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없는 출산 - 우리는 출산을 모른다
목영롱 지음 / 들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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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아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책을 내었다. 강변공원을 거닐며 이래저 이야기하면서, 당시 내가 알던 그 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책을 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움의 그 자체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자신만의 세계의 정체성을 마주한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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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밀려와 달이 되는 곳
윤정현 지음 / 헥사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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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시인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놀란 나는 시골에 삼촌에게 문자를 보냈다. 삼촌도 당연히 이분을 알고 있었다. 같은 향촌파 집안이고, 게다가 시골집이랑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은 곳이다. 명발당, 다산 선생의 애한과 기쁨 그리고 추억이 새겨진 곳, 누가 그를 대신하여 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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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15, 그 길고 어두운 절망의 시기에서 벗어 난지 이제 74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815 경축행사에서 광복회장과 대통령의 연설은 통일문제를 거론했다. 통일이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통일이란 단어가 힘들더라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원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하나였지만, 일제강점기와 이후 신탁통치 그리고 한국전쟁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기나긴 아픔과 현실적 여건, 그리고 타국과 자국과의 득실문제로 외교, 정치, 경제, 군사적 갈등이 오고가는 현실이다.

 

어째든 행사가 마무리 되면서 초대된 귀빈들이 나오는 모습이 나왔다. 일제강점기시대 어린나이에 독립운동을 하시던 어느 할아버지가 보였고, 국무위원과 국회의원도 보였다. 그리고 종교단체 인사들도 보였다.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 같은 익숙한 종교단체 지도자가 보였다. 그런데 이때 어느 여성분이 종교지도자 대표로 나왔다. 이상한 도형이 겹쳐져 있는 의상을 입고 있던 분이었다. 그분은 대종교 현재 최고지도자 분이었고, 개천절 행사 아니면 제대로 눈에 보이지 않을 종교단체였다.

 

그런데 이 대종교란 종교단체가 왜 중요한가? 올해 봄에 영화 <사바하>에 사이비 교주 모습이 나왔는데, 이 사람의 그림이 사실 무단도용된 것도 모자라 왜곡까지 시켰다. 그 교주의 원본은 대종교 창시자 홍암 나철이란 분이다. 대종교 창시자도 그렇지만, 이 사람은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암살단가지 만든 독립투사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독립투사 중에 대종교와 밀접한 인물이 정말 많다.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이회영 같은 무장투사부터 시작해 훈민정음을 한글로 재정립하여 만든 주시경, 역사에서 정인보와 신채호 역시 대종교 신자이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영원한 영웅인 손기정 선수 역시 그렇다. 우리가 아는 많은 분들이 대종교를 믿은 분이나 우리는 잘 모른다. 대종교란 이름은 독립군의 그 자체였고, 민족의 문화와 영혼을 지킨 분이다. 종교적으로 들어가긴 다소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20198월에 개봉한 영화 <봉오동전투>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봉오동전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국뽕이란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국뽕이란 말을 들어도 사람들이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전후맥락을 어느 정도를 알면 정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치하에서 우리민족의 경제를 지키고, 우리의 독립을 위해 자금을 만든 분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은 백산 안희제이다. 임오교변 당시 서거한 인물로 대종교로서 순교자이며 민족과 역사에서는 순국자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민족 얼을 죽이기 위해 대종교 지도자를 무참히 고문하고 탄압했다. 조선어학회나 독립운동가 역시 많이 연루되어 어떻게든 말살의 대상이었던 분이다. 백산 안희제가 만든 백산상회는 독립운동가에게 필요한 자금의 전체 60%를 제공했다. 안희제와 그 주변 인물이 노력한 성과가 바로 독립운동의 젖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독립되지 않아 그들의 노고를 억지로 지우거나 저하평가하려는 자들이 많다. 스스로가 일어나서 스스로 걸어가는 게 우리의 길이고 의지이다. 다른 국가와는 협력과 타협으로 대해야지 그들의 노예로 살아가면 평생 우리 민족은 노예의 후예만 될 것이다.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의 전략은 홍범도 휘하 독립군을 몰살하는 것과 동시에 독립군 자금을 수중에 넣는 것이다. 이때 독립운동자금은 어디서 왔을까? 조선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은 백산상회에서 대부분 나왔다. 영화는 그 자금의 출처는 말하지 않으나, 전후맥락으로 백산 안희제 선생의 노력이 있었다.

 

영화에서 단순히 독립운동부대만이 나왔으나, 홍범도 부대의 북로군정서가 등장했다. 이들 모두가 대종교들이고, 후에 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한다. 영화의 전투장면과 추격 장면 그리고 국뽕적인 승리에 열광하기도 하고, 혹은 그저 그런 영화로 볼 수 있으나, 사실 그 전후맥락을 보면 단순히 여길 것은 아니다. 김좌진의 청산리전투는 군대에서 배우나, 홍범도의 봉오동전투는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좌진은 민족주의이고, 홍범도도 민족주의자이나, 당시 중국과 소련의 연합을 하던 시절이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에서 레닌이 서기장으로 있을 적에 조금 분위기는 좋았다.

