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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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9

˝한번 생겨난 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계속 존재합니다. 기억과 마찬가지예요. 가령 잊고 싶은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잖아요. 그런 것과 같죠.˝


하루키옹의 첫번째 단편집인 <중국행 슬로보트>는 이게 뭐야? 하면서도 계속 읽게 되는 하루키만의 쿨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단편집이다. 하루키가 직접 쓴 해설을 보면, 일단 제목을 먼져 정하고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런 제목을 정한것도 신기한데, 이런 제목을 가지고 이런 글을 쓴건 더 신기하다.



표제작인 <중국행 슬로보트>는 중국으로 가는 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주인공인 내가 살면서 만난 세명의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의고사 배치학교를 중국인 초등학교(일본에 있는)로 받아서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초등학교 선생님,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만난 중국인 여대생,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고등학교때 알고 지내던 친구인자 지금은 백과사전을 팔고 있는 중국인 남자.

[하긴 내 기억의 대부분은 날짜가 없다. 내 기억력은 지독히 부정확하다. 지나치게 부정확해서 이따금 내가 그 부정확성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뭔가를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그게 대체 무엇을 증명하느냐고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애당초 부정확성이 증명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 P.11



나는 그들을 떠올리며 아, 중국은 너무멀다고 느끼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래서 제목인 <중국행 슬로보트>라고 연계가 된다. 이런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게 가능한건지 놀랍기만 하다. 하루키의 엉뚱한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단편. 이래서 하루키를 끊을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흔히 나오는 실수였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삐끗한 것이다. 누구나 저지를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작은 균열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심연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밤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 배를 떠올리게 했다.] P.23






<뉴욕 탄광의 비극> 역시 제목을 먼저 정하고, 내용을 써내려간 작품이라는데, 이 작품은 반대로제목이랑 내용이 전혀 연관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태풍이 올때마다 동물원을 찾는 친구, 그리고 그런 특이한(?) 친구에게서 나는 장례식이 있을때마다 검정 정장을 빌려입는다. 더 특이한건 친구는 검정 정장을 사고 난 후에는 장례식이 한번도 없었는데, 나는 연이어서 장례식에 가게 되고 그때마다 옷을 빌린다.

[˝번번이 미안해. 사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영 손이 안 나가더라고. 상복을 사면 왠지 누군가가 죽는다는 걸 인정해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신경쓸 거 없어. 어차피 나는 입지도 않는데 뭘. 옷도 무의미하게 걸려 있는 것보단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는 편을 좋아할 거야. 이 양복을 맞춘 후로 한 사람도 죽지 않았어.˝

˝원래 그런 거야.˝ 나는 말했다.] P.91



내가 검정 정장을 사게 되면 주변사람들이 더이상 죽지 않게 되는걸까? 그리고 검정 정장을 산다는건 누군가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의식인걸까? 갑자기 20대때 정말 좋아했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장례식에 가기 위해 검정 정장을 샀던 기억이 난다. 아직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모자에서 튀어나오건 보리밭에서 튀어나오건 토끼는 토끼일 뿐이다. 달궈진 아궁이는 달궈진 아궁이일 뿐이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일 뿐이다.] P.93





반대로 <땅속 그녀의 작은 개>는 내용을 먼저 쓰고 제목은 늦게 지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 이 작품이 가장 좋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오기 위해 비수기의 호텔을 잡았지만 출발 직전에 여자친구랑 싸워서 혼자 호텔에 가게 되고, 도착한 호텔에 있는 나흘 내내 비가 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데 그 호텔에서 나는 혼자 온 한 젊은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녀를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넓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았었다는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는 그녀가 어린시절 파묻었던 작은 개에 대한, 그녀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는 하루키의 또다른 상징인 양사나이가 나오는 이야기다. 양사나이 하면 <양을 쫓는 모험> 이나 <댄스,댄스,댄스> 가 떠오르는데, 거의 시초인 작품이다. 도대체 양사나이 같은걸 소재로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다소 어처구니가 없지만 하루키니까 이해가 되는 작품이다.





<중국행 슬로보트>에는 총 7개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다 좋았다. 하루키 단편집을 읽다보면 안좋은 작품도 간혹 섞여있는데 여기에는 없다. 하루키의 초기 3부작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역시 하루키는 봄에 읽어도 좋고 여름에 읽어도 좋고 가을에 읽어도 좋고 겨울에 읽으면 더좋다.




Ps. 이 책에서 이 문장을 읽고 빵 터졌다.

