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 한국전쟁과 이승만의 거대한 적들 이야기
신기철 지음 / 인권평화연구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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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억울한 죽음들이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죽음들, 그 자식들 대에까지 고통이 전가되는 죽음들.

 

우리나라에서 이런 죽음은 주로 좌익이라는 말과 연결이 된다. 좌익이라는 말로 죽음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좌익은 곧 빨갱이고, 빨갱이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암적 존재이기 때문에 도려내야 한다. 이렇게 몇 해 전에, 지금 탄핵소추를 당해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검찰조사와 특검 조사를 받아야 하는 박근혜 정권에서도 한 정당을 해산했다. 좌파라고.

 

그 정당의 해산 과정에서 이상하게 50년대의 진보당 해산 사건을 보는 듯했으며,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의 죽음이 연상되었는데... 그럼에도 정당해산은 강행이 되었고, 지금은 그것을 주도했던 정권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국민들이 좌익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고도 한다. 이 정권이 몇몇의 농간에 농단당했음에 다른 이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을 하는지...

 

이 책에서는 이런 억울한 죽음들이, 그러나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죽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은 진실이 많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긴 김구와 여운형 같이 유명한 정치인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도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으니, 이들보다 지명도가 약한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기는 더욱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자료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소중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이런 노력의 결과를 어느 정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후 좌익계열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학살당한 사람 이현열, 박세열과

국군이 정비되기 전에 주로 김구와 가까웠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이들은 좌익이 아니었음에도 좌익이라는 혐의를 받고 학살당한 전호극, 이상규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지만 해방후에 억울하게 학살당한 박원근, 오홍탁, 어수갑과

전쟁 시기 어쩔 수 없이 남아서 살기 위해 해야 했던 일 때문에 학살당한 이봉린, 이하영, 전재흥.

이렇게 열 명으로 이 당시의 반인권적 학살을 고발하고 있다.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억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규명될 때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로 서는 것 아니겠는가. 국정교과서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읽으면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니, 그것도 죽이기 참 편한 전가의 보도가 있었다니. 이 전가의 보도가 지금도 남아 있어서 가끔 우리에게 휘둘러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좌익은 빨갱이고, 종북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런 칼을 휘두르면 위축된다. 무언가 비판을 하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데는 이만한 칼도 없다. 이것이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지속된 행위고, 이런 행위가 트라우마로 우리 국민들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국가가 진실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 이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트라우마가 극복될 수 있다.

 

그때서야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반성과 사죄가 없는 화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억울한 죽음, 빙산의 일각만 밝혀졌다. 그나마 진실을 밝히려는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유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규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또 어떤 면에서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감추고 있기 때문에 유족들이 더 힘들게 진실 규명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하나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진실이라는 빛을 어둠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아무리 캄캄해도 결국 빛에 의해 물러가게 되어 있으니.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당한 죽음들, 이제는 진실이 밝혀지고 국가는 그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화해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이 책이 그렇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이 책이 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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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야록 -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개화와 망국의 역사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2
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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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鳥獸哀鳴海嶽瀕 / 槿花世界己沈淪 / 秋燈掩券懷千古 / 難作人間識字人) 

 

첫구의 瀕자룰 대부분 嚬자로 쓰고 있던데, 이 책에서는 이 瀕자를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뜻을 보면 이 嚬자가 맞을 듯한데... 457쪽.)

 

이게 남 얘긴가? 먼 과거의 이야기인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전 한 지식인이 죽기 전에 쓴 시인데, 이 시가 지금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까닭은?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소위 식자(識字)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마치 자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이 지내고 있으니.

 

소위 글자를 안다고 하는 사람, 배운 사람, 지식인의 책무란 무엇인가? 사회가 이 지경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고 말해야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것이 글을 아는 사람의 힘듦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상대를 비판하는 지식인은 많이 보아도 이 지경까지 이른 책임을 지겠다는, 또는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선언을 한 지식인을 보지 못했다.

