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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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폭력에 관한 책이다. 만화책이라고 해야 옳다. 만화를 통해서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서 경각심을 주려고 하는 책이니 말이다.

 

물론 뒷부분에는 글이 있어서 온전히 만화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를 이루는 것이 만화고, 만화를 통해서 더 쉽게 우리에게 성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여기서 남자는 모두 악어로 그려지고 있다. 여자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사람으로 그려진 여자들이 남자가 성폭력을 쓰는 것처럼, 또는 그를 정당화하는 말과 비슷한 말을 할 때는 초록색으로 대사가 칠해져 있다.

 

악어와 초록색은 모두 성폭력을 가하거나 정당화하는 모습을 나타내는데, 모든 남자를 악어로 표현한 것에서 논란이 되었나 보다.

 

그런데 이는 별로 논란이 될 거리가 없다. 이 책의 뒷부분에도 나오지만 남자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또 성폭력을 가하는 남자들만 악어로 표현하면 자신들을 사람으로 표현된 남자에 마음을 주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들의 공감 능력을 살리기 위해 모든 남자들을 악어로 표현하면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악어에 공감하기보다는 사람으로 표현된 여성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장치인데, 이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신이 어디에 공감하는지, 어느 처지에서 생각해봐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사회에서 강자다. 그리고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또 행동 하나하나가 성폭력에 해당할 수도 있다. 자신들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성폭력일 때가 많다.

 

자신의 행동을 여성들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그렇게 믿어버리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어'로 표현된 남자들을 보며 나도 혹시 악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차분히 되돌아 보면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선진국이라는, 그것도 예의를 잘 갖처었다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만화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강자인 남성이 여성에게 또 성소수자에게 알게모르게 성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

 

아주 다양한 성폭력의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 이 중에는 이것이 성폭력일 수가 있나 싶은 것도 있지만, 아니다. 더 생각해 보면 그것은 명백한 성폭력이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또 상대방의 의사를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행동하는 것이 성폭력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성폭력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고, 더 나아가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과연 나도 '악어'일까? '악어'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이 책을 읽어보자. 도대체 어떤 행동이 나를 '악어'로 만드는지 잘 알 수 있어서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은 '악어 프로젝트'지만 실질적인 제목은 '악어 방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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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옷을 입은 구름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0
이은봉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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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 하면 무언가 사회변혁을 꿈꾸는 그런 내용의 책들이 많았다. 출판사 이름에도 '실천'이 들어가지 않는가.

 

그래서 실천문학사 시집하면 왠지 사회 비판이나 사회 변혁의 내용이 많이 담겨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80년대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시집들이 했던 역할, 그 출판사에서 펴냈던 책들이 했던 역할이 이렇게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이은봉의 이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도 그런 생각에서 구입을 한 시집이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지 않은가. '걸레옷을 입은 구름'이라니.

 

분명 환경, 생태를 다룬 시들이 많을 것이야. 그걸 토대로 우리 삶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는 시들이 많겠지 라는 생각을 지니고 읽었는데... 웬걸, 아니다. 잘못 짚었다.

 

사회 비판이라기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꽃, 나무들에 대해서 따스한 감성을 지니고 바라본 내용들의 시가 많다.

 

그야말로 비판을 앞세우지 않고 따스한 시선을 따라가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 역시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하는 시들이 이 시집 도처에서 보인다.

 

그래서 제목도 꽃이름들이 많고 나무들도 많이 등장하고 한다. 조금은 실망하다가 좀더 생각해 보니, 70-80년대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환경주의자, 생태주의자로 바뀌는 모습들,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민노당, 정의당 이런 정당들 말고 녹색당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

 

생태와 운동이 따로 갈 필요는 없지만 생태를 도외시한 운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 중에 주변의 작은 것들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는 점이 - 예를 들면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를 보라 - 이 시집을 다시 보게 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주변의 '작고 하찮고 쓸쓸한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일,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 자세라면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일테니 말이다. 생태에 대한 관심이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따스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따스한 온기를 퍼뜨림으로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따스함을 지니는데, 어떻게 사회의 비리에 눈감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회의 비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비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바꿔가는 모습,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전파되어 가게 하는 모습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 시집이다.