 

레닌은 스탈린처럼 일국사회주의가 아니라 혁명은 계속 이어져가야 한다고 여기고, 3국인 조선을 도우기 시작했다. 군자금 제공이나 군사적 협력은 바로 그런 연유이다. 홍범도가 가진 권총은 레닌이 직접 준 총이다. 볼셰비키혁명 지도자, 소비에트의 서기장인 레닌에게 총을 받은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세력과 연결된 것도 있다. 홍범도는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나, 추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저항하다 결국 숨을 거둔다. 이에 반해 김좌진은 스탈린 집권이후 광복군 일원이 스탈린 휘하에 가기를 거부하자,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자객에 의해 암살된다.

 

김좌진은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군에 의해 죽은 게 아니라 같은 동포에 의해 죽은 것이다. 김좌진 장군의 업적은 위대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업적이 절하될 까닭은 없다. 그래서 영화 <봉오동전투>는 매우 중요한 상징성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지난 세월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그 이상의 조선과 대한민국의 역사성을 담은 것이다.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이제 100주년이 된다. 국가는 영토와 구성원 그리고 정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근대적 국가는 국회, 정부, 사법부로 삼권분립을 말한다.

 

하지만 국가의 기본은 국민이다. 국민이 없다면, 그리고 국민의 토대가 되는 민족이 없다면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의미가 없다.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운 후 일본도나 벽면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적는다. 그 글을 적는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황해철은 동생을 눈앞에서 폭탄에 의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고, 개똥이는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님이 목이 잘리는 아픔을 겪는다. 마을소녀는 눈앞에서 어린동생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본다. 이들을 보면서 독립군들은 대한독립운동이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요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원한과 울분 그리고 복수심에 의해 움직인다.

 

민족주의적 국뽕이란 단어로 <봉오동전투>를 평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면에 가려진 원한은 과연 광기가 넘치는 민족주의로 볼 수 있는가? 나의 외할아버지는 천수가 뛰어나셔서 현재 100살이 넘어 201910월 탄생 100주기를 맞이한다. 외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징용에 끌려가서 모진 고생하고, 죽도록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계속 있다가 죽을 것 같아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일제가 자신들의 전쟁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징용자들을 고의적으로 살해하던 기록이 나온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가혹한 노동과 영양실조로 많은 조선인들이 원한에 사라졌다.

 

친가 쪽에 큰할아버지는 징용에 끌려가서 해방을 맞은 그 다음해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작은할아버지도 징용 때 고생했는지 오래 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우리 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아 끌려가지 않았으나. 형제를 잃은 비극을 맞이했다. 요새 일본산 제품 불매에서 여기저기 말이 나오나, 솔직히 피해자의 후예로 본다면 불매가 맞을지도 모른다. 일본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나도 일본애니메이션을 즐겨보지만, 그런다고 인간의 기본도리를 져버리는 기업이라면 불매운동은 당연하다. <봉오동전투>에서 일제에 맞서 싸운 자들은 그냥 농사짓고 장사하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독립군의 수는 정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군은 잔인하게 민족을 탄압했다. 독립운동이 거세지면 조선인 부락을 습격하여 모조리 죽이고, 마을을 불태운다. 이들이 독립군의 비밀기지 또는 군자금 지원을 해주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학살에도 써먹던 방법이다. 토끼몰이 토벌작전은 육군사관학교의 전술과목으로 교육되고, 그 교육과정이 제법 재미있었다고 하는 말도 종종 인터넷에서 본다. 이길 수 없는 약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추격하여 사냥하는 방식은 사람이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사냥대상물로 보는 비인간적 발상이다.

 

영화 <봉오동전투>는 그런 토끼몰이식으로 가족을 잃은 자들의 복수이다. 왜 독립군들의 얼굴이 분노와 증오로 일그러져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영화 <봉오동전투>는 잊어진 과거의 우리 모습들이다. 외세에 의해 약소국으로 점령당한 것까지 참을 수 있으나, 우리가 그저 당하고 우리의 역사와 정신까지 점령당했다는 것에 용서할 수 없다. 과거 일본제국주의를 숭배하고 찬양하며 그때의 영광을 돌리려는 세력과 거기에 동조하는 무리는 용서할 수 없다. 그런다고 하여 일본 개인 한 사람에게 분노하지 않는다.