 

지식인들이 지식팔이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글을 아느 것에 대한 책무를 다시금 일깨워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날들이다.

 

이 지점에서 황현의 매천야록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시골에 내려가 살고 있던 선비, 나라에서 그다지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없는 선비가 그럼에도 자신이 선비로 글을 읽고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나라가 망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막지도 못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지식팔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책임은커녕 나라의 혼란을, 나라의 망해감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이용한 지식팔이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들이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면서 살고 있으면서 역사에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있으니.

 

그러나 그 와중에도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꼭 있다. 황현도 마찬가지다. 그는 고종1년부터 대한제국이 망하는 날까지의 역사를 기록해 놓기로 한다.

 

후대에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기억 속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미래를 살아가는 방법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 하나하나는 지식인의 책무를 이행한 것이 된다.

 

그리고 합방이 된 후, 그는 자신의 글 아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위에 언급한 절명시는 그 중의 일부다.

 

시골에 내려가 신문이나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인데, 사실관계가 다른 것도 있긴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책이다.

 

정말 지금 이런 모습이 과거에도 있었음을 읽게 되고 씁쓸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데, 구한말이라고 하는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한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그가 기록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방대한 내용을 편역자가 중요한 사항으로 발췌하여 정리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읽기도 편하고, 역사적 사실을 간략하게 잘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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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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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제목을 보면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게 나랴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아마도 긴 세월을 또다시 한탄 속에서 보내야 하리라.

 

그러니 '리셋"이란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는데...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리셋은 현실부정에 불과하다. 무언가 새로움을 추구한다기보다는 현실이 너무도 암울하니, 차라리 이런 현실을 싹 엎어버리고 싶다는 말이 바로 "리셋"이다.

 

그러므로 "리셋"은 "혁명"과는 다른 개념으로 쓰인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리셋"은 부정적인 의미로 "혁명"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리셋과 혁명은 다르다. 순전히 이념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혁명가들이 민중 혹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리셋은 철저한 파괴를 주장한다. 혁명이 '천년왕국'적이라면 리셋은 '허무주의적 종말론'에 가깝다. ... 혁명이 하나의 '역사성'으로서의 계급투쟁을 꿈꾼다면 리셋은 역사 그 자체의 종식을 원한다.  181-182쪽.

 

이 말에 의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리셋"을 꿈꾸는 사람들은 너무도 현실이 힘들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살기 힘드니 나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망하자고, 같이 망하면 덜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에 리셋을 주장하게 된다.

 

결국 이런 리셋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겐 희망이란 없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존엄을 잃은 곳에서는 더이상 희망은 없다. 상호 연대성도 없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의도적 노력에 의해 '가까스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존엄과 안전이다. 167쪽

 

이렇게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노력들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한 투쟁을 통해서 확보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조금만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해지면 인간의 존엄과 안전은 쉽게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국가로부터 안전한가? 라고 질문을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경주 지진으로 대표되듯이 자연재해로부터도 국가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도 잘 지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예 벼랑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이렇게 벼랑으로 내몰린 우리들은 결국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데, 각자도생의 길은 공동체적 해결을 부정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인적인 노력과 사적인 노력, 공동체적인 노력과 공적인 노력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지금 공동체적인 노력이나 공적인 노력은 사라지고, 오로지 개인적인, 또는 사적인 노력만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인데, 개인적인 노력에는 결국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인간의 기본적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사적인 노력은 어떤 일을 사적으로 해결하는 모습, 그 사적인 것에는 자신의 현재 조건이 바탕이 되므로, 이는 차이와 차별로 나타나고, 이런 사적인 노력을 중시하다보면 공적인 노력은 아예 부정하게 되는 현실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리셋'을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사적인 노력만을 이야기하는 사회인 것이다. 전혀 평등하지 않은데, 평등을 가장하여 책임을 개인의 노력 여하로 전가하는 것, 결코 출발점이나 조건이 같지 않음에도 철저하게 개인으로 해체하여 책임을 묻는 것.

