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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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36

좋은 작품이란 재미있거나, 감동적이거나, 여운이 있거나 일텐데,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은 여운이 있는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서 트레버의 작품은 막 재미있지는 않다, 그리고 감동이나 교훈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나 인물들 자체가 엄청 평범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트레버의 묘사는 상세하다. 반면 등장인물의 대사는 짧다. 절대로 길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장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대단히 깊다. 한번 읽고 지나칠 수 없고, 곱씹어서 생각을 해야 이해할 수 있다.

[애니타 라이드는 출판사 원고 검토자가 무엇인지 알기 전인 1970년 대에 파이어플라이스 멤버로 춤을 추었고, 텔레비전에 출연해 춤추고 노래하는 삶의 흥을 즐겼다. 매력이 넘치고 나름대로 잘생긴 연상의 남자가 그녀를 흠모했고, 이윽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과 결혼하는 걸 견딜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지 않는 걸 견딜 수 없다고 대답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P.48 <다리아 카페에서 중 >


[그녀는 여느 여행에서는 아버지가 독서에 몰입할 때 가끔 소외감을 느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간간이 떠오르는 즐거운 미소, 책장을 넘기는 섬세한 손, 여행중에도 구겨지지 않은 여름옷이 그가 긴 세월을 두고 서서히 얻게 된 마음의 평안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비통함을 잘 견뎌냈다. 어딘가에서, 오늘 그리고 모든 날에, 그가 끝까지 사랑했던 아내는 그가 주지 못한 만족감을 즐겼다. 그는 잔인한 인내심을 발휘해 그가 없는 그녀의 삶에 대해 곱씹으며 살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비우기를 택했고, 그것이 진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P.240 <여자들 중>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작품인 <마지막 이야기들>에는 10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다 좋다.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정말이다. 하나같이 다 좋다. 국내에 번역된 윌리엄 트레버의 책을 다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가장 좋았다. 가장 최근에 읽어서 그런걸수도 있겠지만...


10편의 단편이 다 좋지만, 가장 좋은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겨울의 목가>를 선택하겠다. 다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줄거리를 간단히 풀어보진면,


한적한 시골에 있는 큰 농장의 딸인 "메리 벨라", 어느날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한가하게 있던 도시에 살던 "앤서니"가 "메리 벨라"의 가정교사가 되어 시골로 내려온다. 그리고 두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굉장히 히스클리프적인데." 황무지에서 말을 타고 경주를 벌이는 사람들을 보고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그가 책을 읽어주었는데, 무슨 책이냐에 따라 그녀가 읽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그 여름이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슬펐다. 그는 그 여름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기억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P.180



하지만 "앤서니"는 떠날수 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좋은 감정을 뒤로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앤서니"는 지도제작자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살고, "메리 벨라"는 미혼으로 살면서 농장을 운영한다. 그렇게 각자 살았더라면 괜찮았겠지만, "앤서니"는 지나가는 길에 "메리 벨라"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아직도 그곳에 있는 그녀를 만난다. 그리고 두사람은예전의 좋은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알게된다.

[너를 다시 보니 기분이 얼마나 묘한지. 난 과거의 시간은 과거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건지 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 집을 지나쳐갔어. 하지만 다시 마음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 거야.] P.189



결국 "엔서니"는 가정을 버리고 그녀의 집으로 온다. 누군가의 불행을 방치한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메리 벨라"는 잠깐의 행복을 느끼지만 언젠가는 "앤서니"가 떠날거라고 예감한다.

["이제 다 끝났어." 앤서니가 말했다. "끔찍한 시간은 지나갔어." 끝나지 않았다. 기억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점잖게 사라지지 않고 악마들을 풀어놓는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고, 그녀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P.202



불행할걸 알면서도 멈출수 없는 감정, 그 떨림과 체념을 너무나 완벽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자책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마음이 이미 기울어 있는데 말이다. 사랑은 끝나더라도 흔적은 그렇게 남겨진 것이 된다.

