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가 - 그때 그 시절... 노래와 함께 걷는 서울의 추억 서울의 풍경들
이영미 지음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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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이 쓴 "서울은 깊다"라는 책이 자꾸 생각났다. 서울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인지를 역사학자의 눈으로 보여준 책이 "서울은 깊다"라면, 이 책은 대중예술을 연구하는 사람답게 노래로 서울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 문화, 삶을 노래를 통해서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한 장소를 이루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장소에는 사람과 시간과 온갖 유형, 무형의 것들이 모두 함께 하고 있다. 그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든 시간 순서를 두고 존재하든 한 장소에 존재함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이런 시간성과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그 장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서울토박이들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강북에서 태어났고 자랐지만, 지금은 지방에 살고 있듯이, 강남에서 태어나 강남에서 자라고 강남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물론 존재하겠지만, 이들에게는 왠지 '토박이'란 말을 붙이기가 꺼려진다.

 

토박이란 말에는 그 말에 따르는 어떤 역사, 깊이, 문화,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토박이'란 말에는 촌스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도 서울은 고향이다. 빌딩 숲과 자동차 흐름과 콘크리트만이 이 주된 기억으로 남을지라도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곳은 고향이다. 비록 '토박이'란 말을 잘 쓰지 않게 되더라도.

 

'토박이'들이 사라져가면 장소의 깊이도 더 깊어지지 않는다. 그 깊이에 머물다가 자꾸 채워져 깊이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강남이다.

 

이런 반면에 강북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도 같은 서울임에도 '토박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인 이영미 역시 비슷하리라 생각하고.

 

1950-60년대쯤에 강북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아파트나 빌딩숲은 친숙한 공간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골목, 흙, 개울, 한옥이 친숙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들이 지금의 강남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서울토박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골스러움, 촌스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의 일에 불과하고.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서울을 노래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서울이 어떻게 노래에 등장했고, 어떻게 변모해갔는지를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놀라움의 대상이었던 서울이, 외국 취향의 욕구를 대변했던 서울이, 반대로 그것을 성취하자 이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서울생활로 바뀌어가더니, 어쩔 수 없는 서울의 모습, 서울 생활의 환희를 보여주는 노래들이 나오다가, 서울의 복잡한, 살기 어려운 모습까지도 보여주는 그런 노래의 변천사.

 

대중가요(민중가요도 가끔은 나오지만 대중가요에서 다룰 수 없었던 내용을 이야기할 때만 나온다)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과 욕망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일종의 미시사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서울의 깊이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가 있다.

 

여기에 시대순으로 서울을 노래하는 노래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서울의 변화와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변화, 그리고 노래에 나타나는 의식의 변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서 좋다.

 

역시 서울은 깊다. 건축적으로 서울을 살펴도 그렇고, 역사적으로 살펴도 그렇고, 이렇게 노래로 서울을 살펴도 그렇다. 이 깊이가 서울을 좀더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들었으면 더 좋겠는데... 서울의 깊이를 알면 함부로 깊이를 없애는 정책을 펴지는 않을테니, 그런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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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치유 식당 -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심야 치유 식당 1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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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관한 책. 그렇다고 심리학을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심리 치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다고 했지만, 이 상처는 누구나에게 있지만 자신에게는 유일무이한 상처다.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도 아픈, 혼자서는 이겨내기 힘든 그러한 상처다.

 

상처가 무늬가 되고, 그것이 아름다움이 되어 삶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고 하지만, 정작 상처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나 무늬가 아니라 아픔일 뿐이다. 견디기 힘든 아픔, 이 아픔 속에서 헤매다 보면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자신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상처는 곧 아물게 되고, 아문 상처는 무늬로 남아 삶의 결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살 만하다고 말하게 된다.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상처를 이겨냈을 때다. 상처 속에서 헤맬 때, 허우적 거릴 때는 살 만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상처지만, 그 상처를 자신만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없을 때 그때가 가장 힘들다. 자신에게서 조금만 거리를 두어도 별 것 아닌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닌데 할 수 있지만, 이 거리가 쉽게 생기지는 않는다.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신과 의사든, 상담치료사든, 가까운 친구든, 가족이든 누군가가 곁에 있다고 느끼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 함께 하는 것, 특히 함께 무언가를 먹는 것, 그것이 말 그대로 식구(食口)다. 그런 식구들이 모일 수 있는 곳 바로 식당이다.

 

특히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저녁이고, 그러므로 이 책 제목인 심야치유식당은 마음을 다스리는 장소와 시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심리학 책이면서 소설의 형식을 취했기에 그냥 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어도 좋다. 다양한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해도 좋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치유를 하는 주인공 철주에게 감정이입을 해도 좋다.

 

흔히 상처받은 사람들은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거나 삶에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 등장하는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왔던, 그것도 너무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너무도 열심히 살아왔기에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었고, 이들에게 멈춤은 뒤처짐, 낙오를 의미했다. 조금이라도 쉬면 죄책감에 시달리며, 불안감을 느끼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 하던 사람들.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아닌가. "열심히 살아온 당신, 떠나라!"는 광고가 있었는데, 떠날 수 없는, 떠나면 무언가 도태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보통 우리들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을 때 놓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다. 바쁘게 살아왔기에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한데, 이렇게 지내다 문득 결핍된 자신, 상처받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삶에서 무기력을 느끼고, 난 뭔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생각에 무기력,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는 열심히 살아왔던 보통 사람들.