 

그러니 약한 개인은 자꾸만 뒤쳐지고 밀려나고 쫓겨날 수밖에 없음에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데, 지배층에서 이런 무력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을 통치하는데 가장 유용한 방법이 무력한 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에 빠지면 그 다음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진다. ... 한국의 지배계급은 말과 글의 힘을 박살내고 무기력을 통해 통치한다. 175쪽.

 

이런 무력감으로 인해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보다는, 함께 망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리셋'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셋'은 부정에만 머문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혁명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이 확 바뀔 것이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그런 방법은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이종영의 논의를 빌려와 혁명을 두 과정으로 나누고 있다. 확 변하는 혁명I과 그 혁명을 이루어가는 과정인 혁명II로 이야기한다. 이 혁명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

 

혁명은 어떤 순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혁명의 과정에 혁명이 내재해 있음을, 그런 혁명의 과정이 들어있지 않은 혁명은 '리셋'과 다름 없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왜 이 과정이 중요할까? 그것은 이 구절에서 알 수가 있다.

미리 경험해 본 자만이 '이후'를 준비할 수도 있고, 맞이할 수도 있고, 살아갈 수 있도 있다는 점이다. 살아보지 않은 자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봄의 경험이 선순환을 만들 수도 있고, 살아보지 못함의 경험이 완전히 폐쇄적인 악순환의 고리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전환'의 가능성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이후'를 미리 살아볼 수 있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  188쪽.

 

이 말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혁명을 살아야 한다. 혁명을 내 삶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혁명이란 없다. 즉, 내가 춤출 곳을 영원히 찾아 헤매는 곳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내가 춤추고 있어야 한다.

 

춤출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춤추는 곳을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그런 혁명은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힘든 순간이더라도 웃음을 영원히 잃지는 않기 때문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연대할 수 있는 때가 오게 된다. 그런 때를 만드는 것,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변하고, 다가가야 한다.

 

이는 내가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말로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나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함께 망하자고 하지 않는다. 함께 살자고 한다. 함께 가자고 한다. 내 말과 네 말이 만나 새로운 말을 만들게 한다.

 

우리는 말들을 통하여 관계를 형성해가기 때문이다. 이 때 말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말이다. 이 말들을 매개로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사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똑똑한 소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말을 새로운 제안으로 돌려줄 아는 '협력의 기술자'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활성화되고 보호받고 안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시대와 사회에 대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을 위해 활동을 중지하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 바로 활동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우리 존재의 사활이 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9쪽.

 

이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그 관계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력이, 증오보다는 사랑이, 절망보다는 희망이 싹튼다. 이 상태에서는 '리셋'을 꿈꾸기보다는 '혁명'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

 

나만이 아니라 함께... 지금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다. '리셋'이 아닌 '혁명'을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는 '혁명'의 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내 곁에 있는 존재들과 함께... 그런 존재들을 우린 시민이라고 한다. 동료 시민, 시민 동료.

우리 모두는 모든 곳에서 동료 시민이다. 우리가 동료로서 평등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서 있는 법이 같다는 것을 말한다.  212쪽,

두 번째로 동료 시만이 된다는 것은 그들을 나와 같은 행위의 주체, 특히 말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213쪽.

 

이런 동료 시민들... 나는 하나의 점이다.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역시 하나의 점이다. 하나의 점과 점이 광장에서 평등하게 만난다. 이 평등한 만남 속에서 점은 선이 된다. 선들이 모여 면을 이룬다. 거대한 면들이 함께 입체가 된다.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 세상은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이 책의 뒷표지에 있는 말처럼 '멈춘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다. 하나의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때다. 그러므로 이 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나왔다. 세상을 바꿀 가장 좋은 때에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됐는지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분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지만, 문제가 밝혀지면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으니... '리셋'이란 말로 '혁명'이라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혁명'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너무 과격하다고 느낀다면 '개혁'이라고 하자. '변화'라고 하자. 아니면 '진보'라고 하자.

