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 동기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네이버 블로그 이웃님의 홈을 보고 조금 관심이 있어서 감상했다. 물론 애니플러스로 통해 작품 검색하다가 조금 흥미가 있어서 보기로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나는 중장기적인 편수보다 12화 내외의 작품을 보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24화로 그 편수 조정이 다소 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4화까지 보았다. 신작이 아닌 구작이기에 한 순간 몰아보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느낀 점은 정말 잘 만든 것이다. 인간의 대립이란 항상 나와 타자, 내가 속한 집단과 남들이 집단이다. 그것은 마치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생각날 수준이다.

 

인간이란 결국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다. 자신의 안위와 상태가 보장받지 못하면 타인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다고 동물처럼 본능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겐 인간 최대의 딜레마인 이성이란 것이 존재한다. 이성은 모든 걸 판단하는 척도가 되지만, 한편으로 그 이성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함정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완벽하지 못하고 항상 이율배반적인 모순에 놓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말려들기도 하고, 때론 순수하게 자신을 희생한다. 그런 점에서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아주 심오한 주제를 남긴다. “발브레이브 그것은 세계를 파헤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세계를 파헤치고 밝히는 일을 결국 세계란 무엇이고, 그 세계에 사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파헤치고 알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성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혁명기 발브레이브>를 알아가는 것은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을 넘의 철학이란 학문과 연속되는 점이다. 철학을 아는 것이란 결국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고, 도 나아가 사회의 존재성까지 이어진다. 철학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은 정치라는 무거운 세계인 것이다.

   

2. 민주주의와 혁명기 발브레이브

<혁명기 발브레이브>의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을 지오르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정치체계다. 1화에서 도르시아 제국의 테러로 인해 지오르 국가는 수많은 인명과 시설피해를 입는다. 어른들은 모두 강제로 납치 되고 남은 것은 고등학교에 남은 학생들이다. 그들은 싫든지 좋든지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모두 죽을지 아니라면 한 치조차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인지 말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학생들은 어른들이 모두 납치된 가운데, 임시정부개최를 선언하고, 자신들의 정부대표를 뽑기 위해 선거를 개최한다. 즉. 시민 한 명에게 투표권과 정치적 참여권을 부여한 셈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원칙이 따르므로,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자만이 정치적인 행방을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다고 하여 그 대표를 따르는 사람이 대표에 대한 권한만 부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같이 권한을 부여하여야 한다. 단지 대표자는 그 권한을 결정하고 판단하여야 하고, 모든 시민이 자신들의 권한을 수행하여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철학의 핵심이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이유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어보면 나온다. 그것은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 중요하게 여기는데, 자유라는 것은 방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다. 책임 없는 자유란 의미 없는 비겁한 발언이다. 대표자를 뽑아놓고 모든 문제와 해결을 맡기고, 자신은 뒤로 숨은 것은 부당한 일이다. 하지만 대표자가 1명이 천 명 정도라면 같이 시민주의로서 대표를 맡을 수 있으나. 만 명 내지 10만 명을 넘게 될 경우 매우 어려워진다.

 

권력관계에서 대다수의 시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대표자에게 향하는 권력은 강해진다. 모든 시민에 대해 대표자가 만날 수 있는 여건이 존재하지 못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정체제도의 한계성은 대표자가 모든 시민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주인공인 쇼코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며, 그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내는 활발한 소녀다. 그런 소녀가 대표자로서 정치적 자유주의를 펼칠 수 있는 이유는 소수의 지방자치단체로 이루어진 국가이기 가능하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모인 인구수가 적어야 가능하다. 정치적인 선택에서 참고할 만한 도서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인데, 사회계약론의 관점으로 본다면, 정치적 선택은 결국 일반의지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자신과 반대되어도 상대방의 의결이 채택될 경우 그것에 대해 지지해주는 것이다. 일반의지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에 의한 선택지점이다. 하지만 인구가 많을 경우 많은 인간들이 거기에 대한 선택 지점에서 전체의지로 전환된다. 너무 많은 사람이 존재할 경우 자신의 의견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대한 소수 의견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3. 프랑스대혁명과 <혁명기 발브레이브>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중에 토크빌이란 사람이 있다. 그의 유명한 저서 중에는 <앙시앵레짐과 프랑스혁명>이란 책이 있다. 여기서 앙시앵레짐이란 구체제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다. 구체제에 해당되는 시기는 정확하게 말하여 1789년 7월 파리에서 일어난 프랑스대혁명 두고 나온 의미이다. 프랑스대혁명과 관련하여 그 원인은 루이왕정은 불안한 권력과 귀족의 세력다툼 그리고 교회세력도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주어서였다. 그런다고 프랑스 루이왕정이라고 하여 어느 시대에도 그런 정치적 견제를 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토크빌의 서적에서는 분명히 밝힌다면 경제적인 조건을 들었다. 당시 프랑스는 미국독립전쟁을 지원하였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자신들과 경쟁국가라는 점이었다. 전쟁의 물자소모는 무척이나 크고, 군수물품을 위해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했다. 게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대부분 원자재들이 전쟁물자로 사용하기에 식량이나 의상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당시 유럽에서 경제적 기본바탕은 역시 농업이다. 물론 파리나 도시로 향하여 찾아온 빈민들이 많이 있었다. 유럽에서 빈민들이 많아진 이유는 전쟁과 흑사병으로 인해 농경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무역으로 통해 식량을 구매했다. 식량 구매를 한다면 당연히 화폐나 다른 지불조건이 필요하다.

