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레이디가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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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운동할 때 팟캐스트를 주로 들었는데 요즘은 TTS 기능을 이용해 전자책을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 책도 운동하면서 들었는데, 한 편 한 편의 길이가 짧아서 도중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도 한 번에 한두 편은 거뜬히 들을 수 있고,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가 번갈아 나와서 질리지 않았다.


출간 배경도 재미있다. 후기에 따르면 작가는 2012년부터 지인들과 함께 하이쿠를 쓰고 읽는 이른바 '치매 예방 하이쿠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모임에서 나온 하이쿠 문장들 중에 혼자만 읽고 감탄하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많아서 하이쿠 문장을 제목으로 한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지은이들의 동의를 얻어 책으로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참고로 하이쿠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각 행이 5, 7, 5음절로 되어 있고 반드시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들어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 책에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사건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겠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의 90퍼센트가 시대물이고 현대물을 쓴 건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매일매일 뉴스를 접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고 할까요. 요즘은 예전보다 더 여성이 고통받는 사건들이 신경 쓰여서 여성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졌네요. 사회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만큼은 계속 하고 싶습니다." (작가 인터뷰 중)


책의 앞부분에는 사위가 바람 피는 현장을 목격한 장모라든가 남자친구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이야기 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은 반면, 뒷부분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결말이 따뜻하거나 반대로 훈훈하게 시작했는데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가 많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단편인 <산을 내려가는 여행 역마다 꽃이 피어나네>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공공연한 차별을 당하며 자란 주인공에게 막대한 유산을 몰래 남기고 떠난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답이 쉽게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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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클
스티븐 롤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이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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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사는 패트릭 오하라는 전성기를 지난 배우다. 한때는 인기 TV 드라마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골든 글로브 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력도 인정 받았지만, 어떤 사건을 겪은 이후 연기를 그만두고 자택에서 은둔하는 중이다. 그런 패트릭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패트릭의 오랜 친구이자 패트릭의 남동생 그레그의 아내인 세라가 투병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레그와 세라에게는 아홉 살 난 딸 메이지와 여섯 살 난 아들 그랜트가 있는데, 그레그가 중독 치료를 위해 시설에 들어가게 되면서 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혼자 사는 삼촌이 나설 수 밖에.


그렇게 시작된 패트릭과 두 조카의 일상은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OO의 하루'(로 시작하는 유명한 애니메이션 오프닝 노래 가사) 그 자체다. 패트릭은 스마트폰과 유튜브, 틱톡 없이는 못 사는 아이들을 외계인처럼 본다. 메이지와 그랜트는 삼 시 세 끼 대신 브런치와 러퍼(런치와 서퍼의 합성어)를 먹는 삼촌을 이상하게 여긴다. 패트릭은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떨어져 있는데도 우는 소리 안 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메이지와 그랜트는 자신들 앞에선 수다스럽고 허술한 삼촌이 사실은 엄청 유명한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스티븐 롤리의 <겅클>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삼촌이 갑자기 두 조카를 맡아서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가족 시트콤 느낌의 소설이다. 주인공인 삼촌 패트릭 오하라가 워낙 독설을 잘 하고 재치 있는 캐릭터라서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소설의 중심에는 패트릭의 오랜 친구이자 두 조카의 엄마인 세라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다. 패트릭은 두 조카와 생활하면서 세라와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두 아이에게 남아 있는 세라의 흔적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동시에 패트릭 자신을 세상과 단절하게 만든 그 사건을 극복할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소설의 제목인 '겅클'은 남성 성소수자를 뜻하는 '게이(GAY)'와 삼촌을 뜻하는 '엉클(UNCLE)'의 합성어다. 패트릭이 조카들과 있을 때는 게이로서의 정체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주인공을 게이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설 중반에 패트릭에게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되어 주인공을 게이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는 걸 강하게 납득했다(ㅎㅎ). 이 소설은 <미나리>, <존 윅> 등의 제작사 라이언스게이트에서 판권을 사서 영화화가 확정된 상태라고 한다. 어떤 배우가 패트릭(과 그의 새로운 인연)을 연기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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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야식
하라다 히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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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오토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렵다. 그런 오토하에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취업 제안이 들어온다. 취업을 제안한 곳은 '밤의 도서관'. 도쿄 교외의 한적한 지역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밤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만 운영한다. 책과 관련된 일인 데다가 숙소와 식사도 제공한다는 말에 혹한 오토하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취업 제안을 받아들인다. 첫 출근 날 오토하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곳에 있는 책들은 그냥 책이 아니라 이미 죽은 작가들이 기부한 장서들이라는 것이다.