 

독립운동하는 분들은 일본군경과 대지주들을 암살해도 일반인까지 말려들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들 역시 당시 군국주의에 자신의 자유를 속박당한 자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황해철은 자신이 잡은 어린 포로를 죽이기보다 직접 끌고 다니며, 그가 바라본 전쟁의 현실, 그리고 억압받는 민족의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기억하라고 했다. 일본제국군이 아니라 그저 일본인 한 개인으로 말이다. 처음에 독립군들에게 반항하던 포로였지만, 계속 있으면서 그도 역시 독립군의 의지에 동화된다. 이데올로기란 틀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신의 존재마저 거기에 합리화하는 야스카와 부대장은 상당히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에 사로잡힌 그가 내 뱉는 말은 인간의 언어라기보단 악마의 언어에 가깝다. 사람의 가죽을 살아있는 채로 벗겨 내거나, 작전에 실패한 장교의 손가락을 망설임 없이 베거나, 어린 포로가 송환되어 그의 심중에 맘에 들지 않자 자살하라고 하는 방식은 그저 전쟁에 미친 미치광이에 불과하다. 피 맛을 본 인간은 또 다른 피를 원하므로 살육을 계속 자행한다. 이미 그가 나올 때부터 호랑이를 그대로 도륙 내는 모습이 나온다. 일제가 처음 조선에 들어와 한 만행 중에 하나가 호랑이 사냥이었다.

 

겉으로 맹수사냥을 통해 치안유지라고 하나, 사실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문화나 민담에 호랑이가 자주 나온다. 심지어 옛날이야기도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이라 말한다. 담바고로 불린 담배가 들어온 것은 조선 임진왜란 전후이니, 옛날이야기는 조선시대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한반도 지도가 토끼 아니면 호랑이로 묘사하고, 민간신앙에서 호랑이는 산신령의 전령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호랑이와 곰이 마스코트로 등장했다.

 

그 이유는 단군신화에서 등장하던 동물이 곰과 호랑이였기 때문이다. 맹수사냥은 단순한 사냥놀이나 치안유지가 아니라 우리를 말살하려던 그들의 방법이었다. 영화 <봉오동역사>에서 등장한 북로군정서에 대해 대종교 신도가 대부분이고, 그 이후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군과 독립군 역시 대종교들이다. 그들의 총과 총알은 동포에 의해 모아진 군자금이다. 그들이 활약하여 독립까지 이어지지 않았으나, 그들이 없었다면 광복 이후의 국가재건에서 민족적 정신을 반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기본법은 우리나라 교육의 토대가 되는 기본 법률이다. 교육기본법의 제2장 교육이념은 과거 폐지된 교육법1조의 내용을 상기해야 한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념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문장은 194912월에 만들어진 법률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용어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영화 <봉오동전투>가 이른바 국뽕영화라 해도 이 영화가 단순히 그렇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연유이다. 그들이 이긴 일본군과의 전투가 아니라 민족적 의지이다. 민족주의에 함몰되면 파시스트가 되나, 민족주의를 자체를 부정하면 국가와 민족이 사라진다. 미국이란 국가는 다민족 국가지만, 그들은 원래 영국과 유럽에서 이주 온 사람이었고,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후예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다양하나, 미국의 시작은 그러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까지도 인종차별에 의한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할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반 하여 적에게 물리적으로 이겼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총을 들고 칼을 휘두르며, 왜 목숨까지 던지면서 악착같이 견뎌낸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대한민국 국민이란 국가적 소속이지만, 민족은 조선의 후예라는 것을 말이다. 조선이란 국가는 문제가 많았지만, 그러나 그 조선이란 공간을 부정하면 나라는 존재조차 부정하게 되는 셈이다. 단순히 북한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있는 해외교포의 정체성까지 이어진 부분이다. 강제이주와 독립운동으로 많은 분들이 타국에서 숨을 거두고, 그들의 후예는 국가는 달라도 아직까지 고려인이나 조선인이라고 말한다.

 

총과 칼로 싸우는 봉오동전투는 끝이 나도 타국에서 살아가는 교포가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 역시 전투이고, 현재 경제보복 전쟁으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루는 우리 현실도 또 다른 이름의 봉오동전투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타협할 것은 있을지 몰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린 우리 스스로 굴복할 수 없다. 그것이 영화 <봉오동전투>에 담긴 진정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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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4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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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가 쓰고 말하고 듣고 알고 있는 한글”, 사실 한글이란 표현은 세종대왕이 지칭한 게 아니라 주시경, 한글이로 주한샘이란 분이 수정한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외침에 의해 사라질 뻔했으나, 조선이란 국운이 강한 것이 아니면 엇갈려 나간 것인지 조선이란 이름으로 아니면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우리 문화가 살아가고 있다. 언어란 사실 대화수단만이 아니다. 그 나라의 민족과 역사를 같이 하는 하나의 삶이다. 언어는 그 문화의 특성까지 반영한 하나의 체계이다. 지식과 소통,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 오로지 언어에 의해서이다. 언어를 모른다면 우리는 과거를 알 수 없고, 미래를 향해 외치지 못한다.