 

우리는 지금 바로 이런 순간에 서 있으니까.

 

덧글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에 응모하여 책을 받고 쓴 서평이다. 지금 상황과 관련지어 제목을 보면서 꼭 책을 읽고 싶었다. 비록 읽지 않고 생각했던 '리셋'의 개념이 내 생각과는 달랐지만, 제목에서 '리셋'이라고 한 것을 '혁명이나 변화, 진보'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다 망하자가 아니라, 함께 살자고 외칠 때이니까... 또 우리는 지금 광장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 책 흥미롭게 잘 읽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다. 생각거리. 말할 거리. 말들과 말들이 만날 수 있게...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에서 싹을 틔워 행위로 나아가게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의 만남.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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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고문이다 10

 - 나오며


치료가 목적일까

아니다, 격리가 목적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어 버리는,

있어도 없는 사람

병은 함께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추방해야 할 범죄이다

그래서 병원은 치료가 아닌 보이지 않게 하는

보통에서 차이를 없애는 방법이다

이것이 푸코가 생각하는 근대 병원이다

그렇다면

병원이 눈에 보이면

병이 있다

병원에 가면 환자가 된다

일리히가 말했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보다 심한 고문이 있을까

내 병의 주체가 의사고, 병원이라니

내 몸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

혹자는 말한다

병원 절대로 가지 마라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닌

의사가 오게 해야 한다고

옛날처럼

주체는 바로 나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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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준 평전 - 통합과 인애의 정신 실천한 민족운동가
박남일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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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장병준이라니...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장병준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아마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나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집안 사람들이 많이 독립운동에 관여했는데, 이렇게 알려지지 않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억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의 뒤에 사진을 보니 장병준이 죽은 뒤 그의 장례를 가족장이 아닌 사회장으로 치렀다.

 

사회장이라 함은 사회를 위해서 일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역시 당대에는 독립운동가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다만 그가 중앙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지방에서 지냈기에, 많이 잊혀졌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 지긋지긋한 중앙주의)

 

물론 그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앞에 나서서 이름을 떨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족을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않고 나섰던 사람.

 

그렇다고 사회주의다 자본주의다라고 진영 논리에 가둘 수 없는 사람. 비록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돈을 민족을 위해서 썼고, 교육 운동에도 투신했고, 그의 사위들 중에서는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했으니... 그에게는 어떤 진영보다는 민족을 위한 길이 무엇일까가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일제시대에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에 그가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고, 전라도 지역, 특히 목포지역에서 그는 신간회가 잘 운영되도록 힘썼다고 한다. 민족독립을 위해서는 좌든 우든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민족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설 수가 없게 흘러갔다. 장병준 역시 마찬가지다.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그는 미군정에서 실시한 과도입법정부에 참여하여 좌우합작을 추진하지만, 남과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전쟁이 나면서 그의 가족 역시 풍비박산된다.  전쟁으로 사위 두 명을 잃었으니...

 

하지만 이승만 독재를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이제 부정선거 규탄에 앞장선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폭로하는 시위에 앞장서는 그는 4,19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산 시위보다도 광주 시위가 더 먼저 일어났다고 하고, 그 시위의 맨 앞에 장병준이 있었다. 사진으로도 남아 있으니...

 

그후 도지사 자리를 마다하고 참의원 선거에 나가 낙선한 다음에는 조용히 물러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으며, 중앙에 진출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음에 더 빨리 잊혀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울 때 알게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사람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꼭 해야할 일이라면 한 사람들. 그리고 그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병준이라는 이름이 낯설기는 하지만, 그처럼 민족을 위해서 일한 사람은 영원히 잊혀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그 이름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독재에 분연히 맞섰던 그... 일제라는 침략자에 맞섰던 그... 그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민족주의자들. 반갑다.  이런 작업이 지속되어 더 많은 잊혀진 민족운동가들이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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