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신과 함께>를 처음 접한 것은 신화편이었다. 신화편이 저승편과 이승편보단 먼저 앞의 세계를 다룬 것이고, 각 신마다의 이야기를 다룬 본풀이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신과 함께>는 저승편부터 먼저 웹툰으로 연재되어 이승편과 신화편으로 연재되었다. 처음 신화편을 보면서 차사전이 비중이 높았는데, 차사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아마 이승편과 신화편에 등장하는 인물이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 강림도령이기 때문이다. 가끔 전설의 고향 내지 귀신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를 보면 저승사자들의 복장은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이 입는 의상과 흡사하다. 물론 얼굴은 혈색이 없으며 눈매는 날카로우나 기본적으로 그들은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신과 함께> 저승편에 등장하는 저승사자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차사복장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검정색 양복을 입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신화란 원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작가 주호민이 개인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했어도 그것은 현대적인 인식과 상황에 근거하여 만든 것이다. 저승 가는 길은 보통 망자가 걸어가거나 혹은 배를 타고 간다. 그러나 현대의 망자들은 지하철을 타고 저승으로 향한다. 재미있는 설정은 지하철 이름이 바리데기호라는 점이다. 바리공주, 바리공덕이라고 하는 바리는 원래 부모에게 버림받은 공주다. 그녀는 저승에 가서 고난을 마친 후 자신을 버린 부모의 목숨을 살린다.

 

그리고 죽은 인간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속신이 된 것이다. 바리공주 신화를 보면 불교적인 색이 강한 반면, <신과 함께>에서는 바리공주의 본풀이가 나오지 않는다. 바리공주보단 조선시대의 냄새가 강한 차사들의 활약이 높았다. 차사들의 이야기는 물론 <신화편>에 등장하나 그들의 복장과 신분을 보면 충분히 조선시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해원맥이 죽게 만든 것을 토포사로 부임한 장군으로, 토포사란 조선시대 산적을 잡기 위해 만든 관직이다. 무속신화가 시대를 지나면서 계속 바뀌거나 추가로 반영되는 특징이 있다.

 

해원맥의 모습도 그런 것처럼 다른 존재도 역시 그렇다. 조선시대의 복장의 차사가 아니라 현대적인 모습의 차사도 역시 가능한 설정이다. 저승편에서 소개되는 것은 어느 한 기업에서 일하는 회사원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병으로 죽자 저승에 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진 것도 없고 가난하며, 직장에서 고생만 하다 저승으로 오자, 그의 심판이 저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염라대왕을 비롯한 명부시왕이 망자에 대해 재판을 하고, 그의 죄질에 따라 지옥에서 벌을 받게 하거나 또는 윤회되거나 천국으로 영원히 가게 되는 것을 결정한다.

 

재판과정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자는 자신의 재판과정에 따라 각종 지옥을 구경하고, 지옥에서 벌을 받는 인간을 보게 된다. 살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쁜 짓을 한 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속이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이승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으면, 지옥에 남는 자리가 부족하고, 지옥 내에서 사람들은 다툰다. 사람들이 가진 이기심과 비인간성은 지옥에 와서 벌을 받아도 뉘우치지 못한 것이다. 이를 본 회사원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대해 돌이켜보면서 재판과정을 임한다.

 

그는 그렇게 착하게 산 것도 아니나, 그렇게 나쁘게 산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 보통 사람들처럼 힘없이 살아온 서민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최종선고는 지옥의 벌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이다. 살아생전 속기만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한 그에게 왠지 모를 연민과 공감대가 느껴졌다. 저승에 와도 다른 사람도 있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 자신이 모은 돈을 남에게 베푼 할머니나, 이제 갓 태어났는데 저승으로 가는 아기, 남에게 거짓말만 한 정치인까지 나온다. 저승에 오는 사람들의 과거는 모두 다르지만, 저승의 심판은 공정했다. 인간의 삶에서 공정한 순간이 언제 제대로 있었던가?

 

공정함의 척도는 그 사람에게 얼마나 권력이 있는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저승편>에서 회사원 이야기가 진행될 때 한편으로 차사들의 활약이 나온다. 차사들이 망자를 저승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어느 귀신 하나가 거기서 탈출한다. 그 자는 총기사고로 죽은 군인이었다. 매년 군대에서는 총기 및 기타 사고로 죽는 군인이 많으며, 그들의 죽음에서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의문사도 많다. 이번 <저승편>도 마찬가지로 휴가를 앞둔 말년 병장의 죽음은 그냥 단순히 총기사고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의적인 방치로 인한 타살로 이어졌다.

 

분명히 응급처치와 적절한 대응만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지만, 지휘관의 진급과 부대가 소란스러운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죽음을 위장한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웨툰이나 만화에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과거 군사정권 시절 많은 군의문사가 있었으며, 아직도 그 원인이 판명나지 않은 것이 많았다. 심지어 시체도 장례식을 치루지 못한 채 꽁꽁 얼어붙은 채 영안실에서 영혼의 명복조차 찾아가지 못했다.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등장하는 망자들은 현실에서 고난을 받거나 억울하게 죽은 자가 중심이다.

 

차사들은 그들을 위해 노력을 하더라도 복수를 하지 못했다. 대신 강림은 병장의 죽음을 보고 분노하여 그 병장을 죽게 만든 지휘관이 저승에 오면 중벌에 처해지도록 주문을 건다. 현세는 공정하지 못하기에 그 죄 값을 저승에서 확실히 받고자 하는 것이다. 저승세계도 나름 현실세계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과거 삼도천을 지나던 경로는 3가지로 각 경로마다 특징이 있었지만, 하천정비사업 이후 하천이 직선화하여 물의 유속이 빨라졌다.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면서 강물의 흐름을 보니 마치 4대강 사업을 하던 것에 대한 풍자도 보였다.

 

<신과 함께>에서 등장하는 차사들과 신들은 인간이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누리던 자들의 편이 아니라 그 아래서 핍박받고 고통 받던 자들의 편이다. 거기에 어려운 이웃을 돕던 사람은 저승의 신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우를 받는다. 진짜 인간이 죽으면 사후세계인 저승으로 가는지 안 가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이승의 세계에 살면서 너무 부조리하고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저승에서 명부시왕의 재판인 걸까? 저승의 이야기를 다루는 <신과 함께> 저승편을 완독할 순간,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 착하게 사는 게 정말 바보 같은 짓일까? 아니면 정말 옳다고 여기고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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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8-05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만화 왜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학습만화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5-08-05 15:20   좋아요 0 | URL
재미보단 왠지 모를 시대적인 감정이 녹아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개미처럼 일하고, 술에 찌들린 남자가 죽는 최후란..
한편으로 보면 재미보단 그냥 일생학습만화인듯

만화애니비평 2015-08-05 15:40   좋아요 0 | URL
참고로 저는 8월14일 부천에 갑니다.
부천에 만화축제 세미나 듣고 그날 만화영상진흥원에서 일하는 분과 저녁일정이 있고
나머지 일정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는데, 아마 저는 월요일 정도 내려가려 합니다.
토요일에 아는 동생놈과 맥주와 감자튀김하자 했지만, 만약
곰곰발님이 생각나시면 어떻습니까? 다음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