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서덕 지음 / 넥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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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법, 부자 되는 법, 일 잘 하는 법, 공부 잘하는 법...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책은 많지만 잘 쉬는 법, 잘 노는 법을 알려주는 책은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고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쉬고 즐겁게 놀 줄 몰라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의 저자 서덕도 그런 사람이었다.


저자 서덕은 광고업계에서 8년가량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광고업계 특성상 밤낮은 물론 때로는 주말과 휴일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결국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를 얻었다. 일을 할 때는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붙이고 일이 없을 때는 스스로 일을 만들어 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를 얻고 휴식을 취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싫은 사람들과 싫은 일들을 하다 보니 자기 자신까지 싫어졌다.


책에는 저자가 공황장애와 불안장애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를 택하고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회복한 후 다시 재취업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퇴사 후 저자는 매주 심리 상담을 받았다. 상담으로 뭘 해결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상담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해묵은 감정들이 튀어나왔고, 과거에 미처 화해하지 못한 일들과 비로소 화해할 수 있었으며, 그때마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상담으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상담이 치유로 가는 길의 이정표인 것은 확실하다.


저자는 자신이 무엇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수록 인생이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작고 사소한 것도 괜찮다. 구체적일수록 좋다. 저자는 소고기 중에서 살치살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 중에서는 '찹쌀떡층이 있던 시절의 붕어싸만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소설, 좋아하는 웹툰, 좋아하는 음악이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다리게 해준다. 예전에는 돈 많은 사람, 집안 배경 좋은 사람이 부러웠지만, 이제는 이렇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취향 부자'가 부럽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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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거나 말거나 - 쉼보르스카 서평집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봄날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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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서평집이다. 시인이니 시집으로 먼저 만나야 할 텐데, 시심이 부족한 나는 왠지 모르게 겁이 나 시집보다 서평집으로 먼저 그를 만났다. 부디 용서를.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가리켜 '비필독도서 칼럼(집)'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이건 꼭 읽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 열심히 쓰고 정성을 다해 만들었지만 그에 합당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서가에서 밀려난 책들만 골라 읽었다는 뜻이리라. 그래서일까. 이 책에 나온 책 중에는 내가 읽은 책보다 읽지 못한 책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책의 제목은 물론 작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책도 많다. 작가가 폴란드인이라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라고 하자니 변명 같지만, 서평집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주목한 책보다는 그 책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주목하며 읽었다.


저자가 읽은 책 중에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춘향전도 있다. 정확히는 할리나 오가렉 최가 옮긴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라는 책이다. 폴란드 출신 시인의 눈에는 춘향전의 세계가 어떻게 보였을까. 저자는 변 사또에게 온갖 고초를 당한 춘향이 종국에는 몽룡을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맞은 것으로 나오지만, 고초를 당할 때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에 맞아 으깨진 두 발이 완벽하게 나았는지에 관한 언급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가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판타지가 너무 심할 경우 현실은 보이지 않거나 왜곡되는 폐해가 있다. 삼십 년 넘게 춘향전을 알았지만 이런 해석은 처음이라 신선했고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에치스와프 예지 퀸스틀러의 <한자>라는 책에 대한 감상도 흥미로웠다. 폴란드인인 저자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자를 전혀 몰랐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한자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가 얼마나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반영되어 있는 글자인지는 안다. '싸움', '배반' 등 나쁜 뜻을 지닌 글자에는 어김없이 여자를 뜻하는 글자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나관중의 <삼국지>를 여러 번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시아 사람들도 읽기 어려워하는 <삼국지>를 유럽 사람인 저자가 읽으려고 했다는 것에 우선 놀랐고, <삼국지>의 방대한 분량과 엄청난 등장인물 수, 비슷한 전투 장면의 반복 같은 장애물이 가로막혀 결국 다 읽지 못했다는 것에 위로받았다. (한국인인 내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나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책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과 비슷하달까 ^^;;) 이 밖에도 흥미로운 글이 많이 있다. 다음에는 시집으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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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국어 학습기 - 읽기와 번역을 위한 한문, 중국어, 일본어 공부
김태완 지음 / 메멘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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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많은 편은 아닌데 공부에는 욕심이 많다. 돈이나 물건은 내 것이 되었다가도 언젠가는 그 가치가 줄거나 사라지지만 공부는 한 번 내 것으로 만들면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어서이다. 특히 외국어 공부에 욕심이 많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되든 안 되든 꾸준하게 연습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말을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독일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국어 능력자다. 저자가 처음부터 외국어에 능통했던 건 아니다. 경북 봉화 출신인 저자는 원래 동양 철학을 공부한 학자다. 동양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문을 익혔고, 한문을 잘 아니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가 수월했다. 동양 철학도 인문학이다. 인문학자라면 모름지기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배울 수밖에.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니 필수로 배웠다. 단순히 어학만 배운 게 아니라 번역도 공부했다. 수징난의 <주자평전>으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도 했다. 저자가 6개 국어를 마스터한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는 '기계적 훈련'만이 왕도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어를 배울 때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그날 배운 책의 본문을 열 번씩 썼다. 내용을 암기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썼다. 그렇게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의 문형에 익숙해졌고 어떤 단어들은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암기는 단어로 외우는 것보다 문장으로 외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한 가지 언어를 배우면 그전에 배운 언어를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저자 역시 이런 걱정이 들어서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교차 학습'을 했다. 예를 들어 일본어를 6개월 공부한 뒤 중국어를 공부할 때 한국어로 배우지 않고 일본어로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면 한 번에 두 가지 언어를 배울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때 주의할 점은 친연성이 큰 언어끼리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친연성이 큰 일본어와 중국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함께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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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연습 - 부서진 심장과 고통과 상처와 당신에 관한 에세이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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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레슬리 제이미슨은 작가가 되기 전에 '의료 배우'로 일한 적이 있다. 의료 배우란 의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에서 환자 역할을 맡아 어떤 질병의 표준 증상들을 연기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똑같은 질병, 똑같은 환자인데 어떤 학생은 사무적인 어투로 형식적인 질문만 하고 끝낸 반면, 어떤 학생은 꼬치꼬치 캐물어 환자의 부모가 어떤 약을 복용했고 무슨 질병 또는 사고로 돌아가셨는지까지 알아냈다. 저자는 그 차이가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20쪽)


