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신과 함께>를 처음 접한 것은 신화편이었다. 신화편이 저승편과 이승편보단 먼저 앞의 세계를 다룬 것이고, 각 신마다의 이야기를 다룬 본풀이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신과 함께>는 저승편부터 먼저 웹툰으로 연재되어 이승편과 신화편으로 연재되었다. 처음 신화편을 보면서 차사전이 비중이 높았는데, 차사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아마 이승편과 신화편에 등장하는 인물이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 강림도령이기 때문이다. 가끔 전설의 고향 내지 귀신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를 보면 저승사자들의 복장은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이 입는 의상과 흡사하다. 물론 얼굴은 혈색이 없으며 눈매는 날카로우나 기본적으로 그들은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신과 함께> 저승편에 등장하는 저승사자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차사복장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검정색 양복을 입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신화란 원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작가 주호민이 개인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했어도 그것은 현대적인 인식과 상황에 근거하여 만든 것이다. 저승 가는 길은 보통 망자가 걸어가거나 혹은 배를 타고 간다. 그러나 현대의 망자들은 지하철을 타고 저승으로 향한다. 재미있는 설정은 지하철 이름이 바리데기호라는 점이다. 바리공주, 바리공덕이라고 하는 바리는 원래 부모에게 버림받은 공주다. 그녀는 저승에 가서 고난을 마친 후 자신을 버린 부모의 목숨을 살린다.

 

그리고 죽은 인간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속신이 된 것이다. 바리공주 신화를 보면 불교적인 색이 강한 반면, <신과 함께>에서는 바리공주의 본풀이가 나오지 않는다. 바리공주보단 조선시대의 냄새가 강한 차사들의 활약이 높았다. 차사들의 이야기는 물론 <신화편>에 등장하나 그들의 복장과 신분을 보면 충분히 조선시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해원맥이 죽게 만든 것을 토포사로 부임한 장군으로, 토포사란 조선시대 산적을 잡기 위해 만든 관직이다. 무속신화가 시대를 지나면서 계속 바뀌거나 추가로 반영되는 특징이 있다.

 

해원맥의 모습도 그런 것처럼 다른 존재도 역시 그렇다. 조선시대의 복장의 차사가 아니라 현대적인 모습의 차사도 역시 가능한 설정이다. 저승편에서 소개되는 것은 어느 한 기업에서 일하는 회사원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병으로 죽자 저승에 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진 것도 없고 가난하며, 직장에서 고생만 하다 저승으로 오자, 그의 심판이 저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염라대왕을 비롯한 명부시왕이 망자에 대해 재판을 하고, 그의 죄질에 따라 지옥에서 벌을 받게 하거나 또는 윤회되거나 천국으로 영원히 가게 되는 것을 결정한다.

 

재판과정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자는 자신의 재판과정에 따라 각종 지옥을 구경하고, 지옥에서 벌을 받는 인간을 보게 된다. 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쁜 짓을 한 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속이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이승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으면, 지옥에 남는 자리가 부족하고, 지옥 내에서 사람들은 다툰다. 사람들이 가진 이기심과 비인간성은 지옥에 와서 벌을 받아도 뉘우치지 못한 것이다. 이를 본 회사원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대해 돌이켜보면서 재판과정을 임한다.

 

그는 그렇게 착하게 산 것도 아니나, 그렇게 나쁘게 산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 보통 사람들처럼 힘없이 살아온 서민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최종선고는 지옥의 벌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이다. 살아생전 속기만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한 그에게 왠지 모를 연민과 공감대가 느껴졌다. 저승에 와도 다른 사람도 있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 자신이 모은 돈을 남에게 베푼 할머니나, 이제 갓 태어났는데 저승으로 가는 아기, 남에게 거짓말만 한 정치인까지 나온다. 저승에 오는 사람들의 과거는 모두 다르지만, 저승의 심판은 공정했다. 인간의 삶에서 공정한 순간이 언제 제대로 있었던가?

 

공정함의 척도는 그 사람에게 얼마나 권력이 있는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저승편>에서 회사원 이야기가 진행될 때 한편으로 차사들의 활약이 나온다. 차사들이 망자를 저승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어느 귀신 하나가 거기서 탈출한다. 그 자는 총기사고로 죽은 군인이었다. 매년 군대에서는 총기 및 기타 사고로 죽는 군인이 많으며, 그들의 죽음에서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의문사도 많다. 이번 <저승편>도 마찬가지로 휴가를 앞둔 말년 병장의 죽음은 그냥 단순히 총기사고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의적인 방치로 인한 타살로 이어졌다.