 

그때 양털이 좋은 상품이고, 기존에 밀과 농산물이 나던 땅은 모두 양을 방목하기 위한 들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많은 작품에서 배경적 상황이 19세기 전후의 유럽이고, 그 작품의 주인공이 소년이라면 양을 치는 경우가 많다. 양치기 소년이 단골메뉴로 나오는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다. 그런 유럽의 경제적 상황조건, 특히 프랑스의 상황에서 혁명의 시작은 당통, 로베스피에르, 마라 등과 같은 자코뱅당에 의해 주도되나, 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던 것은 도시빈민과 시골농민들의 분노였다.

 

따라서 혁명의 원인이 되는 근본적 원인은 프랑스대혁명처럼 인간의 생존과 연결되는 경제적 조건일 수도 있고, 혹은 부당한 억압과 독재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다. 혁명의 원인이 제각기 다르지만, 혁명이 일어나는 원인은 그 사회가 부조리하거나 문제가 심각하여 더 이상 현상 유지가 불가능 할 때 일어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혁명가들이 나오더라도 민중의 지지가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많은 사람과 무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역사적 교훈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1919년 3·1운동에서 많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했으나, 일본군의 총칼에 의해 무참하게 밝혔으며, 무력항일투쟁을 하던 독립군도 소수인력과 보급문제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혁명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부조리한 사회구조에서 억압을 받는 피지배계급자들에게 지배계급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점이다. 가령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자, 그 영화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왕정에 대항하나 총과 대포에 무참히 쓰러진다. 총과 칼에 대해 총과 칼로 대항하더라도 그 무력의 차이가 결국 혁명의 패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프랑스혁명역사와 더불어 <혁명기 발브레이브>를 보면 혁명은 2가지로 형태로 이어진다. 1가지 혁명은 사키모리 학생들이 납치로 인해 부재중인 어른들과 아루스 및 도르시아의 무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독립군으로 선언한다. 그런 정치체계에서 어른이라는 기성세대들이 비록 모두 납치되어 그 직권을 가지고 있어도, 그 직권을 대신하여 스스로 정부를 만들고 정치조직을 정비했다는 점, 발브레이브라는 전투장비로 통해 무력으로서 주권과 영토를 방위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혁명을 하여 정부를 세운 이유는 단 1가지다. 자유분방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것도 있으나, 도르시아에게 가면 안전을 약속받을 수가 없고, 아루스는 그저 발브레이브의 기체에 욕심만 있었다. 게다가 아루스의 의원은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의 탈출이 어렵게 되자, 발브레이브와 하루토만 아루스로 데려가려 했다. 게다가 자신들만 도망치기 위해 학생들에게 총을 겨누어 발사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학생들이 혁명을 일으켜 시민국가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이었다.

 

원인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프랑스대혁명이나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이나 모두 위기에 닥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스스로 일어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오르 정부를 수립 후에 계속하여 위기에 봉착한다. 그것은 도르시아군대가 계속 침공하고, 추후에 지오르정부마저 마기우스의 공작에 의해 지오르의 학생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기 때문이다. 혁명의 성공에서 역사적인 교훈은 단순히 자국만의 성공만이 성공이 아니라 그 이후에 닥치는 위기를 극복해야 혁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르시아의 혁명은 어떤 것인가?

 

 

4. 러시아혁명과 <혁명기 발브레이브>

세계사에서 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건에서 3가지가 있다. 위에서 소개한 1789년 프랑스대혁명,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다.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러시아혁명을 거론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바로 도르시아라는 국가가 러시아혁명과 아주 관계가 깊다. 우선 도르시아는 도르시아제국보다는 도르시아 연방이라고 한다. 결국 연방이란 말을 사용한 국가는 20세기 태어나고 소멸한 소비에트 연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원래 연방 국가보다는 군주가 통치하고 있었던 왕국이었다.

 

그 국가에서는 천 년이나 평화롭게 통치되어 있을 정도로 군주는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피의 목요일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고, 아루스에게 군사적으로 열세했던 도르시아는 순간적으로 군사강국으로 태어난다. 문제는 피의 목요일이란 단어가 어디서 나왔을까 라는 점이다. 1905년 러시아에서는 아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에서 가폰 신부가 수많은 노동자를 이끌고 거리에 가두 행진하였다. 그는 러시아황제인 차르에게 부디 자비를 베풀어 달라면서 차르의 사진을 들고 평화롭게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군대가 들이닥쳐 사격을 가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런 비극적 사건을 두고 피의 일요일이라 하고, 이에 대한 불만으로 러시아 내에서는 각종 파업과 시위가 발생했다. 그런 점에서 약간 의아스러운 것은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천 년의 왕국이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피의 목요일이 러시아혁명에서 피의 일요일이란 모티브를 가지곤 온 셈이다. 그렇다면 국왕이 국민들에게 미움을 살 정도로 실정을 저질렀는가? 라는 의문이다. 카인 대령의 부관인 크림힐트는 카인 대령이 소속된 반정파가 아니라 왕당파였다.