[일꾼들이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선다. 붉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서 그들의 장홧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메리 벨라는 불안감을, 그리고 어쩌면 연민을 감지한다. 그녀는 그것들을 웃어넘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그에게는 그 사랑이 그녀의 그림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녀에게는 그와 함께했던 방들과 장소 에 있음을 일꾼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사랑이 시들지 않을 것임을, 길고 느린 죽음이나 평범해진 사랑은 없을 것임을 일꾼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P.206





다른 단편도 소개하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못쓰는게 아쉽다... 단편을 좋아하신다면, 특히 체호프를 좋아한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라 확신한다.




Ps. 이 책에 대한 몇몇 추천사들

'나는 언제나 트레버를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항상 놀란다. 현실에서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끔 찍한 행동을 하지만 트레버는 어떠한 판단도 없이 그들을 바라본다. 그건 정말로 사랑스러운 일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트레버의 문체는 너무도 섬세해서, 사실상 문체라고 부를 것이 없다.' 존 밴빌

'트레버는 21세기의 체호프다. 월스트리트저널
평범한 삶에서 이끌어낸 비범한 이야기' 타임스

'트레버 소설의 특징은 군더더기 없는 적확하고 생생한 묘사, 흔들림 없이 정밀한 인물 설정, 칼같이 예리한 동시에 불가사의한 부드러움을 지닌 소설적 시선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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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6-16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인물들의 이야기, 근사한 묘사를 이끌어내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죠. 새파랑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읽을 이유가 충분하군요^^*

새파랑 2023-06-16 17:11   좋아요 1 | URL
화가님은 윌리엄 트레버 잘 맞으실거 같아요 ^^ 강추합니다~!!

페넬로페 2023-06-16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편다 좋고 여운이 남는 내용이면~~
무조건 읽어야겠어요^^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여운이 있는 작품이 좋은 책이다^^
밑줄 쫙!!!!!!!
책 표지도 멋지네요^^

새파랑 2023-06-16 22:17   좋아요 1 | URL
표지도 좋고 내용은 더 좋고 ^^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레삭매냐 2023-06-16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 서점에 들러서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돌아섰습니다 -

나중에 중고책으로 풀리면
그 때 만나 보는 것으로.

새파랑 2023-06-16 22:19   좋아요 1 | URL
중고든 새책이든 좋으면 그만이죠~!! 레삭매냐님이라면 이 책 정도의 두께는 그자리에서 다 읽으실거 같아요~!!

독서괭 2023-06-16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편이 한결같이 좋다니 굉장해요!! 저는 펠리시아의 여정 이후 못 읽고 있네요 ㅠㅠ

새파랑 2023-06-16 22:20   좋아요 1 | URL
전 윌리엄 트레버의 국내판중 <펠리시아의 여정>이 젤 안좋았습니다. ㅋ 당연히 좋긴 한데 가장 약한편? ㅋ

희선 2023-06-17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은 트레버 소설을 아주 좋아하시는군요 다른 작가도 좋아하겠지만... 이 책에 담긴 단편은 다 좋다니, 책 읽는 동안 즐거워겠네요

새파랑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3-06-17 10:59   좋아요 1 | URL
윌리엄 트레버 아주 좋아합니다~!! 그의 다른 작품도 더 읽고싶은데 더이상 번역책이 없네요주ㅜ

그레이스 2023-06-17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레버는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여성의 삶에 대해 그리는 듯 보이네요
모아놓은 그의 작품 다 읽지도 못했는데, 이 책도 들여놓아야 하려는지... 고민중이었는데, 새파랑님 리뷰가 떠억!

새파랑 2023-06-17 11:0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은 윌리엄 트레버 좋아하실거라 확신합니다 ㅋ 주위를 바라보는 트레버의 시선이 너무 좋습니다~!!

han22598 2023-06-18 0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지금 도전중입니다. ㅋㅋㅋㅋ 새파랑이 좋아하시니..저도 좋아할 것 같은데 아직 느낌이 안오네요 ㅎㅎ

새파랑 2023-06-18 19:11   좋아요 0 | URL
앗 ㅋ 좋으셨으면 좋겠지만 다 맞을수는 없죠 ^^ 영어로 읽으시면 더 느낌이 오지 않을까요? ㅋ

coolcat329 2023-07-01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트레버의 소설은 읽고난 후 여운이 짙어요.
10편이 다 좋으셨다니 또 사야하나 싶네요. ㅎㅎ

새파랑 2023-07-01 12:22   좋아요 1 | URL
무조건 구매하셔야 합니다. 트레버는 소장각입니다~! 재독, 삼독해야 하는 작가라 생각합니다 ㅋ
 
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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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35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은 <Enduring love> 이지만, (영원한 사랑?) 국내 번역 제목은 <견딜 수 없는 사랑> 이다. 이걸 같은 뜻으로 볼 수 있을까? <(너무 좋아서 해어지는걸) 견딜 수 없는 사랑> 이라고 나름 정의해본다.


