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37
맹문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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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읽는다. 사실 시 읽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도대체 시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 땅에서 시인을 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에 시를 쓸테니...

 

서점에서 시집을 전시해놓은 장소가 점점 줄어들더니 요즘은 시집 찾기 힘들고, 따라서 새롭게 시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조차 힘든 때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예전에는 시집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이 꽤 있었다. 지금까지도 시집을 편찬해내는 창비와 문지를 비롯해서 실천문학사, 민음사, 문학동네, 미래사 등등...

 

그럼에도 이런 출판사들의 시집들조차도 서점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힘드니, 다른 출판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또 이름없는 시인들의 시집이야 더할 나위 없이 전시되기 힘든 노릇이다.

 

예전에 사놓은 시집들을 가끔 들춰본다. 새롭게 읽을거리가 떨어졌거나, 아니면 머리가 무거워 무언가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 이 시집, 저 시집을 뒤척거리는데...

 

그만큼 시집은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그래서 늘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 좋은, 또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시집이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를 보자.

 

물고기에게 배우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사, 2002년. 15쪽

 

아마도 시의 화자는 몸이 아프기보다는 마음이 아팠으리라. 그간 세파에 찌들리고,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아온 나날들 속에 마음은 지치고, 이런 상태에서 몸 역시 좋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그는 잠시 개울가로 쉬러 나온다. 의식적으로 쉬러 나왔든지, 아니면 우연히 개울에 머무리게 되었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의 화자가 잠시 쉴 틈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쉴 틈,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여유가 된다. 그 여유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쉼은 활동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개울 속... 물은 나를 비추는 거울 역할도 한다. 이 시에서는 단순한 물이 아니다. 물 속 세상이다. 물 속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고기들이다. 그 물고기들이 나를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

 

물고기들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다. 물 속엔 길도 없는데, 그들은 한 번의 부딪힘도 없이, 서로 갈등도 없이, 또 죽어라고 먹이만을 쫓지도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자기 길을 가되, 그 길을 남겨두고 그 길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름인지, 내 길만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없다. 또한 그들 세상에선 정당한 길은 없다. 모든 길이 정당하다. 그리고 그 길은 간 다음에는 지워진다. 지워져야 한다. 지워지지 않고 남겨져 있으면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옳음을 주장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기에.

 

갑자기 내가 살아온 길이 생각난다.

 

'약한 자의 발자국'

 

약한 자들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또한 그 길만이 옳다고 주장한 적은 없었던가. 약한 자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길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던가. 그래서 자꾸 슬픔만을 남겨 놓지 않았던가.

 

발자국은 길이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자고 했지만, 사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만의 길이 아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이 모두 길이다.

 

그래서 내가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되고, 그 길은 나만의 길이고, 또 그 때의 길일 뿐이라는 사실.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길로 얽매여진 삶이 아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또한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광장이 나온다. 그것을 물고기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시다. 그래, 어쩌면 집착에 빠져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무엇만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정답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것이 어디 숨어있어서 그 숨어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예전에는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답이란 만들어가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 시는 마음에 쏙 들어온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비슷하지.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게 바로 시의 효용성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기도 하고.

 

이런 마음을 가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하여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플라스틱 스티로폼 시멘트말고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처럼 창창하게

살았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발표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은 살았을 한 그루의 나무가

베어질 것이네

 

그 나무만큼 나의 시가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찼으면 좋겠네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안경이 되고

신발이 되고

부엌칼이 되었으면 좋겠네

 

나의 시가

한 그루의 나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

 

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사, 2002년. 101-102쪽 

 

이런 시 말고도 마음에 와닿은 시가 참 많다. 특히 이 시집의 30쪽에 있는 '풀'이란 시는 김수영의 '풀'에서 나온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는 김수영의 풀이 자꾸 생각나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기도 했으니...

 

더워진다. 시를 읽어보자. 아님 휴가지에서 시집 한 권. 얼마나 좋은가.

 

덧글

 

안타깝게도 이 시집은 품절이라고 나온다. 아마도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을 듯. 굳이 이 시집이 아니어도 좋다. 시들은 서로 서로 통하니, 적어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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