 

분명히 응급처치와 적절한 대응만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지만, 지휘관의 진급과 부대가 소란스러운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죽음을 위장한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웨툰이나 만화에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과거 군사정권 시절 많은 군의문사가 있었으며, 아직도 그 원인이 판명나지 않은 것이 많았다. 심지어 시체도 장례식을 치루지 못한 채 꽁꽁 얼어붙은 채 영안실에서 영혼의 명복조차 찾아가지 못했다.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등장하는 망자들은 현실에서 고난을 받거나 억울하게 죽은 자가 중심이다.

 

차사들은 그들을 위해 노력을 하더라도 복수를 하지 못했다. 대신 강림은 병장의 죽음을 보고 분노하여 그 병장을 죽게 만든 지휘관이 저승에 오면 중벌에 처해지도록 주문을 건다. 현세는 공정하지 못하기에 그 죄 값을 저승에서 확실히 받고자 하는 것이다. 저승세계도 나름 현실세계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과거 삼도천을 지나던 경로는 3가지로 각 경로마다 특징이 있었지만, 하천정비사업 이후 하천이 직선화하여 물의 유속이 빨라졌다.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면서 강물의 흐름을 보니 마치 4대강 사업을 하던 것에 대한 풍자도 보였다.

 

<신과 함께>에서 등장하는 차사들과 신들은 인간이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누리던 자들의 편이 아니라 그 아래서 핍박받고 고통 받던 자들의 편이다. 거기에 어려운 이웃을 돕던 사람은 저승의 신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우를 받는다. 진짜 인간이 죽으면 사후세계인 저승으로 가는지 안 가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이승의 세계에 살면서 너무 부조리하고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저승에서 명부시왕의 재판인 걸까? 저승의 이야기를 다루는 <신과 함께> 저승편을 완독할 순간,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 착하게 사는 게 정말 바보 같은 짓일까? 아니면 정말 옳다고 여기고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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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8-05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만화 왜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학습만화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5-08-05 15:20   좋아요 0 | URL
재미보단 왠지 모를 시대적인 감정이 녹아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개미처럼 일하고, 술에 찌들린 남자가 죽는 최후란..
한편으로 보면 재미보단 그냥 일생학습만화인듯

만화애니비평 2015-08-05 15:40   좋아요 0 | URL
참고로 저는 8월14일 부천에 갑니다.
부천에 만화축제 세미나 듣고 그날 만화영상진흥원에서 일하는 분과 저녁일정이 있고
나머지 일정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는데, 아마 저는 월요일 정도 내려가려 합니다.
토요일에 아는 동생놈과 맥주와 감자튀김하자 했지만, 만약
곰곰발님이 생각나시면 어떻습니까? 다음주말?
 
신과 함께 : 신화편 세트 - 전3권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신과 함께>는 만화작가 주호민의 작품이다작품을 보면 현대인의 관점에서 과거에서 지금까지 내려온 신화를 그려놓은 것이다물론 스토리텔링은 현대적이나그 신화에서 배경과 인물들은 과거의 산물이다한국의 신화를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프다한국인의 감정에서 한()이란 비극적 정신이 숨어 있다그 비극이 우리 내면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그것은 처음 <신과 함께신화편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인간의 문명은 문명 이전이던 야생의 자연보다 못하며오로지 배신과 시기질투로 가득하다.

 

<대별왕과 소별왕>의 이야기처럼 옥황상제의 두 아들은 서로 인격과 재능을 토대로 승부를 겨루나 마지막에 소별왕의 계략으로 대별왕은 패배한다그래서 옥황상제는 하늘동생 소별왕은 이승그리고 형인 대별왕은 저승의 왕으로 추대된다왕이라고 하나 그들은 엄연히 신이다올바른 판결이 아닌 부정한 방법으로 왕 자리가 바뀌었으니 세상은 이미 부정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기본적으로 <신과 함께>를 읽어보면 무속신화가 베이스다민간신앙의 토대로 우리 일상생활에 깊게 내려온 우리의 재산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경시하고 천대하였다조선사대부 시대에도 그렇게 했지만그런다고 조선왕조가 모든 것을 빼앗지 않았다서구사회가 도래하고 나서 합리화란 이름으로 전통문화를 파괴하고자신들만의 이념으로 우리의 사상을 짓밟았다현대사회에서 서구화라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우리가 한국인이란 점을 피할 수 없다한국 땅에서 태어나든지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다른 나라에 있든지 어느 소속에 있든지 그 하나로만으로 한국인이란 혼을 버릴 수가 없다.