[˝난 신청곡이라는 거 싫더라.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처럼 시작하는 순간 벌써 끝날때를 생각하게 돼.˝]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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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3-02-05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밥 같은 소설같아요.
산해진미 다 갖다놔도
그리운건 단촐한 집밥이니까~!
신청곡 문장 저도 밑줄 좍~~~!!

새파랑 2023-02-05 15:36   좋아요 1 | URL
집밥같은 소설 맞는거 같아요 ㅋ 너무 익숙한데 너무 좋습니다 ~!!

미미 2023-02-05 14: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에 읽기 좋은 하루키군요^^*

새파랑 2023-02-05 15:37   좋아요 1 | URL
미미님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지 않나요? 프루스트라고 ~!! 방금 존버거의 <결혼식 가는길>을 읽었는데 완전 대박 좋네요 ^^

페넬로페 2023-02-05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하루키는 다작 작가이군요.
이 제목은 처음 들어봐요~~
사계절의 사나이, 하루키네요^^

새파랑 2023-02-05 18:20   좋아요 1 | URL
도선생님보다 하루키가 더 책을 많이쓴거 같아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ㅋ

그레이스 2023-02-06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리뷰하셨네요
위에서 댓글 달고 왔는데,
중국행슬로보트 좋은 느낌이었어요
여기서 다시 보니 재독하고 싶네요^^

새파랑 2023-02-06 11:56   좋아요 1 | URL
하루키는 이제 재독 삼독이 익숙한거 같아요 ㅜㅜ 언제 신작이 나올련지 ㅜㅜ

그렇게혜윰 2023-02-06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는데 갑자기 중국행슬로보트 마니아가 되었다기에 누가 리뷰를 썼나보다 했는데 새파랑님이셨네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3-02-06 11:5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전 요새 알람이 안와서 몰랐었는데 ㅋ 이번달에도 하루카는 읽으려고 합니다~!!

희선 2023-03-09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안 읽어봤어요 예전에 좀 보다가 안 본 적 있어서... 읽었다고 해도 잘 못 보기도 했네요 일본에서 다음달에 하루키 소설 나온답니다 곧 한국에도 나오겠지요 새파랑 님 축하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서니데이 2023-03-1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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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7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헤어진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영원한 이별이어도, 다시 만날수 없어도, 기억속에 남아있다면 죽은 것이 아니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함께 있는 것이다.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단다. 존 너는 너무 잘 잊어버려. 이걸 알아야 해. 죽은 사람은 몸이 묻힌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말이야] P.13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세계 각 지역을 다니면서 그가 기억하고 있는 죽은 사람들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어느 지역에서는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하고, 역사적 인물을 떠올리기도 하며, 연인을, 그리고 친구를 떠올리기도 한다.

[거기서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십오년 동안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여의고 나면 자식들의 시간은 두 배로 빨라지거나 가속이 붙을 때가 많다.] P.62



그가 사람들을 떠올리는 방식은 단순히 회상하는 것에 그치는게 아니라, 존 버거 자신이 그 시절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죽은 사람이 현재의 내 옆에 살아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좀 독특하다고 해야하나?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되고, 그리움은 더 애뜻하게 다가온다.

----‐-------------
혼자라서 외로웠어요.

그건 정말 의외로구나, 얘야. 너는 자유로웠어.

모든 게 겁이 났어요. 지금도 그래요.

당연하지.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니? 두려움이 없거나 자유롭거나 둘 중의 하나지, 둘 다일 수는 없어.
---‐-------------- P.30 (어머니가 존에게 들려준 말)



이 책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모든건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고별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 남이있는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며 그리워 한다. 그래서 추모도 하고, 제사도 지내는거고...

[우리는 모두 여기 있는 거야. 너나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는 것처럼. 너희와 우리, 우리는 망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고치기 위해 여기 있는 거란다. 우리가 생겨난 이유는 바로 그거야.] P.59





영혼이라는게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남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꼭 떠나간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나는 또 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책들을 좋아했어. 내가 읽은 책들은 다그런 거야. 전부 진짜 인생을 다루지만, 접어 뒀던 부분을 다시 찾아 읽어도 그건 나에게 일어났던 인생은 아니었지. 책을 읽을때면 모든 시간 감각을 상실했어... 다른 삶, 전에 살았던 삶, 살 수도 있었던 삶. 그리고 난 너의 책이, 또 다른 삶을 사는게 아니라 상상만 하고 싶은 삶, 말없이 나 혼자 상상해 보고 싶은 그런 삶에 대한 것이길 바랐어. 그러니까 읽지 않은 편이 더 나았지. 서점의 유리문을 통해 네 책들을 볼 수 있었단다. 내겐 그걸로 충분했어.]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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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23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 한번도 못 읽어봤는데, 굉장히 애틋한 느낌일 것 같네요. 새파랑님 즐거운 명절연휴 보내세요^^

공쟝쟝 2023-01-23 09:19   좋아요 1 | URL
이걸로 봐서 존버거는 F 일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3-01-23 09:44   좋아요 2 | URL
저 토요일부터 존버거 팬이 되기로 했습니다 ~!!