 

언어가 있기에 말이 나오고, 글자가 문자로 기록된다. 글과 말, 언어라는 것이 이토록 위대한 것이다. 게다가 어느 한 국가, 어느 민족이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지켜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외침에 의해 민족 자체가 섬멸되거나 또는 강제로 교화될 경우 그 정체성을 상실한다. 남미의 국가는 가톨릭 문화가 제법 침투했다. 과거 그들의 조상의 언어와 문화는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만일 20세기 그 문화가 있었다면 레비 스트로스 같은 위대한 인류학자가 어떻게든 기록하고 연구하여 보존 및 기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남미민족은 정체성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북미의 인디언은 사냥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족이 쓰는 문화 그리고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자신이 존재했고, 자신의 그 이전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은 살아남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한글의 원류가 되는 훈민정음”, 단어에서 모음과 자음으로 나누고 나누어 거기에 새롭게 더하고 더한다. 중국의 한문은 알파벳의 단어를 제대로 기록하기 어려우나, 우리는 그 어떤 나라의 말을 한글로 적어갈 수 있다. 언어적으로 발음을 중심으로 전달하기에 타국의 언어를 더 편하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언어가 존재한지 이제 600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언어가 없었다면 21세기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에 의해 일어가 표준 언어로 자리 잡고, 나중에 미국에 의해 영어가 자리 잡았을 것이다. 비무장지대 위로 보이는 적이 된 동포의 국가에서는 러시아어가 국가통용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한국어 또는 조선어, 혹은 훈민정음을 모태로 언어를 활용한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이 한글의 원류 훈민정음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조선이 건국할 때 태조임금은 자신의 스승 겸 친구로 무학대사를 모셨지만, 그는 조선 최초 또는 마지막 원사였다.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을 펼친다. 정치와 종교적 가치관에서 불교는 제정일치 사회지만, 유교는 조금 미묘하게 달랐다. 공맹의 유학은 정치학으로 종교적 범주보단 학문적 영역으로 시작했으나, 주희의 성리학에 의해 유교는 다소 종교적 색채가 더해졌다. 고려가 패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삼국시대에서 고려까지 불교의 힘이 강했고, 불교를 토대로 권력을 가진 승려들이 제법 있었다. 고려가 국교로 지정되면서 승려들이 입김이 강했고, 승려들은 불경을 볼 때마다 한자를 익힐 수 있었다. 조선시대 초기 양반은 전체 인구의 10%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여성들은 글을 제대로 익힐 수 없으니, 실제 한자란 글을 아는 인구는 5% 미만인 셈이다.

 

언어를 아는 것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회고, 권력으로써 지식의 독점권을 행사한다. 불교의 나라 고려가 망한 이유는 권력과 지식의 유착과 부패로 이어진 계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이 변하는 시기에 탈피하지 못하여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권력자의 부패와 비리, 그리고 백성에 대한 애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렇다. 고려는 이성계에 의해 망하고, 조선은 태조와 정종 그리고 태종에 의해 왕권이 강한 국가가 되었다. 태종 이방원은 왕권을 강하게 만든 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권력을 남용하는 이는 용서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들 세종의 장인마다 역적으로 만들어 죽게 만들었다.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지만, 그는 세종에게 주지 않은 핵심사항이 있었다. 그건 병권이었다. 군사력 통제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무관으로 시작한 임금이므로 군사정병은 항상 군사 병권력의 장악에서 시작하는 점을 알았다. 세종의 허락이 있어도 상왕의 허락 없이 병력을 움직이거나 국방정책을 펼치는 순간 병조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국문 장에 끌려와 최후를 맞이한다. 세종의 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고, 그가 성군이 된 계기도 그러하다. 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사대부부터 더 학문이 높은 왕이기에 그 누구도 세종에게 도전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자의 나라에서 왕이란 그들의 군주인지 아니면 사대부의 최고자리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백성에게 글을 알려주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 위협이 있고, 게다가 아낙네에게 가르치는 것을 대단히 꺼려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소외된 자들이 서로 힘을 모아 기득권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처음 왜국 승려가 오자 세종은 팔만대장경을 내어주는 것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 사상이 하나로 모이면 분열된 세력이 통합되어 큰 힘으로 발휘하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은 외세에 저항하고자 한 고려 민중과 권력자, 지식인이 만들어낸 세계적 유산이다. 그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우리의 얼과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유교의 나라이다. 세종은 여기서 고민이었다. 백성들이 잘 살고, 그들의 삶을 이롭게 하려면 뭔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성경을 충분히 독일어로 볼 수 있었으나 독일 민중을 읽을 수 없었다. 우선 책이 그 당시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록문자가 라틴어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배우기 어렵고 사용하기란 더욱 어렵다. 오직 귀족과 성직자만 공유하고 그들은 유럽사회를 지배했다. 언어를 아는 것이란 결국 타인의 지배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

 

