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살림지식총서 194
김윤아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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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홀은 '문화정체성'은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입장 취하기'라고 했다. 과거와 소통하는 현재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것이다. 결국 나의 문화정체성은 그의 작품들에 대해 작은 한 권의 책으로 '입장 취하기'를 한 것이다. (87쪽)

 

이러한 입장 취하기로 그는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파시즘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것도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 후기에 해당하는 "원령공주",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입장 취하기에서 그의 관점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 위해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이라기보다는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이미지들을 분석하여 일본의 파시즘과 연결짓고 있다.

 

가령 "원령공주"에서 사슴신이 죽어갈 때 함께 죽어가는 숲의 정령들을 일제시대의 가미가제 특공대에 빗댄다든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일본의 신화를 작품에 끌어들여 그들에게 예전의 향수를 일으킨다든지, 신화는 민족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해서 파시즘에서 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까지 곁들여서 하고 있으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전쟁을 미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들 누구도 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또한 전쟁 상대가 누구인지 나와 있지도 않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얼굴이 다들 똑같다는, 이는 서구지향의 일본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읽으면서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구나 하는 생각과 최근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시 만들었다는 "바람이 분다"에 관한 논쟁이 겹쳐서 떠올랐다.

 

2차세계대전 때 쓰인 비행기를 만든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든 영화가 "바람이 분다"라고 하니, 파시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적어도 전쟁범죄에 쓰인 비행기를 만든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을 해도 파시즘적 요소가 작품에 스며들어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요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어쩌면 이 책을 쓴 사람은 거봐,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할지도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면 "원령공주"는 일본 군국주의, 특히 천황제를 미화했다고 하기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대결 속에서 자연이 인간에 의해 정복당하고, 폐허가 되지만, 그 폐허는 결국 인간에게도 해를 입힌다는, 그래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고(마지막에 산과 아시타카의 대화을 보면 그렇게 해석이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하고 있다고, 즉 경제성장만을 추구했던, 경제동물 일본의 모습을 오히려 작품을 통하여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가족"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데...

 

이 책의 작가가 "입장 취하기"를 하고 있듯이 나역시 "입장 취하기"를 하고 있으며, 이런 입장 취하기들은 결국 같은 영화라도 그 영화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위대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가 거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작품의 몇몇 이미지들로 파시즘적 요소를 파악해내기 보다는 그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주제에 집중하여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신화는 파시즘에서도 주요하게 쓰이지만, 모든 민족에게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알려주는 역할도 하고 있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화를 자랑스레 여기고 그것을 작품에 담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라면 하야오의 작품에 나타난 신화적인 요소는 일본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는 그의 노력으로 보아야지, 파시즘에 대한 향수로 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대한 나의 "입장 취하기"이겠지만.  

 

이 책을 읽은 한 가지 소득은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들, 좀더 꼼꼼하게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으며, 그런 해석들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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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안도현 시인은 절필을 선언했다.

 

이러한 시대에 시를 쓴다는 일이 부질없다고.

 

시를 통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는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그는 이제 그럴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세상을 따스한 눈으로 보던 그가, 그런 시를 썼던 그가 이제는 절필을 하다니.

 

마치, '서울로 가는 전봉준'처럼 형형한 눈동자를 빛내고는 있지만, 세상 변혁에 실패한 사람처럼.

 

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안도현 시인이 기소  당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가 한 말이 빌미가 되어 검찰이 그를 기소했다는데, 그는 자신의 일을 국민들이 판단해 줄 거라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신청을 하기 위해 가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었는데, 역시 나는 여기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느꼈다.

 

시인은 알게모르게 시대를, 자신의 운명을 시를 통해서 표출하고 있다지만, 그를 시인이게 만들어준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지금 그의 모습과 겹쳐질 줄이야.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전봉준. 자신의 꿈이 실현되지 않고, 세상 변혁에 실패하고, 결국 죽으러 가는 그 길에 그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세상을 쏘아보는 눈빛. 형형한 눈빛이 뇌리에 박히는 그 사진.

 

그는 가지만, 그의 뜻은 가지 않겠다고 하는 그 눈빛.

 

서울로 가는 전봉준, 재판정으로 가는 안도현. 그의 시를 여기에 적어본다.

 

시인이 재판정이 아닌, 시를 써야할 자리에 있기를 바라면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 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민음사, 1994년 중판. 44-45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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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37
맹문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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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 사실 시 읽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도대체 시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 땅에서 시인을 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에 시를 쓸테니...

 

서점에서 시집을 전시해놓은 장소가 점점 줄어들더니 요즘은 시집 찾기 힘들고, 따라서 새롭게 시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조차 힘든 때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예전에는 시집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이 꽤 있었다. 지금까지도 시집을 편찬해내는 창비와 문지를 비롯해서 실천문학사, 민음사, 문학동네, 미래사 등등...

 

그럼에도 이런 출판사들의 시집들조차도 서점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힘드니, 다른 출판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또 이름없는 시인들의 시집이야 더할 나위 없이 전시되기 힘든 노릇이다.

