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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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축가를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건축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 곁에 없기도 하다. 적어도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정기용이라는 이름은 승효상의 책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건축의 공공성을 추구한 건축가라고. 그가 안타깝게도 2011년 세상을 떠났다고, 승효상이 너무도 안타까워 하는 구절을 읽고, 정기용이라는 사람의 책을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건축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무엇이 좋은 건축이고 무엇이 좋지 않은 건축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눈을 편안하게, 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건축물이 있고, 무언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편하게 하는 건축물이 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기용이 생각하는 건축은 단지 건축물로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 건축은 관계의 문제이며, 장소의 문제이고, 기억의 문제이다. 즉 건축은 건축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땅과 하늘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건축의 공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통하여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서울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건축가의 눈으로 본 서울 이야기가 된다. 결코 토목이 아니다. 그가 진저리치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 사업을 읽어 보라. 토목과 건축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 청계천을 그는 인공 분수라고 한다.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강제로 물을 길어올리고 있으며, 하천의 자연적 지형을 무시하고 콘크리트로 직선화한 청계천. 진짜 청계천은 그 물 밑에 존재하고 있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개발을 한 대표적인 사례. 이것이 바로 토목이다.

 

하여 서울은 토목이 기승을 부린 도시가 되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안중에도 없으며, 서울을 툴러싸고 있는 산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으며,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강의 본성을 죽여놓고 있고, 자동차에게 서울의 길을 내주어, 사람들의 생활은 묻혀버리고 있으며,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살아왔던 역사성, 기억은 막개발과 볼품없이 올라가는 아파트나 대형건물들에의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더하여 그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서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에 미군기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현실. 그 공간을 서울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그 곳에는 대형 건물이 아니라 바로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그런 공원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주장. 정말 귀기울여 들을 만한  주장이다.

 

여기에 중앙박물관과 예술의 전당 등 문화를 담당하는 건물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이야기가 되고 있어서 문화도시로서의 서울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건축가들이 건축을 통해 문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정기용의 책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건축에 대해서, 왜 토목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서, 그리고 서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예전 서울의 모습을 다룬 사진과 지금의 서울을 다룬 사진들. 이런 것들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우리가 서울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해주고도 있다.

 

비단 서울만이 아니다. 모든 도시를 계획할 때, 또는 도시에 무언가 건축을 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참조하게 해주는 책이다.

 

서울, 상당히 유서 깊은 도시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들이 중첩되어 있는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건축을 통해서 또다른 기억들을 중첩시켜 나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건축가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이 책은 깨우쳐 주고 있다. 그래야 우리 문화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음을... 

 

정기용.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게 하는 건축가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축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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