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가 이 세상을 떠나간 지 어언 3년 반이 다 되어간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많은 충격을 던져주었고, 우리 사회에 깃든 모순과 왜곡 속에서 스스로 비틀린 채 우리를 떠나갔다. 마치 그의 마지막 자서전이 되어버린 <운명이다>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3년이란 길고도 짧은 시간을 흘러 보내고, 이제 탈상(脫喪)이 아닌 탈상(脫傷)으로서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한다. 아니 그의 죽음보다는 스스로 슬픔에서 빠져 나오려고 한다. 추모라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보다는 살아있는 자에 대한 위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 위로로 통해 아직까지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아픔의 조각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물론 슬픔의 기억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다. 그것은 평생 아니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서 살아있을지 모른다. 인간에 대한 개인은 하나의 존재이나, 그 존재가 속한 사회는 영원하다. 우리의 개인과 개인이 모인 그 사회 속에서 우리는 역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노무현 그가 살아온 역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암울함의 대치였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안고 간 신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고, 우리의 고통까지 모두 가져간 신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그 희생이란 거대한 숭고함에는 우리에게 크나큰 슬픔이 되었다. 우리들이 전하려는 그에 대한 추모의 진혼곡이란 레퀴엠, 하지만 그것은 슬픔 속에 가려진 우리 앞길이 아니라 그 슬픔으로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이었다. 누군가 앞에 서서 달려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기 때문이다. 미래라는 것은 언제나 열려있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 열리지 않는다. 그런 만큼 탈상(脫傷)의 이름을 가진 앨범은 너무 깊은 슬픔과 애도로서 채우지 않았다. 조금은 신이 나게 조금은 감성적으로 조금은 편안하게 다가가려 했다.
물론 이 앨범에서 지나친 우울함과 절망적인 느낌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유일하게 내가 이 앨범에서 우울함과 절망을 느낀 곡은 예전에 신해철 씨가 영화앨범 <정글스토리> OST에 수록된 “절망에 관하여”란 곡이다. 절규에 가까운 그 외침은 희망도 빛도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내일을 기약도 없이 찾아가는 내용이다. 마치 신해철 씨가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가한 후에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정말 신해철 씨는 그런 감정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말투와 rocker의 상징인 긴 머리를 가진 마왕의 모습은 어디 가고 초라한 모습만 그에게 남았다.
이 앨범 다른 곡들은 편안히 들을 수 있는 곡으로 잘 맞추어졌지만, 신해철 씨의 고집은 여전한 느낌이었다. 다른 유명한 가수인 이은미 씨, 정인 씨, 조관우 씨는 평소 부르던 스타일을 유지하며 잔잔한 감동을 들려주었다. 아니 평소에 그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려던 평상심에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은미 씨의 곡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곡의 원래 제목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이름이었다. 니체의 서적 중에 <선악의 피안>이란 도서를 본 적이 있었다.
진정한 강자는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그를 대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제목과 그 책의 내용과 노무현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말 그대로 빽도 돈도 힘도 없이 지내던 이들의 옆에 있었던 그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를 두고 온갖 비난과 냉소 심지어 죽음의 문턱까지 선사한 그들의 모습에 니체의 책에선 약한 자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자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노무현이란 인간은 퇴임 후에 권력도 돈도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초로이니, 그에게 행한 행동들이 과연 강한 인간이란 말인가?
다른 가수들의 제목을 보면 강렬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교차하면서 그의 인생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상록수처럼 푸르고 싶었고, 모든 노란 바람개비의 소망을 주었다. 아마 그래서 장필순 씨가 가수 이승철 씨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편곡하여 부른 것은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의 레퀴엠으로 가면, 다양한 음악이 섞이고 섞인다. 마치 국악, 팝, 클래식이 크로스된 퓨전스타일은 상당히 들을 만하다. 그의 진혼곡의 본격적인 서두에서 마지막까지 편안한 기분으로 마음을 위로한다. 마치 자신들 스스로를 위로하듯이 말이다.
앨범을 들은 것과 달리 앨범 전반적인 것을 훑어보았다. 거짓도 위선도 권위도 없이 막걸리를 한잔하는 노인이 보이고, 농촌에서 들판을 걸어가는 농부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느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우리에게 친근하게 온 그 분을 우리는 놓아드리는 것일까? 우리는 결코 그를 놓아드린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아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과 좌절을 놓으려 한 것이다.
앨범을 들어다보면 앨범의 페이지가 100매를 넘는다. 각 장마다 가수의 소개와 사연, 곡에 대한 가사와 의미, 그리고 제작과정들을 말이다. 또한 뒤로 갈수록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애절한 메모들은 이 앨범의 탄생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말만 그대로 앨범제작에 눈치를 보고, 제작비도 난항이었고, 제작스튜디오도 규모가 작은 곳으로 했다. 어느 한 남자의 죽음을 노래하는 것도 정말인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스튜디오가 작다고 하여 음악 그 자체는 심혈의 기울였다. 국내 최고의 작곡가인 윤일상 씨가 참여하고, 신해철 씨는 이 앨범의 프로듀싱까지 했다. 레코딩에 참가한 뮤지션도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 이근형 씨와 그리고 함춘호 씨, 베이시스트 민재현 씨, 키보드 최승찬 씨, 드러머 신석철(시나위 리더 신대철 씨의 동생)이다. 그 외에 참가한 뮤지션과 오케스트라, 국악인들까지 보통 앨범에서 볼 수 없는 국악, 메탈, 클래식, 발라드, 포크가 이래저래 조화를 이룬다.
평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대통령이었는지 앨범도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정말 장르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고, 뮤지션들의 조화도 너무 다양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민주주의사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포용 그리고 존중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이 앨범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