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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거나 말거나 - 쉼보르스카 서평집 ㅣ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봄날의책 / 2018년 8월
평점 :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서평집이다. 시인이니 시집으로 먼저 만나야 할 텐데, 시심이 부족한 나는 왠지 모르게 겁이 나 시집보다 서평집으로 먼저 그를 만났다. 부디 용서를.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가리켜 '비필독도서 칼럼(집)'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이건 꼭 읽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 열심히 쓰고 정성을 다해 만들었지만 그에 합당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서가에서 밀려난 책들만 골라 읽었다는 뜻이리라. 그래서일까. 이 책에 나온 책 중에는 내가 읽은 책보다 읽지 못한 책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책의 제목은 물론 작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책도 많다. 작가가 폴란드인이라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라고 하자니 변명 같지만, 서평집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주목한 책보다는 그 책에 대한 저자의 평가에 주목하며 읽었다.
저자가 읽은 책 중에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춘향전도 있다. 정확히는 할리나 오가렉 최가 옮긴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라는 책이다. 폴란드 출신 시인의 눈에는 춘향전의 세계가 어떻게 보였을까. 저자는 변 사또에게 온갖 고초를 당한 춘향이 종국에는 몽룡을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맞은 것으로 나오지만, 고초를 당할 때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에 맞아 으깨진 두 발이 완벽하게 나았는지에 관한 언급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이야기가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판타지가 너무 심할 경우 현실은 보이지 않거나 왜곡되는 폐해가 있다. 삼십 년 넘게 춘향전을 알았지만 이런 해석은 처음이라 신선했고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에치스와프 예지 퀸스틀러의 <한자>라는 책에 대한 감상도 흥미로웠다. 폴란드인인 저자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자를 전혀 몰랐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한자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가 얼마나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반영되어 있는 글자인지는 안다. '싸움', '배반' 등 나쁜 뜻을 지닌 글자에는 어김없이 여자를 뜻하는 글자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나관중의 <삼국지>를 여러 번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시아 사람들도 읽기 어려워하는 <삼국지>를 유럽 사람인 저자가 읽으려고 했다는 것에 우선 놀랐고, <삼국지>의 방대한 분량과 엄청난 등장인물 수, 비슷한 전투 장면의 반복 같은 장애물이 가로막혀 결국 다 읽지 못했다는 것에 위로받았다. (한국인인 내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나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책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과 비슷하달까 ^^;;) 이 밖에도 흥미로운 글이 많이 있다. 다음에는 시집으로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