저도 F여서 그런지 존버거 완전 좋네요 ㅋ 제가 F계열 작가의 작품이랑 잘맞나봅니다 ^^

공쟝쟝 2023-01-23 09:4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는 한 권 읽어봤어요! 아름답고 다정했던 기억 …!!! 저는 새파랑님과의 약속대로 도옹 책을 읽고 있습니다!!!

새파랑 2023-01-23 09:57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이 읽으신 다정한 책이 뭘지 궁금합니다 ㅎㅎ 전 요책이랑 A가 X에게 두권밖에 안읽어봤습니다만 이제 더 읽을겁니다~!!

<지하로부터 수기> 읽으시고 나서 작년에 사셨다가 나무받침(?)으로 사용한 도선생님 전집도 읽으시는걸로 ^^

공쟝쟝 2023-01-23 10:03   좋아요 1 | URL
소설은 결혼식가는 길.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보기 라는 책을(비평?) 읽은 적이 있습니다. 두 책 다 시각적 체험이 도드라집니다 ㅋㅋ
지금 제 도옹은… 취하셨네요 ㅋㅋㅋ (술 마시고 쓴 글 같음)… 많이 ㅋㅋㅋ

새파랑 2023-01-23 10:26   좋아요 1 | URL
ㅋㅋ 정확한 표헌입니다. 술마시고 쓴 글~ 그래서 제가 도선생님 책 읽으면 그렇게 빠져듭니다. 횡설수설하는게 비슷해서요 ㅎㅎ

<결혼식가는길> 다음책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

공쟝쟝 2023-01-23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제 내게 말해줘요!!! 진실을 말해!!! 내 서재에 놀러와서 글을 읽는 까닭은 이 책 <지하…>를 보는 것 같아서 인가요?

새파랑 2023-01-23 13:13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술 끊으신거 아닌가요? 아 담배인가... 😆

공쟝잠님이 도선생님 처럼 글을 잘쓰시기 때문입니다 ~!!

공쟝쟝 2023-01-23 13:17   좋아요 2 | URL
공쟝잠 <= 오타에서 거짓말이 느껴집니다!!!! 이런 미친 알아들을 수 없는 자의식 과잉의 글이 천재의 글이라면 나는 천재다!!!

새파랑 2023-01-23 13:30   좋아요 1 | URL
제가 스마트폰으로만 북플을 해서 ㅋ 가끔 황당한 오타가 나긴 합니다 😅

공쟝쟘님 천재 맞으심 ^^

공쟝쟝 2023-01-23 13:39   좋아요 2 | URL
싫어!!!!! 이런 천재는!!!!!!

페넬로페 2023-01-23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설 연휴를 독서와 함께~~
넘나 명절에 어울리는 책이네요.
죽은 사람을 회상하는 것이 추모도 하는 것이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의식같기도 해요.
새파랑님께서 이 작가의 팬이 되셨으니 당연 찜합니다^^

새파랑 2023-01-23 13:17   좋아요 1 | URL
이책은 페넬로페님 취향이 확실합니다~!!
오늘은 다른 책을 읽어볼까 합니다~! 페넬로페님도 즐거운 독서하세요 ^^

서니데이 2023-01-23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색해보니, 존 버거의 책은 열화당에서 나온 책이 많네요.
몇 년 전에 나온 책인데 요즘 유행하는 샤인머스캣 생각나는 표지 디자인입니다.
새파랑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부터 추워진다고 해요.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파랑 2023-01-24 10:28   좋아요 1 | URL
샤인머스캣은 비싼 청포도 아닌가요? ㅋ 저도 무슨과일인지 궁금합니다 ^^
오늘 연휴 마지막날인데 알차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엄청춥네요 ㅡㅡ

희선 2023-01-24 0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 책 한권도 안 봤다 생각했는데, 존 버거와 이브 버거가 죽음 아내(이브 버거한테는 엄마)를 떠올리는 책 한권 봤네요 여기에서도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군요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그 사람은 아주 죽은 게 아니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새파랑 님 남은 연휴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3-01-24 10:29   좋아요 0 | URL
존버거 책은 확실히 F성향이 맞는거 같습니다 ㅋ 다른 존버거 책 주문했는데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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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4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올해는 도선생님의 작품을 재독하고 그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껴야 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첫번째로 선택한 책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다. 예전에 민음사 판으로 읽었는데, 열린책들 버젼으로 재독했다. (열린책들 도선생님 버젼으로 다 모았다~!!)


