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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4년 7월
평점 :

브래디 미카코의 책을 연달아 두 권 읽었다. 브래디 미카코의 글이 너무 좋아서 아껴 읽고 싶었는데, 데뷔작이라고 하니 다른 책들을 읽기 전에 먼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는 1965년생인 브래디 미카코가 마흔 살에 발표한 데뷔작이다. 한국어판은 초판에 새로운 글을 추가해 2017년에 출간한 문고본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예전의 견해가 나중에 바뀌는 것을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인지는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이 책은 일본인 여성인 브래디 미카코가 펑크록에 심취해 영국으로 이주한 후 아일랜드계 영국인 남성과 결혼해 살면서 겪은 일들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사는 브라이튼은 영국 최고의 휴양도시로, 고가의 별장을 수채씩 거느린 부유층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곤층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성소수자의 성지라서 LGBTQ도 많이 살고, 저자처럼 다른 나라에서 이민해 온 사람들도 많이 산다. 주민들의 인종, 계급, 종교, 성정체성 등이 다양한 만큼 그에 따른 갈등이나 충돌도 잦다.
가장 두드러지는 갈등은 역시 계급 갈등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을 비난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이 빈곤층을 위한 공영 아파트에 사는 것은 비난하지 않는다. 부유한 백인들에게 멸시 당하는 가난한 백인들은 유색인, 이민자, 성소수자 등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며 사회 갈등을 증폭시킨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거창한 정치나 어려운 학문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이 일상에서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알기 쉽게 전달한다.
저자가 사랑하는 음악, 그중에서도 펑크 록, 그중에서도 섹스 피스톨즈에 대한 애정을 유감 없이 드러낸 대목들도 인상적이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멤버가 상업적인 리얼리티 쇼에 나오자 언론은 물론이고 팬들조차 그를 비난했지만, 저자는 그가 비난 받을 걸 알면서도 방송에 출연한 것이 솔직하고 용감하다는 점에서 펑크 록의 정신에 걸맞다고 생각했다. 그와는 반대로 비난 받는 게 두려워서 가식 떨고 안전한 선택만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말하는데, 많이 찔렸다(ㅠㅠ).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이지만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여기지 않는 남편 이야기, 그런 남편의 가족들과 친구들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저자 자신이 원가족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도 하고, 이웃에 워낙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아이들이 많이 살아서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 책을 출간하고 몇 년 후에 아이를 낳은 것도 드라마틱하다. 심지어 보육사가 되어 다른 부모들의 아이들도 돌보게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