추후에 훈민정음이 반포해도 혁명은 일어나거나 문제는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의 등용문에서 한자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권력의 중추는 한문이었다. 그래도 훈민정음의 등장은 조선시대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가령 병사들에게 훈련을 시킬 때, 교본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림을 넣는 것도 한계가 있고, 글자로 보여주자니 한문을 읽을 수 없다.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병사에게 보여주니 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언어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게다가 구중궁궐 궁녀들은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다. 친정의 어머니는 잘 계시는지, 아버지와 동생들은 잘 지내는지, 어떻게 전하려 해도 글을 몰라 못쓰고, 대필해줘도 그들의 가족은 읽지도 못한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세종은 조선시대 천한 존재들을 대등한 관계로 이어준다. 중전과 신미스님이 같은 좌석에 앉는 모습이 나온다. 여인네와 중놈, 물론 그나마 중전의 자리는 최고의 자리이지만, 소헌왕후는 역적의 딸이란 이름으로 힘들어했다. 불교를 믿어도 신하의 눈치를 보았고, 영화에서는 수양의 집에서 눈을 감는 것으로 나온다. 수양대군이 조카의 왕좌를 찬탈하고, 동생 안평의 생명을 빼앗은 비정한 군주이다. 하지만 영화의 수양은 아버지 세종의 의지를 존중하고, 어머니 소헌왕후를 지극히 모시는 효자이다. 물론 형이 문종과 아우인 안평과 사이는 좋았다. 권력이라는 것은 부모형제조차도 냉정한 것이다.

 

하지만 세조가 왜 그렇게 왕권강화에 신경을 쓰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그는 훈민정음 창제에 많은 도움을 주고, 훈민정음의 보급에 많은 역할을 했고, 한국 불교문화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가족에게는 잔인한 사람일지 모르나, 백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군주라고 볼 수 있다. 세종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영화라고 해도 만일 백성의 삶을 힘들게 하는 왕실이 있다면 그런 왕실은 없어도 된다고 말이다. 신미스님에게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유가와 불가가 충돌하지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중이고 내가 왕이지만, 우리 모두 백성의 지은 쌀을 빌어먹는 놈이라고 말이다.

 

왕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쌀이란 말이 있다. 그래서 세종은 처음 영화에서 기우제를 올리는 모습이 나온다. 그가 왕이란 허례허식을 벗어던지는 순간 하늘은 감응을 했다. 더 자세한 표현으로 백성을 향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다는 의미이다. 사람에게 누구나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이다. 누군가 보고 싶어도 그 의미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나타낼 수 없다면 매우 슬플 것이다. 말이란 주술과 같은 힘이 있다. 언어에는 누군가 마음을 움직이는 큰 힘이 담긴 것이다.

 

세종의 마음에 훈민정음은 여러 가지가 담겨져 있다. 정말 그럴까 라는 생각은 하나, 훈민정은 서문의 글자 수가 총 108자이다. 108번뇌 불교에서 말한 인간에 내려진 고통과 절망 그리고 업이란 굴레에서 그 가지 수가 108개란 것이다. 불교를 신봉한 아내를 위한 마지막 진혼곡에서 훈민정음의 성과를 궁녀와 승려들이 모인다. 궁녀는 여성으로 가난한 평민 집안의 딸들이 주로 들어오고, 승려는 미천한 신분을 가진 자나, 혹은 역적의 후예가 세상의 뜻을 잃고 그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신미스님이 중은 사람이 아니라 개로 취급하기에 처음 주상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그런 불경을 저지르면 역적으로 참형을 당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세종은 신미스님은 역적이라 부르지 않았다. 둘 다 백성의 쌀을 축내는 존재라고 여겼다. 영화에서 훈민정음이란 단순히 백성의 소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고려가 망해도 고려의 백성들은 아직 대를 이어 계속 살아가고 있고, 새로운 조선의 백성들도 세상에 드러난다. 이 모두가 나라의 백성인 점에서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지기 바란 것은 임금과 중에게서 서로 이해가 맞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단어가 나온다. 사대부들은 불교를 억압한다. 중은 현재 사대부들을 거부한다.

 

만일 부처와 공자가 만났다면 그렇게 다투었을까? 백성과 중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본이 뭔지 안다. 그래도 현실의 세계에 어쩔 수 없는 굴레에서 세종은 사대부와 같이 반포하지 않으면 훈민정음이 살릴 수 없다는 점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반포하려니 의리로 자신의 겪을 지켜본 정인지만 그 책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외면한다. 어전이란 공간은 정3품 당상관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다. 당하관은 그 자리에 들어오지 못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로지 권력만 생각하고, 명나라 황제의 눈치만 봤다. 작은 중국이란 소중화가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지금도 그런 소중화가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 바뀌어 문제지만, 외교란 백성을 협상이지 자신의 안위를 위한 협상은 결코 아니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또한 신기한 장면이 나온다. 원래 대군이 부왕을 부를 때 아바마마라고 부르나, 여기서는 아버지라고 한다. 세종도 소헌왕후에게 중전이라 하지 않고 여보라고 부른다. 단어를 보면 우리 언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왕의 위엄을 살리기보단 영화에서 세종이란 그저 어느 인자한 아버지가 왕 자리를 맡아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세종도 자신을 두고 신하에게 그저 힘없고 늙은 임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임금이기 전에 인간이란 사실을 늘 잊지 않은 세종의 모습에서 그가 위대한 임금이란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국의 존경하는 위인 베스트 3에 항상 들어가는 인물이 세종대왕, 이순신, 정약용이다. 모두 외로운 싸움에서 자신의 존재를 승화한 인물이다. 옆에 누군가 어느 분은 한국에 만일 외계인이 있다면 저 3명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재능을 보면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훈민정음이 나오고 나서도 사대부들에게 큰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일부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국문학으로 승화시키고, 또한 민중에게도 보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글로 되어 조선독립정신과 대한민국의 시작에서 태동이 되었다.