 

예전에 사놓은 시집들을 가끔 들춰본다. 새롭게 읽을거리가 떨어졌거나, 아니면 머리가 무거워 무언가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 이 시집, 저 시집을 뒤척거리는데...

 

그만큼 시집은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그래서 늘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 좋은, 또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시집이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를 보자.

 

물고기에게 배우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사, 2002년. 15쪽

 

아마도 시의 화자는 몸이 아프기보다는 마음이 아팠으리라. 그간 세파에 찌들리고,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아온 나날들 속에 마음은 지치고, 이런 상태에서 몸 역시 좋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그는 잠시 개울가로 쉬러 나온다. 의식적으로 쉬러 나왔든지, 아니면 우연히 개울에 머무리게 되었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의 화자가 잠시 쉴 틈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쉴 틈,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여유가 된다. 그 여유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쉼은 활동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개울 속... 물은 나를 비추는 거울 역할도 한다. 이 시에서는 단순한 물이 아니다. 물 속 세상이다. 물 속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고기들이다. 그 물고기들이 나를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

 

물고기들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다. 물 속엔 길도 없는데, 그들은 한 번의 부딪힘도 없이, 서로 갈등도 없이, 또 죽어라고 먹이만을 쫓지도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자기 길을 가되, 그 길을 남겨두고 그 길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름인지, 내 길만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없다. 또한 그들 세상에선 정당한 길은 없다. 모든 길이 정당하다. 그리고 그 길은 간 다음에는 지워진다. 지워져야 한다. 지워지지 않고 남겨져 있으면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옳음을 주장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기에.

 

갑자기 내가 살아온 길이 생각난다.

 

'약한 자의 발자국'

 

약한 자들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또한 그 길만이 옳다고 주장한 적은 없었던가. 약한 자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길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던가. 그래서 자꾸 슬픔만을 남겨 놓지 않았던가.

 

발자국은 길이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자고 했지만, 사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만의 길이 아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이 모두 길이다.

 

그래서 내가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되고, 그 길은 나만의 길이고, 또 그 때의 길일 뿐이라는 사실.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길로 얽매여진 삶이 아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또한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광장이 나온다. 그것을 물고기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시다. 그래, 어쩌면 집착에 빠져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무엇만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정답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것이 어디 숨어있어서 그 숨어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예전에는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답이란 만들어가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 시는 마음에 쏙 들어온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비슷하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게 바로 시의 효용성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기도 하고.

 

이런 마음을 가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하여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플라스틱 스티로폼 시멘트말고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처럼 창창하게

살았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발표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은 살았을 한 그루의 나무가

베어질 것이네

 

그 나무만큼 나의 시가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찼으면 좋겠네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안경이 되고

신발이 되고

부엌칼이 되었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사, 2002년. 101-102쪽 

 

이런 시 말고도 마음에 와닿은 시가 참 많다. 특히 이 시집의 30쪽에 있는 '풀'이란 시는 김수영의 '풀'에서 나온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는 김수영의 풀이 자꾸 생각나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기도 했으니...

 

더워진다. 시를 읽어보자. 아님 휴가지에서 시집 한 권. 얼마나 좋은가.

 

덧글

 

안타깝게도 이 시집은 품절이라고 나온다. 아마도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을 듯. 굳이 이 시집이 아니어도 좋다. 시들은 서로 서로 통하니, 적어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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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참 좋게 읽었던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시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시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좋았고.

 

제목이 "시간의 그물"이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이미 변해버린 고향, 즉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변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 따라서 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들이 제법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는데, 그 땐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나이가 되어가고, 세상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나 자신은 점점 더 작아지고... 꿈은 사라지고, 현실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먼데, 앞은 보이지 않는 듯하고...

 

시집을 넘기면 처음에 이런 시가 나온다.

 

신발

 

신발의 문수 바꾸지 앟아도 되던 날부터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나간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곂을 떠나간 꿈이여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11쪽

 

나이를 먹어감은 상실과 통하는 나이, 현실적이 되어갈수록 점점 자신의 꿈과는 멀어지는 나이. 어릴 적 자신을 잃어가는 나이. 그런 나이듦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발의 문수.

 

신발의 문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던 날, 이는 어른이 된 날이고, 어른이 되었음은 현실적이 되었음이고, 현실적이 되었음은 삶에 자신이 얽매이게 되었음이고, 삶에 얽매이게 되었음은 친구들과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나이가 되었음을, 많은 꿈들을 접고, 오로지 생활을 위해서 전념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씁쓸하지만.. 그런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인 나이는 먹을수록 꿈을 잃어가겠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먹어도 먹어도 꿈을 잃은 나이는 아닐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시대의 변함이 결코 좋은 쪽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 터이다.

 

하여 이런 나이듦에 대한 시가 한 편 더 있다.

 

마흔

 

몸에 난 상처조차 쉽게 아물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겪는 아픔이야 오죽하겠는가

유혹은 많고 녹스는 몸 무겁구나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99쪽

 

불혹의 나이. 그러나 몸이 무거워지고, 미혹되지 않음은 어쩌면 도전하지 않음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시가 하게 한다. 그래, 나이듦은 어쩌면 안주일지도, 그 안주를 통해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정신은 도전을 포기하는, 하여 실패로 인한 마음의 아픔은 회복 불가능할 수준까지 이르는 그런 나이.