'이언 매큐언'의 작품은 두편 밖에 안읽었지만, 내 기억속에는 글 잘쓰는 작가로 인식되어 있다. 그리고 왠지 '줄리언 반스'랑 형제? 같은 느낌도 준다. 특히 <견딜 수 없는 사랑>처럼 '줄리언 반스'도 열기구를 소재로 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써서 그런지 더 비슷한 느낌이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읽는 재미가 확실히 있다.초반부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해 보자면,


주인공인 '조'와 여자친구인 '클라리사'는 소풍을 간 교외에서 고장난 열기구가 위험에 처한 것을 발견하고, '조'는 현장으로 뛰어간다. 그 열기구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었고, 하필 당시에 강풍이 부는 바람에 열기구가 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하늘로 날아갈 상황에 처한다.


'조'를 포함한 남자 성인 4명은 열기구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바구니 모서리 끝단에 설치된 줄을 잡아당긴다. 그런데 하필 또 강풍이 불어서 열기구는 밧줄에 매달려 있는 성인 4명과 바구니 속에 있는 아이 1명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성인 4명의 무게라면 바람이 잦아들었을때 다시 땅으로 안전하게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먼져였을까? '조'를 포함한 3명의 남자는 땅으로 뛰어내렸다(밧줄을 놓았다가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로건'이라는 남자는 밧줄을 놓지 못하고 기구와 함께 하늘 높이 올라간다. 그리고 더이상 팔힘이 버티지 못하게 되자, '로건'은 밧줄을 놓게 되고, 땅으로 떨어져 사망한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누가 먼저 놓았을까?


솔직히 난 열기구 사건을 통해 뭔가 인간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될줄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갑자기 '드클레랑보 증후군' 이야기로 이어진다.
[드클레랑보 증후군 : 종교적 의미가 내재된 동성애적 집착]


사건 이후 열기구에 매달렸던 4인중의 한명인 '패리'라는 사람이 이 증후군에 걸려서(이미 걸려 있었을지도...), 주인공인 '조'를 스토킹하게 된다. '패리' 는 '조'가 자신에게 먼저 신호를 보냈다고, 그는 나를 좋아한다고, 이건 종교적인 운명이라는 망상을 하게 된다. '조'는 '패리'의 스토킹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


하지만 또하나의 이야기가 섞인다. '조'의 여자친구인 '클라리사'는 스토킹을 한다는 '패리'를 발견할 수 없어서 믿을 수 없었고, 혹시 '패리'의 스토킹은 열기구 사건의 충격(죄책감) 때문에 생긴 '조'의 망상이 아닐까란 추측을 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 책의 중반 이후부터는 스릴러와 반전이 펼쳐진다.





<견딜수 없는 사랑>을 다 읽고 나서 느낀 점 두가지는, 첫째, 이언 매큐언은 글을 재미나게 잘 쓴다, 둘째, 너무 재미나게 쓰려고 해서 그런지 작품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다, 였다. 그래서 조금은 아쉬웠다.


차라리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만 다루었더라면, 아니면 '드플레랑보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뭔가 반전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책이 재미없었던건 절대 아니다.


Ps.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좀 낚시성이지 않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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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6-11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저도 이언 매큐언 하면 줄리언 반스가 자동 연상돼요.
전 이 작품 너무 좋았어요. 저 증후군 몰랐던거라 완전 허를 찔렀달까요.