 

크림힐트와 기존 도르시아 군주를 지지하는 수많은 왕당파들이 도르시아 군대 내에 잔존하고 있었다. 작품에서 엘 엘프는 도르시아 국가에 대해 말하자면, 너무 무력에 치중한 나머지 그 무력으로 인해 나라는 더욱 암울해졌다고 말한다. 도르시아는 본래 아루스와 외교적으로 갈등을 빚은 국가이며, 아루스보다 군사력이 약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러시아혁명과 더불어 아루스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가?

 

5. 러·일전쟁과 <혁명기 발브레이브>

<혁명기 발브레이브>에 대해 조사하다가 조금 의아한 면을 찾았는데, 각본가인 오코우치 이치로가 이전에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의 각본가였다는 점이다. 코드기어스와 같은 경우 브리타니아제국이란 군국주의 국가에 대해 eleven이라 불린 일본에서 제로와 흑기사 조직이 레지스탕스를 펼쳐 결국에 브리타니아제국의 세계제패를 위한 폭력을 해체한다는 것으로 끝맺음을 낸다. 주인공인 를르슈를 떠나 작품 전반을 보면 백인의 서구중심 세계 권력에 대해 일본이란 국가가 대항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코드기어스 시리즈 중에서 <망국의 아키토>와 같은 경우는 배경이 일본이 아닌 유럽인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피해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남아 자위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피의 목요일이 왜 러시아혁명에서 피의 일요일을 봐야 하는 점이다. 1904년~1905년 사이 일본은 대한제국이란 조선을 점령하기 위해 청나라와 전쟁하고 그 후에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다. 이때 러시아가 패배를 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전쟁물자로 인해 국민들에게 식량과 의복이 부족해지고, 경제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실직되었다. 즉, 생존을 위한 인간의 의식주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피의 일요일은 러·일 전쟁의 러시아의 패배로 인한 결과고, 1905년에서 12년 뒤인 1917년에는 2월 혁명과 10월의 볼셰비키혁명까지 일어나는 도화선이었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시기를 보면 혁명이 있던 시기는 반드시 전쟁이 있었다.

 

1차인 1905년은 러·일 전쟁, 2차는 제1차 세계대전이 연접했다. 당시 러시아군대가 제1차 세계대전을 참전했을 때, 그들은 단지 총알받이 불과했으며, 많은 군인들이 지휘관의 어리숙함으로 전쟁에서 죽었고, 그것도 모자라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기도 했다. 그런 군인들이 수 백 만 명에 이른다고 했으니 혁명의 기회는 결국 전쟁에 의해 국내 상황이 불안해지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 조건은 전쟁의 위치적 조건이 자국 내부거나 혹은 자국이 패배할 경우에 높다. 전쟁의 패배는 고위관료들에게 치명적인 실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도르시아의 경우 아드라이는 본래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의 출신이 왕자이지만, 왕자이기 때문에 국가가 살벌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것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했다.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폭력을 두고 정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의라는 이름은 결국 물리적인 수단으로 실행하여 현실의 부조리 내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카인이나 반정파가 기존의 왕당파의 화목주의를 유지하는 것을 동의했다면 아드라이나 혹은 엘 엘프가 카인과 총통에 대하여 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의 시작에서 독특한 설정은 도르시아 총통과 카인이 일으킨 반정이 12년 전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1905년 피의 일요일, 1917년 볼셰비키혁명에서 그런 시간적 차이는 과연 우연일까?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아루스와 도르시아는 본래 적대 국가이나, 마기우스의 정체를 은폐하기 위해 지오르에 대해 세계의 적으로 만드는 공작을 펼친다.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이나 영국이 동맹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독일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때는 어느 정도의 명분이 있었지만, 지오르의 발브레이브 조종사들이 불사의 몸이고, 팬텀을 보여주어 지오르에는 괴물 내지 위험한 생물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언론에 퍼뜨린다.

 

6. 미디어와 <혁명기 발브레이브>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여러 가지 작품설정에서 아주 중요한 상황적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미디어라는 정보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과 PC로 통해 실시간 SNS를 사용하고 그것으로 통해 지오르의 상황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지오르의 교역을 나누던 아루스의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일으킨다. 하루토가 혼자 발브레이브에 탑승하여 도르시아 군대를 무찌른 것과 루키노 사키가 같이 싸우고, 노래하는 아이돌로 나오는 것까지 나온다. 심지어 사키로 통해 광고모델로 활용하여 지오르 국가가 운용할 수 있는 예산까지 확보한다.

