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없는 출산 - 우리는 출산을 모른다
목영롱 지음 / 들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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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아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이 책을 내었다. 강변공원을 거닐며 이래저 이야기하면서, 당시 내가 알던 그 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책을 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움의 그 자체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자신만의 세계의 정체성을 마주한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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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와이키키 뱀파이어>를 처음 제목을 봤을 때 문득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물론 영화와 웹툰은 서로 다른 내용이고,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다. 하지만 와이키키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에게 와이키키가 무엇인지 정확한 의미를 알게 해 준 것이 <와이키키 뱀파이어>이다. 와이키키는 미국 화와이를 가리키는 말이고, 하와이는 아름다운 섬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다. 미국 땅에 내가 가 본 곳은 군부대 내 미군이 주둔하던 곳을 지나간 것 밖에 없던 나에게 하와이는 머나먼 영토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를 위안은 있었다. 형님과 형수님이 결혼하고 허니문 여행지가 바로 하와이였다. 영화 <친구>에서 하와이로 가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막상 하와이 가는 길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웹툰에서 왜 와이키키를 두고 그 뒤에 명사를 붙인 것일까? 주인공은 김샛별과 최행복이다. 하지만 웹툰을 보면 진정한 주인공은 최행복이고, 김샛별은 최행복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 큰 동기부여를 전달해준 인물이다.

 

그러나 <와이키키 뱀파이어>란 제목처럼, 하와이에 있는 흡혈귀이니, 제목적 의미로는 김샛별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작품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흡혈귀 소년 김샛별은 어디에도 제대로 머물지 못한 사회적 외지인이고, 최행복은 주어진 환경에 좌절하고 자신을 책망하던 우울증 걸린 여성이다. 특히 공황장애라는 무서운 정신병에 시달렸고, 손목에 칼로 긋은 흔적이 보일 정도로 삶에 의미를 잃었다.

 

이 작품에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질문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것들이 있다. 작품에서 김샛별과 최행복의 형편을 보듯이 돈이 필요하다. 따듯한 집에서 굶지 않고, 머물 수 있는 생활 여건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표의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먹고 자는 것만으로 인간은 즐겁다고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당장 생명의 위기가 닥친다면 오늘 하루밤도 먹고 자는 것조차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오늘 밤이 금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그 며칠이고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육장에 갇힌 가축처럼 늘 비참한 삶이 될 것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는 바로 그런 고통의 순간에 내몰린 김샛별과 최행복이 서로를 믿고, 주변에 있는 이웃의 도움으로 세상 앞에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모든 내러티브에서 갈등은 존재하고 그 갈등의 해결은 곧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역경은 큰 고통이다.

 

TV에서 나온다. 연예인 누군가가 공황장애로 연예활동도 접고, 정신적 고통으로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과 친구조차 대하는 게 어려운 일도 많다. 그것을 극복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와이키키 뱀파이어>에서 그 치료방법은 스스로에게 그 고통의 근원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한다. 상당히 정신분석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는데, 자기를 억눌린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제공하는 시작점과 마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행복에게 2가지를 정해 놓았다. 1가지는 가족이고, 다른 1가지는 선생이란 직원이다. 가족은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가지게 되는 존재이고,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이다. 선생이란 직업은 자신의 선택이 필요하고, 그 선택에 따라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선천적 고통과 후천적 고통이 이렇게 최행복에게 닥친 것이다. 선생이 되고 싶은 최행복은 자신이 존경하던 분이 선생이었고, 그분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현실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운도 따르고, 심리적 상황도 따른다. 전반적으로 최행복에게 가족이란 큰 마음의 짐이 있었고, 시험 때마다 꼭 안 좋은 일들이 터졌다. 그런 최행복에게 불행을 안겨준 것은 가족이란 굴레이다. 가족은 혈연적으로 DNA를 후손에게 남겼지만, 가족의 기능과 역할에서 최근에 들어 생물학적으로 유지하기 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가족관계에서 자녀에 대한 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이해득실로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성공은 무엇일까? 출세는 분명히 인간에게 성공하게 만드는 큰 발판 중에 하나이다. 자신이 출세해서 자식들도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자식이 성공하는데 있어 출세하는 일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같을 수 없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최행복의 아버지는 대기업의 임원(부사장)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였다. 사회적으로 큰 명성과 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만으로 최행복에게 상처를 주었다. 동생 최슬기는 똑똑하고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한다.