 

전에 TV에서 까막눈 할머니가 글을 배우던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분은 글을 알면 제일 먼저 하고픈 것이 편지를 적는 것이라 했다. 편지에 적은 글은 서툴지만, 의지가 명확했고, 편지를 낭독하는 할머니의 입가는 다른 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을 두고 세상을 떠나버린 자신의 남편,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송사였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그 말하고픈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런 마음조차 적어내려 갈 수 없는 게 더 슬펐다는 사연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그런 감동이 나온다. 막내 스님인 학조는 어머니를 몰라도 어머니란 존재를 생각나게 해주는 단어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그런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싶고, 그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이란 글자가 백성 스스로 소통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세상을 향해 외쳤다. 단지 영화에서는 신미스님과 다른 스님의 역할이 커서 마치 중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모습이 되었지만, 산스크리트어나 다른 언어의 참고한 점, 그리고 그런 단어가 불교를 수행한 자들에게 널리 배우는 점에서 인용한 셈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망한 고려가 불교의 나라이든 새로운 나라 조선이 유교의 나라이든 거기에 살아가는 백성은 모두 같은 사람이란 점이다. 결국 영화 <나랏말싸미>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담긴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헌왕후로 등장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신 전미선 배우님의 명복을 빕니다. 영화에서 세종 송강호 씨와 신님스님 박해일의 긴장감을 타는 대립 점을 소헌왕후로 통해 해소하고 새롭게 전환시켰던 점입니다. 시나리오 내러티브에서 갈등과 갈등의 최종 국면은 해결이고, 그것은 큰 위기와 절정에서 비롯되는데, 그 어려운 역할을 전미선 배우님이 했습니다. 영화 <나랏말싸미>가 한국사람들이 많이 보시고, 다시금 우리의 언어를 소중히 여기는 시간과 그리고 전미선 배우님의 마지막 연기를 지켜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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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19-09-20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만화애니비평 2019-10-04 17:00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당
 


저번 주말 일요일에 어머니가 계시는 본가로 찾아갔다. 결혼 후에도 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1주일마다 1번은 꼭 집에 가서 어머니와 밥은 먹으려고 한다. 결혼 후에 남편은 아내의 것인지 아니면 아내는 남편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천륜에 의한 인연은 하늘이 무너질 정도의 일이 아니면 깨질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어머니 댁에 가는 것은 남들의 입장에서 보면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당연하기도 하다. 결혼 전의 사람들은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다. 부모님은 적어도 본인의 인생을 위해 30년 전후를 고생한 분이란 점을 말이다.

 

어째든 집에 가면 항상 어머니가 집에만 있는 것만이 아니다. 주말이 되면 외출을 하여 친구 분이랑 종종 모여 마트에 가거나, 운동도 가고 때로는 커피숍에 가서 대화를 나누고는 한다. 그래서 종종 이런 일이 있을 경우 나는 집안에 홀로 앉거나 누워 TV를 시청한다. 문제는 내가 TV를 봐도 뉴스만 보기에 지겹고, 그런다고 오락연예물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맞지 않는다. 시리즈를 이어가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으며, 방송 중인 콘텐츠가 아주 친절하게도 제1화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중간에 끼어 들어가서 보는 것도 무리수가 넘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나를 위해 케이블TV에는 별도의 시간보내기 콘텐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인기가 많이 없거나, 인기가 조금 있더라도 시간이 제법 지난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 적벽대전>이나, 배우 견자단이 나온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번에 내가 집에 찾아갈 때 구경한 작품은 <기묘한 가족><가문의 영광4, 가문의 수난>이었다. 처음 <가문의 영광>이 나올 적과 다르게 <가문의 수난>편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2편과 3편은 보지 않고, 그대로 4편을 봤는데, 보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것은 왜 그런가? 바로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영화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나온 점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식하거나 또는 조폭이랑 많이 연관된다. <가문의 영광4>은 전라도라는 지역의 특성을 왜곡 그 자체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나올 때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집안이고, 모두 범죄기록이 있는 전과자란 점도 있다. 무식하고 교양이 없으며, 합리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국제공항 출구 심사대에 들어가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기내식을 마구 탐내는 모습, 심지어 화장실에서 담배 피는 모습까지 그렇다.