 

하루토가 처음 활약한 후에 하루토가 SNS로 메시지로 보내자 세계는 그에게 답장을 수도 없이 보내주고, 그에 대한 열기는 마치 신앙과 같았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심지어 유명한 연예인과 스포츠스타까지 하루토를 만나고, 그를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의 힘이고, 미디어는 모든 대중을 사로잡는 무기가 된다. 하루토의 활약이 자금이 모인다는 점은 미디어는 결국 정치적, 경제적인 요소가 배제될 수가 없으며, 바로 그 미디어를 통제할 수 있는 자가 국민을 통제할 수 있다.

   

어느 사상가의 말을 빌리자면,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은 국가권력보다는 미디어가 훨씬 유용하다.”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중2병 데이즈>에서 그 문제되던 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미디어 장악은 문화장악의 기본이니까.”, 이 말은 나치독일의 대표적인 군중선동가인 괴벨스 박사의 정치수단이었다. 마기우스는 사람의 몸을 옮기고 다니면서 세계적으로 권력이 막강한 사람들에게 기생하면 살아가고 있다. 대규모 은행이나 방송사의 지배자로서 말이다. 대중에 의한 통제는 결국 정보력이고, 사키를 배를 찌르는 도르시아 총통의 행동은 결국 미디어로 통해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타파한 것이다.

 

영상으로 이루어진 정보는 우리 인간이 그 실질적인 물리적 공간에 있지 않아도 그 공간에 있다고 여기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가상적인 영상이 마치 실재와 같이 느끼는 가상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디어로서 보이는 정보가 여러 가지가 아니라 단순하고 일정한 정보라면, 그 정보를 공유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유사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대한 반응과 답변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돌출될 것이다. 언론이라는 미디어가 결국 인간에게 같은 생각과 유사한 행동을 하기를 원한다. 미디어의 장악이야 말로 세계의 여론을 잡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키모리학원의 학생들이 지오르 군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도 그 누구도 구원해주지 않았다.

 

내가 적고 있는 글에서 토크빌이란 이름을 거론했는데, 그가 <앙시앵레짐과 프랑스혁명>에서 중요한 말이 나온다. “민주주의는 가장 전체주의가 되기 쉬운 정치제다.”, 그런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강렬한 힘을 실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국민들의 여론이고, 그 여론은 미디어에 의해 좌우된다. 왜 미디어는 계속 국민들에게 전체주의적인 요소를 요구하는 것일까?

   

7. 일본 VS 일본 <혁명기 발브레이브>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는 일본이 2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지오르라는 중립국으로 학생들의 이름은 일본식이고, 학교 인근에 신사가 위치한 것과 전통음식이 나오는 것을 본다면 일본문화를 표현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오르는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한 지오르로 나온다. 아루스는 대통령이라고 하나 지오르는 총리대신이 정치적 결정권자로 등장한다.

 

아루스의 정치 최고결정권자는 대통령이나, 그 국가는 기본적으로 일본을 의미한다. 단지 시장자유주의가 미국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처럼 그 아루스라는 일본은 기존 미국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일본일 것이다. 아루스 대통령이 일부러 마기우스의 정보를 알려 봉기를 일으킨 이유는 그들이 막대한 자본과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루스의 은행장부터 가장 먼저 잡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인 상징이 되는 은행에 누군가 침투했다로 볼 수 있다. 아루스는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다고 지오르라는 일본이 아루스에 의해 미국의 영향권에 벗어나고 싶어 한 점에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인가? 그것도 아니다. 일본 역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나, 아직까지 천황이 살아있고, 천황의 생일은 국경일로 지정하여 휴무일로 기념한다. 게다가 일본은 전범들의 후손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며, 야쿠자들도 정치권에 크게 관여한다. 그런 점에서 지오르의 학생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지오르 총리대신인 쇼코는 도르시아 장군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인질로 잡힌 것을 확인한다.

   

쇼코는 아버지의 목숨과 지오르의 국가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상적인 가치관이라면 모두 국가라고 하나, 그것은 막상 개인의 상황이라면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쇼코는 인질을 비인도적으로 협박하는 도르시아 장군에게 비겁하다고 한다. 쇼코의 답변을 들은 도르시아 장군은 어른이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칭찬이라며 잔인한 미소를 짓는다. 쇼코가 원한 국가인 민주주의에서는 어른의 사기나 비겁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일본에서 그런 문제가 없을까? 그래서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매우 혁명적인 사고방식으로 쇼코로 통해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오르의 정치관료가 지금 일본의 정치관료 체계가 유사하고, 아루스는 미국과 비슷하나, 도르시아의 관계를 보자면 또 하나의 일본과 연결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저항의식은 주인공인 하루토에 의해 보여준다. 발브레이브는 지오르 어른들이 만들었고, 지오르의 어른들은 모두 군인들이었다. 학교의 선생님도 거리의 상인들도 항구의 직원들조차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발브레이브에 왜 룬을 집어넣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자신들의 아이들을 모두 발브레이브 파일럿으로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억지로 조종하려 했다. 그래서 하루토가 지구에 가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자 말자, 아버지는 하루토를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대한다. 아버지는 하루토가 원하는 답변보단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다. 자신들의 신체를 억지로 바꾼 것도 모자라 발브레이브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은 모습과 발브레이브 운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생명을 빼앗아 가는데도 오히려 그것을 두고 연구를 위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루토는 아버지의 그런 비인간적인 발언에 분노하여 아버지에게 주먹을 날린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 어른들에 의해 조장된 아이들의 미래, 이것이 지금의 일본사회에서 가능한가? 일본이 제 아무리 개인적인 국가라고 해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아버지를 때리거나 죽이는 행위들은 용납되기 어렵다. 어른들의 부조리를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혁명은 반드시 정치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역까지 이루어져야 그 사회와 국가가 변화한다(단재 신채호 연구자료 참조).