새파랑 2023-06-11 18:5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하면 공쟝쟝님이 연상되듯이 비슷한거 같습니다 ~!! 저는 초반부 읽고 감탄했었는데, 몇일 지나고나서 다시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응? 이런 느낌을 좀 받았습니다 ㅋ 제가 예상했던 흐름과 너무 달라서요 ㅎㅎ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꼬마요정 2023-06-11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엔 엄청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으읭? 했네요 ㅎㅎ 이언 매큐언은 뭔가 저 밑에 비밀을 숨겨두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이야기보다는 <속죄>나 <체실비치에서>가 더 좋아요 ㅎㅎ 어쨌든 이언 매큐언은 뭔가 마력이 있는지 자꾸 읽게 되네요.

새파랑 2023-06-12 12:10   좋아요 0 | URL
저랑 좀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군요~! 재미는 있는데, 왠지 아쉬웠습니다. 뭔가 농락(?) 당한 기분? ㅋ <속죄> 사놓고 아직 못읽었는데 읽어봐야 겠습니다~!!

물감 2023-06-11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글에서 비평과 질타를 보게 되다니, 이거 놀랍습니다!

새파랑 2023-06-12 15:05   좋아요 1 | URL
앗 비평과 질타인가요? ㅋ 초반부 읽으면서 상황설정 너무 좋네! 이랬는데 뒤로갈수록 좀 아쉬워서 비평(?)을 좀 했습니다 ㅋ

희선 2023-06-12 0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가 진짜일지... 끝까지 보면 그걸 알지... 그런 게 나오는 것도 있지만 끝까지 뭔지 모를 것도 있잖아요 재미있다고 하니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3-06-12 12:13   좋아요 0 | URL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있어서 재미는 있는데 너무 계속 반전이어서 좀 그랬습니다 ㅎㅎ 끝에 가면 명확해 집니다 ^^

페넬로페 2023-06-12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원하지만 견딜수는 없는 사랑이 있지 않을까요?
이언 매큐언 작가의 작품을 아직도 읽지 않았어요 ㅠㅠ
제 취향과 맞을지 잘 모르겠어요~~

새파랑 2023-06-12 19:0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취향을 잘 아는 저로써는, 안맞으실거 같아요 ㅋ 일단 이 책은 사랑이야기가 아닙니다 ㅎㅎ
 

N23030

˝사랑이 결여된 인간은 정치도 법도 분노도 용서도 올바르게 행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유진목˝이라는 작가님의 성함은 들어는 봤지만 누구인지 몰랐다. 이름만 보고 남성작가인줄 알았는데... <산책과 연애>를 읽다보니 아~ 여성작가 였네? 하고 놀랐다. 역시 사람의 선입견이란 참 무섭다. 그리고 글이 너무 솔직해서 또 놀랐다. 책의 곳곳에서 작가님만의 강한(?) 주관이 확실히 느껴졌다.

[사람과 연애할 때 굳이 내가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폭발한다. 내가 아니어도 됐다면 나와 시간을 보내지 말았어야지? 나를 대체물로 거기에 있도록 한 사람에게 나는 살의를 느낀다.]  P.28



‘말들의 흐름‘ 시리즈는 두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쓰는 에세이 시리즈인데, 두가지 키워드만 가지고 글을 쓰는게 쉽지는 않을거다. 그래서 약간은 억지로 맞춰서 쓸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산책‘과 ‘연애‘라는 키워드를 떠올렸을때는 뭔가 달달(?)하고 감성적인 글이 많을 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삶과 사랑, 죽음에 관한 작가님만의 소신이 참 좋았다. 나에게도 저런 소신이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사랑을 품은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거의 매번 지고 만다. 사실이 그렇다. 사랑이 결여된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 속에 살아가게 내버려둔다. 사랑이 결여된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방치되어 무능력한 존재로 낙오한다.]  P.64


[사랑하지 않으면 편리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모른 척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회피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무책임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변명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말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금세 말을 바꿀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재빨리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더 빨리 갈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버릴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모르는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 폭력이 된다. 아는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 허영이 된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므로 이 모든 일을 알지 못한다.]  P.107





Ps. 요즘 ‘말들의 흐름‘ 시리즈에 꽂혔다 ㅋ 지금까지 네편을 읽었는데, 다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이 다 좋았다. 이렇게 또 수집병이 발동한다.

