체가 아닌 존재 (inorganic being)은 2023년 현재와 같이 인공지능( ChatGPT)가 개발되기 전이었는데도 그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도의 발달된 데이터베이스인 ‘인공지능‘은 결코 인산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이 놀랍지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개인적으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계는 시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인공지능 연구자들과 지배층이 자신의 연구를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과장되게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를 조장한다고 봅니다.

수많은 단순반복적인 일은 기계로 대체되겠지만 논리를 뛰어넘는 영감(inspiration), 감성, 그리고 돌발상황의 대처에 기계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치명적인 단점은 이 기계에 집어넣는 정보는 모두 사람이 가공해야하고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사람없이 기계가 사람처럼 될 수 있는가에 무척 회의적입니다.

또 한가지, 역사를 긴 시간에 걸쳐 서술할 필요가 있는지 역시 회의적입니다. 통합된 역사서술 자체가 개별적으로 다른 과거를 가진 다양한 사회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대한 스케일의 역사 서술보다 특정 국가와 특정시기에 대한 서술과 해석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역사에서 중요한 케이스를 고찰하고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려 한다면 과거의 경험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정치사나 외교사의 경우 선대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졌고 그 상황과 의사결정과정을 면밀하게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이 과거의 선례를 짓밟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문제가 있는 것도, 흑해 연안에서 발생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평가하면서 국제정치 , 안보 전문가들이 자꾸 제2차세계대전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context) 입니다.

미래예측에 있어서도 그 기본은 과거가 어떠했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크다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가정을 수긍하는 것이고 그 전제아래 현재의 조건에 따른 변수를 더 추가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예측이 아니라 소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영어가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용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평소 생물학과 인류학 등의 내용에 익숙하다면 읽기 수월하겠지만 사전 지식이 없다면 독해에 어려움을 겪을 소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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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조정자 -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한 지식인의 기록
남재희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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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하고 책을 봤는데, 중복되는 내용이 너무 많은 칼럼집 모음입니다.

그래도 합리적인 사고를 하시는 드믄 보수정치인의 ‘회고록’으로 생각했는데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글이 대부분 칼럼이나 인상기로 2010년대 후반에서 2022년까지 집필된 것입니다.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정치권 이면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히려 기자/ 논설위원 생활을 하신 1960-1980년대 글을 집중적으로 모았으면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많은 글을 써오고 기고하신 걸로 아는데 초기 글이 전혀 없어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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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번째로 읽은 도쿄대 가토 요코 (加藤陽子)교수의 저작입니다.

첫번째로 읽은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서해문집,2018)‘이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전까지 다룬 책이라면 본서는 중일전쟁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태평양 전쟁을 다룹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 원고를 기반으로 집필된 책입니다.

책 내용은 제국 일본의 위정자(爲政者)들이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8월 제2차세계대전에 패전할 때까지 세번의 ‘세계의 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복기합니다.

이 책은 역사책이면서 제국일본의 국책을 결정한 고위관료들과 정치가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어떤 협상과정을 거쳐 어떤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의 영향력이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합니다.

세번의 결정이란

첫째 만주사변이 발발한 이후, 중국과 일본을 타협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작성된 리튼 조사단(Lytton Commission )의 보고서 즉, 중일 분쟁 조사단 보고서; Report of the Commission of Enquiry into the Sino-Japanes,1932)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지

두번째, 제국일본은 왜 독일 이탈리아와 1940년 9월 삼국동맹( Tripartite Pact)을 맺었는지이고

마지막은 미국과 협상을 진행한 미일교섭(1941.4-11월)입니다. 주미일본대사관과 일본 외무성은 미 국무성과 미일 정상회담을 포함한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결렬되고 이후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Pearl Harbor)을 공격하고 태평양 전쟁이 시작됩니다.

