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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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남들이 나에게 잘못한 일을 곱씹는 경우가 많았다. 스무 살 언저리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일. 십 년 넘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알고 보니 뒤에서 나를 흉보고 다녔던 일. 아버지 어머니가 나에게 상처 주었던 일. 그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착한데 남들이 나쁘다고, 나는 무고한데 남들이 나에게 죄를 짓는다고 믿었다.


언제부터인가 남들이 나에게 잘못한 일보다 내가 남에게 잘못한 일을 더 자주 곱씹게 된다. 친하다는 이유로 연락을 소홀히 했던 일. 나를 변호하느라 남의 입장은 살피지 못한 일. 잘못을 하고도 제대로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 일. 그런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내가 생각만큼 착하지도 않고 무고하지도 않음을 새삼 확인한다. 더 이상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말을 삼가게 되고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사람은 소심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겁쟁이라고 한다. 후회를 늘리지 않으려고 행동의 속도를 부러 늦추는 내가 이상한 걸까.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르는데, 기쁨은 종종 회한으로 남아 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기 때문이리라."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 p.6)


소설가 한지혜의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다가 처음으로 밑줄 그은 문장이다.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걸 통해 얻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아무리 기쁘고 즐거운 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후회스러운 점이 있다. 저자가 이런 깨달음을 얻은 건 결코 순탄했다고 말할 수 없는 어린 날의 경험 덕분이다.


저자는 사 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부모는 애가 둘이라고 속여 셋방을 구했다. 이사 당일 애가 넷인 걸 보고도 집주인은 놀라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허다했던 탓이다. 여섯 식구가 한 방에 뒤엉켜 자다 보니 언니의 생리혈이 저자의 속옷에 묻어 초경을 했다고 착각한 적도 있다. 남몰래 좋아하던 선생님이 집까지 바래다준다는데도 초라한 살림을 보여주는 게 싫어서 거절한 적도 있다. 그때는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못 사는 것 같았다. 돈도 없이 애를 넷이나 낳은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얼마 전 저소득층 아이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신발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기사를 봤다. 아무리 가난해도 생리대가 없어서 고생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무능한 부모라도 딸 셋이 쓸 생리대 값은 벌어다 줬다. 그동안 가난 운운하며 자신의 불행만 헤아리고 남의 불행은 돌아보지 못한 게 너무나 미안했다. 부모를 원망했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놀기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공부까지 잘하니 주변 어른들의 평판이 좋았다. 어린 마음에 그런 평판에 취해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국민학교 시절의 일이다. 같은 반에 행색이 초라하고 성적도 낮아서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던 아이가 있었다. 구구단을 못 외우는 그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순수하게 그 아이를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똑똑한 아이가 착하기까지 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였다. 그때는 그런 마음이 위선인 줄 몰랐다. 그 후로는 아동 후원 같은 자선 행위를 할 때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행위를 하는지 살핀다. 오만과 치기를 선의로 포장하는 법을 아는 영악한 아이가 아직도 내면에 있을지 몰라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희생시킨 적도 있다.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학교 밖에서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혼나는 것도 무섭고 모범생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도 두려워 당시 같은 자리에 있었던 다른 학생의 핑계를 댔다. 덕분에 혼나지 않고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름이 오른 학생은 선생님에게 불려가 심한 곤욕을 치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거나 상처를 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하는 거라곤 공부뿐인 힘없고 가난한 어린 여학생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선 약한 자신도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남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로는 약함과 강함, 선함과 악함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속성임을 알아서다. 


한 편의 성장소설 같은 산문집을 읽으며 어쩌면 성장은 못난 사람이 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못난 사람이 더 못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저자는 열심히 발버둥 치며 배우고 있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는 아이에게는 어른들이 간과하고 있는 공정이란 가치를 배웠다. 로자 파크스의 동화를 통해서는 "정해진 차별의 자리를 지켰지만 하차당했"던 소수자들의 역사를 배웠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는 아무리 약한 사람도 서로 힘을 합치고 어깨를 나란히 하면 세상을 뒤집고 바꿀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전에 몰랐던 것을 지금 안다고 해서 함부로 발언하거나 섣불리 행동하지는 않으려 한다. 알기 때문에, 가 아니라 알기 위해서 말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려 한다.


이 책을 읽으니 사람들이 나를 두고 소심한 겁쟁이라고 놀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후회를 늘리지 않으려고 행동하지 않는 건 못난 사람이 되든 말든 발버둥치지 않는 것과 같다. 저자가 안다고 말하기 전에 알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남의 잘못을 흉보기 전에 자신의 잘못부터 살피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영영 못난 사람으로 남지 않는 법을 알려준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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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1-14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신 분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돌아보고나서 리뷰를 쓰시네요. 도대체 이 책이 어떻길래 그런가 싶어 저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mira 2019-11-1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이야기 많이 들려서 장바구에 넣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