 

이들에게는 달리는 것만큼이나 멈춤이 중요하다는 것, 삶의 의미를 찾은 행위만큼이나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않고 멍 때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 그것을 이 책에서는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삶에서 어떤 의미만을 찾으려고 하는, 오로지 어떤 목표만을 향해 달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삐끗하면서 삶의 회의에 빠지는 것, 슬럼프에 빠지는 것, 자신도 그 원인을 모르고 해결책을 모르는 상태.

 

이때 치유법은 간단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자신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 자신을 놓아주고 그냥 지켜볼 수 있는 것. 혼자 하긴 힘들다. 그래서 지지해주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식당에 들렀던 사람들, 이들에게는 함께 해주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먹어주고 함께 여행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멍석을 전직 정신과 의사가 주도했기에 가능했겠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등장인물 중 어느 한 사람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면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등장인물들이 심야치유식당에서 이렇게 치유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읽는 사람도 치유를 받게 된다. 이게 이 책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 상처 하나쯤은 있다. 누구나 있는 상처가 자신에게는 유일무이한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런 상처를 나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 깨달에서 우리는 상처를 극복하게 되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런 출발점에서 우리를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하고. 너무도 열심히 살아온 당신, 이제는 잠시 멈춰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어라. 그게 바로 삶의 결에 아름다운 무늬 하나를 더하는 길이다.

 

당신에게 어떤 상처가 발현되기 시작한다면 우선 쉬어라. 멈춰라. 그러라는 신호다. 이 책은 그 점을 너무도 잘 알려주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일곱 개의 방"과 같은 형식을 지닌 심리 치유 소설의 형식을 띤 심리학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해도 좋다. 이런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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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에 갇힌 학교


    넓은 운동장을 뛰놀던 아이들도, 벤치에 앉아 먼 미래를 응시하던 아이들도, 재잘재잘 일상을 공유하던 아이들도, 세상이 제 것인 양 으스대던 아이들도, 이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던 건물들도, 나를 따르라, 그러나 나를 밟고 넘어서라고 외치던 교사들도, 모두 가둬버린 성적표. 사각의 틀에, 교육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가둬버린 성적표, 스스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 이 나라 교육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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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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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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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유시민은 자유주의자로 각인되어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던가, 그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이. 어쩌면 그보다 그의 '항소이유서'를 먼저 만났는지도 모른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문장들, 그 문장들은 바로 우리가 겪었던 현대사였다.

 

그런 그가 자유주의자로 다가오게 된 것은 그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다. 국회의원 명패에 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던 때에 한글 이름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도 잘 안 되던 그렇게 보수주의, 형식주의에 갇혀 있던 국회에 그가 자유로운 복장으로 나타난 것.

 

아마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가 복장에서 어느 정도 타협했다고 기억하는데,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굳이 정장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그의 행동에 동조했었다.

 

복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국민을 대표하는 행동을 하느냐가 문제였다고 생각했고, 국회가 너무도 형식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그런 형식으로 국민을 대리한다기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으니.

 

그런 참에 유시민의 그 시도는 참으로 신선했다. 그리고 발랄했다. 물론 그 한 명으로 우리나라 국회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국회라는 경직된 땅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서 그는 복지부 장관도 하고, 그 다음에는 정계에서 멀어져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책은 그가 살아온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현대사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태어난 해부터 이 책이 나온 때인 2014년까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겪어왔던 시대를 유시민이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이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는 주관적이다. 이 주관들이 얼마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공과가 결정될 것이다.

 

격동의 현대사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이 기간, 그는 치열하게 살았다. 격동의 순간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현대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것도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서술을 하고 있으니, 유시민의 관점에서 우리는 반세기를 따라갈 수 있다. 아마도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보다는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우리 현대사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이 구분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난민촌 시대 - 병영 시대 - 광장 시대

 

6.25전쟁이 끝나고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가 태어났다. 우리나라가 절대빈곤에 허덕일 때다. 이때를 난민촌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때. 독재권력이 극악무도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다.

 

정치권력의 민주화보다는 먹고 사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쓸 때고,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정치권력이면 나름 인정을 받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가 지속될 수는 없다.

 

독재권력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 사람들은 이제 정치에 서서히 눈을 돌리게 된다.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데, 권력을 분점하고 싶지 않은 독재 권력은 이를 용납할 수가 없다.

 

이때 발현되는 것이 바로 병영 시대다. 사회의 군대화. 군대처럼 꽉 조여 사회가 돌아가게 된다. 뭐든지 명령과 지배만 있다. 명령에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다. 처벌만이 있을 뿐이다.