 

물론 한국인이 최고의 가치고모든 것의 기준이 아니다단지 우리는 우리로서 살아가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해야 한다. <신과 함께>라는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우선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속신화가 토대다하지만 무속신화 이전에 있던 창세신화가 뿌리라고 볼 수 있다창세신화 중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미륵과 석가는 한국의 대표적 신화다미륵이 본래 탁월하고 인격적으로 고매하나석가는 이에 반해 질투와 시기그리고 속임수로 가득한 인물이다.

 

두 신이 세상을 놓고 대결할 때 석가의 속임수로 미륵은 패배하고미륵은 영원성을 상징하는 인물 두 사람마저 돌과 소나무로 만들고석가의 무리는 수 천 명을 데리고 온다인간세상을 석가가 지배하면서 미륵은 석가와 인간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그리고 음식도 생식이 아니라 화식으로 되면서곧 불의 이용은 문명세계를 말하고인간의 문명은 죄로 가득한 수라 길로 변한 것이다. ‘대별왕과 소별왕’ 이야기 역시 미륵과 석가’ 신화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그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란 어느 존재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점이다.

 

대부분 이야기에서 신으로 되는 인간들은 분명 이승에서 바르게 살았지만이승의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비극적으로 죽은 인물들이다그들이 신이 된 이유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에 이끌리거나 세속의 흐름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원칙을 지켰다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권력과 이속의 논리가 반영된 제도와 도덕이 아니라 윤리적 가치였다대별왕이 염라대왕을 임명하고염라대왕은 다시 저승사자인 차사를 임명한다차사로 임명된 사람 역시 누군가를 괴롭히고 해코질하려 하지 않았다.

 

세상의 흐름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사려 했지만 세상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신들이 되는 인간들은 바로 우리와 같이 억압받거나 또는 그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부류다이승은 공명하지 못하나저승은 공명정대하다아마 민중의 의식에서 억압에 의한 해방의식이 무속신화에서 뿌리깊이 내려박혔다따라서 무속신화는 우리가 잘 아는 건국신화와 조금 다르며건국신화에서 보이는 형태가 다르다원래 건국신화로 유명한 단군신화에서 인간의 문명은 인간을 이롭게 하도록 만든 것이다.

 

한국의 신화에서 단군신화가 가장 오래된 기록문헌으로 남은 신화다그 신화에서 단군이 주장한 세계란 인간이 귀한 것이란 인본주의적인 가치다생각해보면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정사상가이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조에 조선후기의 모습은 단군의 시대보다 못하다고 했다세월이 지나 학문적 수준이 높아지고 기술적 발명도 탁월해지는 시점에서 오히려 백성의 삶을 피폐하고 굶주림에 가득했다무속신화는 건국신화처럼 기록이 아니라 입으로 내려오는 구비전승이기에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모된다.

 

<신과 함께>에서 대별왕과 소별왕의 형태를 보자면 신선이 존재하는 선교(仙敎)적 관점이 강하고하얀 삵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의복관제를 보면 조선시대에 가깝다그리고 사라도령과 할락궁이가 등장하는 이공본풀이에서 꽃 감관을 되는 사랑도령이 서천에 간다는 설정은 서유기에서 말하는 서축 즉 인도를 가리키고그것은 불교문화를 말한다민간신앙은 한국 마지막 왕조인 조선에서 유교의 성리학에 선교와 불교 그리고 무속신앙이 결합하여 특이한 형태의 무속신화가 탄생했다.

 

대부분 무속신화가 이승이 배경보단 저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저승에 가지만그 인간 모두가 신으로 되는 점신이라도 좋은 신도 있지만평생 죄를 뉘우치거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악신도 등장한다그러면서 사라도령은 아들 할락궁이에게 꽃 감관직을 물려주고 자신의 아내와 이승에서 부부의 연을 이어가는 점은 신이 다시 인간이 된다는 속성도 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오고지상에서 단군은 산신이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서구사회에서 대표적인 신화는 고대그리스에서 내려온 그리스신화다올림포스 신인 제우스를 필두로 많은 신인간수많은 이형적 존재가 등장한다인간이 죽으면 그들 모두 하데스의 신전으로 인도받고그들의 죽음이란 death가 아니라 thanatos(타나토스)라고 한다타나토스는 정신분석에서 삶의 욕망인 eros의 반대말인 죽음의 욕망이다인간은 삶과 더불어 죽음에 대한 욕망을 가진 것이다그러나 하데스의 신전에 간 인간은 돌아올 수 없지만한국에서 죽음은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다매장문화에서 지금은 국토의 협소와 간단한 장례절차로 매장보단 화장을 선호한다.