 

8.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이상적인 나라란 어떤 것인가?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이상적인 나라란 어떤 것인가? 기본적으로 지오르의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이 만들고 싶은 국가란 누구나 대화를 할 수 있고, 서로 다투기보단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공화주의국가로 만들고 싶어 한다. 따라서 전쟁과 무력은 남을 공격하고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투쟁에 가깝다. <혁명기 발브레이브>을 보면 시기적으로 하루토와 엘 엘프가 만나던 시점이 현재라면 과거의 12년이 있다면, 앞으로의 12년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미래의 12년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12년 후의 지오르 국가인지 모르나, 아직까지 어린 모습이 나음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은 어느 모두 성인이 된 장면이 나온다. 그때 어떤 남자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왕자라고 불리고, 머리카락 색과 모양은 엘 엘프와 흡사하고, 동공의 색은 녹색이었다. 이런 외형적 특성을 비교하여 판단하면 아마 엘 엘프와 쇼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장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 남자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과거 사키모리학원들의 학생들은 바로 자신들이 있을 곳이란 미래가 있는 곳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미래가 있는 곳에는 무력과 공포로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아름다운 새소리와 맑은 물소리가 나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도르시아 국가는 마기우스의 정체의 탄로와 도르시아 내의 왕당파의 복권으로 다시 과거의 군주정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 반정파에 대한 왕당파의 혁명의 성과에서 가장 공이 큰 사람은 도르시아 국가의 엘 엘프와 아드리아이다. 특히 아드리아의 경우, 출신이 일반 국민이 아니라 왕자였다. 그는 왕자로서 반정에 대한 위기에서 구한 영웅인 것이다. 아드리아의 공을 생각하면 그는 다음 왕권을 넘겨받을 정도로 큰 성과를 남겼고, 아드리아 자체의 목표도 공포와 무력에 의한 정치보단 평화로운 정치를 원했다.

 

지오르 국가가 추구하는 정치적 체계는 바로 공화주의라는 점이다. 그러나 왕자가 있다면 왕자의 아버지인 왕과 어머니인 왕비는 분명히 존재한다. 지오르 제국이 공화주의적 입헌군주제라면 그 군주가 되는 자는 어떻게 정치를 하는 것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쇼코가 자신의 나라에 침입한 2사람의 외계인을 조우할 때 그들을 향해 응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를 나누자고 한다. 자신의 보물은 자신들의 존재를 있게 해준 과거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자신들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파괴하려는 침입자를 막아야 하나, 한편으로 상대방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것 역시 자신들의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9.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희생, <혁명기 발브레이브>

가끔 자유와 평화를 위한 희생자들의 추모행사를 열리는데, 그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하루토는 자신이 타는 기체인 발브레이브를 다른 사람들이 타는 것을 심하게 반대한다. 발브레이브를 타는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경고문이 뜨기 때문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는 더 이상 보통 인간과 어울릴 수 없고, 화신(化神)이 되어 불사의 몸으로 적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발브레이브 1호기는 아주 치명적인 장치가 숨어있다. 강력한 힘이란 결국 그 힘만큼 적을 이길 수 있는 만큼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하루토는 그것을 두고 저주라고 한다. 저주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록 사주하는 행동 중에 하나이다. 저주를 걸어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거나 혹은 치명적인 상황으로 가게 할 수도 있다. 저주는 눈에 보이지 않은 존재이나, 그런 인간의 심리적인 요소가 남에 대한 적대행위로 표출되기도 한다. 하루토는 발브레이브를 저주받은 무기고, 자신은 발브레이브에 의해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제일 중요한 대사는 하루토는 그 저주는 자신이 마지막이 되어야 하고, 최후에는 모든 발브레이브를 파괴해야 한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발브레이브는 파괴되지 못하나, 대신 그 저주의 굴레를 모두 하루토가 짊어진 채 운명했으며, 그 저주의 굴레를 스스로 이어가고 있기에 미래의 지오르가 있었다. 현재의 평화가 결국 과거의 전쟁과 재앙으로 이루어졌다는 변증법적인 현상에서 어떤 목적지가 있다면 그 목적지와 반대되는 현실과 싸울 수밖에 없는 화해할 수 없는 대립관계가 형성된 점이다. 대립관계의 충돌은 새로운 결과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축적되어 나타난 결과인 점이다.

