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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의 사랑 ㅣ 문지 스펙트럼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평점 :
N23028
"자연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는지 몰라요.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장미빛 미래가 없을걸 알면서도 어떤 행동을 시작하려고 결정하였다면 장미빛 미래는 포기하는게 맞다. 포기할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좀 특이하다. 불행할걸 알면서도,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멈출수가 없고, 순간의 감정에 불타오르다가도 어느순간 갑자기 꺼져버리기도 한다. 이성의 영역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사랑, 그래서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사랑은 일종의 마술과 같은 것이어서 오랜 추억을 대신한다. 사랑은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하나의 과거를 만들어내어, 그것으로 우리를 감싼다. 사랑은 말하자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알지 못했던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한순간에 타오르는 하나의 불빛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것처럼 여겨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얼마 안가서 그것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지나온 시간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장차 다가올 시간 위에도 밝은 빛을 뿌려주는 것이다.] P.51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의 사랑>은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당연히 비극이다. 아주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지면...
스물두살의 주인공인 "아돌프"가 P 백작의 첩인 "엘레노르"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현재를 지키고 싶었던 그녀는 "아돌프"를 멀리하지만, 계속되는 그의 애정공세에 결국 항복하게 되고 두 사람은 비밀리에 연인이 된다.
[엘레노르, 제발 제 간청을 들어주세요. 당신도 어느 정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고, 당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통과 절망을 잊고 제가 아직도 한 가닥 삶의 행복과 희망을 느낀다면, 그건 다 당신 덕 택입니다. 이런 제가 당신 곁에 있고, 또한 저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P.46
그러나 어느순간 두 사람의 감정은 역전이 되고, "엘레노르"의 감정은 더 커져만 가지만 "아돌프"는 자신의 현실적인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돌프, 당신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거라고요. 당신은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동정일 뿐이에요."] P.88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밝혀지게 되고, "엘레노르"는 P 백작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아돌프"와 함께 살려고 하지만 "아돌프"는 망설인다. "엘레노르"에 대한 "아돌프"의 마음은 사랑에서 연민으로 돌아서 버렸다.
["아돌프! 당신은 나에게 준 고통을 모르세요. 하지만 언젠가는 알겠죠. 나를 무덤 속에 떨어뜨려버린 그때, 스스로 그걸 알게 될 거예요."] P.129
시작할때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결말. 좋다고 매달릴땐 언제고 이제와서 감정이 식어버린 "아돌프"가 잘못한걸까, 아니면 불행할걸 알면서도 사랑을 받아준 "엘레노르"가 바보인걸까?
["내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였지만, 당신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이제 며칠 만 더 나를 돌봐주세요."] P.144
이 책을 읽으면서 "아돌프" 나쁜 xx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책임지지도 않을거면서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아돌프"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한번 사랑했다고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런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걸 가지고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약간은 뻔한 이야기였지만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아돌프"에 대한 심리묘사가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겐 전부였지만, 누군가에겐 일부였던 사랑, 그래서 사랑은 참 어렵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