 

한국의 선조들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그들의 집터는 거의 대부분 산자락에 있는 양지바른 곳에 묻는다산으로 가는 인간은 하늘로 되돌아가고하늘에서 온 환웅처럼 하늘과 땅의 신과 인간은 서로 왕복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무속신화는 그런 점에서 다소 인간세상에 대한 절망이 숨어있다이승은 고통만 존재하여 저승의 세계가 오히려 공명정대한 사실에서 현실의 민중은 언제나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그런 점에서 한국 대표적 문화재인 미륵석상들은 미래의 세계에 좋은 세상이길 바라는 민중의 욕망이 담겨있다.

 

신화란 바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풍자와 해학이 숨어 있다우리 선조들의 가치는 현실의 고통을 그렇게 이야기 식으로 전해오다 이제는 그 명맥이 끊기는 비운에 놓여있다다행히 그 이야기의 출처를 기록하여 구전문학이나 전래동화로 다시 세상에 내놓으나 신화는 그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계속 새롭게 변화하고 만들어진다신화는 지금과 앞선 시대가 다른 형태로 등장하지 내부적인 가치는 변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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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7-1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속과 근대를 잘 섞은 다음 웹툰 <귀신>도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7-11 15:40   좋아요 0 | URL
무속신화보다는 무속에서 말하는 민담에 가깝다고 봅니다. 논문의 주제와 조금 다르지만, 분명 추천할 만한 작품은 분명하군요.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 5 - Seed Novel
맑은날오후 지음, 토브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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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 5권부터는 조금씩 비밀이 풀리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비밀이 풀리는 것만큼 의문과 위기가 다가온다. 5권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전에 론이 꿈에서 나온 여자가 있었다. 정확히는 누군지 모르나, 절망에 괴로워하던 론에게 다시 새로운 인생을 선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 1권에서 론에게 아주 낡은 검을 판매한 소녀인 것이다. 그 소녀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신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에서 론과 인피니티제국 그리고 수많은 사람과 세계를 창조한 신인 것이다. 그런데 신의 모습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아마 지구의 탄생에서 지구를 두고, 영어로 earth라고 하나 한편으로 gaia란 단어를 사용한다. 가이아란 지구의 대지, 혹은 대지의 여신이라고 칭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우라노스의 어머니이며 또한 그의 아내이기도 한 여신이다. 여신의 존재는 즉 자연과 대지, 모든 생물의 창조주이다.


그런 그녀의 이름이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에서 페스티벌이다. 즉 축제라는 의미다. 페스티벌은 겉보기엔 마왕 루리와 거의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인간나이로 약 8세 전후의 어린 소녀다. 육체적인 규모에서 나약한 소녀로 나오나, 사실 그녀는 매우 막강한 힘을 가졌던 여신이었다. 어린 소녀라 그러나, 그녀의 힘이 제대로 발휘될 경우 성인의 모습으로 변하면 세상에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미녀로 나타난다. 결국 신이란 인간과 비교하여 더 이상 부족할 것도 없는 완벽한 존재다.


라이트노벨 리뷰에 어울리지 않지만, 플라톤의 철학으로 따지자면 신적 존재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즉 신이 존재하는 곳은 인간의 현실이 아닌 이데아(idea)란 관념적 세계에 존재가 가능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이데아의 영역이 아니라 이데아를 본뜬 세계이며, 현실의 우리는 이데아와 같이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하다. 절대적인 미를 지닌 이데아의 세계, 그런 외모로 보자면 페스티벌의 완벽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은 그 어떤 인간보다 아름답고 강하다. 인간이 도달하지 못할 이데아, 즉 페스티벌은 그런 존재이어야 했다.