 

따라서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역사를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그 희생에 대한 기억을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의 정통성이 되는 셈이다. 지오르 제국은 왕자가 있다는 점에서 군주제가 있지만, 한편으로 민주제도 포함되어 있다. 쇼코가 투표에 의해 총리가 된 점이고, 과거 프러시아의 군주 프리드리히가 자신은 “모든 국민들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이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없기에 대표자로서 그 의결권을 주는 것이 민주주의제도에서 볼 수 있는 행위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인간의 피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기에 쇼코는 하루토가 입던 붉은색 슈츠를 입고 하루토와 친구들의 모습이 새겨진 흉상 앞에 있는 것이다. 지오르제국에 자유와 평화가 깃든 것은 모두 이들의 희생이라고 말이다. 그 희생에서 하루토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미래를 찾아갔다. 그가 원한 미래는 인간이나 혹은 마기우스였던 리제로테 또는 인간도 아닌 마기우스도 아닌 그 누구라도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자유와 평화를 모두에게 누려야 하는 천부인권이 부여되어야 하며, 공화주의 국가는 국민이 전쟁 등에 의한 위험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10. 전쟁과 <혁명기 발브레이브>

전쟁이 일어난다면 각 국가 간의 무력과 병력에 의해 승패가 갈리며, 무력과 병력에 의한 소모전이 장기화되면 국민들에게 생명과 재산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진실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정치적인 갈등이 있는 국가와 서로 협력하여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갈등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권을 노리는 경우도 있다. 아루스처럼 처음에는 자신들의 지지도를 유지하기 위해 지오르를 도와주는 척하다가 마기우스의 사주를 받아 지오르의 학생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아루스의 대통령을 볼 수 있다.

 

아루스의 대통령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이 아루스를 위협하는 괴물로 취급하여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안보팔이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괴물처럼 몸이 변한 사람은 하루토를 비롯하여 총 5인의 학생이며, 나머지 학생들은 발브레이브의 존재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인간을 살해하는 무기조차 가지지 않은 민간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루스의 대통령과 도르시아의 총통은 이들에 대해 위험생물로 간주하여 잔인한 살인을 한다. 그리고 아루스의 군인들도 그들이 겉보기에 자신들에게 저항할 힘도 없는 것을 알고 있으나 단지 상부의 명령에 의해 살인행위를 저지른다.

   

폭력의 수단과 방법에서 국가의 폭력만이 오직 합법적이고, 폭력의 행위로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폭력의 희생자가 누구인가? 라는 것이 중요하다.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희생양이 되는 인간은 대부분 지오르의 학생이고, 그들은 민간인이다. 무장한 세력은 오직 엘 엘프와 발브레이브 조종사들이다. 지오르 학생들의 희생을 보면 처음 도르시아 군의 폭격이 시작으로 가장 잔인한 학살은 도르시아 군의 독가스 살포다. 베르사유조약과 같이 현대인류는 전쟁에 독가스 살포를 금지하도록 세계조약을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19세기가 지나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전쟁의 양상이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보다 군인이 상대국가의 군인 및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보면 항공기술이 발달하여 공중폭격이 주요전략이 되었는데, 그 공격대상이 군사기지나 작전지역이 아니라 민간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던 장소인 것이다.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적진의 보급과 안전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민간인이 상대편의 전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타국의 국민과 군인은 결국 같은 국가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전쟁은 민간인 학살이 주를 이루었으며, 공격수단이 총과 칼처럼 백병전이 아니라 미사일이나 독가스를 이용한 광역적인 공격방법이란 점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을 읽다보면 1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 전쟁 중에 총과 칼에 의해 죽은 사람보다 화학전과 세균전에 의해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이 가장 많이 희생당한 때가 바로 도르시아 군대가 거대한 드릴로 침공하는 장면에서 독가스이었다.

   

전쟁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인도적인 세계조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를 누가 사주하고, 그로 인해 무엇을 얻는 것인가? 그것은 뒤 세계에서 계속 권력을 유지하던 마기우스의 안위다. 그 존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국가를 공격하고 사라지고, 그 국가의 민간인들을 살해하며,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는 것으로 세계의 평화가 지켜진다고 한다. 처음부터 아루스와 도르시아는 적대국이지만, 마기우스 평의회에서 몰래 비밀 회담을 열어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려고 했다.

 

11. 마기우스와 <혁명기 발브레이브>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마기우스의 존재는 특이하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 보고 판단하는 것인가? 의식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가 있어서 의식이 있는 것인가? 마기우스는 육체적 조건이 없다고 단지 정신적 영역을 가진 존재다. 그들은 계속 어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몸으로 이동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결국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그것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육체의 소멸은 정신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의 소멸로 끝나는 것이다.

 

마기우스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실존하는 존재는 아니나, 적어도 작품 내에서 인류에 의해 탄압을 받는 과거가 나온다. 그 중에서 17세기 마녀사냥 광기에 휩쓸린 유럽의 모습이 나온다. 그것은 사람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누가 거기에 불을 질러 화형에 처하는 모습이다. 마녀사냥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은 심한 고문을 받고, 거짓자백을 하여 결국 최후에는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이 부당하게 죽어야 한 이유는 보통 인간과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마기우스는 부당하게 타인의 몸을 점령하여 그들의 존재를 그들의 것이 아니라 마기우스의 것으로 바꾸었다.

