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치료와 문학, 그리고 언어 인문치료총서 8
김익진 외 지음 / 강원대학교출판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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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통해서 치유를 하고, 글을 통해서 치유를 한다. 사실 의식하지 않아도 이는 예전부터 행해오던 일이다. 그것을 글로 정리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요즘은 세상이 하 수상한지 치유, 치료,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치유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사회도 개인도 건강하지 않다는 얘기다.

 

인문학이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한참 되었지만... 단지 인문학의 죽음과 이런 치유가 직접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불안해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들게 지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에 치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치유에 하나 더 보태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인문학을 통한 치료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또 연구되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연구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학의 치유적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치유적 관점에서 본 문학과 개인에 대한 장이 있는데, 이 장에서는 아일랜드 시인인 예이츠와 우리나라 작가인 박완서의 작품을 대상으로 심도 있는 분석을 하고 있다.

 

즉 개인이 개인의 아픔을 글쓰기를 통해서 어떻게 치유해나가고 있는가를 작품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장에서는 문학과 사회적 치유라고 신화를 통해 국가가 또는 민족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지영의 "도가니"라는 소설과 영화 "도가니"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감춰져 왔고, 쉬쉬되어 왔던 장애인 성폭력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회적 치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치유가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고쳐가는데도 문학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어쩌면 중국의 대문호인 루쉰이 직업으로서의 의사를 포기하고 문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야기와 상통하는지도 모른다.

 

루쉰 역시 중국 사회의 병폐를 고치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는 의사로서 중국인 개개인을 고치기보다는 문학을 통해 중국 사회를 고치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바르지 못한 사회를 고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3장의 마지막에 중국 소설을 예로 들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외모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힘들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는 작품들을 통해 고민하고, 치유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4장에서는 창작을 통한 자기 치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5장에서는 결혼이민여성의 글쓰기를 통한 치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글쓰기가 다양한 분야에서 치유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의 모습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리라. 자신을 객관화하면 조금 더 자신의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러한 접근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문학 작품이 치유의 효과를 발휘하는 지점도 바로 이 곳이다. 즉 문학 작품 속의 인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객관화하여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다라서 문학과 언어는 결국 인문학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므로, 이러한 문학과 언어를 통한 치유는 인문치료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좀더 다양한 논의와 깊은 연구가 지속되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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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 무제 때... 남자 사마천 남자의 기능을 상실하다. "사기"를 완성하다

 

죽음보다도 더한 치욕으로 여겨지던 궁형을 선택하다. 그의 정치적 입장과 판단 때문에... 그런 현실에서 그를 지탱한 것은 바로 글쓰기...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 "사기"를 집필하면서, 그를 완성해가면서 그는 자신이 삶도 완성해 가고, 상처도 치유해 가다. 그의 책은 세계에서 기념할 만한 책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막대한 영향을 행사했으며, 그를 태사공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역사서의 전범이 되기도 했던 책. 특히 "사기 열전"은 전기문으로써도 또는 문학작품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 되다. 어쩌면 그가 궁형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치열한 글쓰기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궁형으로 인해 그의 역사서 서술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그는 글쓰기로써 자신을 치유했으며 세상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  

 

이탈리아 파시즘 시절...안토니오 그람시 감옥에 갇히다. "옥중수고"가 나오다

 

안토니오 그람시... 어렸을 때 다쳐서 등이 굽었다는 사내. 덕분에 작은 체구를 지닐 수밖에 없었으며, 활동적이기보다는 사색적이었던 사내. 이탈리아의 발전을 위해서 고민했던 사내.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레닌과는 다른 생각을 지녔던 사내. 이탈리아의 현실을 분석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았으나 세계적인 사람이 되었던 사내. 그리고 무솔리니에 의해 감옥에 갇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던 사내. 그러나 그가 남긴 책. "옥중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80년대에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야 했던 책. 그리고 그의 책에 나오는 숱한 말들. 그 개념들. 사회운동에 지표를 제시해주었던 개념들. 헤게모니, 진지전, 기동전, 수동혁명...

그가 감옥에 갇힌 세월은 지옥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생각을 했으며, 그 생각을 글로 써보냈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버틸 수 있는 힘이었으리라. 그는 글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를 살필 수 있었고, 또 세계를 살필 수 있었으리라.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것도 바로 그의 글 때문이었으니... "옥중수고"가 탄생하게 해준 무솔리니에게 감사해야 하나? 참...그의 유명한 말.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행동하라"

 

유신 독재 시절... 신영복 감옥에 가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이루다

 