 

모든 게 기계처럼 완벽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로부터 해야 하는 것만 잘 하여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갈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즐거운 일이 모르고, 단지 누군가의 기대감을 맞추어 살아가는 몸집만 큰 어린아이였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가장 요구하고 원하는 인물은 최슬기이다. 자신의 개성이나 의견은 필요 없고, 사회적으로 원한 도구로써 완벽한 인간이다. 남매는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행복의 삶은 여기서부터 불행의 시작이다. 이름은 행복인데 삶은 불행이다. 이름과 삶의 대비되는 지점에서 작품은 최행복이 불행하여 자신의 이름처럼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김샛별은 밤하늘의 처음을 말한다. 밤이 오는 것은 외로움이지만, 샛별이 왔다가 밤이 온 것이 아니다. 샛별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양지를 꿈꾸는 인간이나 흡혈귀라는 속성 때문에 낮에 움직이지 못한 채 밤에만 살아간다.

 

그것도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아 배신당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늘 그는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할 수 있다며, 절망한다. 절망에 빠진 김샛별과 최행복이 만나 서로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자신도 희망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물론 그 길을 쉽지는 않다. 주변의 반대와 음모가 늘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는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 힘들다. 자신이 원해도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은 더욱 그렇다. 가진 것이 없기에 몸부림치는 김샛별이나, 모르는 사람에게 보자면 학교도 안나오고 불량한 애처럼 보일 뿐이다. 막상 그를 대하면 착하고 순수한 영혼이나, 그곳까지 도달하기가 너무 힘든 점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는 그런 사람들이 서로 모여 다독여주는 작품이다. 김샛별과 최행복만이 아니다. 국밥집하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자신을 부모로 보기보단 돈줄로 보는 점, 윤성(김샛별을 도와주는 동네형)은 학창시절 부모님이 여의고 자퇴할 때 아무도 자신을 제대로 봐주지 않은 점, 치킨집 여사장님은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일 등 많은 상처들이 이 작품에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김샛별이 윤성과 대화에서 사람을 대할 때 아무 것도 모른 것까지 그렇지만 마치 낙관론을 말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라는 부분이다. 아주 흔하고 많이 보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최악의 상황에서 어려울 때 그 고충을 말하면 도와주지 못할망정, 상대방의 자존심을 뭉개거나, 아니면 꼰대처럼 말도 안 되는 충고를 해준다. 오히려 많이 힘들었겠구나하는 작은 위로를 해 주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힘들 때 받고 싶은 도움도 있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하는 작은 용기와 위로이다. 그 후로 작고 작은 도움이 모이고 모여 어려운 상황에서 비로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 과정은 우리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만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여 상처를 주게 된다. <와이키키 뱀파이어>에서 김샛별은 최행복에게 공부를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최행복은 김샛별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원하던 존재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선생이란 이름은 단순히 학교 안에서 학생만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었다. 선생은 다른 누군가를 그 어떤 곳에서도 가르치고 다독거리는 것 역시 가능한 일이었다. 최행복이 원한 선생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가능했고, 자신이 선생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선생이란 직업이 아니라 선생이란 역할을 통해 누군가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고자 한 것이다.

 

<와이키키 뱀파이어>를 보면서 이제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게 2년도 안 되는 나에게 늘 내가 생각하는 내 아이다. 자식이 크면 어떤 어른이 되면 좋을지, 그럴 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최행복에게 지옥이 되었다는 점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감을 가져야 할 부분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최행복의 부모는 딸보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면서 이름을 지어 줬지만, 가족관계는 불행으로 이어진다.

 

행복의 기준을 자녀가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맞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작품 후반부에 가면 최행복은 아버지에게 가족관계를 단절하는 증명서를 3번이나 보낸다. 그 덕분에 자신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무사히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상처가 가족이었고, 그 가족을 마주 보고 끊어낼 때 비로소 우울의 바다로 침수되지 않고, 바다 위의 파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어린 시절 최행복은 하와이에서 길을 잃을 때 일몰의 바다를 본다. 하지만 바다를 보는 게 아니라 이제 큰 바다 위를 누비게 된 것이다.

