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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3 - Novel Engine
정진교 지음, 라티세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3권을 보는 순간, 아직까지 이 라이트노벨의 엔딩은 약간 먼 것 같고, 어느 정도 연재가 계속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신인류의 종류에서 8가지로 기억하고 있는데, 베히모스 무예, 하멜룬 신아, 위그드라실 청연, 키메라 휘정까지 나왔는데 이제 드디어 다른 신인류 엔젤 안나, 제우스 수연이 등장했다. 보통 라이트노벨을 보게 되면 대부분은 아니나 주요 소비계층이 남성인 점을 고려하여 보통 등장하는 여자등장인물들은 남자 주인공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구조를 가진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그런 경쟁하고 구도를 가지고 있으나, 작품에서 보이는 그것 자체가 주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제와 해소다.
단지 문제의 발단에서 그 토대에 대한 부분으로 전개되어가는 것보단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다. 분명 문학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패턴적인 클리셰가 없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이 작품은 그런 클리셰를 너무 우려먹지 않는다. 물론 작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겹치는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편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자주인공부터 상당히 바보이기도 하나, 그의 입장이 구인류라는 점이다. 신인류의 등장에서 보통 작품에서 세상을 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편은 신인류에 가깝다.
그들이 가지는 특별한 힘으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고, 곤란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신인류들이 민폐 당사자란 점이고, 그들의 문제를 뒤처리를 하는 사람이 민수다. 라이트노벨에서 시점은 민수의 눈에 보여주나, 실제 흐름에서 민수는 휘말리는 사람이고, 의도하지 않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사실 1권부터 생각하면 민수의 어머니는 멀리 외국에서 근무하고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고 멀리 외국으로 전근을 가셨다. 전근의 의미에서 타국에서 이용되는 신인류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자신의 임무가 신인류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서 매우 헌신적이다.
문제는 민수의 아버지가 헌신적이면 헌신적일수록 아들인 민수는 비참한 생활을 감당해야 한다. 무예와 어릴 적부터 친구라고 하나, 무예의 강한 힘과 무서운 살기에 모두 접근하기를 꺼려하고, 오직 민수와 지내게 된다. 민수는 무예로 인해 주변에 친구를 사귀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서 웃고 떠들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같이 집에 가고, 서로 집에 찾아가며, 어려운 일이 있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관계는 아예 맺을 수가 없었다. 그런 민수에게 집이 사라진 점에서 신인류만 모우는 학급에 간 것은 무리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민수의 운명이다.
그 운명의 고리에서 민수는 다양한 신인류 미소녀 사이에 끼여 마치 노비처럼 생활을 한다. 이미 무예가 민수라는 이름만 부르면, 민수는 당연히 뭐가 필요한지 알고 찾아가서 해결해주고, 다른 사람마저 가능하다. 그런 덕분에 민수에게 붙은 별명은 매국노다. 딱히 민수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나, 세상의 편견이란 신인류라는 당사자 이외에도 그들과 단지 가깝게 지내는 사람까지 같이 몰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3권을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적응한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 학교에 신인류가 올 때 난리도 아니었으나,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순간에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것이 서사의 기본이다.
서사에서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에서 결말은 또 다른 발단이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결말이 결국 위기와 갈등의 해소라면, 만약 갈등과 위기가 없다면 이야기가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2권에서 마지막 부분에서 비인류인 뱀파이어가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뱀파이어가 3권에서 새로운 갈등과 위기를 주는 인물로 나올 것이란 단서는 우린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3권에서 보이는 뱀파이어가 주는 위기와 갈등은 무엇인가?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과 같은 생각과 혹은 같은 패턴인 사람을 만났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삶의 목표 그리고 그것을 같이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할 것이다. 그런다고 모든 것이 같으면 좋은 일이 아니다. 뱀파이어 공주인 니제르가 올 때, 이미 갈등은 시작되었다. 신아가 말을 한다. 니제르는 자기와 동류인 존재라고 말이다. 같은 존재가 한 곳에 있게 되면 서로 적이 되거나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고전 중에 고전인 삼국지에서 군웅할거시대에 나타난 인물로 유비, 조조, 손권 등이 있다.