<지금까지 읽은 책>
1. 커피와 담배   2. 시와 산책
3. 산책과 연애   4. 농담과 그림자

<읽고있는 책>
1. 연애와 술

<구매해야 할 책>
1. 담배와 영화   2. 영화와 시
3. 술과 농담      4. 그림자와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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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5-30 14: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본 듯한데 시리즈로 있는 책이었군요. 커피와 담배, 술과 농담 저도 끌리네요. 시리즈 제목이 하나씩 겹치는 게 정말 ‘말들의 흐름‘입니다.

새파랑 2023-05-30 15:08   좋아요 2 | URL
리뷰를 자세히 써봐야지 생각했는데 점심시간이 금방 지나가서 너무 짧게 썼네요 ㅋ
이 시리즈 재미있습니다~!!

페넬로페 2023-05-30 1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애하고 사랑하면 산책도 달콤할 것 같아요. 인용해주신 문장보니 사람이 세상 사는데 사랑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3-05-30 22:10   좋아요 1 | URL
저도 사랑(?)주의자입니다ㅋ 사람이든 책이든 사물이든 사랑이 있어야 애착이 생기는거 같아요^^

자목련 2023-05-31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술과 농담>, <시와 산책> 만 읽었는데 <시와 산책>이 참 좋았어요. <농담과 그림자>가 궁금하고요.

새파랑 2023-05-31 11:02   좋아요 0 | URL
<농담과 그림자>는 좀 심심(?)한 편이고 개인적으로는 <커피와 담배>가 좋았습니다. 제가 커피와 담배를 많이 좋아해서 ^^
<시와 산책> 저도 좋아합니다. 친구들한테 선물도 주고 그랬습니다 ㅋ

그레이스 2023-05-31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경의 사랑장을 보는것 같네요.
요즘 사랑이 좀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데, 이 글들에 관심이 가요.

새파랑 2023-05-31 11:0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이랑은 약간(?) 안맞을수도 있을거 같아요 ㅋ 사랑이 꼭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건 아닌거 같아요 ^^

은오 2023-05-31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산책 말시리즈 영업사원이 잠자냥님이라면 말들의 흐름 시리즈 영업사원은 새파랑님이었던 것이다....
저도 한권쯤 읽어봐야겠어요! 일단 커피와 담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저도 둘다 좋아합니다. 근데 이거 빨리 읽어야할 것 같음.... 전 금연 할겁니다 내년엔...? 꼭....ㅠㅠ
그리고 술과 농담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새파랑 2023-05-31 18:55   좋아요 0 | URL
ㅋㅋ 제가 감히 잠자냥님과 비교가 될 수 있을까요 ㅎㅎ 커피와 담배는 재미가 없을수 없는 소재인거 같습니다~!!

금연

하시면 안됩니다 ㅋ
 
아돌프의 사랑 문지 스펙트럼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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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28

"자연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는지 몰라요.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장미빛 미래가 없을걸 알면서도 어떤 행동을 시작하려고 결정하였다면 장미빛 미래는 포기하는게 맞다. 포기할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좀 특이하다. 불행할걸 알면서도,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멈출수가 없고, 순간의 감정에 불타오르다가도 어느순간 갑자기 꺼져버리기도 한다. 이성의 영역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사랑,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사랑은 일종의 마술과 같은 것이어서 오랜 추억을 대신한다. 사랑은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하나의 과거를 만들어내어, 그것으로 우리를 감싼다. 사랑은 말하자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알지 못했던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한순간에 타오르는 하나의 불빛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것처럼 여겨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얼마 안가서 그것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지나온 시간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장차 다가올 시간 위에도 밝은 빛을 뿌려주는 것이다.] P.51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의 사랑>은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당연히 비극이다. 아주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지면...


스물두살의 주인공인 "아돌프"가 P 백작의 첩인 "엘레노르"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현재를 지키고 싶었던 그녀는 "아돌프"를 멀리하지만, 계속되는 그의 애정공세에 결국 항복하게 되고 두 사람은 비밀리에 연인이 된다.