갑자기...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라고 선택해야 한다면 난 도스토예프스키를 고르겠다. (두분 다 매우매우 좋아하는 작가에다가 두분의 책은 거의 다 읽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이 더 가독성도 좋고 감동도 있지만, 난 톨스토이가 그려내는 상류사회의 모습 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려내는 하류사회의 모습과 왠지 찌질하고 짠한 도선생님의 주인공 모습에 더 애정이 간다.



도선생님 작품 중 아마 찌질함으로 따지면 이 책의 '지하인'이 최고이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지하인'은 정말 지하에서 사는 사람을 말하는건 아니고, 밑바닥 인생을 뜻하는 거다. 온갖 열등감에 쌓여서 과대망상을 하고, 쉽사리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강한척, 아는척 하는 '지하인'은 나의 모습이자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좀 과장되긴 했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독서로 보냈다.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모든 것을 외부의 감각들로 잠재우기를 원했다. 외부의 감각들 중에서 내게 유일하게 가능했던 것은 독서였다. 독서는 물론 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나를 흥분시켰고, 기쁘게 했으며, 괴롭혔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은 나를 대단히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행동을 원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지저분한, 지하의, 그리고 혐오스러운 행동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악행이 되지도 못했다. 나의 불쌍하고 초라한 정열들은 내게 항상 내재하는 병적인 초조함 때문에 날카롭고 뜨겁게 타올랐다. 내 충동들은 신경질적이었고 눈물과 경련들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독서 이외에 피난처가 없었다.] P.77




이 작품은 1부 지하실, 2부 진눈깨비 때문에 로 구성되어 있는데, 2부는 크게 1. 당구장에서 무시 당하는 사건, 2.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사건, 3. 직업여성인 리자에게 버림당하는 사건 으로 구분할 수 있다.


1부 지하실은 내가 왜 40년 동안 지하인으로 살아야 했는지 자기변명을 하는 수기 이다. 엉뚱하고, 괴변을 늘어놓지만 읽다보면 왜 내가 지하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주변에서 봤을때는 별볼일 없이 보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저들보다 더 영리하다고, 나는 저들이 느끼지 못하는 죄의식을 느낀다고, 저들은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고, 단지 정해진 방법으로만 사고할 줄 안다고 오히려 무시한다. 그리고 그는 지하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면서 위로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지하인이 외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희극적으로 만들어졌다. 명백히 이 모든 것들에서 말장난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2×2=4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2×2=4는 내 의견으로는 뻔뻔스러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그렇다. 2×2=4는 멋쟁이처럼 보인다. 당신 길을 가로막고 으스대며 침을 뱉는다. 나는 2×2=4 라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칭찬해야 한다면, 2×2=5도 때때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P.55




2부 진눈깨비 때문에는 왜 내가 지하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경험담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책이 시간의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 눈이 내리고 있다………. 거의 젖은, 황색의 흐린 눈이. 어제도 눈은 내렸고, 또한 며칠 전에도 내렸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사건을 회상했던 것은 진눈깨비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진눈깨비 때문이라고 해두자.] P.65



1부가 좀 장황하고 다소 철학적이어서 약간 어렵다면, 2부는 재미있다. 완전 웃기다. 1부에서의 까칠하고 철학적인 지하인의 모습은 없고 엉뚱하고 찌질한 지하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변덕적이고 모순적이고 감정기복이 심하고 반복해서 실수 후회하고 또 실수하고...


지하인은 아무런 적의를 품지 않은 상대에게 혼자서만 적의를 느끼고 복수를 다짐하며 소심한 복수를 하고 혼자서 만족한다.

[나는 무심결에 길을 막고 당구대 옆에 서 있었는데, 그는 내 옆으로 지나가기를 원했다. 그는 내 어깨를 잡고 조용히, 경고나 설명도 없이, 나를 내가 서 있었던 곳에서 다른 데로 옮겨 놓았다. 반면 그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지나가 버렸다. 나는 차라리 맞았더라면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통로에서 나를 옮겨 놓은 것과, 그토록 눈에 띄게 나를 무시한 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P.79



그리고 어떻게든 친구들의 모임에 끼고 싶어 하지만 친구들은 괴상한 지하인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는 참가하는데 거기서도 괴변만 늘어놓고 오히려 친구들을 적대적으로 대한다.

[네가 모욕했다고 ? 나는 네가 알아줬으면 한다. 존경하는 선생,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모욕할 수 없다는 것을.] P.125



게다가 지하인은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싫어서 겉모습을 꾸미는데 과도하게 치중하고,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또 엄청 무시한다.