 

유신독재, 또 전두환 정권 시기까지 우리나라는 병영국가라 할 만했다. 오죽했으면 여차하면 위수령, 계엄령에, 법을 무시한 대통령 긴급조치에 대학에 경찰이 상주하는 그런 시대였으니. 그럼에도 경제는 계속 발전한다. 시민들의 의식은 더욱 성장한다.

 

산발적으로 고립되어 벌어지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독재는 삶을 옥죄는 더욱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때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형식적 민주주의가 형성되어 간다. 이제는 광장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삶을 사는 시대, 자유가 보장된 시대가 된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광장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 이제는 누구나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이런 광장을 위협하는 것이 아직도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 갈등이라고 하고 있지만, 국민을 배반하는 정치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장치는 되어 있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이 책이 일찍 나와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총으로 끌어내렸던 독재권력을 이제는 시민의 힘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부패권력을 끌어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광장의 시대다. 우리는 이런 광장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55년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 보았던 일, 들었던 일들과 자료를 모아 정리해 놓고 있으니,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 갈 수 없다는 것, 잠시 뒤로 갈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간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다시 난민촌 시대로도 병영 시대로도 갈 수 없다. 그렇게는 우리들이 살아내지 못한다. 그런 시대를 거쳐 만들어 낸 광장 시대, 우리가 더욱 자유롭게 지켜내야 한다. 역사 책을 읽는 이유, 역사의 바퀴를 계속 앞으로 굴리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작가인 유시민 역시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에게 안에 와 있다고. 그 미래를 밖으로 꺼낼 일이 남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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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의 힘으로 부패 권력을 끌어내렸다.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했지만, 시민의 힘이 없었다면 그런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리라.

 

  부패 권력은 이제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절대 권력은 없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이 하야 선언을 하게 한 경험, 시민의 힘으로 독재 권력이 헌법을 바꾸겠다는 선언을 하게 한 경험에 더해 부패 권력을 탄핵시킨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겪은 이런 경험들은 뒤로 물릴 수 없다. 이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커다란 힘, 그야말로 불가역적인 힘이다.

 

  그렇게 끌어냈는데, 다음이 명확하지 않다. 여러 곳에서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사람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외침들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 머무르고 있다. 누구를 뽑아야 하나 하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가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이번 경험이 의미있는 경험이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녹색평론 154호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사람 하나를 바꾸는 시민들의 힘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시민 혁명이라는 말을 하려면 적어도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 권력 또는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관철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 참에.

 

녹색평론에서는 그 점을 다루고 있다. 특히 '시민의회'에 대해서 제안하고 있다. 각 대통령 후보들이 이에 대해서 가타부타 무시 전술로 나아가고 있지만, 각 정당들도 역시 무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시민의회"가 이루어진다면 그들이 받을 타격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기득권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시민의회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시민의회가 상설기구가 되든, 비상설기구가 되든 그것은 더 논의해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시민의회가 출범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기존 정당 정치권들에게 시민의 주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 그러니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누구를 뽑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힘으로 끌어내린 권력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민의회"이고, 선거법 개정일 것이다.

 

그래서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이런 시민들의 힘을 반영하는 정치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대담을 기록한 '시민의회를 생각한다'를 비롯해서 '민주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다, 무작위 선출과 숙의민주주의, 나는 왜 <대통령의 철학>을 쓰게 되었나, 시민의 제왕학을 건의함, 민주시민교육의 실천모델'이라는 글이 실렸다. 모두가 민주주의와 통하는 글인데, 권력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사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제는 그럴 때임을 강조하고 있는 글들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정세와 관련된 글들이 있다. 경제와 안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민주주의와 관계가 있다. 우리의 삶과 직접 관계 있는 이런 정책들을 소수의 관료들이 결정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사드와 미,중,일,러 군비경쟁'을 읽어보면 '사드'가 방어용 무기라고 하지만, 그 방어용 무기가 곧 공격용 무기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천하무적의 창을 하나씩 지니고 있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에게만 방패를 준다면, 방패가진 사람은 방어만 하게 될까? 아니다. 충분히 막을 방ㅊ패가 있으므로 그는 당연히 공격을 하게 된다.

 

이래서 방패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 무기가 된다. 사드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나라 사드를 왜 반대하는지를 이런 점에서 찾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또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는 반대로 전격적으로 사드 배치를 해버린 행태에 대해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드 배치인지를 이 글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정작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반하는 정책을 펼치는 관료들의 모습,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태에 대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을 통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그래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전혀 관여할 수 없게 된다.

 

'미세먼지와 일자리, 그리고 트럼프 FTA' 란 글 역시 경제가 우리 삶과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가장 심한 미세먼지로 인해 고생하는 요즘 아니던가. 게다가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무역을 재조정하겠다고 하는데 한미FTA가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말인지를 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역시 민주주의 문제다. 시민이 권력을 소수에게 위임한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 시민의 힘을 보여준 지금, 그 힘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 되도록 사람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 머물지 말고 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더욱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함을, 녹색평론이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이 소리, 귀 기울여 듣자. 그래야만 한다. 사람이 바뀌는 데서 멈추지 말자. 한 발 더 나아가자. 지금은 그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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