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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기록
존 버거.장 모르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평점 :
존 버거 하면 믿음이 가니, 그가 장 모르와 함께 한 작업이 실린 책이라니, 갖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 끝의 기록이라니... 어디가 세상 끝인가? 단지 지리적인 장소를 이야기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면 어디? 물론 사진이니 지리적인 장소가 빠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즉 남들이 쉽게 가지 않는 (또는 못하는) 곳에 가서 그곳의 삶을 담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장 모르의 작업이 대부분이다. 그가 몇 십 년 동안 찾아다니며 찍은 세상의 끝의 모습. 그 모습을 그는 '과거로의 여행'(32쪽)이라고 하고 있는데, 과거로의 여행은 곧 현재를 보기 위한 여행이다.
'그건 어떤 세계의 끝, 지금까지 자신이 속해 왔고 현재도 속해 있는 세계, 일시적으로 등을 돌려야 하는 세계의 끝을 의미한다.'(32쪽)
그러니 그는 그곳에서 등을 돌려 나왔지만 사진을 통해서 그곳을 현재로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사진을 통해 본 역사라고 해도 좋다.
세계 각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끝이 바로 시작이 되는, 지금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
책은 연대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그의 젊은 시절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세계 각지를 찾아가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고, 그 사진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글로 표현되어 있다.
때로는 필름을 모두 압수당해 자신이 찍은 사진을 거의 다 잃은 적도 있고, 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인식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경험들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이 [세상 끝의 기록]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책에 북한에 가서 사진을 찍는 과정을 서술한 내용이 있는데, 사진은 몇 장 실리지 않았다. 북한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으나 출국할 때 몇몇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압수당했다고. 장 모르는 주최측이 보여주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이는 것, 또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사진으로 찍었으니, 그때 필름을 압수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책에서 북한 사람들이 진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또는 북한의 정경을 더 잘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북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필름을 압수당한 적이 있으니, 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 보여주려 하고, 장 모르와 같이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다. 이런 작가들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존 버거의 글은 처음에 거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실려 있다는 것인데, 뒤에 존 버거의 글이 하나 더 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좋다.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이 지구 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