[그녀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게 될 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일이야. 어제 나는...... 그녀에게 영웅으로..….… 보였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흠! 이건 소름끼치는 일이야, 얼마나 초라하게 되어 버렸나. 내 아파트는 진짜 불결해. 그리고 어제 그런 옷을 입고 저녁 식사에 갈 용기를 냈다니! 그런데다 저 소파에 씌운 천안에 있는 것이 비어져 나온 걸 좀 봐! 게다가 내 실내복은 항상 짧지! 그건 걸레같은 옷이야……. 그녀는 이것을 모두 다 볼 거야, 그리고 아론도 보게 되겠지. 저 짐승은 그녀를 모욕할 것이 확실해. 그놈은 내게 단지 무례하게 굴기 위해 그녀를 모욕할 거다.] P.167





왜 도선생님은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1부)과 현실의 나의 모습(2부)을 대비시킨 걸까? 자칭 지식인의 모순을 풍자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책을 통해 배우는 지식은 단지 이상일 뿐, 실제 현실과는 다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인간은 그의 영혼을 인생에서 오직 한 번만 드러내는 거야. 발작을 일으킬 때에만! 그래서 너는 뭘 더 원하는거야? 이 모든 것을 말했는데도 내 앞에 버티고 서서 가지 않고 왜 나를 괴롭히는 거냐?] P.187




이 작품을 다 읽고나서 나의 본성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온갖 괴변을 늘어놓고 어떻게든 자기합리화를 하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고, 나를 보는 다른 사람의 시각을 바꿀수는 없다. 하지만 겸손과 행동이 따른다면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져본다. 언제까지 지하인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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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08 11: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스토예프스키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제가 톨스토이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더라구요. 도선생님은 몇 권 읽었는데 톨선생은 진짜 축약본(그때는 몰랐던) 부활 외에는 읽은게 없어서요. 그래서 일단 톨스토이 최대 걸작이라는 전쟁과 평화를 읽어보고 판단해봐야겠다는..... ^^
지하인이 이런 의미군요. 저는 뭔가 수용소 이런게 연상됐거든요. ㅎㅎ
도선생 재독하신다는데 화이팅입니다. 저는 일단 톨스토이를 읽어보고 도선생으로 갈지 톨선생으로 갈지 결정하려구요. ㅎㅎ

새파랑 2023-01-08 12:03   좋아요 4 | URL
톨스토이는 일단 <전쟁과 평화>랑 <안나 케레니나> 투탑이죠 ^^

여기에 저는 <하지 무라트> 추가해서 Top3 가겠습니다~!!

Calcutta 2023-01-08 1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대개 한겨울에는 러시아 소설을 읽는데 저도 이번 겨울 동안 오래전에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다른 번역본으로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바뀌진 않겠지만) 현재의 애정하는 마음은 톨스토이 쪽이 높아요. 톨스토이의 소설 중에 이반일리치의 죽음도 마음의 순위가 높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다시 읽기에 응원을 보냅니다.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파랑 2023-01-08 12:52   좋아요 3 | URL
역시 겨울 하면 러시아죠~! 요새는 전쟁때문에 정이 안가지만....
저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좋아합니다~!!

calcutt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Calcutta 2023-01-08 13:15   좋아요 2 | URL
아.. 그리고 프루스트도 게자리^^

새파랑 2023-01-15 16:06   좋아요 1 | URL
와우~!! 다른 게자리 분들은 다 훌룡하신데 저는... 왜그럴까요? 😅

2023-01-15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01-08 14: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톨스토이보다는 도선생님파입니다.
인간을 깊이 탐구했고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새파랑님, 도선생님 재독 좋네요.
저도 어서 ‘지하로부터의 수기‘ 읽어야겠어요^^

새파랑 2023-01-08 14:19   좋아요 2 | URL
저도 딱 페넬로페님이랑 비슷한 생각입니다~!! 연민~! 이게 좀 큰거 같아요 ㅋ 역시 천재~!!

그레이스 2023-01-15 16:29   좋아요 2 | URL
대부분 그 차이는 갖고 있죠
너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때 그럴수 있겠죠

공쟝쟝 2023-01-10 0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앍 이거 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생각에 도 선생에게 어떤 의도는 없고 그냥 본인 이야기 였을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인생도 1부와 2부사이에서의 분열이라 ㅋㅋㅋㅋㅋㅋㅋ 읽어봐야겠다!!!!