 

그 정점은 바로 자신의 몸에 사는 미생물들, 세균들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일 아닐까 싶다. 세상에 나와 연관되지 않은 것들은 없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 시인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셋집

 

  내 몸에도 세 들어 사는 놈들 있구나

  그렇구나 내게도 세 내어줄 집 있구나

 

  발가락에, 사타구니에, 겨드랑이에 빌붙어 마음대로 번식하는 박테리아야 바이러스야 자잘한 세균아

  내 몸 이곳저곳을 떠돌며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녀석아

  위장에, 간장에, 허파에 멋대로 터 잡고 불쑥불쑥 증식하는 박테리아야 바이러스야 쪼잔한 병균아

  내 몸 이곳저곳을 떠돌며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자식아

  내 피는 탁하다 칙칙하다 더럽다

  별별 욕망이 다 녹아 있는 공중변소의 변기처럼 역겹다

  수도 없이 피 맛을 보아온 너희들도 잘 알리라

  너희들 역시 생명이기는 하잖니

  셋돈 한 푼 받지 않고 살 집 내어주었으니 주인치고는 인심 한번 좋구나

  셋집 주인의 권리쯤은 제발 좀 인정해주거라 행여 집주인까지 쫓아낼 생각은 말거라

 

  내 몸에도 세 들어 사는 놈들 있구나

  아싸, 내게도 세 내어줄 집 있구나.

 

이은봉, 걸레옷을 입은 구름, 실천문학사, 2013년.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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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7-2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는 `비봉사`에서 나온 정치철학책들을 봤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나보다는 남을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시민의식이 많이 늘어났다고 저만 느끼는 것인지는 모겠지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kinye91 2016-07-23 14:44   좋아요 1 | URL
이 시민의식의 성장이 어쩌면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87년 이후 민주화로 얻어진 헌법이 이제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좀더 나은 사회를 위해 헌법도 개정하자 이런 논의를 사회 일각에서 시민단체에서 했고, 이를 정치권이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해요. 이런 것이 바로 사회에 대한 `따스한 시선`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기도 하고요.

겨울호랑이 2016-07-2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영에서 `복리효과` 또는 `스노우볼 효과`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의 변화도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다소 엉쭝하게도「드래곤 볼」에 나오는 `원기옥`도 생각나네요. 온 우주의 에너지를 조금씩 모으는.. ㅋ kinye91님 글 읽으니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우디, 공간의 환상 다빈치 art 5
안토니 가우디 지음, 이종석 옮김 / 다빈치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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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우디 건축은 놀랍다. 보통에서 벗어나 있다. 특히 외관에서 드러나는 변화는 다른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점이 많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외관만이 아니라 내부도 그렇다는 것이다. 내부도 직선을 거부하고 곡선을 활용하고 있으며, 외관의 빛 못지 않게 내부의 빛에도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다.

 

가우디 건축의 외부야 사진을 통해서 많이 보아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인데, 그가 지은 건물의 내부는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냥 짐작만 할 따름이다. 그것도 사진을 보면서.

 

이 책은 가우디 건축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다른 책에 비해 깊이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가우디 건축의 외부, 내부에 대한 사진만은 원없이 볼 수 있다.

 

여기다 가우디 자신이 건축에 대해 한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점 하고.

 

단지 그가 외관을 멋있게만 하려고 했을까? 그렇다면 그 건축가는 당대에 이름이 있을지 모르지만 금세 잊혀지고 말았으리라.

 

그는 공간에 대해서 고민을 했으며, 건축은 종합예술이라는 점, 분석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고, 그러한 건축에는 빛의 발현에 유의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건축에 관한 가우디의 이론이 이 책에 담겨 있으며, 그것을 그의 건축을 통해서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통해서 외관과 내부, 장식 그리고 빛의 조화까지 종합적으로 건축에서 발현되는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데...