신이란 원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신화에서 가이아 외에도 우라노스,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로 이어지면서 신의 영역을 넓어진다. 신이 다른 신을 만들어내고, 또 그 신은 또 다른 신을 만들어낸다. 본래의 신은 강한 힘을 가졌기에 아래의 신들을 지배할 수 있으나, 이제 그 아래 신들이 힘을 모울 경우 자신을 창조한 신을 몰아낸다. 문제는 그리스신화에서 크로노스와 제우스의 경우 몰아낸 신은 아버지였고 남신이었다. 여신을 몰아내지 않았고, 오히려 어머니가 여신이라면 그녀와 의기투합하여 아버지 남신을 몰아냈다.


그런데 여신을 추락한 것은 그 세계를 만든 것에 대한 부정이다. 페스티벌과 적대하는 만들어진 신, 그들은 인간에게 어떤 시련의 시간을 주는 것일까? 론의 잠재의식에 숨은 꿈의 기억에서 페스티벌을 만났고, 페스티벌과 만든 신도 만났을 것이다. 만들어진 신과 싸우며 모든 것을 잃은 론, 그가 이민족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순간 운명의 수레바퀴는 탈선되어 절망의 극으로 갔다. 다시 시작한 인생에서 문제는 지난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의 론을 인지하는 존재는 신과 악마이다. 즉 시공간적으로 초월한 존재만이 인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이트노벨 설정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도 인간이 생각하는 세계와 그것을 토대로 만든 작품 역시 현실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이상에 의해 구성될 수밖에 없다. 라이트노벨 1권을 보면서 철학적 가치관을 정립해보는 것은 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으나, 작품에서 페스티벌의 등장, 페스티벌이 그렇게 약해진 이유, 인간을 위협하는 세계, 그리고 왕궁 내의 권력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비켜나가기란 어렵다. 작품 내의 이야기 흐름에서 매우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했다. 인피니티라는 국가는 거대한 제국이고, 그 힘을 모든 주변국가가 두려워할 정도로 강력하다.


헤프미왕국의 여왕인 아일린의 보면 더욱 그렇다. 아일린 가족은 왕족이나, 그녀의 가족은 무능한 정치가였다. 그래서 어린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고, 국가를 통치한다. 그녀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전쟁을 막는 것이다. 자신의 국가가 약한 약소국이기 때문에 언제나라도 주변국가 군대에 의해 짓밟힐 수 있다. 전쟁이 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우선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전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은 마을에 대한 약탈이다. 약탈은 가축과 농산물을 탈취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유린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간다. 남자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한다.


작품세계가 비록 판타지라도 주요 무기가 검(서양적 요소)과 (건 서머너의 무기는 총이고 그것은 마법으로 이루어짐) 여자(왕녀, 공주, 여왕)의 의복이 중세유럽 내지 로코코시대 유럽(18세기 프랑스)인 조건에서, 전 근대적의 전쟁은 노예 혹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전쟁이 나면 자신의 목숨도 그렇지만, 왕국의 무너지는 것은 헤프미란 왕국의 국민들도 국민의 지위 대신 다른 국가의 노예로 팔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일린은 어떻게든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론 일행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자신 역시 어린 소녀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자신의 선택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점에서 그녀의 행동은 개연성이 매우 높은 행동을 보여준다. 전쟁의 고통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 작품에서 헤프미왕국의 어느 마을 한 소녀가 세상에 대한 증오와 원한으로 마검과 동화된다. 구원받을 수 없는 자신의 삶, 어둠에 물든 영혼은 결국 악령처럼 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불행의 고통에 이끌어낸다. 그리고 세계를 더 심한 나락으로 만들려는 자들이 있다.


론이 지난 과거, 즉 다시 구성된 세계 이전에 멸망한 세계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신과 악마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 세계가 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신과 악마는 기억하고 있고, 그것은 론에게 암시해준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 것은 악마가 진짜 악마인가 싶을 정도로 모순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멸망한 세계에서 주박에 걸려 론과 싸운 악마는 지금의 론에게 은혜를 갚으려한 모습에서 말이다. 


