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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평점 :
어떤 이의 삶은 소설보다 극적이다. <꽃은 알고 있다>의 저자 퍼트리샤 월트셔의 삶이 그렇다. 퍼트리샤 월트셔는 지난 25년간 300건 이상의 까다로운 범죄 사건을 해결했다. 퍼트리샤 월트셔의 직업은 형사일까? 아니면 법의학자? 놀랍게도 퍼트리샤 월트셔의 직업은 식물학자다. 그것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꽃가루를 연구하는. 대체 어떻게 식물학자가 범죄 사건 해결에 투입된 걸까. 꽃가루로 시체를 찾거나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증거를 찾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궁금하다면 이 책 <꽃은 알고 있다>를 읽어보길 권한다.
책은 저자가 범죄 현장에 투입되어 강력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와 저자의 지난 생애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웨일스의 광산촌에서 젊은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기관지염을 앓은 저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식물도감을 읽은 적이 많았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동물 실험이 꺼려져 연구원의 길을 포기했다. 이후 '여자다운' 일을 하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따라 비서 수업을 받고 유명 기업에 들어갔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국 저자는 20대 후반에 킹스칼리지 대학에 진학해 식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식물도감을 닳도록 읽었던 기억이 마침내 저자를 식물학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이후 저자는 식물학자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킹스칼리지 대학에서 미생물과 일반생태학을 강의했고, 런던대학교에서 환경고고학자로 일했다. 그렇게 남은 생을 식물학자로 살아갈 줄로만 알았는데, 오십 대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형사였다. 형사는 중국 삼합회가 저지른 범죄를 뒤쫓고 있는데, 범인이 사체를 버리기 위해 차를 타고 도랑을 지나면서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만한 생태학적 증거를 남기지 않았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왠지 모르게 사건에 끌린 저자는 차 안팎을 샅샅이 뒤져 약간의 진흙 덩어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덩어리에서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만한 옥수수 꽃가루를 발견했다.
이때부터 저자는 식물학 또는 생태학을 이용해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체를 찾지 못할 때는 범인이 시체를 묻고 온 장소에서 자기도 모르게 묻히고 온 꽃가루, 먼지, 포자 등에서 시체를 묻고 온 장소의 특징을 밝혀냈다. 범인을 모를 때는 용의자의 몸이나 옷, 신발 등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흙이나 모래를 채집해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가려냈다. 이는 범인이 범죄 현장에 머리카락이나 혈액, 정액 같은 DNA 증거를 남기지 않은 경우에 더욱 용이하다. 목격자가 없고 범인이 자백하지 않는 상황에서 범죄의 구체적인 정황이나 과정을 밝혀낼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일흔이 넘은 저자는 세계법의학협회, 영국왕립생물학협회, 린네협회 등의 회원으로 왕성한 연구와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자는 '여자다운' 일을 해야 한다고 했던) 전 남편과의 이혼 후 더 멋진 남자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좋았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해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