일본은 영국의 외교관 리튼이 주도로 서방열강이 중재한 중국과의 화해협상안을 거부했고 이후 1937년 본격적인 중일전쟁이 발발합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두려워하며 중국의 자원과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국 일본의 수뇌부는 강경한 육군세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중국과의 화평중재안을 거부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이 삼국동맹을 맺은 이유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독일의 간섭없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함이고 프랑스령 그리고 내덜란드령 인도차이나 지역의 풍부한 자원이 일본이 이 지역을 탐낸 이유입니다. 1940년 당시 일본의 군부 식자층 가운데 독일의 전쟁 승리를 상정하고 전쟁이후의 세계질서를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일교섭 역시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이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까지만 오고 남방으로 내려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이미 중일전쟁으로 중국내 미국의 이권이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꺼지 진출해 미국의 이권이 걸린 필리핀 등을 위협하는 걸 두고 볼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은 이 지역의 석유채굴권을 가지고 있는 영미 회사들이 일본에 석유금수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미국이 인도차이나의 공정한 자원분배를 약속하는 미끼를 던졌지만 일본은 거부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책애서 보여주는 일본 외교의 치밀한 준비성은 2023년 현재도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자 가토요코 교수는 일본의 전쟁사 그 중에도 1930년대를 전공하신 분이고 따라서 일본의 전쟁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책이 출판된 당시인 2016년 일본에서 전후 미군정에 의해 탄생한 평화헌법이 극우 아베정부가 개정을 시도하는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전몰자(戰歿者) 숫자가 천만명을 넘는데, 이런 전쟁범죄( War Crime, 戰爭犯罪)를 저지르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과거의 범죄에 대해 사과도 배상(賠償)도 않고 다시 전쟁을 수행할 권리를 가지겠다는 건 현재 일본을 지배하는 과거 죠슈번벌(長州藩閥)의 후예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일본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작년 총격을 당해 사밍한 아베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파벌로 알려진 인물로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망치고 온 강제징용 문제, 일본의 조선 지배의 불법성 부인 등의 외교 행위는 대통령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더구나 기시다 총리는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한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 이었습니다.

이걸 알고도 이렇게 외교를 망쳤다면 대통령의 역사관이 ‘식민사관’에 오염되어 심각한 자기비하에 빠진 것이고 이걸 몰랐다면 역사에 너무 무지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외교행위애서 의전(儀典)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왜 외교 안보 전쟁에 대해 고찰하게 되면 역사를 뒤돌아 보는지 윤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외교문외한인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윤대통령은 외교행위와 사교(社交)행위를 착각하는 걸로 보입니다. 정부에서 통제한다고 하는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모습이 이 정도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 외교가 걱정스러운 건 그들이 상대해야 할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여러 열강에 비해 한국의 전문 외교관들이 정말 이들 열강과 협상다운 협상을 할 능력이 있는가입니다. 일본의 경우 세계 외교무대에 나간지 100여년이 이미 넘었고 외교전은 물론 전쟁에서도 이겼다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서구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들을 논리와 협상으로 깰 능력을 보유하고 있나요? 과거와 다르게 한국은 분명 가지고 있는 게 많은 나라고 전략적으로 활용가치가 있는 자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더이상 미군에게 쵸콜렛 받아먹던 가난한 나라로 생각 안했으면 합니다만 이나라 상층부의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노년층은 아직 일본이 심어놓은 자학적 세계관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쪽은 모르겠으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이 선진국이었던 때는 디지털로 세상이 변하기 전인 1990년대까지입니다.

심지어 과거 장점이었던 장인정신이 지금은 일본경제발전에 족쇄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도장찍어 결제하고 플로피 디스크가 쓰이는 사회이니 뒤쳐저도 한참 뒤쳐진 겁니다. 일본이 너무 자랑하는 오래된 음식점들 , 즉 노포(老鋪) 중에 신용카드 결제를 할 수 없는 곳이 허다합니다.

선진국 중 레스토랑에서 신용결제가 불가능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10여년전 도쿄에 여행가서 직접 경험한 것이라 더 실감이 납니다. 시골이 아니라 도쿄의 번화가 긴자(銀座)에서 겪은 일이라 매우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일본은 그렇게 선진적인 나라가 더이상 아닙니다.


현재 세계는 30여년 동안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쓸고 그로인한 이상 저금리가 지난 30여년 지속되어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고 중앙은행이 제구실을 못하는 지극히 비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달러패권이 얼마나 지속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에 파산한 SVB는 안전자산이라고 하던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망했습니다. 이자율 인상에 따른 국채가격 하락을 감당하지 못해서입니다.

미국이 왜 중국을 못잡아먹어서 난리일까요? 이 현상은 미국이 더이상 세계를 일극채제로 끌고갈 수 없다는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러시아와 별개로 중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은 이미 미국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무시를 못하니 체제경쟁하고 인종적 편견이 가득한 레토릭으로 중국을 무시하는 겁니다. 중국이 미국을 단숨에 따라잡긴 어려워도 분명 위협적이긴 하단 말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보고 뉴스를 보면서 윤석열 정부가 외교와 경제정책에 뭔가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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