   

몸을 빼앗아도 그 인간의 기억과 경험은 여전히 존재하는 점에서 마기우스는 작품으로 본다면 원인미확인 존재이고, 현실에서 본다면 인간을 지배하는 사상 내지 변질되는 인간의 모습이다. 카인은 12년 쿠데타에선 우정과 명예를 중시한 군인이나, 지금은 잔혹한 권력자로 나온다. 아니라면 반드시 카인이 아니더라도 어긋난 권력자는 늘 존재한다. 최근 독일에서 등장하는 네오나치나 혹은 일본의 전범후예들이 보여주는 언행은 마기우스와 같은 존재는 계속 끊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왜 마기우스는 인간을 지배하려고 뒤에서 세계를 조종할까? 처음부터 그들은 인간을 농락할 생각은 없었으나, 인간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그 두려움은 폭력으로 변모되어 마기우스를 공격했다. 만약 서로 간의 공존을 위해 도모했다면 비극은 되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기우스는 자신들의 안위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권력욕에 빠져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들이 잡은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 물론 인간의 집단적 행위에서 폭력이 하나의 정의가 되었기에 마기우스는 결국 멸망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12.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대하는 인간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제1의 자신이기도 하나 제1의 타인이기도 하다. 아기와 어머니는 본래 하나였으나 결국 분리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의해 분리된 인간이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이 처음에 자신인줄 모를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이라는 사실을 각인한다. 인식에 대한 조건에서 인간의 감각에 의하여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그리고 그런 정보가 하나의 기억으로 축적되어 자신의 인성을 형성하게 된다. 인간은 원래부터 이성적인 동물로서 이성을 소유하고 있으나, 그 이성 자체는 인간이 살아오면서 축적된 하나의 기록이며 역사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너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이에 대해 대부분 “나는 일을 하거나 또는 공부하는 는 인간이고, 가족과 함께 어디에 살고 있으며, 지금 친구나 애인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에서 본다면 결국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 존재라는 점에서 말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말하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지 먼저 정립해야 한다. 그런데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하루토와 그 이전의 마리에가 발브레이브 1호기를 타면서 자신의 기억을 자꾸 지워버리게 된다. 마리에는 학교에 오기 전에 기억이 전혀 없었으며, 1호기 안의 피노의 기억장치로 인해 자신이 예전에 발브레이브 1호기 실험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발브레이브의 에너지는 조종사의 기억과 생명이다. 발브레이브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하고, 기억을 삭제되어야 했다. 하루토가 처음 엘 엘프를 덮친 이유는 생명력을 담보로 했기에 새로운 생명의 힘이 필요했고, 루키노 사키를 강제로 덮친 것은 인간은 생명이 위험해지면 자신의 DNA를 유지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계속 누군가를 덮치는 것은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이고, 그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하루토 스스로를 희생해야 했다. 그것은 마리에와 같이 기억상실이고,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회색빛 재로 변하는 죽음이었다. 인간이란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혼자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인간과 같이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사회적 존재가 같이 시간적인 기억을 공유하지 않으면 같이 어울릴 수가 없고,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도태되어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분명하나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마리에와 하루토의 죽음에서 그들은 자신이 이때까지 쌓아온 시간들이 모두 사라져서 그 생명이 사라졌다. 시간이 없는 인간은 죽음이다. 곧 자신의 존재는 시간의 축적에 의해 조성되고, 미래라는 것은 현재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시간적 축적이다. 인간은 지나간 존재에 대해서 시간이라고 하나, 현재에 대해서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시간이기에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만, 공간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그리고 시간에 의해 변화되는 공간은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증거다. 인간은 계속 이동을 하는 존재이기에 같은 공간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기억에 의해 존재하면 타인과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과거가 모조리 없어지면 현재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인가는 결론적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그것으로 인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존재성이 존재한다고 인식하지 못하면 자신만 아니라 세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미하는 것이다.

 

13. <혁명기 발브레이브>와 오마쥬

사전에서 오마쥬란 단어를 찾아보면, 오마쥬란 hommage란 불어에서 온 말로 '경의의 표시' 또는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라는 뜻이다. 예술작품의 경우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부러 모방을 하거나, 기타 다른 형태의 인용을 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는 오마쥬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사소한 것까지 모두 찾을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독수리5형제>와 같이 팀플레이 전개로서 발브레이브를 운용하는 것은 메카닉 계열을 보여주며, SF메카닉 애니메이션의 큰 반향을 일으킨 <퍼스트건담>을 연상하게 된다.

 

우선 하루토가 지구 지오르인들일 찾으러 갈 때 자신의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하루토가 발브레이브 조종하는 것만을 신경 쓰지 그 이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퍼스트건담>에서 건담조종사 아무로 레이는 아버지가 건담을 만든 사람 중에 하나인 것을 아나, 그가 자신이 겪은 괴로움과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 부분과 일치한다. 또한 하루토의 기체는 다른 기체와 달리 검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퍼스트건담>에서 아무로 레이가 조종한 건담은 레이저 검으로 적의 기체를 베는 모습이 나온다. 하루토의 발브레이브 역시 검으로 적을 베는 모습이 나온다.

