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이신 강명관씨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초기저작인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2003)’이후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한문이 전문이시다보니 조선시대 전반에 결친 한문전적(典籍)을 해석하시는데 탁월하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제자체가 조선후기의 사회사, 신분사, 상업사, 재정사와 연관이 있지만 저자는 이책이 ‘상업사’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이 분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또 사회과학적 견지에서 조선, 특히 조선후기 사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책은 제목에서 보듯, ‘노비’신분의 쇠고기 도살 및 판매자와 그 수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쇠고기를 도살하고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노비는 다른 어떤곳도 아닌 조선의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이 될 수 있는 조합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우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17-18세기의 상황을 2023년 현재로 대입하면, 국가가 교육관련된 재장을 서울대에 보내지 않아 서울대에서 소를 잡아 판매한 돈으로 학생을 교육하고 기숙사 및 식비를 대며 고시를 준비시키는 상황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체제가 19세기 말 갑오경장(甲午更張,1895)으로 조선의 신분제(身分制)가 혁파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괴이(怪異)하다고 생각한 점 몇가지를 아래에서 정리하려 합니다.

첫째, ’조선이 제대로된 행정력(行政力)을 갗춘 사회였는가?‘ 에 대한 점입니다. 신분제사회인 조선에서 수많은 양반들이 과거(科擧)를 본 이유는 그들이 국가를 왕과 ‘함께’ 다스리는 관료(官僚)가 되기 위해서였죠. 이를 위해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경전을 읽었고 결국 관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결국 노비들을 경제적으로 수탈( exploitation)하면서도, 노비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제도적인 개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관료의 최악의 경우인데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해결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무려 300년 이상을 말입니다. 조선이 유교적 법치국가니, 유교적 도덕정치를 한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지만 사회구성원의 경제적 어려움을 300년 이상 방치하고 있었다는 건 조선의 양반 위주의 관료행정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양반관료들은 하물며 국왕이 시정명령을 내려도 시정하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두번째, 성균관을 케이스로 본 조선의 재정체제가 너무 허술해서 놀랐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성균관이라는 최고교육기관에 초기부터 국가재정을 충분히 배정하지도 않았고, 군주도 고위관리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균관에서만 일을 할 수 있는 노비인 반인(泮人)들에게 그들의 노동제공 댓가로 소를 도살하고 쇠고기를 판매할 수 있는 푸줏간인 현방(懸房)에 대한 독점적 운영권을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반인들이 먹고살길을 도모하라는 것이 원래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성균관은 자신에게 속한 노비들을 착취해 쇠고기를 팔아 모은 이익을 가져다 쓰기 시작했고 조선후기들어 이들의 수탈은 점점 가혹해져 갔습니다. 평소 생각하던 성균관이란 고등교육기관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셋째, 반인들을 수탈하던 기관은 성균관만이 아닙니다. 소위 삼법사(三法司)로 불리던 권력기관으로 한성부(漢城府), 형조(刑曹), 사헌부(司憲府)에서 속전(贖錢)이라는 면목으로 반인들의 현방에서 수탈을 해왔습니다. 속전이란 말은 쉽게 법을 어긴 사항에 대한 벌금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또 기막히고 낯선 조선사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넷째, 조선은 농업기반의 사회로 소를 잡는 일은 기본적으로 불법이었습니다. 조선개국이후 1895년 갑오개혁이전까지 그랬습니다. 반인들이 생계를 위해 현방을 열었지만 불법인 쇠고기를 팔았기 때문에 일종의 영업세인 속전을 권력담당기관인 삼법사에 내지 않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유교적 관점에서 농업이 산업의 근본이고 나라의 근본이라는 명분에서 소를 잡는 것이 불법이지만 쇠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양반층 특히 고위관리와 벌열들이었고 특히 선현을 위한 제사에 쇠고기는 필수였습니다.

결국 쇠고기 도축이 불법이라는 명분과 쇠고기 소비 사이의 현실적 간극을 무시한 상태로 수백년을 지내오게 됩니다. 반인들은 속전을 피할 길이 없었고 결국 구조적으로 착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속전 수탈을 위해 불법상태를 방치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양반계층은 나이브하고 졸렬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책만 읽을 줄 알았지 비현실적인 몽상가들이었죠.

다섯째, 조선후기 재정의 허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재정부족에 시달려 자신에게 속한 반인을 착취할 수 밖에 없었던 성균관은 물론이고 법률을 집행하던 권부인 형조, 한성부, 사헌부도 현방을 착취하는 방법이외에 재정문제를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군주도 고위 양반관료도 명분만 이야기하고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노비들을 무엄하다고만 할 뿐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해결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성적인 재정문제를 온전히 노비들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조선 성리학자들이 얼마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없는 명분론자들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제5장은 반인들이 당하던 수탈의 온갖 사례들로 가득합니다. 책의 가장 긴 글이기도 하죠.

여섯째, 노비의 노동력과 경제력에 의존한 조선의 권부와 성균관의 사례는 직접적으로 한 미국학자의 논쟁적 주장을 떠오르게 합니다. 미국의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교수(James B. Palais)는 조선이 ‘노예제 사회‘라고 주장해서 한국의 학자들을 분개하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선형적 역사발전사관으로 볼 때, 조선이 노예제사회라는 주장은 그보다 진보한 서양의 자본주의사회보다 ‘정체된’사회라는 의미여서 한국학자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선형적 역사관은 그저 19세기 서양에서나온 시각의 하나일 뿐 그대로 믿는 이들도 별로 없어 위의 주장에 너무 감정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팔레교수는 조선후기 조선인구의 상당한 부분 즉 약 절반 이상이 노비들이었고 이들이 위의 예에서 보듯 실질적으로 성균관과 삼법사의 경제적 재정적 기반이 된게 사실이라면 학자의 주장으로 음미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 아는바처럼 조선의 양반들을 수신(修身)을 한다고 전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육체적 노동은 모두 노비를 포함한 상민계층에서 전담했습니다. 이 책에서 보듯 성균관의 관노비인 반인들은 자신이 속한 성균관과 권부인 삼법사 그리고 나중에는 궁궐의 궁방까지도 일부 재정을 책임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고위층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후기 인구 증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가 되는지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조선이 노예제 경제를 물적기반으로 하는 ‘노예제 사회’라고 해석하는 건 논리적으로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국학자들이 할일은 반박자료를 찿아 반론을 제기해야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한 반인들과 현방 그리고 권력기관들의 수탈관계를 보고는 조선은 최소 경제적, 재정적 측면에서 ‘노예제 사회’가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끝으로 책의 물리적 면을 보겠습니다.

책은 총 9장이고 본문만 540여쪽입니다. 그 뒤로 약14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주석이 있습니다.

2023년 2월에 나온 책이고, 조선후기 사회와 신분제 그리고 조선후기 상업과 특히 쇠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흥미로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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