강한 힘으로 주인의 명령을 듣는 악마지만, 론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주박이란 쇠사슬에서 벗어난다. 악마조차도 “나는 노예의 평화보다는 위험한 자유를 택할 것이다.”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자유를 준 론이 그것을 지키기 것은 역시 이종족의 몰살을 피하면서부터다. 나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와 평화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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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쇠퇴했습니다 7 - J Novel
다나카 로미오 지음, 김경훈 옮김, 토베 스나호 그림 / 서울문화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위트와 재미로 넘치는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7권을 읽어보면서 생각하지만, 역시 이 라이트노벨은 대단하다고 여긴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라이트노벨 시리즈가 1~6권을 보고 난 후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발간된 7권을 보면서 상당히 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주인공 나(私)는 녹나무마을에 얼마 되지 않는 학사(學舍) 출신자다. 학사라는 곳은 우리에게 흔히 학교라는 곳이다. 정식교육 절차를 밟아 졸업한 나(私)는 녹나무마을에서 어린아이에게 교육을 가르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식인 계열이었다.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선 먼저 가르칠 대상 학생이 있어야 하고,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교사 스스로가 그 지식을 이해해야지 가능하다. 지식의 전달은 언어로서 가능하며, 언어는 말과 문자로 가능하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런 최소한의 지능이 구비되지 않으면 제대로 지식을 쌓을 수 없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면 쌓을 수 없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배우기 위해 먼저 교사의 말을 듣고, 스스로 교실에서 타인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점이다. 만약 그것이 누락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리 머리가 좋은 B군이나 활달한 성격 A군, 그리고 조용한 C양이라도 교실에서 서로 간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고, 선생마저 무시한다면 교실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교실을 만드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학생의 말썽인지 아니면 교사의 무능력인지 혹은 그 무엇인가 존재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7권을 읽는 순간 당신은 이 책에서 말하는 학생의 문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모든 학생의 문제는 학생 본인에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가족의 문제로부터 시작이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학생 한 개인은 그 가족의 얼굴이기도 하다. 나(私)는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장난에 계속 시달리고, 수업 도중에 파이가 날라 온다. 게다가 이들은 무시무시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A군은 리모콘, B군은 안경, C양은 인형이 이상한 아이템이다. 물론 그 아이템의 출처를 찾아보면 어디인지 금방 이해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류는 쇠퇴했습니다>는 신인류인 요정의 등장에서 조건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구(舊)인류인 보통 인간은 이미 쇠퇴하고, 신(新)인류 요정은 마술(첨단과학기술은 때에 따라서 마술이라고 말한다)로서 신비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들의 지겨움에 대한 탈출과 재미에 대한 추구는 항상 나(私)에게 골치 아픈 사건만 준다. 이번에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그 말썽의 도구가 각자의 아이템으로 주어진 것이다. 수업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려면 오히려 부모가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본다면 과연 누가 먼저 고치는 게 바른 것인지 보여준다.


마지막 해결대안으로 학생 3명에게 기존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권유하는 모습에서 교육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옛날 중세유럽에서 아이들은 어린아이로 취급받지 않았고, 단지 작은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집안일들 도와주고, 때에 따라서 생계에 중요한 기여도 했다. 그러나 점차 아동들이 작은아이가 아니라 아직 한 사람의 인간으로 등장하지 못하자 소외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학교가 없는 녹나무 마을에 아이들을 항상 부모로부터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그래서 나(私)와 말썽꾸러기 3인방의 대결이 보여주고, 그들은 최악의 상황인 도피를 선택한다. 아이들에게 도피라는 선택은 자신의 이성과 자율적 사고에 의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이다. 그 관심은 억지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선생에게 찾아가 큰 소리로 윽박지른 것도 아니다. 그 학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고립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 교육에 대한 부분에서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혹은 악한 존재인가?


작품을 읽으면 착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 인간이 태어난 환경과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만약 제대로 된 사랑만 있으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차라리 인간은 태어날 때 선하나, 단지 상황적 모순, 비정상적인 사회로 병들어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비뚤어지고, 나(私) 역시 그렇게 비뚤어진 자신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인간은 비뚤어지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존재성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7권 전반부가 학생과 교사의 영역이라면, 후반부는 인간의 지성에 대한 부분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과 지성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고등 포유류인 침팬지의 경우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상황판단할 수 있는 지능이 있다. 하지만 언어를 습득하여 사고하여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없다. 눈앞에 보이는 형상에 대해 인지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관념적인 영역을 동물은 사고할 수 없다. 죽음에서 인간은 상상할 수 있지만, 동물은 죽음을 위기의 순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과 지성으로 통해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기능을 인간이 아닌 기계가 가진다면? 아직 읽지 않았으나 얼마 전 아는 분에게 책 한권을 선물을 받았다. 제목은 <왜 로봇의 도덕인가>, Moral Machines 원문인 이 책은 외국에서 로봇에도 지성이 있고 인권이 있다는 판결로서 인간만이 지성과 이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단지 인간은 생물이고, 로봇은 무생물이다. 인간은 생물화학적인 에너지로 세포로서 움직이나, 무생물은 로봇은 연료에 의해 동력으로 움직인다.


