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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라디오 키드 -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유쾌한 빈혈토크
김훈종 외 지음, 이크종 그림 / 더난출판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그 시절에는 이상하게도 라디오에서 떠드는 수다와 DJ가 틀어주는 음악이 없으면 하루가 텅 빈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난 지독한 '라디오 키드'였다. "'라디오 키드'가 라디오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좋아 죽던 일을 불혹이 가까운 나이까지, 거기다 돈도 받아가며 하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다시 한 번 나는 행운아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p.272)
<응답하라 1994>, 이른바 '응사'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응답하라 1997>의 후속격인 이 드라마는 케이블 방송으로는 드물게 자체 최고 시청률 10%를 돌파했고, 신인이나 다름없는 배우들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이어 히트를 친 비결은 무엇일까? 신인치고는 괜찮은 배우들의 연기와 케이블 드라마 특유의 통통 튀는 줄거리도 한몫 했지만, 드라마 곳곳에 3040세대의 공감을 사는 요소들이 많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한 번이라도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이상민, 우지원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은 물론, 당시 유행했던 패션, 드라마, 영화, 만화 등을 회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때 고작 여덟 살이었던 나도 이럴진대, 감성 충만했던 10대, 20대였던 지금의 3040 세대에게는 얼마나 아련하고 애틋할까.
'응답하라' 시리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20세기 라디오 키드>의 감성에도 쉽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이다. SBS 라디오 PD 김훈종, 이승훈, 이재익이 쓴 이 책에는 록음악과 영화, 만화에 열광했던 유년기부터 다사다난했던 청년기, 그리고 라디오 PD로 재직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쓰여있다. 제목이 '20세기 라디오 키드'라서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라디오 말고도 음악, 영화, 책 등 문화 전반에 걸친 이야기가 담겨있고, 요즘 유행하는 것들보다는 과거에 유행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서 (저자들에 비해 한참 연하인 나조차도)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이재익 PD의 이름이 낯익어서 찾아봤더니, 높은 청취율을 자랑하는 '두시 탈출 컬투쇼'의 PD여서가 아니라, 몇 달 전에 들은 팟캐스트 '하루키 라디오' 1부에 출연하신 분이었다(여자친구를 위해 쓴 소설이 문학사상 장편소설상에당선되는 바람에 소설가로 등단했다는 이야기가 하도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방송에서 하도 재미있게 말씀을 하셔서 드라마틱 한 삶을 사신 분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을 보니 역시 그랬다. 게다가 그 드라마틱한 삶을 소설로 쓰기까지 하셨다니 참 대단하시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가을, 깔깔거리면서 웃을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 찍 흘릴 수도 있는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