 

가히 환상적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그의 건축물을 보면, 과연 이 시대의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도 수많은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는 이 때 과연 우리나라의 특성을 살린 - 가우디의 기본 신조는 건축재료는 그 지방에서 나온 것이라야 한다이다. 이 말을 확장하면 건축물은 그 지방의 역사, 문화를 표현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안목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몇백 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감탄을 줄 수 있는 건축, 그런 건축을 우리도 예전에는 가지지 않았던가. 그것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도, 미래도 충분히 가능함을 가우디의 이 책이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건축가들이 우리나라에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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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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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이라고 유명해진 소설이다. 나온 지가 한참 되었는데, 제법 읽혔음에도 외국에서 상을 한 번 받으니 다시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든 소설이다. 

 

한강이 쓴 소설을 읽은 것은 "소년이 온다"가 처음이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설. 그 많은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한 소설들이 나왔음에도 한강 소설은 나름의 독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관점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것. 그런 느낌을 바로 이 소설에서도 받았다.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세 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제목이 다른 단편들이 모여 있지만 내용이 연결이 된다. 연작소설이라지만 작은 소제목을 지닌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다만, "소년이 온다"와 비슷하게 사건마다 주인공이 다르다. 즉, 한 인물과 얽힌 사건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소설은 바로 "영혜"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렇다고 "영혜"가 주인공이 된 적은 없다. "영혜"를 둘러싼 인물들이 때로는 서술자로 때로는 주인공으로 등장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는 "영혜"를 빼놓으면 안된다.

 

"영혜"가 실질적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소설인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이 서술자이자 주인공이다. 어느날 갑자기 채식주의를 선언한 영혜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

 

그 남편은 우리나라 보통사람을 대표한다. 적당히 속물적이고 적당히 가정적이고, 적당히 남을 의식하는 결코 튀지 않으려 하는, 그렇다고 다름을 인정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가 '채식주의'를 선언한 것은 일탈이다. 보통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는 그것을 참을 수 없다. 자신의 영역에서 아내가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름을 포용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영역만을 고수하며 그 영역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배제해야만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영혜의 남편이다. (그가 이러한 보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영혜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을 의식하는 모습에서 너무도 잘 드러난다. 그에게 자신의 아내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관습, 즉 보통의 삶에서 일탈한 것이고,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런 배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는 처가를 동원한다. 장모와 처형. 이들에게 아내의 채식이 일탈임을,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압력을 넣으라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영혜는 자해로 병원에 가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둘은 결국 이혼하게 된다.

 

보통사람들에게 무언가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영역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지점에서 두 번째 소설이 등장한다. 이 소설 '몽고반점'에서는 바로 보통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변화해가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바로 영혜의 형부.

 

그는 예술가다. 요즘 말로 하면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예술가였다. 사회에서 보통에 가까운, 사회를 거스르는 것 같지만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하는 극히 정상으로 보이는, 보통 예술가.

 

그가 어느 순간 아내에게서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극히 개인적인 예술적 영감.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예술적 영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는 자신이 고수하고 있던 영역에서 나와야 한다.

 

그 영역에서 나옴은 일상의 규범에서 나와야 함을 의미하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를 포기할 때만 가능해진다.

 

함께 예술하는 후배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그는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고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려 서로 교합하면서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는다.

 

규범에 얽매인 것이 아닌 규범을 초월해 개인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예술. 그것이 순수함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술이라고 해도 (이런 점에서 어른이 되어도 몽고반점을 지니고 있는 영혜는 순수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는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 순수에 충격을 받아 그 세계로 들어서는 예술가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예술이 과연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끼?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영혜가 다시 정신병원에 가고, 그가 가정에서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이 상황에서 소설은 '나무 불꽃'으로 간다. 가장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영혜의 언니. 그는 동생은 이혼당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한 남편과 헤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혈육이라는 이유로 영혜를 돌본다.