새파랑 2023-01-10 18:38   좋아요 0 | URL
도선생님은 글은 너무 잘쓰지만 불쌍한 사람 인거 같아요 ㅋ 이 책의 주인공도 너무 이상(?)하지만 미워할 수 없더라구요. 저랑 좀 비슷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ㅋ 왠지 공쟝쟝님은 좋아하실거 같습니다~!!

공쟝쟝 2023-01-10 18:5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날에 들고 고향 갈게요!!

새파랑 2023-01-10 18:59   좋아요 1 | URL
기차안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멋진 공쟝쟝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

생각해보니 차타고 가실수도 있겠군요.. ㅎㅎ

공쟝쟝 2023-01-10 19:05   좋아요 1 | URL
비행기는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3-01-10 19:08   좋아요 0 | URL
앗ㅋ 또 생각해보니 배 🚢 도 있습니다~!!

공쟝쟝 2023-01-10 19:10   좋아요 1 | URL
배는 아닙니다…. 고즈넉한 어촌이 배경이긴 하지만 ㅋㅋㅋ 암튼 연휴에 찜!

그레이스 2023-01-15 14:28   좋아요 1 | URL
저도 새파랑님처럼 불쌍하단 생각했습니다. 그 자신에게 분열적인 모습이 많죠.;;

새파랑 2023-01-15 16:2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 뭔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그런 분열적인 모습이 나오는걸까요? ㅋ 전 그랬던거 같아요 ㅎㅎ

독서괭 2023-01-10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은 한작가 다 읽기도 많이 하시고 재독도 많이 하시고.. 대단하세요. 저도 이번에 고전을 재독해보니 역시 고전은 고전이라, 재독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1부와 2부가 그렇게 다르군요? 오호 흥미롭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3-01-10 18:39   좋아요 1 | URL
그런데 요새 몸이 좀 안좋아서 책을 못읽고 있습니다 😅
고전은 다시 읽어도 좋더라구요. 그래서 고전이 오래 살아남나 봅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3-01-11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톨스토이는 <하지 무라트> 밖에 안 읽어봐서 도선생을 훨씬 좋아합니다ㅎ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도선생을 처음 접했는데 진짜 충격이었습니다ㅎ 어쩜 그리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잘하시는지 진짜 제 심리를 들여다 보는 거 같았다는...ㅎ

열린책들 버전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새파랑 2023-01-11 20:44   좋아요 1 | URL
전 톨스토이도 좋고 도스토에프스키도 좋고 ㅋ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선택 입니다~! 고양이님 <전쟁과 평화> 읽으시면 좋아하실 거 같아요 ^^

고양이라디오 2023-01-13 10:36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전쟁과 평화> 도전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3-01-15 16:21   좋아요 1 | URL
<전쟁과 평화> 설날 명절에 하루 한권씩 독파하시면 완결하실 수 있습니다~!!

물감 2023-01-11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찌질함 좋아하는 1인이라, 저도 도끼옹이요! 근데 두분다 한권도 안읽었다는거ㅋㅋ아 러시아 문학은 언제쯤 도전할런지...

새파랑 2023-01-11 20:46   좋아요 1 | URL
앗 ㅋ 아직 좋은 읽을 책이 남아있다는게 부럽습니다~!! 전 요새 러시아 읽고싶은 새책이 없네요 ㅜㅜ

두분다 완전 좋습니다~!!!

희선 2023-01-13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옙스키 소설 한번 다 보고, 2023년에는 다시 보실 계획이라니 멋지네요 다시 보면 처음과 다르게 보이는 것도 있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3-01-15 16:15   좋아요 2 | URL
다시 읽으려고 다짐만 했습니다 ㅋ 근데 잘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페크pek0501 2023-01-16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도 좋아하지만 <죄와 벌>이 더 좋았어요. 도선생이 천재구나 생각한 계기였죠. 분량이 많은 소설이지만 금방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로워요. 그다음 장면이 궁금해지거든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이 작품이 단계별로 철저하게 계산된 작품이라고 하네요.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래요. 재독해 봐야겠어요.
리뷰 쓰셔서 뿌듯하시겠습니다. 유능하십니다. 저는 이 소설은 리뷰 쓸 엄두가 안 나네요. ㅋ^^

새파랑 2023-01-16 11:53   좋아요 0 | URL
<죄와벌>도 좋습니다~!! 제가 작년에 산 도선생님 전집 세트로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왠만하면 허접하더라도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잘 못쓰긴 합니다 ㅋ

서니데이 2023-02-07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3-02-08 10:3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ㅋ 이번달에는 안될줄 알았는데 ㅎㅎ
어제 만취(?)해서 북플을 못들어왔네요 ㅜㅜ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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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1