대학강사로 재직하면서 "청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던 신영복. 어느날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사형 판결을 받다. 사형 판결에서 무기징역으로 다시 20년만에 감형이 되어 석방이 되다. 석방이 되고 난 뒤 성공회대에서 강의하다. 인식론도 존재론도 아닌 이제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관계론을 이야기하다.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지고 짧은 엽서에 보낸 글들은 교과서에도 실리다. 그 중의 대표적인 글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다룬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이고, 또다른 하나는 한명회와 황희를 비교, 대조한 '반구정과 압구정'이다. 그러나 이 글들은 그가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쓴 글들이고, 그를 우리에게 알린 글은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밖으로 써 보낸 글들. 그리 길지 않은 글들 속에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 보낸 글.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그는 온 정신을 집중했으리라.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하여 그의 글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울림을 선사하는데... 단지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치유의 힘을 제공해주었으리라. 그것이 바로 글이고, 사람은 가둘 수 있어도 말은, 글은 가둘 수 없다는 이치를 알려주는 그런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 초창기 멕시코와의 전쟁...소로우 감옥으로 가다. "시민불복종" 탄생하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소로우는 그 전쟁은 정당하지 않다고 반대한다. 그리고 그런 부당한 전쟁에 쓰일 세금을 낼 수 없다고 거부한다. 법을 위반한다. 당당하게... 그 대가로 그는 감옥에 갇힌다. 물론 친척이 세금을 대신 내주어 금방 풀려나오게 되지만... 그는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법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악법도 법이다"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부당한 법은 거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참 이질적이다. 그러나 법을 지키면서 법을 고칠 수 있을까? 영국에 항거했던 간디도 법을 지키면서 법을 바꾸는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벌인 "소금 행진"을 보라. 악법은 어기면서 고쳐야 한다는 사례가 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법은 법이니까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은 가진 자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학교도 보라. 교칙이 점점 완화되는 것은 바로 소위 말하는 날라리들의 행동때문 아니던가. 그런 선구적인 위반들이 있기에 고쳐지지 않는가. 법이니까 지켜라가 아니라, 그 법이 정당한지 아닌지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민주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 아닌가. 소로우는 그를 몸으로 보여주었고, 그런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써냈다. 바로 유명한 "시민불복종".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그도 강호에 가 생활하게 되는데... "월든" 이것이 그를 치유한 힘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은 바로 그 "다름" 때문에 옥에 갇히고 탄압을 받았지만, 바로 그 "다름" 때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건강하게(이는 정신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다름"은 결코 물리적으로 가둘 수 없다. 그것을 가두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이 갇히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역사적인 사례들이 많은데... 

 

이런 다름을 실천한 사람...더 많이 있지만, 네 나라의 이 사람들로 마치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 참으로 답답한 시대...

누군가도 기록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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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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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전통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는 한옥은 시골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으며, 전주에 한옥마을에 한옥이 남아 있고, 서울 북촌에 역시 한옥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로 한옥을 뽑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 이렇게 아파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양식이 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이 지금에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문제라고, 성냥갑이라고 쉽게 비판을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진짜 문제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고 한다. 즉 아파트가 거대한 하나의 집단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스스로 만들어간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는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어느 정도 중산층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에게 거주할 장소를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중산층에게는 단지 살 집만이 아니라, 함께 생활할 다른 공간도 필요했기에, "단지" 중심으로 꾸며진 아파트에는 온갖 문화시설부터 생활의 편리성이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국가나 사회가 공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기반 시설을 마련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국민 개개인에게 미루었기에, 부족한 사회기반을 "단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그래서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자족적인 공간으로 존재하게 되고, 주변 환경과는 동떨어진, 고립된 지역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아파트 단지는 사회의 공간을 단절, 분절시키고 있어서 그것이 더 문제가 되지, 아파트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아파트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를 택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의 심성에 어느 정도 맞기에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것이고, 아파트들이 대표적으로 택하고 있는 남향은 우리나라 기후 조건에 맞는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의 아파트에 부족한 것은 공공성의 확보다. 아니, 단절되고 분절된 삶을 연결하는 일이다.  아파트 단지에 갇혀서 사는데, 이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파트 자체에도 갇혀서 살고 있는 현실이기에...

 

이런 단절을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아파트 단지를 개방형으로 재구획할 수 있어야 하고, 아파트에서는 발코니를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공간인 발코니를 준공적인 영역, 또는 준사적인 영역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발코니의 샤시를 제거하고 개방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발코니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가꾸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면 집의 개성도 살리고, 또 옆집과 교류도 할 수 있는, 또는 지나가는 사람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발코니가 재탄생할 수 있고, 아파트의 단절성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새겨들을 말이다.

 

어차피 이제 아파트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파트를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장소로 확보하는 일이다. 나무형 구조로(단선적이고 일방적인 움직임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루어진 아파트 단지를 그물형 구조(복잡하고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구조, 따라서 우연적인 만남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주차장을 없애고 보행로를 만들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만든 단지도 있는데, 이것도 공공영역으로 만들어내는 한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 아파트 단지가 외부에 개방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꿀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고.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이 의식적이든, 우연이든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도처에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필연성과 우연성이 중첩될 수 있는 구조, 그러한 도시 계획. 그것이 필요하다.