[엘레노르, 제발 제 간청을 들어주세요. 당신도 어느 정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고, 당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을 잊고 제가 아직도 한 가닥 삶의 행복과 희망을 느낀다면, 그건 다 당신 덕 택입니다. 이런 제가 당신 곁에 있고, 또한 저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P.46



그러나 어느순간 두 사람의 감정은 역전이 되고, "엘레노르"의 감정은 더 커져만 가지만 "아돌프"는 자신의 현실적인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돌프, 당신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거라고요. 당신은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동정일 뿐이에요."] P.88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밝혀지게 되고, "엘레노르"는 P 백작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아돌프"와 함께 살려고 하지만 "아돌프"는 망설인다. "엘레노르"에 대한 "아돌프"의 마음은 사랑에서 연민으로 돌아서 버렸다.

["아돌프! 당신은 나에게 준 고통을 모르세요. 하지만 언젠가는 알겠죠. 나를 무덤 속에 떨어뜨려버린 그때, 스스로 그걸 알게 될 거예요."] P.129



시작할때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결말. 좋다고 매달릴땐 언제고 이제와서 감정이 식어버린 "아돌프"가 잘못한걸까, 아니면 불행할걸 알면서도 사랑을 받아준 "엘레노르"가 바보인걸까?

["내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였지만, 당신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이제 며칠 만 더 나를 돌봐주세요."] P.144



이 책을 읽으면서 "아돌프" 나쁜 xx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책임지지도 않을거면서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아돌프"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한번 사랑했다고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런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걸 가지고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약간은 뻔한 이야기였지만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아돌프"에 대한 심리묘사가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겐 전부였지만, 누군가에겐 일부였던 사랑, 그래서 사랑은 참 어렵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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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5-25 0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그놈의 사랑이 뭔지!
사랑할때는 미래의 불행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ㅠㅠ

새파랑 2023-05-25 06:06   좋아요 1 | URL
일단 직진? ㅋ 아돌프의 감정변화에 대한 묘사가 아주 좋았습니다~!! 저도 예전에 저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것도 같아요 ㅋㅋ

얄라알라 2023-05-25 0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정의 역전이라! 새파랑님 표현, 줄거리 5단어 집약으로 와닿네요. 익숙하게 봐온 역전인지라 더 아립니다

새파랑 2023-05-25 06:07   좋아요 1 | URL
익숙한 역전인데도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ㅋ 해셜보니까 이 작품은 심리묘사가 탁월하다고 써있더라구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레삭매냐 2023-05-25 0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나 지금이나 그놈의 사랑
은 어렵지 싶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주구장창
울궈먹게 되는 그런 소재가
아닌지.

새파랑 2023-05-25 10:27   좋아요 1 | URL
주구장창 우려먹어도 재미있으니까 그런거 같아요 ㅋ 이 착 디자인도 예뻐서 모아야하나 고민중입니다 ㅋ

책먼지 2023-05-25 0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초반부 읽다 덮어두고 잊어버렸는데 새파랑님 리뷰 읽으니 다시 펴고 싶어집니다!!! 밖에서 보면 뻔해보여도 사랑 안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매순간이 유일무이해서 더 어렵고 소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새파랑 2023-05-25 10:28   좋아요 1 | URL
책이 얇아서 금방 읽으실겁니다~!!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스트레이트더라구요~!!

물감 2023-05-25 13: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좀 복잡한 전개의 스토리가 좋았는데요, 이제는 단순/평범하면서 생각거리를 심어주는 스토리가 좋아지더라고요. 머리쓰기가 싫어진건지 ㅋㅋㅋㅋ 콩스탕 기억해두겠슴다

새파랑 2023-05-25 23:51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물감님 좋아하실거 같아요. 스토리도 안복잡하고 그냥 주인공에 감정이입하여 읽다보면 금방 읽습니다 ㅋ 전 아주 좋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23-05-25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이 특이해서 오히려 관심이 가네요.
새파랑 님 덕분에 한 작가를 알게 됩니다. 감사드려요. 장바구니에 담았답니다.

새파랑 2023-05-25 23:53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된 작가인데 너무 좋더라구요. 소설을 주로 쓴 작가가 아니어서 번역된게 거의 없더라구요 ㅜㅜ

희선 2023-05-27 04: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마음이 그렇다니,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상대가 좋아한다고 하니 마음이 달라지다니... 시간이 안 맞았네요 그럴 때 많을지도 모르죠 마음을 왜 그런지...