 

작품을 보다시피 우리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매우 쉽지만 어렵다. 우리는 무엇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지를 알지만, 그것을 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서 그 상처를 끌어안고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 옆에서 그것을 알아주고 조금씩 같이 밀어준다면 극복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은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하고, 같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울 뿐이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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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의 가장 큰 실수이면서 억울한 점은 아마 코로나일 것이다. 세계 각국을 보아도 코로나로 인한 영향은 심각하고, 전체인구 대비 확진 및 사망률을 보면 한국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수치가 그렇다고 하도 막상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모두 힘들고 괴롭다고 한다. 솔직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특전사, CCT, UDT 등(부사관 이상만 해당)은 훈련하다 실제로 사망하는 일이 많다. 그래도 병사로 간 사람들도 무척이나 자신이 힘들었다고 한다.


남의 척도는 객관적일지라도 본인이 느낀 감정과 경험 역시 자신에게 최악인 것이다. 나 역시 군생활이 힘이 들었다. 육체적인 요소보다 정신적인 요소이다. 몇 천억짜리 국가사업을 두고 관공서에 협의다니면서 받은 압박이나, 일개 하사 주제에 공군본부에 가서 원스타에게 보고해야 할 상황도 있었다. 자대에서는 공군 감찰실장(대령)에게 독대로 보고한 적도 있다.


대위정도 되는 장교도 힘든 자리에 일개 하사가 보고해야할 일이 있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주관과 객관이 입장과 처지에 따라 바뀐다. 이번 대선도 그런 것이다. 자영업중들에게 이번 대산은 보급로가 막힌 상황에서 정권 교체를 외쳤다. 민심은 천심이고, 천심은 민중의 소리이다. 문제는 민심이란 존재감은 바람이 오기 전에 부는 것처럼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떤 결과로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최저임금제 제도를 손을 본다는 공약이 있지만,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뭔가 최저임금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영업에 문제가 생겨 폐업이 늘어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영업을 연장하더라도 손님이 처음부터 가지 않으면 그 외침은 모순이다. 즉 사회적 현상에 따른 손해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그 모든 게 정부의 처사라고 보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정부만으로 보는 것도 한계점인 이유가 그래도 영업이 잘 되는 식당과 가게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경제구조에서 60~70년대를 찾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든다. 그때는 1차와 2차 산업시스템이 전환되던 시기이고, 여전히 수공업에 머물다가 80년대 이르러 중공업이 발달한다.

90년대 말과 2000년에 이르러는 3차 산업이 우세한다. 4차 산업이 정보사회라고 해도 정보쪽 경제활동보다 여전히 서비스업종인 3차에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한다. 코로라로 식당과 관광업종이 타격이 큰 이유는 대부분 3차 서비스쪽에 많은 국민들이 생업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로 인한 노동자에 대한 월급에서 급여가 오를수록 자영업을 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적게 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이고, 그들 스스로 자충수 되게 하는 원인이다. 보급로와 퇴각로에서 보급이란 개념은 영업점을 찾아오는 손님이고, 퇴각로는 영업점이 폐업 후 생각해야 하는 지점이다.


만일 작은 식당과 가게를 운영하는 점주가 장사를 접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도 다시 누군가의 밑으로 가야 하고, 수많은 가게를 접었고, 그들은 누군가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주말에 집근처에 있는 대학가 근처에 이삭토스트 가게로 갔다. 다행히도 토스트는 식당보다 테이크아웃 폼이 많으니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양옆으로 가게들을 보니 반 정도가 다 문을 닫았다.

이들이 문을 닫으면 어디로 가는가? 과거 대기업과 정년이 끝이 나면 치킨가게 사장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할 일이 없으면 치킨집이나 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옛날 말이 되었다. 아니라면 배달을 위주로 판매하는 가게로 노선을 정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배달위주 식당과 배달원, 그리고 택배운송원이 크게 늘었다.


