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휴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폐간이라고 해야 한다.


  예전에 내가 받아보았던 잡지들이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계간에서 휴간이 된 경우가 많았고, 노숙인의 자활을 돕고 있는 [빅이슈]도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유지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학교에서 교과서도 디지털로 하자고 하는 세상이니, 종이에 인쇄된 잡지들이 살아남기는 더더욱 힘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샘터] 역시 오랜 기간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잡지였는데... 비록 정기구독을 한 적은 없지만 가끔은 읽을 기회가 있던 잡지였고. 그래서 이 잡지가 그만 발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하나의 잡지가 사라지는구나. 이렇게 종이책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구나. 아직은 서점에 가면 종이책들이 많은데, 이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디지털로 읽는 것과 종이라는 물성을 지닌 책으로 읽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데...


너무도 많은 책들이 있어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른다. 잡지들이 하나둘 휴간, 폐간하고 있는데, 이것이 종이책으로 옮겨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니.


이번에 알라딘에서 샘터 잡지를 창간호와 마지막호를 묶어서 판매를 했다. 이런 책 광고가 나오면 사야지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 읽든 읽지 않든 사놓아야 무언가를 했다는 느낌.


종이책에 덜 미안한 마음. 이렇게라도 사라지는 잡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창간호, 와, 정말 오랜만에 세로로 인쇄된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에는 종종 세로로 된 책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신문도 세로 인쇄였지, 아마... 그러다가 가로로 모두 바뀌었는데...


세로 인쇄만이 아니라 창간호는 한자가 그대로 쓰였다. 그래도 사람 이름에는 한글로 토를 달아주어 읽을 수 있는데, 본문에는 토를 달지 않아 한자를 모르는 세대는 읽기가 힘들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한자와 한글이 함께 쓰였던 시대가 있었는데, 샘터 창간호가 1970년 4월호이니, 이때까지도 한자어가 일상에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했고,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데, 창간호 특집이 '젊음과 여성'이다.


당시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기획으로 잡아 창간호를 발간했다고 보면 되는데... 젊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때가 되어서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 여성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에 보면 남성 중심의 사고가 더 우세한 것은 말할 것이 없으니, 여성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비교할 수 있는 창간호이기도 하다.


마지막호의 표제에 '첫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동안 샘터와 만났던 사람들의 글과 독자의 글들이 실려 있고, 새로운 해를 출발하는 1월에 샘터 마지막호가 나오다니,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는 것을, 그래서 [샘터]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창간호와 같이 고흐의 그림으로 표제를 장식했고, 샘터 기자들의 말이 길게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감회가 새롭다. 


[샘터]의 휴간으로 창간호와 마지막호를 만나게 되었지만, 마지막호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닌다.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는, 그러한 잡지들이 계속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6-01-18 1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향수 속으로 사라지는 잡지책들, 출판사 입장에선 팔리지 않는 잡지책의 출간을 이어나가기 힘들겠지요.

kinye91 2026-01-18 17:18   좋아요 1 | URL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전통이 있는 잡지들이 계속 출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은빛 2026-01-18 1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잡지와 단행본을 함께 만드는 출판사 여러 곳에 일했었어요. 잡지가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는 짧은 소비기한 탓입니다. 책의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단행본은 수십년 동안 판매가 가능하죠. 문학은 수백년도 가능할테고요. 잡지도 물론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정기적으로 발행한다는 발행 주기 때문에 다음호 이전까지만 유통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잡지를 거의 읽지 않죠. 그리고 과거 잡지 유통은 몇몇 총판들이 거의 독점했는데, 비합리적인 유통구조 덕분에 유통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버틸수 있는 건, 구독자가 많은, 혹은 충성도 높은 구독자 층을 보유한 곳들 뿐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이 커지고, 지역의 중소 서점들이 몰락하며 잡지 총판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으며 왜곡된 유통구조는 크게 영향받지 않아도 상관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전히 잡지의 유통기한이 짧고, 판매량이 적은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점이죠.

제가 일했던 잡지사 한 곳은 결국 제법 유명했던 잡지를 폐간하고 단행본 출판사로 돌아섰어요. 안타깝지만, 구조적으로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kinye91 2026-01-19 09:24   좋아요 0 | URL
네, 그러네요. 유통기한이나 판매량이 잡지의 발행에 큰 영향을 주니, 이것을 보완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수익을 떠나 좋은 잡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사회였으면 해서요.