 

또 다른 오마쥬로서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네르프의 작전으로 사도를 물리치는데 있어서 에바라는 인간형 로봇이 등장한다. 에바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조종사가 필요하나, 에바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신지, 아스카, 레이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에 같은 반

 

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미사토가 네르프와 에바에 대한 의문을 품고 조사한 결과 에바 파일럿은 모두 신지가 다니고 있던 학교의 학생이었던 것이다. <혁명기 발브레이브>에서 사키모리학생들은 모두가 발브레이브를 조종할 수 있는 신체를 선천적으로 타고 난 점이 중요하다. 아루스의 유명한 파일럿이 발브레이브 1호기를 탑승하려다 결국 죽고 만다.

 

학교 안의 학생들이 모두 파일럿 후보라는 점과 그것을 일부로 어른들이 조장한 점을 보면 오마주적인 요소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단순히 메카닉적인 요소로서 <퍼스트건담>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차용한 것이 아니다. 주제적인 요소에서도 <퍼스트건담>에서 전쟁과 평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인간의 실존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경우에는 기존의 기성세대와 그에 저항하는 신세대, 제일 무서운 적은 강력한 타자보단 자기 자신이란 점이다.

 

14. <혁명기 발브레이브>에 대한 정리 및 평가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SF메카닉 작품으로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전쟁에 말려든 신세대들의 이야기다. 기성세대들의 정치적인 이권에서 신세대들의 인생까지 억지로 조작하려는 점과 상대방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와 협박으로 대하는 점에 대해 큰 불만을 느끼고 이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이 나온다. 부조리한 현실과 부당한 처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론적으로 지오르의 사키모리학원 학생들은 스스로 국가를 조직하고, 국가가 존위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필요하고 또한 영토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들은 민주주의의 절차에 따라 정치적 제도와 체계를 정비했지만, 아루스 고위관료와 마기우스가 잠입한 도르시아 권력자들의 이권을 위해 희생당한다. 따라서 지오르는 자신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무력투쟁을 하게 되며, 무력투쟁을 위해 하루토를 비롯한 학생들은 발브레이브에 탑승한다. 발브레이브의 강력한 무력을 얻는 대신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 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했고, 심지어 전투 중에 죽거나 또는 하루토나 마리에는 정보기억이 소멸하여 죽게 된다.

 

자신들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폭력으로 대항하나, 그 힘에 대한 대가는 무척 위험했고, 그 저주받은 힘은 계속 이어지면 안 되고, 그 힘에 의한 희생자는 하루토 자신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루토가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는 자신이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나 혹은 강력한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친구를 위해 싸우고, 그런 친구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다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있지만, 결국 친구가 죽거나 다치면 나 역시 슬픔과 고통을 받게 되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친구를 위해 싸우는 것은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과 같다. 그 친구를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싸우는 이유는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어느 누가 다른 누군가를 강제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평화롭게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말이다. 만약 그런 국가가 생긴다면 누군가는 불편할 것이다. 평화롭게 사는 것은 자유와 평화라는 것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권력자인 마기우스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지오르에 대하여 계속 무력으로 억압했고, 결국 마기우스는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멸망한다.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작품 이름 자체에서 나타나듯이 발브레이브는 조종사를 죽이게 하는 강력한 병기이나, 혁명을 위해 사용되는 기계이다. 혁명이란 지배계급에 의해 핍박받는 피지배계급이 그 지배계급을 전복시키는 현상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자신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 권력체계와 무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발브레이브와 같은 강력한 무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이중적인 일본을 보여준다. 일본 문화적 특성 중에 할복을 작품 내에서 보여주는데, 발브레이브 1호기의 임계게이지가 666에 도달하면 할복블레이드 사용한다.

 

 

할복이란 것은 일본의 유미주의(唯美主義)적인 요소가 말하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일본에서는 불꽃놀이와 벚꽃놀이가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불꽃을 쏘아 올리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할 때 사라지고, 벚꽃놀이도 가장 활짝 핀 벚꽃 잎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아름답다. 결론은 가장 아름다울 때 사라지는 것에서 유미주의에 대한 성향이 드러난다. 할복블레이드 한 번이면 도르시아 대규모 부대조차 퇴각시킬 정도로 매우 강하고, 그것은 곧 지오르의 생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오르의 위기에서 생존에 대한 유일한 방법이 할복블레이드라는 점에서 할복 자체가 지오르의 운명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명기 발브레이브>는 일본 VS 일본이란 대립구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지오르는 기존의 기성세대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지만 한편으로 할복이란 일본 특유의 문화를 작품에 반영했다. 제 아무리 민주주의국가조차도 자신들이 가진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 의해 그들만의 성향이 도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혁명이란 단어가 나오므로, 혁명은 그 자체로 성공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혁명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단순히 A-1라는 자를 쫓아낸 B-1이란 자가 다시 A-2로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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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년 전 글이지만 댓글 남깁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은발소년이 머리는 엘엘프인데 눈동자색은 녹색이 아니고 파란색이에요 쇼코 후손 아닌 걸로 보여요

만화애니비평 2022-03-11 16:00   좋아요 0 | URL
나중에 확인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