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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 - 서세동점의 시작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1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한국과 일본의 무역 분쟁을 지켜보면서 일본의 근대사에 관해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6권을 읽게 되었는데, 한국인이 공부하기에는 낯설고 복잡한 일본의 근대사를 만화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이참에 <본격 한중일 세계사> 전(全) 시리즈를 읽어보기로 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1권의 제목은 '서세동점의 시작'이다. 이 책은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19세기 이전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가볍게 훑어본 다음, 서양 제국주의가 일본과 중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다. 아편전쟁 이전까지 서양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동양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서양은 어떻게 동양을 능가하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정답은 '산업혁명'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양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배경과 그 과정을 자세히 알려준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데에는 면직물 산업의 공이 크다. 17,18세기 전후로 인도산 면직물이 유럽을 장악했고, 이를 눈여겨본 영국이 인도에서 면화를 수입해 면직물을 만들어 파는 시스템을 생각해 냈다. 이 과정에서 면직물을 보다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방직기, 방적기 등이 발명되었고, 그 결과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생산 단가가 낮아졌다.
문제는 면직물 산업으로 큰돈을 번 영국이 더 많은 돈을 영구적으로 벌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면서 생겨난다. 기업가가 더 많은 돈을 영구적으로 벌기 위해선 해당 산업을 독점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영국은 면화를 공급하는 인도를 식민지로 삼아 더욱 저렴한 값에 독점으로 원료를 확보하고, 동인도 회사를 통해서만 거래하게 함으로써 타국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초기 제국주의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형성한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와 도자기를 수입하는 데 막대한 은을 사용하게 되고, 막대한 무역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팔기 시작한다. 중국인들이 엄청난 속도로 아편을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무역 적자 역시 엄청난 속도로 줄었지만, 중국 정부가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아편을 팔고 싶어 하는 영국과 이를 막기 위한 중국 정부가 충돌해 벌어진 사건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이제까지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국내 정치를 장악하기 위한 의도로 정한론을 내세워 조선을 침략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중국산 면직물을 일본에 팔아 이익을 취하는 중개무역을 시도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럽인을 중간에 끼지 않고 중국과 바로 교역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벌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 일찍이 네덜란드로부터 들여온 서양 학문, 즉 '난학'이 발전한 것은 알았지만, 난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에도 막부가 강력한 쇄국 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유일하게 인정된 서양 학문인 난학은 비록 당대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으나 훗날 일본이 서구화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만약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도 난학과 비슷한 학문이 발전했고, 본격적으로 서구화를 하지는 않아도 서양에서 어떤 학문이 융성하고 어떤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지 꾸준히 정보를 수집했다면 한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은 만화 특유의 재치와 유머도 돋보인다. 아재 개그를 딱히 싫어하지 않는 나는, 굽시니스트 작가 특유의 말장난과 인터넷, SNS에서 유행하는 밈을 이용한 개그가 나올 때마다 빵빵 터졌다. 각각 따로 배우면 한도 끝도 없는 한중일의 역사를 몇 권의 책으로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니 참 좋다. 사실 추석 연휴 동안 천천히 읽을 생각이었는데, 택배로 받자마자 1권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내친김에 2권까지 쭉 읽었다. 이 속도라면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전 시리즈를 완독할지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