 

그렇다고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일. 녹스는 몸, 무겁더라도 움직여야 한다. 움직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이듦에 대한 시 속에서 요즘 정치 상황과 맞물려 내 눈에 쏙 들어온 시가 있었으니..

 

                        도배공

 

이미 벽과 한몸이 되어버린 낡은 벽지

벗겨내는 일 여간 고되지 않다

보라, 안간힘으로 버티는 저 완강한

기성의 아집과 집착을

그는 그만 이쯤에서 오래된 고집과 타협하고 싶어진다

갑자기 그는 일을 서두른다

낡은 벽지는 더 많이 아주 오래 살아남는다

 

이재무, 시간의 그물, 문학동네, 1997년 초판. 78쪽

 

우리들이 바로 이 도배공과 같지 않았을까... 낡은 벽지를 싹 걷어내고, 아주 말끔하게, 완전히 걷어내고, 그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그 다음에야 새 벽지를 발라야 하는데, 우리는 힘들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또다른 이유로 낡은 벽지를 완전히 걷어내지 않고, 그 위에 그냥 새 벽지를 덧붙이지 않았던가...

 

곰팡이가 슬어있는 벽지 위에 바른 새 벽지. 과연 새 벽지 역할을 할까. 지금까지 우리가 발랐던 벽지들은 이런 낡은 벽지 위에 발랐기에 이상하게도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낡은 느낌을, 곧 곰팡이가 스는, 쾨쾨한 냄새를 풍기는 벽지로 변하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지 않았을까. 정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는 정말로 새 벽지를 바를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가. 그냥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대충 더러운 것들이 보이지 않게만 가리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새 벽지 안 쪽에 얼마나 많은 낡은 벽지들이 존재하고 있는가, 그 썩어버린 벽지들이 새 벽지까지 썩게 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뉴스를 보기가 싫어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꼴은 알아야지 하고 보다보면 낡은 벽지에서 스며나오는 그 더러움이 새 벽지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만들어버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눅눅해진다. 마음이... 그러면 안되는데... 이제는 정말로 깨끗이 긁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벽지를 발라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이재무의 시집... 어쩌면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쓴 시들이기도 하겠지만, 낡음을 제거하지 않고, 낡음 위에 덧붙여진 새로움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보여주는 시들도 상당수 있으니... 세월은 우리 육체를 늙어가게 하겠지만, 반대로 우리의 정신은 더욱 젊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시집을 읽으며 그래야 한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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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상상력
조윤경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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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변해가는 시대.

 

보편성이라는 말보다는 개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대.

 

그래서 함께 한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무엇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지금. 과거와는 분명 다른 모습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우리는 새로운 문화라고 하고, 또 그러한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새로운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과거와 단절을 해야 하지만, 또 그 단절이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단절이어서 그렇다.

 

그냥 허공에 붕 떠있는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에 받을 딛고 있는 그러나 눈을 하늘을 바라보는, 과거를 딛고 현재에서 미래를 실현하는 그러한 상상력.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상상력. 하여 그것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상상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상상력은 늘 새롭다. 굳이 새롭다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지만, 새로운 문화를 강조하는 의미에서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런 새로운 문화는 우선 혼종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문화를 창출해내고 있으며, 한 곳에 정착하는 정착민의 문화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목민의 문화를 생성해내고, 다양한 매체들을 십분 활용하여 그 매체에 맞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그런 문화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아가면 더 의미가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지구촌, 세계화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한 나라 안에서만 문화가 향유될 수 없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일이니, 이제 문화는 어느 한 곳에 머무는 문화가 아니라, 세계인들이 각자 따로따로 문화를 만들어내고 향유하고 있지만, 그것이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함께 하는 문화가 되는 시대.

 

그래서 문화는 유목민의 문화가 되는 시대다. 싸이의 노래를 보라.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그 노래는 우리말로 불려졌지만,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는 노래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따로 또 같이'의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순수한 예술 장르에만 국한된 예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술과 음악의 접합, 미술과 문학의 접합, 만화와 영화의 접합 등등 많은 장르들이 서로 넘나듦으로서 자신들의 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러한 풍요로움에는 매체의 발달, 과학기술의 발달이 한 몫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려는 노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4부에서는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해온 사람들과 한 인터뷰가 실려 있다.

 

고 장영희 교수에서부터 컬러리스트 한승희, 게임 아트디렉터 장홍주, 그래피티 아티스트 JNJCREW, 생태주의 뮤직 퍼포먼스 노리단, 아티스트 김치샐러드까지... 특이한 활동, 또는 정통적인 활동을 한 사람들과 한 이야기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이제는 기술의 시대를 넘어 문화의 시대가 되었다. 그것도 전세계가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의 시대. 그렇다고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버려서는 안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하라.

 

어쩌면 이 말이 지금 새로운 문화에 맞는 말이기도 하리라. 따로따로 가지만, 결국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문화. 그러한 문화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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