로봇이 지성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물론 <인류는 쇠퇴했습니다>는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여 풀어가는 내용이 아니라 철학적인 내용도 하나의 코미디로 만드는 유쾌함이 있다. 나(私)는 과거 유산인 컴퓨터 분석 작업 중 컴퓨터 언어에 대해 연구하다 다시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컴퓨터 지능에 나(私)의 인격이 이식된다. 그러면서 로봇이 폭주하고, 마을을 엉망으로 만든다. 나(私)는 인간인 것도 있지만, 로봇에 이식된 나(私)의 이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 나(私)와 로봇 나(私)는 모두 나(私)가 아닌가? 


작품을 읽으면 사로 인식하지 못하는 나(私)지만, 그래도 그 나(私) 역시 나(私)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뇌가 아닌 컴퓨터로 작동하나, 그건 과연 인간과 동일하지 않은 지성적 존재라고 볼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질문에서 모호해진다. 물론 이런 사건 배경에 요정들이 숨어있겠지만, 요정은 단지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단지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엉뚱한 사건으로 블랙코미디의 진수로서 진행되나 말이다. 이 모든 게 엉뚱하고 환상적인 일이나 하나, 그 작품 내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은 상당힌 현실적이다. 오히려 엉뚱한 비현실로 보여주기에 우리에게 그 내용을 생각해 보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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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4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4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슈타인즈 게이트: 부하영역의 데자뷰 - 극장판
와카바야시 칸지 감독, 미야노 마모루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슈타인즈 게이트>는 잘 아시다시피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TVA에서 오카베가 망상이 심한 과학자로 나오지만, 그의 망상은 하나의 사실이 되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물론 우리는 처음 그의 모습을 보면 분명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처음부터 그의 행동이 작품 내에 다른 캐릭터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관객에겐 그저 중2병 환자라는 것에 동일하게 인식한다. 하지만 그의 가설과 크리스 박사, 가제트연구소에 모이는 인물들 중심으로 신기한 일들이 발생된다. 우연히 시작된 실험, 그리고 마유리의 죽음 등이 이어지면서 오카베는 계속 의문을 품고 시간여행을 한다.

 

그러면서 오카베는 마유리의 죽음에서 구하고, 시간여행 패러독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임머신을 악용한 자까지 찾아내어 크리스까지 구한다. 이야기 흐름에서 플롯의 구조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요약하자면 미치광이 과학자를 표방한 공대생이 자신의 망상이 그대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결국 친구와 세계를 구한다는 뜻이다. 이야기의 요약은 간단하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요소들은 매우 복잡한 게 <슈타인즈 게이트>. 기본적으로 타임머신이란 기계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물리학의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

 

우리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서 먼저 1차원은 점, 2차원은 면, 3차원은 공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는 현실은 3차원적인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슈타인즈 게이트>3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1단계 차원이 높은 4차원 세계에 대해 다루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캐릭터로 주축은 간단하나, 그 인물이 놓인 시공간적인 조건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과거 <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로 시작하여 여러 가지 시간여행을 하는 작품이 나온다. 시간여행에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점은 시간을 물리적 에너지로 본다는 점이다. 이런 가설이 등장한 것으로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데, 블랙홀은 빛까지 빨아들이는 것이다. 질량이 없는 에너지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통해 다른 시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론이 존재한다.

 