하라다 히카의 장편 소설 <도서관의 야식>은 밤에만 운영하는 특별한 도서관에 취직한 오토하와 그의 동료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목에 '야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오토하와 동료들이 도서관에서 야식을 먹기 때문이다. 밤의 도서관에는 직원 식당이 따로 있고, 밤 열 시 즈음이 되면 직원들이 모여서 야식을 먹는다. 야식 메뉴는 매일 다른데, 대체로 책에 나오는 음식들이다. 이를테면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시로밤바>에 나오는 카레라든가,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빵과 버터와 오이가 들어간 샌드위치라든가...


하라다 히카 소설 하면 음식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여성의 노동 문제를 다룬다는 것인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오토하는 지방 출신의 문과 여성으로서 자신의 전공과 적성을 살린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일자리가 많지 않고, 있어도 대부분 단기 계약직이다. 소설에는 오토하처럼 사서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 외에 작가, 서점원, 중고서적상 등 책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 이야기가 나온다. 극소수의 직원 외에는 본 적이 없는 오너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인데, 그런 사람 아니면 이제는 사설 도서관 같은 돈 안 되는 일을 할 사람이 없다는 뜻 같기도 해서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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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거리 - 김민정의 1월 시의적절 1
김민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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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난다에서 올 한 해 동안 한 달에 한 권씩, 열두 명의 시인들이 릴레이로 책을 내는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름하여 '시의적절' 시리즈. 첫 책인 1월의 주인공은 출판사 난다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다. 펼쳐보니 1월 1일부터 31일일까지 하루에 한 편 씩, 총 31편의 글이 실려 있다. 하루에 한 편 씩 읽으라는 의도가 담긴 구성인데, 글이 너무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후에 나온 책들도 뒤늦게나마 전부 구입해 읽을 예정이고, 유희경 시인님이 쓰신 9월'호(?)'도 주문한 상태다.


시인의 책답게 시도 있고, 일기, 에세이, 인터뷰 등도 있다. 나는 특히 인터뷰가 좋았다. 몇 해 전 고인이 된 코미디언 박지선과 국악인 황병기의 인터뷰를 읽을 때에는 가슴이 먹먹했고, 번역가 김화영과 배우 고아성의 인터뷰를 읽을 때에는 한국 문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만난 듯했다. 박지선 씨가 생전에 동료 여성 코미디언들과 함께 했다는 북클럽이 계속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고아성 배우는 원래도 좋아했지만 아니 에르노를 읽는다는 말에 더 좋아졌다.


김민정 시인과 친분이 있는 허수경 시인, 최승자 시인의 이야기도 일기 형식으로 실려 있다. 일기라고 하면 보통 그 날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었는지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의 일기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가 만난 사람, 대상의 이야기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장기 입원 중이신 아버지와의 대화에 나온 '잘 듣고 잘 보고 잘 기록하고'라는 말도 왠지 좋아서 메모해 두었다. 그렇게 잘 듣고 보고 기록한 것들을 엮어서 책이라는 귀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저자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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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위픽
정혜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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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쓴다면 어떤 소설을 쓸까. 이제껏 한 번도 소설을 써본 적 없지만, 그동안 수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아니 많이) 해본 생각이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한다. 소설가들은 어떻게 소설을 쓸까. 그들은 왜 하필 그 시대, 그 공간을 배경으로 그 인물, 그 사건에 대해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을까. 무엇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만들고 소설가가 되게 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내내 있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아무튼, 메모>, <앞으로 올 사랑> 등 수많은 산문집을 펴낸 에세이스트이자 라디오 PD인 정혜윤 작가의 첫 소설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이다.


소설은 평생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해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음이 편해지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그는 애초에 마음이 편하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에게 집안 대대로 내려온 거대한 숲이 있는 섬을 주기로 약속하고 대규모 글쓰기 워크숍을 연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워크숍에 참가했고, 단 한 명이 우승자로 뽑혔다. 우승자의 글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종국에는 온 지구를 뒤덮은 팬데믹과 살처분 당하는 동물들, 재난과 참사,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잃고 외국을 떠도는 난민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나는 이 책을 쓴 정혜윤 작가님이 내가 아는 정혜윤 작가님이 아닌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정혜윤 작가님이 소설을?). 내가 아는 정혜윤 작가님이 맞다는 걸 알고 책을 사면서도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너무나 정혜윤 작가님 책 같은 내용이라서 안심했다. 소설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정혜윤 작가님이 기존에 쓰던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라서 아쉬운 기분도 조금 들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으로서는 소설이나 에세이나 한결 같은 스타일로 한결 같은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혜윤 작가님이 그저 좋다. 무엇이 소설이 되고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힌트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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