희선

새파랑 2023-05-27 12:2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ㅋ 마음처럼 변덕이 심한것도 없는거 같아요 ^^ 환경적인 것도 영향을 많이 받고~~
 
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정이현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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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27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이 사람은 이 사람의 방식으로 풍화를 견디는 중이었다.˝


<시간의 흐름> 시리즈 책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해봤자 지금까지 네권밖에 안읽었지만...그냥 좋다. 원래 좋아하는데는 이유가 없는거다.


이번에 읽은 책은 나름 신작인 <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이라는 세편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정이현, 임솔아, 정지돈 세분의 작가가 참가하였다. 일단 책 제목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랑, 이별, 죽음 이 세 단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키워드 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표지도 너무 깔끔해서 이건 안살수가 없었다.


짧은 세 단편 모두 좋았다. 특히 한번 읽었을때는 잘 몰랐었는데, 두번 읽으니까 처음에 못느꼈던 감정들을 느꼈다. 특이한 점은 사랑, 이별, 죽음이라는 일반적인 키워드를 주제로 했지만, 내용은 좀 일반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사랑 : 우리가 떠난 해변에>

14년전에 일반인들의 짝짓기 연애 프로그램인 ‘러브 애드벌룬‘이 있었다고 한다. 10회분만 방영하고 프로그램은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 프로그램의 모토는 ‘사회적 조건에 종속된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였다. 출연자의 모든 사회적 배경은 밝히지 않은채 오직 그 사람 하나만을 가지고 서로를 관찰한다. 그리고 1차 커플이 만들어진다. 이제 마지막 순간이 오고, 서로는 서로의 사회적 배경을 밝혀야 한다. 만약 상대방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커플은 사랑의 걸음을 멈춰야 한다.

[출연자들이 사흘 동안 서로의 신상에 대해 알게 되는 거라곤 이름이 전부였다. 노정훈 씨, 이혜정 씨 그리고 다른 모든 출연자들도 캠프 애드벌룬 안에서 오직 한명의 개인으로만 존재했다. ‘사회적 조건에 종속된 사랑 이 진짜 사랑일까.‘ 선우는 공식 홈페이지의 기획 의도에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고 기억했다. ‘조건에 얽매인 결혼 상대자로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 대 인간의 만남. 네이키드 상태에서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기획되었다.‘ 유치하고 조악한 문장이었다.] P.20



피디인 ‘선우‘는 14년전에 ‘러브 애드벌룬‘에서 본 한 커플을 기억하고 있었다. 커플이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사회적 배경을 밝히는데,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를 극복하고 진짜 커플이된다. 그리고 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선우‘는 이 커플이 아직도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두 사람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한다. 그래서 주인공인 ‘설‘과 함께(선우가 주인공이 아니다...) 두 사람을 찾아간다. 과연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사회적 배경의 차이는 잘 극복했을까?

[두 사람은 모든 게 달랐어요. 그냥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보였어요.태어날 때도 자라는 동안에도 어른이 되어서 경험한 삶에도 접점과 교차점이 없는 사람들. 이런 두 사람이 사흘 만에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 을까요. 그게 경이롭고 끔찍하게 불가사의했어요! 선우의 느낌표가 환청처럼 귓가에 부서졌다. 두 사람 의 유튜브 영상에서 추천 수가 가장 많은 댓글은 다음과 같았다.

‘보고 또 봅니다. 사랑의 첫 순간에 대해 생각하면 저 는 항상 이 장면이 떠오릅니다.‘] P.24



사랑하는데 있어서 재산, 집안, 직업 등 그 사람 자체가 아닌 주위 조건들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조건을 신경쓰는 사람을 속물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상과 현실에 있어서 사랑만큼 큰 괴리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고정불변한 틀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도 착각 아닌가요? 사랑은 감정인데 네모 통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원형 통에 담으면 또 원형이 되는 거죠.] P.35







<이별 : 쉴 곳>

이별이란게 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이 작품은 자신을 불안하게 했었던 과거의 기억과 나를 속박했던 현실과의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누구나 어린시절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민영은 어린시절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스무살 정도의 나이차가 나는 오빠와 새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시절 오빠와 새언니는 자주 싸웠고, 민영은 그때마다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졌고, 민영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몸을 떠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민영은 사람을 피하게 된다.