이 책에는 저자가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쓴 11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우선 소재가 다양하다. 의료 배우로 일한 경험, 낙태 경험, 이상한 모겔론스 병 취재, 니카라과 거주, 멕시코와 볼리비아 여행, LA 갱 투어, 울트라마라톤 취재, 교도소에 갇힌 수감자 면회, 국가에 착취당하고 버려진 지역 답사, 잘못된 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소년들 등 저자의 직접 체험부터 간접 체험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알코올 중독, 섭식 장애, 자해벽 등 과거에 겪은 증상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여성 고통의 대통일 이론>이라는 글이다. 시, 소설, 미술, 영화, 뮤지컬 등 그 어떤 장르를 봐도 고통받는 여성의 이미지는 고통받는 남성의 이미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고통을 당하는 방식도 자연적으로 병들고 아픈 경우부터 타인(주로 남자)에 의해 상처 입고, 피 흘리고, 목 졸리고, 벗겨지고, 강간당하고, 죽임 당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저자는 이러한 이미지 또는 스토리텔링이 "고난을 여성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여성 구조의 한 요소로 전환시킬 위험이 있다."라고 경고한다. (308쪽)


"여성이란 고통을 필요로 한다"라는 잘못된 인식은 급기야 여성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과 연구자들이 남자의 고통은 심각하게 받아들인 반면, 여자의 고통은 '심인성', '스트레스', '히스테리' 같은 단어로 일축하며 무시하고 간과해 왔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 밝혀졌다. 심지어는 여성들 자신도 극심한 통증을 겪으면서 이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호르몬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통증이 약할 때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한테 '스트레스', '호르몬' 같은 말을 듣고 병원 출입을 안 하게 된 것이리라.


저자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남자친구였다. 저자는 한때 여러 사고를 당해 몸이 많이 아팠다.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고통을 호소하면 남자친구는 '부상병동'이라고 놀리며 '아픔을 연기'한다고 말했다. 당시 저자는 남자친구의 말대로 자신이 고통을 과장해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해를 할 때도 '상처 어필'을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지금은 당시 남자친구가 여성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 보통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 사람이라는 걸 안다. "연기된 고통 역시 고통이다."라는 친구의 말을 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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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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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캄보디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외곽에 있는 한 쓰레기 매립장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렌트 콜렉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상 리.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손에 자랐으며 현재는 '스퉁 민체이'라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살고 일하며 남편 기 림과 아들 니사이를 키우고 있다. 상 리의 가장 큰 걱정은 태어난 지 16개월 된 아들 니사이가 먹은 것을 소화하지 못하고 그대로 설사해 발육 상태가 엉망이라는 것이다. 상 리는 공기 나쁘고 물 안 좋은 쓰레기 매립장에서 살아서 니사이가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어떻게든 이사할 방법을 찾자고 하지만, 기 림의 능력으로는 쓰레기 매립장 밖에서 돈을 벌 수도 없고 집을 구할 수도 없다.


그런 상 리에게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매월 첫째 날 상 리의 집에는 소피프라는 여자가 집세를 걷으러 온다. 집세를 내지 않으면 호통을 치고 욕을 하는 소피프를 스퉁 민체이 사람들은 '암소'라고 부르며 비난한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집세가 밀려 소피프에게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피프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기 림이 쓰레기장에서 주워 왔지만 부부 중 누구도 글을 읽지 못해 던져두었던 책이다. 소피프는 저 책을 주면 월세를 안 내도 된다고 말했다. 대체 저 책이 뭐기에 그동안 악독하기 그지 없었던 소피프가 월세를 면제해준 걸까.


상 리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소피프에게 이렇게 묻는다. "제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나요?" 사실 상 리는 글 읽는 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니사이에게 글 읽는 법도 모르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다. 상 리 자신이 글 읽는 법을 알아야 니사이에게 책도 읽어주고 공부도 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 리의 말이 꽁꽁 얼어 있던 소피프의 마음을 녹인 걸까. 결국 소피프는 상 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세입자와 집세 수금원이 아닌 학생과 선생으로 만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소피프는 프놈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상 리는 소피프의 지도 아래 글 읽는 법을 배우게 되고 나중에는 책을 읽고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때 국립 대학교수였던 소피프가 왜 쓰레기 매립장의 집세 수금원이 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소피프를 변하게 한 그 책의 비밀이 무엇인지도. 이토록 영화 같은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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