 

전라도라는 이미지는 딱 그렇다. 생각해보면 그런 점은 여전히 드러난다. 최근 상영한 영화 중에 정우성씨가 출현한 <증인>이란 작품에서 미란이란 인물은 살인교사자에 의해 주인집 아저씨를 살해하도록 강요당한다. 미란이 구사하는 언어는 서울말이 아니고, 전라도 사투리이다. 영화 <증인>의 배경 수도권이다. 수도권에서 남의 집에서 살림을 맡아주는 주방아주머니가 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해야 하는지 에서도 다소 의아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이 영화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정우성씨와 조인성씨가 출현한 <더 킹>에서 조인성씨의 배역을 보면, 고향 및 학교출신지가 목포이다.

 

목포에서 깡패 아버지 아래서 성장한 영화 <더 킹>의 조인성씨가 결국 싸움만 하는 문제아라는 점, 그의 친한 친구가 목포출신의 조직폭력배란 점에서 더욱 부각시킨다. 전라남도의 도청은 광주에서 목포로 이전했고, KTX 철도도 목포에서 서울까지 이어진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목포 그리고 전라도는 항상 무식하고 폭력적인 도시로 그려낸다. 미디어란 그런 점에서 다소 아쉬움만 남긴다. 다소 영화소재가 진보적인 관점이라 해도 그 틀에서 크게 비켜나가지 못한 점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목포와 전라도에 대한 최고의 왜곡은 <목포는 항구다>라는 영화이다.

 

차인표씨와 조재현씨가 출현한 영화에서 약골 형사 조재현씨는 목포의 조직폭력배 수사를 위해 목포로 찾아간다. 이때 택시를 타는데, 운전기사가 전라도 말투로 대화하는 것은 맞지만, 갑자기 다른 동료택시기사를 만나 조직의 큰형님이 출옥하자, 손님을 강제로 하차시킨다. 이에 다른 택시를 타니 이번에 말도 점잖게 하고, 교회성경과 십자가까지 차에 구비한 기사였다. 얌전하고 매너 있는 분이라 생각했지만, 방금 자신을 쫓아낸 택시기사를 만나. 출옥소식을 듣는 순간 태도가 역변 한다.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게 바로 전라도라는 지역이 상당히 비하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이런 게 시작했을까? 역사라는 지점에서 전남지역 특히 광주의 518를 생각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518의 광주는 다른 전남지역을 소재로 내세운 영화에 비해 무식한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범죄의 온상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물론 전남지역 조폭영화에서 광주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적어도 광주에서의 518의 모습은 다른 영화와 큰 차이점을 보여준다. 지역적 고립, 그리고 정치적 왜곡으로 수모를 당했지 현재에 이르러 세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을 가진 민주화의 성지로 거듭나는 도시이다.

 

그렇다면 전라도라는 호남이란 지역은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찬밥을 받아온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430년 전 선조가 조선의 군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1592년 늦은 봄에 일어난 이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하기 3년 전, 기축옥사라는 정여립 역모란 의문의 사건이 있었다. 정여립은 천하는 공물이라 여기며, 군주사회인 조선왕조 입장에서는 역적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다. 정여립은 관군을 피해 도망가다 결국 자결을 하고, 아들 역시 관군에 잡혀 죽임을 당한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이다. 조선의 사림파가 동서로 양분할 때. 정여립은 처음 이이와 친분이 있었지만, 이이가 세상을 뜬 후 동인세력인 이발과 친하게 지냈고, 정여립의 역모사건에 이발을 중심으로 하던 선비들이 죽임을 당했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제자이던 최영경이 옥중에서 사망하고, 이발과 이길 형제, 그의 어머니와 어린 아들까지 고문으로 죽고 만다. 조선의 선비 천 여 명이 죽임을 당한 기축옥사의 피해는 특히 호남지역에 심각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에 유배 올 때, 호남지역의 명문사대부 집안은 3개 정도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빛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 원인은 바로 기축옥사이다. 기축옥사가 1589년 일어난 일이고, 정약용 선생이 황사영백서로 인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 시기는 1801년이다. 대략 220년이 지난 시점에 회복되지 않을 정도 큰 화를 당했다.

 

사림세력이 기축옥사로 당한 것도 모자라, 호남지역에 의병이 크게 일어났다.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을 지키고 있더라도 육상에 주둔한 왜군을 무찌른 사람은 대부분 의병이었고, 의병장 및 의병을 일으킨 사대부들 중에서 호남사대부들이 많았다. 이때 많은 사대부들이 죽음을 당했고, 임진왜란 이후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쇠락해진 것이다. 기축옥사로 역적의 낙인부터 시작해 임진왜란 피해, 그리고 조선시대 특성상 귀양은 사형 다음으로 높은 처벌이다. 귀양지가 도성 한양으로부터 멀면 멀수록 그 죄가 매우 크다. 특히 북방 여진족이 출몰하는 지역과 왜구가 자주 출몰하는 남해지역, 또한 제주지역은 멀고도 험한 여정인 것이다.