카스피 2026-01-18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샘터잡지 오래전에 집에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최인호의 가족이지요.샘터가 폐간하는 이유는 판형이 작고 페이지수가 적어 광고수록이 많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요즘 잡지들보면 거짓말 보태서 광고가 반이지요.

kinye91 2026-01-19 09:26   좋아요 0 | URL
광고 없이 좋은 잡지들이 계속 발간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게 참 힘든 일이겠지만요.
 
재난에 맞서는 과학 - 오늘의 과학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8
박진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난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닥치는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자연재해를 인간과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는 요즈음인데, 인간으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재난들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맞서고 있었던가.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것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밝히며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과학이 참여함을 말한다. 과학으로 인해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우리는 과학에 의존하게 된다.


왜냐하면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객관성을 대표하는 학문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인-과정-결과-대책을 마련하는데 과학은 커다란 역할을 한다.


커다란 역할은 두 방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피해자를 위한 역할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해자를 위한 역할이다. 과학이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주관이 개입하지 않는 현상이 없다고 할 정도니, 과학자에 따라서 같은 현상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과학자가 어떤 관점을 지니느냐, 누구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가해자 편에 선 과학을 청부과학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때 청부과학은 결과를 위해 과정을 왜곡하기도 하니, 청부과학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으니 논외로 하자.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재난을 분석하는 과학자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따라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끼리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만의 결과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결과도 보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책은 재난 중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다루고 있다. 2011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는데, 대응이 늦었다고 한다. 늦게라도 대응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지만, 주관하는 부처가 어디냐 등등으로 많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여기에 전문가들이 가세해서 원인을 규명하는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인과관계를 밝혀냈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자를 단계별로 나누는 일도 벌어져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과학자들도 피해자 중심의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재난은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난은 사회적인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과학과 정치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따라서 '정치-과학의 장'이 되어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정치-과학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이 전문가만이 해야한다는 사고를 버리고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해야 하고 (저자는 이를 누구나 손 드는 과학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를 중심에 놓는 연구,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가습기 살균제로 발생한 재난을 발생 과정, 대응 과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까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가습기 살균제가 일으킨 재난의 인과관계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이 책이 쓰인 시점에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던 기업관계자들이 2심을 앞두고 있다고 나와 있는데, 검색해보니 2024년 1월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2024년12월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하고, 최종 판결이 나왔다는 기사를 찾을 수가 없으니, 가습기 살균제 재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국가에서 배상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법원은 기업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기업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 과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때 정치를 넘어 법에 다가서는 과학은 저자의 말대로 차가운 과학, 즉 논리와 증거로만 입증되어야 한다는, 그 전까지는 결론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그러한 과학이 아니어야 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차갑고 객관적이고 완전무결한 과학은 재난을 끝내지 못한다. 과학과 정치와 불확실성과 피해자의 곁에 서려는 마음이 뒤얽힌 과학만이 재난 이후를 내다보게 한다'(189쪽), '재난과 관계하는 과학은 재난 피해와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189쪽)고...


과학도 이러할진대 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법이 과연 피해자의 편에 서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차가운 법이 아니라 따뜻한 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법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데, 합리와 증거를 내세우면서 차갑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법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과학과 법은 객관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재난에 맞서는 과학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준 저자의 논리는 법에도 적용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저자의 말을 살짝 바꿔 법원에, 2심 유죄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에 다시 판결을 해야 하는 법원에 돌려주고 싶다.


'재난과 관계하는 법은 재난 피해와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따뜻한 법이 되고, 사람들을 좌절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야 저자도 말했듯이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과 더불어 법과 제도 역시 바뀌도록 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오래 전에 '사랑굿'이란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어렵지 않은 시. 마음에 들어오는 시들.


  그러다 우연히 김초혜 시인의 남편이 조정래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느 글에서 조정래 소설가가 예전에는 김초혜 남편 조정래였는데,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가로 설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런 사실에서 하나 더 나아가 이들의 가족문학관이 있다는 사실. 그 문학관의 이름이 좀 길다. 2017년에 개관했다고, 전라남도 고흥에.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


  그럼, 조종현은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시조시인이고 조정래 소설가의 아버지란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아버지 역시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하고... 이렇게 가족문학관이 생기는 문학 가족인데.