일부 또는 처음 일을 접한 사람은 거기로 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식당을 다시 새로 연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모험이다. 그 모험자들이 보급로가 끊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뒤로 퇴각해야 하는데, 퇴각로는 다시 취직이다. 하지만 퇴각로마저 끊기면 어떻게 되는가? 직업이 없는 백수가 될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아우성 치는 것은 어찌 되면 퇴각로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한국의 사회는 이미 1차와 2차 산업이 컴백할 수 없다. 식량안보라는 명제 아래 시골로 가서 농사짓는 일이 녹녹치 않다. 참 어려운 일이다. 정권을 바뀐다고 해도 코로나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난제다. 단지 그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날리고 싶었고, 그 화살들로 의해 다른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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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정말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육아의 세계에서 취미생활을 고사하고, 허리디스크 증세로 계속 치료를 받고, 입원도 하고 했으니 그럴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적어보는 이유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다산 선생이 만일 21세기로 회귀하여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라는 책이 있었고, 그것이 영화드라마처럼 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를 보니 윤종록 작가, 분명 나하고 같은 성씨는 분명하나, 반듯이 잡아 고친다면 그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가라기보단 외가의 일족의 후예이다. 다산 선생의 어머니는 공재 윤두서의 손녀이고, 공재 선생은 고산 선생의 증손자이다. 고산 선생의 증조부는 귤정공 윤구이고, 윤구 선생의 동생인  행당공 윤복이란 분이 계시는데, 이분이 바로 윤종록 작가님의 직계조상일 것이다. 


윤복 선생은 안동도호부사로 있으면서 안동항교를 재건하고, 퇴게 이황 선생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게다가 아들과 사위를 문하생으로 들여 퇴계학을 전남에 뿌리게 된다. 해남윤씨 일족이 남인이 된 사유, 그리고 기축옥사에서 희생당한 뿌리는 여기다. 윤복 선생의 자제분은 임진왜란 당시 의용군으로 나서, 많은 문중 사람들이 의병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군부를 보면 주로 이순신 장군이나 이억기 장군 수하에 많았다. 남인의 특성이 반영된 점이다. 아무튼 윤복선생이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마을 일원에 터를 잡고, 귤동마을의 윗산인 만덕산으로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초당의 주인은 윤복의 후손인 윤규로의 것이고, 윤규로의 아들들은 다산의 제자로 활동한다. 이책 소개에서 청년미래포럼 18인에 대한 거론인데, 이것은 다신계18제자를 따온 것이다. 다신계에 대해 논하자면 한국 최초의 차모임이고, 200년 넘게 활동한다. 


매년 다산선생 제삿날에 헌다례를 올리는데, 다산선생의 후손과 다산선생의 제자의 후손이 남양주 묘에 와서 제사를 올린다. 따님은 해남윤씨로 갔는데, 윤복선생의 사촌의 후손에게 갔다. 그리고 나도 그 사촌분의 후손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다산 선생의 외손자인 방산 선생님과 상당히 먼 가계이다. 


그래서 윤종록 작가님의 다산의 외가라고 하기엔 그렇다고 한 것이다. 나도 다산 선생의 외손자 일족이니 친척이라 엮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산 선생이 해배되기 전 직계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강진만을 건너 다산초당에 가서 학문을 같이 논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산계 찻집 주인인 전 강진군수도 우리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안다. 


잡담이기도 하나, 합수 윤한봉 선생의 일대기를 읽으면 그분이 강진에서 위대한 성인인 다산 선생이 계셨고, 그분의 사상에 엄청 흠모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518과 관련하여 합수 선생은 늘 마음의 빚을 졌고, 귀국해서는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청년미래포럼 18인을 다신계에 배치한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게 그런 것이다. 


윤동환 강진군수는 학생시절 민주화운동을 할 때 수배가 걸려 도망칠 때 다산초당 안에 숨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청년미래포럼 18인 청년을 다산 선생 제자18인의 다신계에 비유하는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글을 자유이고, 의지이나,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산선생의 책은 일제시대에도 노론의 후예에게 박해받았다고 한다. 노론의 정신적 후예를 다신계18 제자로 배치하는 건 조금 그렇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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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밀려와 달이 되는 곳
윤정현 지음 / 헥사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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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시인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놀란 나는 시골에 삼촌에게 문자를 보냈다. 삼촌도 당연히 이분을 알고 있었다. 같은 향촌파 집안이고, 게다가 시골집이랑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은 곳이다. 명발당, 다산 선생의 애한과 기쁨 그리고 추억이 새겨진 곳, 누가 그를 대신하여 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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