 

거리가 직선으로만, 일방으로만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거리는 우연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거리와 아파트 단지가 긴밀하게 연결이 된다면 우리가 굳이 아파트가 문제라고 할 이유는 없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의 접속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로 개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제안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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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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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축가를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건축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 곁에 없기도 하다. 적어도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정기용이라는 이름은 승효상의 책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건축의 공공성을 추구한 건축가라고. 그가 안타깝게도 2011년 세상을 떠났다고, 승효상이 너무도 안타까워 하는 구절을 읽고, 정기용이라는 사람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건축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무엇이 좋은 건축이고 무엇이 좋지 않은 건축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눈을 편안하게, 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건축물이 있고, 무언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편하게 하는 건축물이 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기용이 생각하는 건축은 단지 건축물로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 건축은 관계의 문제이며, 장소의 문제이고, 기억의 문제이다. 즉 건축은 건축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땅과 하늘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건축의 공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통하여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서울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건축가의 눈으로 본 서울 이야기가 된다. 결코 토목이 아니다. 그가 진저리치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 사업을 읽어 보라. 토목과 건축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청계천을 그는 인공 분수라고 한다.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강제로 물을 길어올리고 있으며, 하천의 자연적 지형을 무시하고 콘크리트로 직선화한 청계천. 진짜 청계천은 그 물 밑에 존재하고 있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개발을 한 대표적인 사례. 이것이 바로 토목이다.

 

하여 서울은 토목이 기승을 부린 도시가 되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안중에도 없으며, 서울을 툴러싸고 있는 산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으며,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강의 본성을 죽여놓고 있고, 자동차에게 서울의 길을 내주어, 사람들의 생활은 묻혀버리고 있으며,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살아왔던 역사성, 기억은 막개발과 볼품없이 올라가는 아파트나 대형건물들에의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더하여 그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서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에 미군기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현실. 그 공간을 서울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그 곳에는 대형 건물이 아니라 바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그런 공원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주장. 정말 귀기울여 들을 만한  주장이다.

 

여기에 중앙박물관과 예술의 전당 등 문화를 담당하는 건물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이야기가 되고 있어서 문화도시로서의 서울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건축가들이 건축을 통해 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정기용의 책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건축에 대해서, 왜 토목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서, 그리고 서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예전 서울의 모습을 다룬 사진과 지금의 서울을 다룬 사진들. 이런 것들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우리가 서울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해주고도 있다.

 

비단 서울만이 아니다. 모든 도시를 계획할 때, 또는 도시에 무언가 건축을 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참조하게 해주는 책이다.

 

서울, 상당히 유서 깊은 도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들이 중첩되어 있는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건축을 통해서 또다른 기억들을 중첩시켜 나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건축가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이 책은 깨우쳐 주고 있다. 그래야 우리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정기용.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게 하는 건축가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축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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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나날들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사진.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저작권이 하도 심하다 하니, 사진을 올리지는 않겠지만,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누워 있는 사람들. 포크레인 삽날 속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 주로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렇게 누워 있는데, 멀치에는 새파랗게 젊은 경찰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고, 한전 직원이란 사람들이 역시 무표정하게 서 있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인데, 그들 사이의 거리가 왜 그렇게도 멀게 느껴지는 걸까?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가 될까?

 

독재시대와 민주화시대의 거리가 될까? 이미 우리는 민주화가 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양 송전탑 문제에서 왜 자꾸 과거의 망상이 떠오르고, 어떤 기시감마저 느껴질까...

 

가까이는 제주 강정마을이 떠오르고, 조금 더 멀게 가면 용산참사, 쌍용차 문제, 한진중공업 문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 평택 대추리, 그리고 매향리...

 

어떻게 지금 시대를 "폭력과 광기의 나날"들이 연속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나?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고 해서 노조 인정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이것이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한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 아니냐고 국가인권위에 제소를 했는데, 인권위에서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볼 수 없다고 하고, 세계노동기구에서는 이것은 명백한 탄압이라고 그런 조치를 철회하라는 권고문을 보내오기도 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승하의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라는 시집을 다시 펼쳤다. 지금이 그러한 시대라고 생각했으므로. 사진과 시가 어우러진 시집이다. 그 사진들이 과거의 사진이라고, 이 시집은 이미 지나간 시절을 노래했다고만 할 수 없으니... 시집 속의 사진들이 마치 지금의 일이라도 되는 양 살아서 움직인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더불어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도 함께 펼쳐보게 되었다.

 

자꾸 이런 시집으로 손이 가게 한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사진은 기억하게도 한다. 그 기억은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움직이게도 한다. 그러니 이승하의 시집 속에서 사진은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브레히트의 시집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시 살아나 움직이기도 한다.

 

하, 이런 "폭력과 광기의 나날"들을 보내고 희망을 노래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나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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