현대물리학 이론에서 결국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인간은 현재 정해진 한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을 내세울 수 있다. 이른바 인간의 사는 세계는 공간인 3차원이지만, 정해진 하나의 역사적 세계에서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세계만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인 가설이지 현실적인 실험에서 성공할 리가 없다. 만약 진짜 존재한다면 그것을 누군가 증명해야할 것이나, 단지 이론만 존재하고, 상상에 의한 이야기에 존재하는 가상의 시나리오다. 그런다고 이런 이론이 현실적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시공간 속에 또 다른 내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슈타인즈 게이트>는 그런 인간의 선택에 의해 자신과 주변 그리고 세계의 흐름이 바뀐다. 나비효과라고 하여 나비의 날개 짓이 사이클론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처럼, 작은 변화가 결국 큰 현상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도록 극단적인 발상이며, 단지 실행가능은 역시 공상세계의 이야기다. 그런다고 다르게 보면 사소한 사건이 하나의 발화점을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각 제국주의의 영토 확장과 더불어 지나친 자본주의로 인한 상품의 판로개척을 위한 명분으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저격사건에서 시작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강력한 입지를 가진 황태자 부부라고 하여도 전 세계가 전쟁을 참가해야할 명분은 너무 떨어져 보인다. 1차 세계대전의 여파는 1917년 러시아혁명 동기가 되었고, 러시아혁명은 1919년 한국에서 삼일운동의 계기도 되기도 했다. 전혀 연계성이 없어 보이는 결과에서 역사는 의외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슈타인즈 게이트>에서 오카베가 TVA에서 시간여행을 해도 극장판에서 크리스를 만류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역사가 대폭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어느 인간의 간섭은 다른 방식으로 우연적인 사건으로 일어나고, 그것은 좋든 나쁘든 분명 어떤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자로서 양심을 주장하는 크리스의 입장은 매우 중요하다. 과학의 발달은 결국 인간의 문명과 생활 그리고 인간 그 존재적 가치까지 변하게 만든다. 20세기부터 생명공학이 시작되어 유전자조작이 시작되고, 태아를 시험관에 키워 출산하는 일까지 일어난 21세기 현재다. 게다가 시간의 조작은 엄청난 윤리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제시한 인간은 시간적 존재다라는 단어가 <슈타인즈 게이트>에서 거론된다.

 

현대물리학과 눈에 보이지 않은 대상을 연구하는 형이상학은 과학과 철학의 관계다. 그런 점에서 <슈타인즈 게이트>는 현대물리학 중심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나, 분명히 봐야 할 점은 철학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대상이란 점에서 인간에게 관념에 대한 연구대상을 두고 고민한다. 바로 시간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존재다. 시간은 우리가 시계로 보는 시, , 초로 구분되어 있지만, 그것은 단지 시간이란 것을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도량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지 시간이란 존재 그 자체는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은 5가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만지고, 혀로 맛보며, (물체에 힘을 가하면)로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그럴 수 없다. 인간이 시간을 알고 있기에 죽음이란 고통을 생각할 수 있고, 시간을 인지하기에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 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공간적 한계성이 머물러도 결국 시간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개인의 시간이 상실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카베에게 리딩 슈타이너라는 인간의 기억장치를 말한다.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본인의 기억을 말이다. 그것은 데자뷰 현상으로 일어나고, 미래를 예지하기도 한다. 그런다고 하여 병렬세계가 진짜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단지 이론에 의해서만 이야기로 만들 뿐이다.

 

문제는 병렬세계에 존재하는 본인은 분명 현재에 존재하는 본인과 전혀 다르다. 다른세계에 있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만들고 변모하면 결국 다중적인 병렬세계에 리딩 슈타이너에 대하여 인식하는 본인은 다중적인 병렬세계의 간섭에 의해 현재의 세계에 존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극장판에서 오카베 존재의 상실은 바로 현실에만 오카베 그 자신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에 존재하기에 크리스는 오카베의 어린 시절로 가서 강력한 기억을 부여한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이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기억을 남기고, 그것은 곧 시간적 요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카베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카베가 사라지는 것일까? 인간의 존재에서 분명 그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더라도 자신의 관념 안에 그것이 없다면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오카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오카베의 시간이 사라지고, 오카베의 시간이 사라지면, 오카베 주변사람들이 오카베와 함께한 시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인간의 존재성에서 자신 안의 영역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부류도 있지만, 다르게 본다면 자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있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기보다는, 자신이 존재하는 사실을 타인이 인지하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할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와 시간적 공유로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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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3-0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타인즈 게이트...이거 처음 몇 편 보고 계속 못보고 있습니다. 나름 세계관이 괜찮은 거 같고 물리학에 대한 전문 내용이 많이 나와서 좀 집중해서 보아야 할 듯합니다. 근데, 끝에 가면 막장이라는 말이 있어 전반부만 볼 요량입니다..ㅋ

슈타인즈 게이트의 긴 리뷰를 보다니...참 반갑군요^^

만화애니비평 2015-03-04 08:50   좋아요 0 | URL
크리스티냐~~~
나름 줄이고 줄여 A4로 2페이지 정도 나오더군요.
세계관은 나름 좋으나 물리학과 더불어 형이상학이
기반되지 않으면 어렵죠
리뷰를 보면 전자를 인용하나, 후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
아마 많이 반가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