 

유배를 가는 도중에 죽는 사람도 있고, 가서 죽는 사람도 많았다. 낯선 땅에 가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여 병이 들어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 변방의 지역은 유배자들의 눈물이 서린 곳이다. 또한 호남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곡창지대이다. 많은 곡식과 축산물이 생산되며, 한국인들의 식탁에서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지역이다. 농민과 어민이 계속 대를 이어가는 지역이니, 문화적으로 낙후되었다. 조선시대 역적과 중죄인이 머물던 곳, 일제 강점시대에는 식량을 수탈당하던 곳, 해방과 한국전쟁을 지나며 근대화로 오면서 빈곤으로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호남지역 그리고 특히 전남이다.

 

이런 전남지역 그리고 대표적 깡패도시로 영화에 등장하던 목포시가 조금 다른 식으로 전개되려 했다. 물론 고상한 곳은 아니지만, 적어도 변화의 바람을 가지려고 했다.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의 영웅이란 영화는 그렇게 처음 발을 내딛게 되었다. 물론 영화에서 목포지역의 국회의원은 검사출신의 권력자로 조직폭력배와 검찰조직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게다가 경제권을 동원해 기존 영세상인이 몰린 전통시장을 철거하려 한다. 거기에 대규모 빌딩을 세우면, 토지를 판매하는 자는 엄청난 부동산 수익을 올리고, 목포관광객의 유치가 성공하면 상권의 이익이 보장된다.

 

이권이 보장된 사업에 정치권과 조직폭력배가 만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기존 가난한 영세상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에 조폭의 도시 목포이니 조폭의 방식대로 폭력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물론 폭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분명 존재한다. 법적인 절차와 일반적인 상식에서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영화 <롱 리브 더 킹>은 그런 갈등과 문제점을 중간지역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주먹으로 해결하기도 하나, 주먹이 아닌 것으로도 해결하는 점이다.

 

지방조직폭력배 두목인 장세출은 우연히 강소현 변호사를 만나고,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반해 사람이 바뀐다. 기존 조직폭력배라는 모습을 버리고, 한 사람의 목포시민으로 돌아간다. 거기에 더 나아가 배고프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강소현 변호사에 어울리기 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이때 목포지역에 내려온 재야정치인 황보윤이 영세상인의 힘이 되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장세출은 황보윤이 운영하던 식당을 관리하게 된다. 하지만 반대세력에 의해 황보윤이 크게 다치자, 이에 국회의원후보자를 장세출로 내세운다.

 

장세출은 우연히 버스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목숨을 걸고 버스기사를 구해낸다. 그게 이슈가 되어 일약 영웅이 되었고, 그가 유명해지자 과거의 유령이 따라온다. 그는 과거의 유령을 부정하기보단 오히려 당당히 맞서 싸우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 영화의 시나리오에서 비극이 아닌 점에서 분명 장세출이 당선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선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른바 조폭영화에서 남자가 두목 내지 조직원으로 등장할 때 상대배역의 여성은 항상 엘리트 사회인으로 등장할 경우가 많다. 서로 티격태격하다 우연히 마음이 맞아 연애를 진행하는 로맨스가 다소 비현실적이며, 또한 억지로 포장한다.

 

영화 <롱 리브 더 킹>에서 장세출은 강소현 변호사의 마음에 들기 위해 꾸준히 그녀 앞에 얼굴을 비추고, 90일 가까이 다른 용역깡패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한다.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알아도 사랑이란 우연한 계기로 찾아오나, 그 사랑을 받아주는 상대방은 치고받는 과정에서 우연에 의해 생기는 게 아니라, 진정성에서 시작된 점이다. 단순히 무식하게 기분파의 분위기가 아니다. 하루와 이틀 그리고 이어지는 나날이 계속 이어져가면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장세출은 변했고, 그는 어느 순간 가진 것 없는 늙은 노인들의 우산이 되어주었고, 영세상인들의 우군으로 변했다.

 

기존 목포를 소재한 영화를 보면 어떨까? 그저 무식한 녀석이 무식하게 주먹으로 휘두르고, 의리도 좋지만, 의리를 제외하면 그저 조폭이 주먹으로 해결했다는 구시대적 낭만에 빠져있을 뿐이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 전남지역을 비롯한 낙후되었던 지역이 그대로만으로 볼 수 없다. Well being 시대 천연의 자연과 식료품이 나오는 지역은 관광지가 되어가고, 문화유산도 보전이 잘 되었기에 우리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목포는 항구다>만이 아니다. <롱 리브 더 킹>에서 조폭 장세출이 신분세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된 게 아니라 꾸준히 자신을 변화시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처럼 더 이상 지역 차별적 발상이 영화 속에 투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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