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두번째로 읽은 도쿄대 가토 요코 (加藤陽子)교수의 저작입니다.
첫번째로 읽은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서해문집,2018)‘이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전까지 다룬 책이라면 본서는 중일전쟁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태평양 전쟁을 다룹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 원고를 기반으로 집필된 책입니다.
책 내용은 제국 일본의 위정자(爲政者)들이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8월 제2차세계대전에 패전할 때까지 세번의 ‘세계의 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복기합니다.
이 책은 역사책이면서 제국일본의 국책을 결정한 고위관료들과 정치가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어떤 협상과정을 거쳐 어떤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의 영향력이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합니다.
세번의 결정이란
첫째 만주사변이 발발한 이후, 중국과 일본을 타협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작성된 리튼 조사단(Lytton Commission )의 보고서 즉, 중일 분쟁 조사단 보고서; Report of the Commission of Enquiry into the Sino-Japanes,1932)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지
두번째, 제국일본은 왜 독일 이탈리아와 1940년 9월 삼국동맹( Tripartite Pact)을 맺었는지이고
마지막은 미국과 협상을 진행한 미일교섭(1941.4-11월)입니다. 주미일본대사관과 일본 외무성은 미 국무성과 미일 정상회담을 포함한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결렬되고 이후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Pearl Harbor)을 공격하고 태평양 전쟁이 시작됩니다.
일본은 영국의 외교관 리튼이 주도로 서방열강이 중재한 중국과의 화해협상안을 거부했고 이후 1937년 본격적인 중일전쟁이 발발합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두려워하며 중국의 자원과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국 일본의 수뇌부는 강경한 육군세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중국과의 화평중재안을 거부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이 삼국동맹을 맺은 이유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독일의 간섭없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함이고 프랑스령 그리고 내덜란드령 인도차이나 지역의 풍부한 자원이 일본이 이 지역을 탐낸 이유입니다. 1940년 당시 일본의 군부 식자층 가운데 독일의 전쟁 승리를 상정하고 전쟁이후의 세계질서를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일교섭 역시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이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까지만 오고 남방으로 내려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이미 중일전쟁으로 중국내 미국의 이권이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꺼지 진출해 미국의 이권이 걸린 필리핀 등을 위협하는 걸 두고 볼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은 이 지역의 석유채굴권을 가지고 있는 영미 회사들이 일본에 석유금수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미국이 인도차이나의 공정한 자원분배를 약속하는 미끼를 던졌지만 일본은 거부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책애서 보여주는 일본 외교의 치밀한 준비성은 2023년 현재도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자 가토요코 교수는 일본의 전쟁사 그 중에도 1930년대를 전공하신 분이고 따라서 일본의 전쟁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책이 출판된 당시인 2016년 일본에서 전후 미군정에 의해 탄생한 평화헌법이 극우 아베정부가 개정을 시도하는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전몰자(戰歿者) 숫자가 천만명을 넘는데, 이런 전쟁범죄( War Crime, 戰爭犯罪)를 저지르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과거의 범죄에 대해 사과도 배상(賠償)도 않고 다시 전쟁을 수행할 권리를 가지겠다는 건 현재 일본을 지배하는 과거 죠슈번벌(長州藩閥)의 후예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일본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작년 총격을 당해 사밍한 아베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파벌로 알려진 인물로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망치고 온 강제징용 문제, 일본의 조선 지배의 불법성 부인 등의 외교 행위는 대통령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더구나 기시다 총리는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한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 이었습니다.
이걸 알고도 이렇게 외교를 망쳤다면 대통령의 역사관이 ‘식민사관’에 오염되어 심각한 자기비하에 빠진 것이고 이걸 몰랐다면 역사에 너무 무지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외교행위애서 의전(儀典)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왜 외교 안보 전쟁에 대해 고찰하게 되면 역사를 뒤돌아 보는지 윤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외교문외한인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윤대통령은 외교행위와 사교(社交)행위를 착각하는 걸로 보입니다. 정부에서 통제한다고 하는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모습이 이 정도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 외교가 걱정스러운 건 그들이 상대해야 할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여러 열강에 비해 한국의 전문 외교관들이 정말 이들 열강과 협상다운 협상을 할 능력이 있는가입니다. 일본의 경우 세계 외교무대에 나간지 100여년이 이미 넘었고 외교전은 물론 전쟁에서도 이겼다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서구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들을 논리와 협상으로 깰 능력을 보유하고 있나요? 과거와 다르게 한국은 분명 가지고 있는 게 많은 나라고 전략적으로 활용가치가 있는 자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더이상 미군에게 쵸콜렛 받아먹던 가난한 나라로 생각 안했으면 합니다만 이나라 상층부의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노년층은 아직 일본이 심어놓은 자학적 세계관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쪽은 모르겠으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이 선진국이었던 때는 디지털로 세상이 변하기 전인 1990년대까지입니다.
심지어 과거 장점이었던 장인정신이 지금은 일본경제발전에 족쇄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도장찍어 결제하고 플로피 디스크가 쓰이는 사회이니 뒤쳐저도 한참 뒤쳐진 겁니다. 일본이 너무 자랑하는 오래된 음식점들 , 즉 노포(老鋪) 중에 신용카드 결제를 할 수 없는 곳이 허다합니다.
선진국 중 레스토랑에서 신용결제가 불가능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10여년전 도쿄에 여행가서 직접 경험한 것이라 더 실감이 납니다. 시골이 아니라 도쿄의 번화가 긴자(銀座)에서 겪은 일이라 매우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일본은 그렇게 선진적인 나라가 더이상 아닙니다.
현재 세계는 30여년 동안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쓸고 그로인한 이상 저금리가 지난 30여년 지속되어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고 중앙은행이 제구실을 못하는 지극히 비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달러패권이 얼마나 지속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에 파산한 SVB는 안전자산이라고 하던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망했습니다. 이자율 인상에 따른 국채가격 하락을 감당하지 못해서입니다.
미국이 왜 중국을 못잡아먹어서 난리일까요? 이 현상은 미국이 더이상 세계를 일극채제로 끌고갈 수 없다는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러시아와 별개로 중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은 이미 미국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무시를 못하니 체제경쟁하고 인종적 편견이 가득한 레토릭으로 중국을 무시하는 겁니다. 중국이 미국을 단숨에 따라잡긴 어려워도 분명 위협적이긴 하단 말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보고 뉴스를 보면서 윤석열 정부가 외교와 경제정책에 뭔가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