하지만 뭐든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는법, 민영은 이제 오빠와 새언니가 싸우더라도 떨지 않는다. 그리고 직장 사람들과 있으면서도, 회사를 떠나면서도 예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편했다. 자신을 둘러싼 불안과 이별하게 된 민영은 조금 더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언니, 해볼래? 자기가 운전하면 멀미가 안 나.˝
˝안 한 지 오래됐는데.˝
˝그냥 해봐. 달걀 꺼내듯이.˝
그럴까? 라고 말하며 정화는 활짝 웃었다. 민영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정화와 자리를 바꿨다. 차는 천천히 나아갔다. 잔뜩 긴장한 듯 정화는 운전대에 상체를 바짝 붙였다. 차가 크게 휘청였고 정화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웅덩이였다. 정화의 손이 떨려왔다. 민영은 비상등을 켰다. 한쪽 손을 정화의 손 위에 포갰다.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아.˝
민영은 민기에게 배운 말을 뱉었다. 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P.69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뎌지게 해주는건 확실히 맞는것 같다. 지쳐가게 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죽음 :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몸과 마음이 생각보다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 몸은 의식에 따라 다르게 인지될 수 있는 고깃덩이에 불과해.˝



(당연히 둘을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나라는 존재를 대표하는건 육체일까? 정신일까? 이 작품은 이런 물음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육체보다는 정신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나서 생각이 약간 바꼈다. 왜인지 궁금하시다면? 이 단편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책에 실린 세편의 단편이 다 좋았지만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이 작품을 선택하겠다. (그래서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ㅎㅎ)

[만약 그의 기억 역시 그대로 이어진다면 그를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냐고 졸탄은 물었다. 부활한 그가 목소리도 얼굴도 전과 다르지만, 아무도 모르는 모어와의 기억을 정확히 떠올릴 수 있고, 되살아난 스스로를 인지한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그건 다르죠. 몸이 다르면 존재도 달라지는 거니까.]

[그럼 심장 이식수술을 한 사람은요? 전신 성형을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사고로 뇌에 손상이 생겨서 성격이 전혀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인가요? 나를 나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P.95



어떤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떠올렸던 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이미지와 이 책에서 그리는 이미지는 많이 달랐지만, 다르기 때문에 더 신선하게 읽혔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좋은 작가 세분을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작가님들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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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19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작품을 읽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랑과 죽음 둘 다 관심이 가네요.
사랑, 에서 그 커플은 잘 살고 있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차이를 극복할 수 있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는지 궁금해요.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새파랑 2023-05-19 12:51   좋아요 1 | URL
음... 잘살지는 못한거 같아요 ㅋ

이 책 좀 얇고 비싸지만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거 같아요. 전 대만족입니다~!!

페넬로페 2023-05-20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 이별, 죽음이 우리 주위의 거의 전부를 이루고 있는데 뻔할 것 같아도 다양한 스토리가 수없이 나오기도 하는듯요^^
저는 연애관련 예능을 좋아하지 않는데 결국 사람들이 조건으로 실망하고 애정하는 것이 보기 싫더라고요^^

새파랑 2023-05-20 11:15   좋아요 1 | URL
조건을 보지 않고 사람 그 자체로만 사람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겠죠? 그래도 페넬로페님 같은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도 연애관련 예능을 안봅니다. 티비 자체를 안보기는 하지만요 ㅎㅎ

희선 2023-05-20 0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별 하면 사람하고 헤어지는 게 먼저 떠오르는데 불안과 헤어진다니 좋네요 저도 헤어지고 싶군요 어려울 것 같아요 소설에선 그런 거 잘 하는구나 하기도 해요 실제로는 참 어려운데...


희선

새파랑 2023-05-20 11:16   좋아요 0 | URL
사람이든 습관이든 뭐든지 헤어지는건 정말 어려운거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ㅜㅜ

얄라알라 2023-06-08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역시 당선글 목록에서 새파랑님의 이름을 봅니다! 역시!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3-06-08 15:53   좋아요 0 | URL
와우 ㅋ 저번달에 별로 못읽었는데 당첨이라니 ㅋ 감사합니다~!! 책 또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