이 시집은 1943년생인 시인이 2017년에 발간한 시집이니 70이 넘어서 낸 시집이다. 원숙함의 경지라고 해야 하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뒤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모습이 담겼다고 해야 하나.


읽으면서 '잠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달관의 경지다. 이 정도면. 하여 시집에 실린 시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추운 겨울, 또 냉혹한 사회 현실 속에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시들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한발 물러나 보게 하는 시들도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물론 이렇게 달관의 경지에까지 이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달관의 경지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다 현대시를 비판하는 시를 읽고는 시인들에게도 현대시는 어렵구나, 그렇지, 현대시는 비평가들을 먹여살리는 역할을 하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니 비평가들이 해설해주어야 그나마 그렇구나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비평가들마저 온갖 문학이론을, 철학을, 사회학을 들이대어 해석해내는 시들이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와 닿을까. 오히려 그런 시들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역할을 하지 않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들을 보면 어려운 시보다는 쉽게 마음에 다가오는 시들이 더 많지 않아. 거기에 그리 길지 않아서 암송할 수도 있고.


원로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초혜 시인이 쓴 '현대시'를 보자.


    현대시


자기도 뜻을 모르고

남은 더 모르게 쓴다


시가 울고 있다


김초혜. 멀고 먼 길. 서정시학. 2017년 초판 4쇄. 79쪽.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껴 시를 멀리하면 시도 울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짧은 시들. 잠언과 같은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있으니,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에 위안을 주고 싶을 때 이 시집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짧은 시 한편 더... 각박한 시대.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사람


흙과 나무와 바위를

모두 품는다


그래서 산이다


그래야 사람이다


김초혜. 멀고 먼 길. 서정시학. 2017년 초판 4쇄. 21쪽.


나중에 기회가 되면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에 한번 가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 끝의 기록
존 버거.장 모르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버거 하면 믿음이 가니, 그가 장 모르와 함께 한 작업이 실린 책이라니, 갖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 끝의 기록이라니... 어디가 세상 끝인가? 단지 지리적인 장소를 이야기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면 어디? 물론 사진이니 지리적인 장소가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즉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또는 못하는) 곳에 가서 그곳의 삶을 담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장 모르의 작업이 대부분이다. 그가 몇 십 년 동안 찾아다니며 찍은 세상의 끝의 모습. 그 모습을 그는 '과거로의 여행'(32쪽)이라고 하고 있는데, 과거로의 여행은 곧 현재를 보기 위한 여행이다. 


'그건 어떤 세계의 끝, 지금까지 자신이 속해 왔고 현재도 속해 있는 세계, 일시적으로 등을 돌려야 하는 세계의 끝을 의미한다.'(32쪽)


그러니 그는 그곳에서 등을 돌려 나왔지만 사진을 통해서 그곳을 현재로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사진을 통해 본 역사라고 해도 좋다.


세계 각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끝이 바로 시작이 되는, 지금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 


책은 연대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의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세계 각지를 찾아가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고, 그 사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글로 표현되어 있다.


때로는 필름을 모두 압수당해 자신이 찍은 사진을 거의 다 잃은 적도 있고, 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인식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경험들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이 [세상 끝의 기록]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책에 북한에 가서 사진을 찍는 과정을 서술한 내용이 있는데, 사진은 몇 장 실리지 않았다. 북한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으나 출국할 때 몇몇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압수당했다고. 장 모르는 주최측이 보여주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이는 것, 또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사진으로 찍었으니, 그때 필름을 압수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책에서 북한 사람들이 진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또는 북한의 정경을 더 잘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북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필름을 압수당한 적이 있으니, 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 보여주려 하고, 장 모르와 같이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다. 이런 작가들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존 버거의 글은 처음에 거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실려 있다는 것인데, 뒤에 존 버거의 글이 하나 더 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좋다.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이 지구 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내 탓일까? 물론 내 탓일 수도 있지. 그렇지만 정작 내 탓이라고 해야 할 사람들은 남 탓을 하고,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양 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래, 그건 내 탓이야 하면 세상이 바뀔까?