˝놀랐잖아,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



2023년 새해 첫날 읽을 책에 대해 나름 고민했었다. 새로운 책을 읽을까? 아님 재독할까? 누구의 책을 읽어야 의미가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1번픽은 하루키지 마음먹고 책장에서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를 선택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고 오랜만에 다시 읽은건데 역시 좋았다.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1981년부터 82년까지 쓴 단편들을 모은 책으로 총 18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아주 초기 작품들이다.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출판년도가 1987년이다...) 더 놀라운건 내가 태어난 해에 이 책이 나왔다는 거다....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상당히 세련됨이 느껴진다. 표제작인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가 대표적인데, 하루키의 감각적이고 설레이는 문장이 고스란히 남겨 있다. 제목이 거의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급이다. 다만 지금 읽으니 약간 유치하다는 생각도 약간 들긴 하지만 그건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거 같다...

[다만 삼십 분이라도 좋으니까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신상에 관해 듣고 싶기도 하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뒷길에서 스쳐 지나가게 된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해명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P.23



다른 단편들도 아주 재미있고 감각적이다.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도 독창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캥거루 날씨>, <택시를 탄 흡혈귀>와 로맹 가리의 느낌(?)이 나는 <사우스베이 스트럿>은 여전히 좋았고,


장편 <댄스 댄스 댄스>의 아이디어 노트 처럼 보이는 <도서관 기담> (이건 일러스트 책으로도 나온거 같은데 읽어보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해변의 카프카>가 연상되는<1963/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까지 다시 읽었더니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 여러 가지 사건이, 여러 가지 일들이 조금씩 그리워진다. 분명히 어딘가 나와 먼 세계에 있는 기묘한 장소에서나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곳이 될 수 있으면 따스한 장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일 거기에 차가운 맥주가 몇병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나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은 나다. 그 둘 사이에는 어떠한 틈도 없다. 그러한 기묘한 장소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P.95 (1963/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표제작을 제외하고는 막 강력 추천하기는 좀 그렇지만 하루키를 좋아하거나 가벼운 단편을 읽고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Ps. 올해도 하루키 책 재독을 꾸준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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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1-02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이 선택한 새해 첫 책이군요^^ 재독할 때는 초독할 때와 느낌이 다르기에 더 새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한주 힘차게 시작하세요!

새파랑 2023-01-02 09:51   좋아요 1 | URL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이 책 읽고 한권 더 읽으려고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ㅋ

미미 2023-01-02 10: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요 부분 마음에 드네요.ㅎㅎ하루키다운? 새파랑님 리뷰를 읽으니 읽어보고 싶어져요!

새파랑 2023-01-02 10:42   좋아요 2 | URL
도서관에서 표제작만 읽어보셔도 될거 같아요. 완전 짧은 단편인데 정말 좋습니다 ^^

페넬로페 2023-01-02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0% 의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요?
흠흠
새파랑님, 하루키 소설 넘 많이 읽으셔서 여자 보는 눈이 높아지는것 아닌가요?
가볍게 읽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3-01-02 12:54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어떤 느낌이면 100퍼센트 일까요? ㅋ 전 40퍼센트의 남자인거 같습니다 ~!!

전 눈이 아주 낮습니다 ㅋㅋㅋ

요 단편보면 와 하실거에요~!!

희선 2023-01-02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번 본 책을 다시 보면 다른 게 보이기도 하겠네요 저는 예전에 제대로 못 본 게 많아서 다시 보면 다 새롭게 보일 것 같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3-01-03 19:39   좋아요 2 | URL
그래도 다시 읽으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 올해는 재독을 많이 해봐야 할거 같아요~!!

mini74 2023-01-03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책 읽을땐 왠지 두부 먹으며 맥주 한 잔 해야 할 거 같아요. ㅎㅎㅎ

새파랑 2023-01-03 19:39   좋아요 2 | URL
전 거기에 땅콩하고 던킨도너츠? ㅋ 음식을 부르는 하루키입니다 ^^

레삭매냐 2023-01-05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춘수 씨의 팬이시로군요 :>

전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춘수 씨이 나오면 꾸준히
읽게 되더라구요 ^^

새파랑 2023-01-06 06:28   좋아요 1 | URL
춘수 형님 완전 좋습니다~!! 전 ‘키‘로 끝나는 작가는 다 좋은거 같아요 ^^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N22149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역시 하루키가 쓰면 특별해 보이지 않은 위스키 성지 여행도 특별해진다. 별거 아닌 위스키 마시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걸까?


나는 술 마시는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많이 마시지는 않고 이틀에 한번만 마시자는 원칙이 있다. 그리고 같이 마실때는 왠만하면 네명 이내로 마시려고 한다. 다섯명이 넘으면 이야기 집중이 안되더라는.