이들은 서로 군주로서 최고의 자질을 가졌고, 조조와 유비는 전장을 서로 누비며 그 위세를 떨쳤다. 물론 한나라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관인 유비와 혁명적인 가치관을 지닌 조조의 대립에서 누가 더 우위에 두는가에서 어려운 난점을 가진다. 두 사람은 모두 황건적과 십상시를 해결한 인물이나 결국 서로는 같이 양존할 수 없는 적이 되었다. 니제르와 신아가 양존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외모부터 시작하여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이다. 니제르는 기본적으로 프랑스에서 찾아온 뱀파이어고, 신아의 어머니는 백인으로 둘 다 노란머리에 귀여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니제르는 가면 속에 가려진 게임폐인이지만, 학교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인사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인물로 나온다. 신아는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인이 되기 위해 매우 신경을 기울이는 부류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로 충돌이고, 신경전이 발생되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 비인류인 니제르를 모두가 꺼려했으나, 사람관계에서 처세술이 뛰어난 니제르 덕분에 오히려 신인류인 무예, 청연, 휘정, 그리고 설영이까지도 니제르의 학교생활과 기숙사생활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피곤해지는 것은 누구인가? 결국 민수가 되고, 학교 안에서 요조숙녀인 니제르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순간 게임에 빠진 게임폐인이 되고 만다. 게임덕분에 잠을 잘 수 없는 신아는 계속 니제르와 실랑이를 펼치고, 그런 사이에 눈칫밥도 없고 남 좋은 일만 죽어라 하는 민수가 나와 이야기를 한다. 신아와 같은 방을 쓰자고, 아니면 게임하지 못하여 취미생활이 사람의 피를 빠는 니제르에게 민수가 피를 주겠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말리지 못하는 여자동급생으로 상황은 꼬이고, 결과적은 문제는 해결되나 민수의 처지는 더욱 비참해진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는 기본적으로 하렘요소가 있다고 하나 하렘계열로 보이기에 매우 부적절한 것은 남자주인공인 민수가 너무 당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재미이기도 하며,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도 민수로 통해 보여준다. 니제르의 등장과 더불어 또 다른 신인류인 제우스 수연과 엔젤인 안나의 등장에서 말이다. 솔직히 엔젤 안나 플레이어의 등장에서 최근에 국내에 공연을 하러 온 외국 뮤지션 Radio gaga라는 팀이 생각난다.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나, 국내에 공연을 할 때 어느 종교단체에 의해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엔젤 플레이어의 등장과 그녀의 공연을 하기 전과 그리고 공연 당일의 사건은 진짜 현실에서 이런 신인류 사람들이 존재하면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리란 보장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가령 제일 유명한 것이 17~18세기 유럽의 마녀사냥이다. 마녀라는 존재는 실제의 존재가 있어서 마녀가 아니라 사람들의 광기와 불안한 심리적 요소를 타인에게 전가하여 그것을 하나의 주술적인 고문과 처형으로 통해 해소하는 극단적인 정치수단이다. 죄 없는 사람을 불러 고문하는데, 그 장면은 매우 끔찍하고 잔인하여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당 사실을 기록한 사람의 고뇌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나 역시 그런 마녀가 아니나 마녀로서 낙인찍힐 가능성은 높다. 공연준비로 민수가 있는 학교 기숙사에 올 때 학교 주변에 사람들이 와서 항의를 하고, 심지어는 공연 당일에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다. 그런 일을 당하는 이유는 안나의 속성은 엔젤이란 점이다. 엔젤하면 우리는 천사를 생각하고, 천사가 가진 상징으로서 크고 아름다운 하얀 날개다. 그런 날개를 신적 영적 존재인 천사가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신인류로 확인된 안나에게 붙은 것이 작품 내에서 말하는 갈등과 위기의 소재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에서 상당히 따가운 말이 나온다.