 오히려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는 꼴이 아닐까? 그것도 권력을 쥔 자들,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이 남 탓을 주로 하고, 억울하다고 하는 판에,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세상 아닐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참... 막무가내로 큰소리를 치는 인간이 떵떵거리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단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큰소리치고 위협하는 인간들이 더욱 권력을 쥐고 있는 현실 아닌가. 이럴 때 과연 내 탓만 하면 되겠는가.


물론 내 탓을 하긴 해야 한다. 그러나 남 탓을 할 필요도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만들었어. 너희 때문에 세상이 힘들어지고 있어. 이제 너희들 말 대로는 하지 않을 거야 하고 잘못을 명확히 인식하고, 책임을 묻는 자세.


그런 자세를 과연 남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책임을 묻지 못하는 자세가 바로 남 탓 아닌가. 어쩔 수 없어. 해도 안 돼. 체념하는 순간 내 탓이 굳어져 더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니 우리 제대로 된 남 탓을 해야 한다. 이우성 시집 제목인'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하, 시 참 어렵군. 어려운 말은 없는데 시의 내용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으니, 여전히 시는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인가, 하다가 자꾸 내 탓만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엉뚱한 생각도 했다.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시를 쓴 시인 탓도 있다고. 시인이 자기만족만을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면 읽는 사람 마음에 어느 정도는 들어올 시를 써야 하지 않나 하고... 시를 잘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면서 이 시집을 읽었는데. 


그러다 '새'라는 시를 읽고 이 시 재미있네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 새가 과연 좌우의 날개로 날까? 좌우 중심을 잡아줄 몸통이 없으면 날지 못한다. 몸통이 크냐 작냐가 중요하지 않다. 두 날개를 이어줄, 또는 붙잡아줄 몸통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


좌우 대칭이 완전히 똑같다는 말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새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정치에 빗대면 좌우 균형이 맞춰진 상태라면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적이 없다면 정치는 제대로 된 적이 없지 않을까. 시에 나온 '이놈의 새 / 너 / 날아본 적 있냐'(97쪽)는 구절은 우리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이 나라 정치에서 과연 좌우 균형이 잡힌 적이 있었던가. 아니 좌우가 뒤집힌 적이 더 많지 않았는가. 어쩌면 좌우 개념조차도 흐릿해진 정치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날아본 적이 없는 정치가 과연 내 탓일까? 이거 정치인이라는 남 탓을 좀 해도 되지 않을까. 그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게 우리가 몸통 역할을 하려고 해도, 무슨 날개들이 몸통을 무시하고 저들만 키우고,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제 크기만 불리려 해서 도저히 균형이 잡히지 않으니, 남 탓을 하자.


남 탓을 하다가 이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게 압력을 넣어야 하는 내 탓도 가끔은 하자. 그래야 좌우 날개에 몸통을 갖춘 새가 되어 날 수 있을 테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새가 제대로 날 수 있게 될 테니. 이 시, 재미 있다. 


      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왼쪽 첫번째 집은 [조선일보]를 보고

오른쪽 첫번째 집은 [한겨레]를 본다

아침마다 밖에 나오면 내 편과 네 편이 등지고 있다

나는 오른쪽 첫번째 집에 혼자 산다

왼쪽 첫번째 집 방향으로 가본 적은 없다

함정 같은 거에 발이 빠질까 봐

그렇다고 내가 이쪽 신문을 읽는 것도 아니다

한 번만 구독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한 번이야 하는 마음이었는데

몇 년째 오기로 구독한다

기울어지는 게 싫어서

그런데 왜 내가 오른쪽인가

쟤들이 왜 왼쪽이고

문제될 건 없지만 가끔 어색하게 느껴진다

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돌아서면 오른쪽도 왼쪽도 뒤집혀버리긴 해

아 그렇게 쉬운 일이구나

그래도 실수로라도 몸을 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저쪽으론

작가가 이렇게 편협해도 되나

새는 양쪽의 날개로 난다며

그나저나 참 오래도 산다

이놈의 새

너 

날아본 적은 있냐


이우성, 내가 이유인 것 같아서. 문학과지성사. 2023년 초판 2쇄. 96-9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