 

영혜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받아들이려 한다. 받아들이려 하지만 영혜의 언니는 정상인의 관점에서 영혜를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한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하고, 그 영역을 지키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 바로 영혜의 언니다. 그런데, 그런 삶이 의미가 있을끼?

 

자신의 삶은 보통의 틀에 갇혀 버린, 남의 시선에 스스로를 가둔 삶이지 않았을까 하는 깨달음, 그런 깨달음을 영혜를 통해서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 자신의 틀을 깰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영혜의 언니인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삶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삶에 거리를 두고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은 자신의 영역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다름을 무조건 배제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껴안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한 사회다.

 

채식주의자를 통해서 다르다는 것이 어떻게 배제되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런 배제가 우리 삶 전반에 걸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혜나 영혜의 형부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당한다. 그렇게 배제하는 사람이 자신을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영혜의 남편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모습, 이것이 이 소설의 앞 두 소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세 번째 소설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기. 자신의 영역을 다르게 보기. 그래서 자신의 삶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여기까지 소설은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뿐일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서는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더 많은 정리가 필요한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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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캐슬린 배리 지음, 정금나.김은정 옮김 / 삼인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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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라고 할 수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내가 잘 알고 있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몇 권의 책을 읽기는 했지만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그들마다 주장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매춘이 아닐까 싶다. 매춘을 허용하느냐 마느냐로 페미니즘 진영도 갈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내 착각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매춘에 관해서는 페미니즘 집단 내에서도 상당히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니)

 

한 때 여성들이 성매매 하는 것을 성노동이라고,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성노동자라고 하고, 그들이 자신이 가진 유일한 노동력(?)인 몸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니 그것을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여성 성노동자가 자신들도 노동자라고 성노동을 인정하라고 얼굴을 가리고(가릴 수밖에 없다) 시위를 하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용하는 것은 폭행이나 착취가 아니니 이런 경우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 자신의 몸을 파는 길 이외에는 도무지 생계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그것을 법으로 막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생각을 하기도 했다?에서 그쳐야 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생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자유의지로 하는 행위인가? 공동체의 선을 해치는 개인의 자유가 과연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성을 파는 행위는 자신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행위다.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다루는 행위는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인격, 인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테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대다수의 사람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이런 환경을 만든 사회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몸이, 성이 상품이 되면 이것이 다른 면에서도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즉 광범위한 성의 상품화가 일어나는 것이고, 이런 성의 상품화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나 국가, 또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을 방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춘이 일어나는 이유는 구매자가 있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사례들을 보면 매춘활동을 한 여성은 처벌을 받았어도 성을 구매한 남성이 처벌을 받은 경우는 별로 없으며, 매춘 활동을 강제한 포주들도 가벼운 처벌을 받았음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자유의지로 인한 매춘을 허용한다는 논리는 구매자의 욕구를 그대로 따르는 논리일 수 있고, 성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무시하게 된다는 얘기다.

 

더하여 성의 상품화는 곧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게 만들 가능성이 많으니, 그야말로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자연스레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거의 400쪽에 걸쳐 성의 상품화를 비판하고, 그런 사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상에 자발적인 성 판매는 없다는 것, 그리고 성을 구매하는 사람을 먼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점, 그것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던 점... 우리나라 사례도 참 많이도 나온다는 것. 그 유명한 기생관광에 미군부대 주변의 기지촌까지... 그럼에도 우리는 성의 상품화에 대해서, 이런 매춘에 대해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운 적이 있었던가 하는 부끄러움.

 

사회지도층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툭하면 성희롱, 성추행을 하고 있는 현실은 그들의 의식 속에 이러한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부끄러움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 두 가지, 그것만은 명심하자.

 

세상에 자발적인 성 판매는 없다. 그것은 사회적 선(善)이 아니다. 그 다음에 성판매자보다는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이 더 엄격해야 한다. 구매가 있으니 판매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매자는 대부분 판매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처벌에 관대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성매매, 이건 없앨 수 있는 일이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으면서 참 많이도 부끄러웠던 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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