안나의 위기를 구출한 민수와 민수일행에게 안나가 그렇게 심한 일을 당해도 참는 이유를 묻자, 안나는 자신의 행동이 곧 신인류의 얼굴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차별이란 단어를 좋지 못한 가치관으로 알고 있어도 실제 그 차별을 실제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나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 차별이란 부당한 행위를 하나의 정의로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광신도 단체들은 자신들이 폭력으로 통해 타인을 해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매우 옳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광기가 하나의 맹목적인 가치관과 이상이 되는 순간 폭력은 하나의 미학이 되고, 그런 폭력의 미학을 추구하는 자들에 대해 우리는 파시스트라고 부른다. 파시스트란 흔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고, 내 자신이나 혹은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파시스트로 전환되기가 쉽다. 인간의 불안과 초조, 그리고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스스로 폭력을 하나의 미학으로 치부한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에서 가장 문제되는 갈등은 차별이다. 차별의 존재에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 의해 성립되나, 그것은 실제적으로 알아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조건도 필요 없이 단순히 육안으로 소문으로 확인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것은 단순히 차별을 넘어 삶의 정체성까지 흔들어댈 수 있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민수와 무예는 어릴 때부터 매우 가까이 지낸 친구고, 그 둘의 가족끼리도 잘 지내는 사이다. 오죽하면 민수의 아버지는 무예를 배려하기 위해 무예와 민수를 같은 아파트에 살게 하고, 민수가 어릴 적에 무예의 집에 놀러가는 것도 모자라 같이 낮잠을 잘 정도로 신뢰하는 사이다. 민수가 무예와 지내면서 무예의 아버지에게 많은 시달림을 받는데, 무예에 대한 무예의 아버지가 보이는 오지랖은 이미 보통 사람들이 가질 상식에서 멀어진지 옛날이다. 하지만 만약 신인류가 태어나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미움을 받거나 외면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 아무리 라이트노벨이 웃고 즐기는 오락성 소설이라고 하나, 상당히 그런 의미부여는 매우 신선했다. 사실 신아와 휘정도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며 살고 싶지만, 부모와 살면서도 그들은 부모라는 틀을 지나 그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조우하게 된다. 가족이란 작은 사회도 존재하나, 가족을 나오면 학교나 이웃이란 사회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받는 그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작품을 보면 휘정이 여자에게 과도할 정도로 달라붙는데, 그것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사귀지 못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세상에서 특별하게 되고 싶어도 결국 모두처럼 평범하게 눈에 튀지 않고 같이 묻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신인류의 입장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들은 특별한 존재이지만, 사회에서는 특이한 존재로 되고, 모두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와 미지의 존재다. 따라서 신아 역시 친구가 없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고,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조종하는 능력에 은근히 이때까지 차별을 당한 보상심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결국 우월한 능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나, 그 속성에 의해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차별되어 열등의식이 하나의 열등적 우월의식으로 변모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수의 존재는 아주 신선한 것이다. 안나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민수의 뺨에 뽀뽀를 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안나는 민수를 무예나 신아처럼 좋아하기보다는 그저 감사의 답례 정도다. 그녀가 처음 기숙사에 와서 제멋대로 군 이유는 민수가 처음 안나를 보는 순간 신인류라는 존재를 두고 본 게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것을 두고 본 것이다.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헤, 헬로? 마, 마이 네임 이즈 주민수! 하, 하우 돌드 아 유? 아인 파인 땡큐..”를 안나에게 한 순간 안나는 민수가 신인류와 구인류의 차별하지 않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만약 신인류의 특이조건으로 안나를 대했다면 안나는 자신이 차별당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물론 구인류들이 신인류 엔젤 안나에게 팬의 감정이나 혹은 미지의 존재로 여겼다면 민수는 호된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호된 고통이 있기에 무예와 신아는 질투의 펀치와 킥을 날리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 자리를 메우는 민수의 처지는 매우 안타깝다. 민수가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집이 사라진 것도 있지만, 어린 시절 무예와의 추어곧 그렇다. 무예와 보낸 시간이 하나의 생활 그 자체가 되었고, 신인류라는 이유로 무예가 당한 것을 다른 신인류 동급생에게 당하도록 원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비인류의 등장에서 민수는 그들은 똑같이 대해준다. 자신들이 가지지 않은 신기한 능력이나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보통사람이라면 모두 경계했을 것이다. 인간은 너무 지나친 자극을 주면 신경이 무디게 된다고 하던가? 민수의 상황을 보면 분명히 그의 신경은 매우 둔해져 있고, 그 이유로 계속 고생을 하고 무예에게 강렬한 타격이 찾아온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나?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처럼 신인류인 그녀에게 친구는 신인류 동급생과 민수와 설영이고, 민수 역시 친구들이란 신인류 그녀와 설영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재밌게 전재하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조금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어째든 신인류 안나와 수연을 돌아가도 비인류 니제르는 아직도 머물고,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도 니제르는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다른 신인류 여학생으로부터 라이벌의식을 두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한국에 남아있다는 전제 아래 4권에서 새로운 갈등과 재미를 주는 인자임은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읽어본 소감으로 등장인물 중에서 소청연의 역할비중이 매우 작다. 조용히 물마시면서 일광욕을 취하는 위그드라실은 오로지 따스한 햇살과 자연의 위대한 숨결이다. 물론 안나구출작전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여줘도 작품 수면 위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3권에서 가장 기억나는 인물과 사건을 선택하자면 아마 니제르의 등장이고, 니제르가 학교에 온 것과 동시에 신아와의 갈등이라고 생각한다.게다가 니제르를 도와주기 위해 민수가 병원신세까지 졌다. 그런 인물적인 속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3권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에 나온 니제르와 신아의 모습이다. 거기다가 칼라 일러스트 4페이지에서 니제르가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본문에 흑백 일러스트 반이 니제르였으니, 글을 적는 작가와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분의 정성이 확실히 전해져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