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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평점 :
N23007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헤어진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영원한 이별이어도, 다시 만날수 없어도, 기억속에 남아있다면 죽은 것이 아니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함께 있는 것이다.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단다. 존 너는 너무 잘 잊어버려. 이걸 알아야 해. 죽은 사람은 몸이 묻힌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말이야] P.13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세계 각 지역을 다니면서 그가 기억하고 있는 죽은 사람들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어느 지역에서는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하고, 역사적 인물을 떠올리기도 하며, 연인을, 그리고 친구를 떠올리기도 한다.
[거기서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십오년 동안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여의고 나면 자식들의 시간은 두 배로 빨라지거나 가속이 붙을 때가 많다.] P.62
그가 사람들을 떠올리는 방식은 단순히 회상하는 것에 그치는게 아니라, 존 버거 자신이 그 시절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죽은 사람이 현재의 내 옆에 살아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좀 독특하다고 해야하나?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되고, 그리움은 더 애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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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서 외로웠어요.
그건 정말 의외로구나, 얘야. 너는 자유로웠어.
모든 게 겁이 났어요. 지금도 그래요.
당연하지.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니? 두려움이 없거나 자유롭거나 둘 중의 하나지, 둘 다일 수는 없어.
---‐-------------- P.30 (어머니가 존에게 들려준 말)
이 책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모든건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고별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 남이있는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며 그리워 한다. 그래서 추모도 하고, 제사도 지내는거고...
[우리는 모두 여기 있는 거야. 너나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는 것처럼. 너희와 우리, 우리는 망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고치기 위해 여기 있는 거란다. 우리가 생겨난 이유는 바로 그거야.] P.59
영혼이라는게 있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남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꼭 떠나간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나는 또 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책들을 좋아했어. 내가 읽은 책들은 다그런 거야. 전부 진짜 인생을 다루지만, 접어 뒀던 부분을 다시 찾아 읽어도 그건 나에게 일어났던 인생은 아니었지. 책을 읽을때면 모든 시간 감각을 상실했어... 다른 삶, 전에 살았던 삶, 살 수도 있었던 삶. 그리고 난 너의 책이, 또 다른 삶을 사는게 아니라 상상만 하고 싶은 삶, 말없이 나 혼자 상상해 보고 싶은 그런 삶에 대한 것이길 바랐어. 그러니까 읽지 않은 편이 더 나았지. 서점의 유리문을 통해 네 책들을 볼 수 있었단다. 내겐 그걸로 충분했어.]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