그리고 혼술을 좋아한다. 보드카를 마실때는 탄산수와 섞어 마시고, 위스키를 마실때는 언더락으로 마시는데, 돈이 없어서 비싼 술을 마실 수는 없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그리고 책보면서 혼자 마시는 술이 너무 좋다.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 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P.37



이번에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을 읽고 나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위스키가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하루키는 이렇게 맛깔나게 글을 쓴걸까? 위스키의 맛이 하루키의 문장속에 잘 녹아 있어서 술 취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응?)

[아일랜드를 여행하노라면, 그처럼 온화한 아일랜드적인 나날들이 조용히 우리 앞에 하나하나 쌓여간다. 이 나라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투나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진다. 하늘을 바라보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차츰 길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실로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멋진 나날이었음을 사무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좀더 나중의 일이다.] P.88



그리고 어디 먼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위스키의 맛과 함께 여행을 부르는 에세이. 내가 에세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읽은 에세이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그럴 때면, 여행이라는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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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28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한 기분으로 책을 읽지 않으셨을까 싶은~ㅎㅎㅎ 요즘은 보드카나 위스키를 제법 많이 마시는 모양이예요! 짧고 굵게 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고~^^; 저도 혼술을 하긴 합니다만 예전처럼 자주는 못 마시게 되네요.
어느 도심의 호텔에 가서 위스키 한잔하며 여행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ㅎㅎㅎ

새파랑 2022-12-28 13:52   좋아요 1 | URL
소맥 마시는 것 보다는 가볍게(?) 요런거 몇잔 마시는게 전 좋더라구요 ㅋ 위스키 여행을 떠나보고 싶네요 ^^

미미 2022-12-28 14: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은근 애주가시네요ㅋ 저는 여행가면 낮술도 하게 되더라구요. 여행지 자체로
안주가 되는 느낌? 아일랜드에 대한 글 마음에 듭니다. 술도 그렇고 뭐든 조금 지난뒤에
제대로 음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2-12-28 14:57   좋아요 2 | URL
역시 술은 낮술이죠 ㅋ 아일랜드라는 나라 참 마음에 듭니다~!! 언젠간 가보고 싶어요 ^^

그레이스 2022-12-28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네요
여행기 몇권 갖고 있는데 이제는 테마여행까지, 새파랑님은 진정한 하루끼 빠이십니다.^^

새파랑 2022-12-29 17:04   좋아요 2 | URL
전 하루키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 하루키 싸인 받고 싶습니다~!!

2022-12-29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2-29 17:04   좋아요 1 | URL
헛 😅 전 그렇게 많이는 안마십니다 ㅋ

페넬로페 2022-12-29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술하면서 책 읽는 기분, 좋지요!
위스키 한 두번 마셔봤는데 인용하신 첫문장 넘 맘에 와 닿아요.
율리시스때문에 아일랜드 가고 싶은데 이 나라는 위스키의 성지이기도 하네요^^

새파랑 2022-12-31 08:18   좋아요 2 | URL
아일랜드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인거 같아요 ㅋ 혼술 책읽기 정말 좋죠 ^^

서니데이 2022-12-29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문학사상사의 책이네요.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된 책이 많았어요. 지금은 절판이라는 것은 아쉬운데, 나중에 제목이 달라져서 또 나올 수도 있겠고, 개정판이 그 사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요. 하루키 선생의 책들은 이 시기에 많이 나왔는데, 요즘에는 기출간된 책이 많아서 그런지 새로 나오는 책은 적고 이전의 책들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아요.
새파랑님,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12-31 08:20   좋아요 2 | URL
개정판 버젼 표지랑 제목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이 책이 중고로 있길래 그냥 샀습니다 ㅋ

mini74 2022-12-30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전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새파랑님 ~ 술을 잘 몰라서 ㅎㅎㅎ 아이가 하이볼 만들아 준 적 있는데 그건 맛있더군요.
연말이라 바쁘게 보내신건 아닌지 ㅎㅎ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새파랑님 *^^*

새파랑 2022-12-31 08:21   좋아요 2 | URL
요새는 일보다는 모임이 많아어 바쁜거 같아요 😅 미니님은 와인이 어울리십니다~!!

서니데이 2022-12-31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예요.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파랑 2022-12-31 22:26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2023년 맞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희선 2023-01-01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먼 곳에 가기에 어렵기도 하네요 다시 그런 날이 올지... 그래도 어딘가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파랑 님도 언젠가 가고 싶은 곳에 가시기를...

새파랑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3년에도 책 즐겁게 만나세요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독서괭 2023-01-01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엔 더 좋은 책들 많이 만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