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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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책은 다음 책을 읽도록 부추기는 책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그 책에 나온 다른 책들을 읽고 싶어진다면 그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박웅현의 이 책은 카프카의 말에서 따온 제목이다. 책은 도끼여야 한다는, 우리 마음에 쩡 하고 울리도록 내리치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얼음을 깨뜨리듯이 우리 마음에 어떤 충격을 가해야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좋은 책. 누구에게나 똑같을 수 없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어떤 사람은 큰 충격을 받고 어떤 사람은 무덤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도끼가 되는 책은 남이 추천해줄 수 없다. 자신이 골라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골랐다고 모두가 다 도끼가 되는 책일 수는 없다. 그 가운데서도 몇 권이 자기 마음을 울린다. 도끼가 된다. 그렇게라도 도끼가 된 책을 만난다면 그건 행복이다. 책읽기의 행복함.

 

박웅현은 도끼가 되는 책을 많이 만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도끼다"에 이어 "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썼으니 말이다.

 

자기에게 도끼가 된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는 쉽지 않은데 박웅현은 잘 소개하고 있다. 강독회라는 이름으로 책을 읽으며 서로 이야기를 하면 더 좋을테니,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면서 그 책을 한 번 더 읽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터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읽고 싶어진다. 내가 읽었던 책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햇던 것들을 이야기해 주기에 다시 읽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직 읽지 않는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책읽기에 대한 욕망이 일면 도서관에 가야 한다. 물론 읽고 소장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야 한다. 소유하기 전에 우선 읽고 판단해야 한다. 박웅현에게 도끼인 책이 내게도 도끼가 될 수 있는지.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도서관에 가서 이 책에 소개된 책 중 몇 권을 고르게 했다.

 

그래서 좋다. 이런 책은. 다른 책에 대해서 알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읽기를 통해 내 읽기를 돌아볼 수 있기에.

 

여기에 비교는 필요 없다. 박웅현은 박웅현이고 나는 나다. 나는 나대로 읽으면 된다. 내게 맞는 읽기법, 그것으로 책과 만나면 된다.

 

다만, 이런 책은 참조할 수 있다. 참조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기에. 다른 사람의 읽기를 참조한다면 더 좋은 읽기를 할 수 있다. 좀더 괜찮을 책을 만날 확률도 높아진다.

 

단지 책소개가 아니다.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책은 결국 삶이다. 삶을 우리에게 문자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문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책 속에만 있다고, 또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읽은 책은 바로 내 삶이다. 책들이 모여 내 삶을 이룬다. 그러므로, 박웅현의 책, 역시 내게는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내 읽기를 돌아보게 하는 도끼가 된다.

 

모든 책은 도끼다. 좋지 않은 책은 좋지 않음으로써, 좋은 책은 좋음으로써...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많을 때 얘기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나이 먹어가면서 책 고르기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는다. 그러니 책을 잘 골라야한다. 

 

모든 책이 도끼일 수 없으므로, 내게 도끼가 될 책을 골라야 한다. 그럴 수 있게 해주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책이지 않을까 싶다. 책을 도끼가 되게 하고 싶은 사람,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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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6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갑질'이란 말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위에 있다고 (이 위를 재산이 지닌 위치로, 권력이 지닌 위치로, 지식이 차지하는 위치로 또는 나이로 자리잡는 위치로 봐도 좋다) 막무가내로 행동하는사람들이 있다.

 

  몇 해 전에는 자식이 맞았다고 골프채를 휘두른 모 재벌이 있었고, 또 몇 해 전에는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비행기를 돌려세운 재벌가 딸이 있었고, 최근에는 광고대행업자에게 폭언과 물건을 던진 재벌가 딸이 있었다.

 

  제가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막 대하는 태도, 갑질.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의 행태를 접하는 이 대목에서 왜 부처 일화가 떠오를까, 사냥꾼에게 쫓기던 새를 구하기 위해 자기 온몸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했던 부처 일화가...

 

새와 같은 동물들 목숨값도 우리 사람과 동등한데, 사람 목숨값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목숨값이 같으면 삶을 동등하게 살아간다는 얘기가 되는데...

 

지닌 것으로 사람을 차등지울 수는 없는 법인데... '갑질'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지닌 것으로 사람을 순서 매기고 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갑질'에는 사람이 빠져 있다. 그러니 자기는 '갑질'이라고 생각도 못한다면 그것은 물질에 이미 자기 정신을 맡겨버리고 만 것이다.

 

본말전도...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말을 거꾸로 '돈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돈 나지 않았다'로 바꾸어 버리는 요즘 세태. 재벌 2,3세들의 행태.

 

대다수 사람들은 돈이 없을 수밖에 없는데, 소수만이 돈을 쌓아두고 그것을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게 되니... 자기 힘으로, 소위 자수성가 했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해도 문제가 되는데, 그것도 아닌, 제 조상들이 벌어놓은 돈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남보다 너무도 앞선 출발선에서 출발했음에도, 왜 너희들은 그렇게 느리냐고 타박하는 2세, 3세들의 모습을 보면... 이 자체가 이미 '갑질'이다.

 

아무리 해도 결국 빈주머니밖에는 찰 일이 없는 그야말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를 온몸으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 처지에서는 '갑질'은 빈주머니를 더욱 비게 하는 행동일 뿐이다.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읽다가, 이 시집이 2005년에 나온 시집이니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또 변하고 있는 중임에도, 이 시를 보면서 갑자기 '갑질'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울어볼 기회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김사인이 쓴 '코스모스'란 시다.

 

  코스모스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05년 초판 2쇄. 17쪽.

 

'코스모스 피어 있는 고향역'이라는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이란 노래도 생각이 나지만, 코스모스는 또한 '우주, 질서'라는 뜻도 있으니, 결국 우리 인간이 원천으로 돌아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으로 이 시가 다가온다.

 

'누구도 핍박해 본 적 없는 자'처럼 그렇게 열심히 세상을 살아왔지만, 결국 빈 호주머니, 그러니 우리는 온 곳으로 돌아갈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다만, 열심히 살았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기까지는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까. 지금을 살기에도 힘드니... 시인은 '언제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빈 호주머니를 지닌 사람들, 이들은 '현재'를 살기에도 바쁘다. 힘들다. 남에게 '갑질'할 틈도 없다. 자기 힘든 삶을 하소연하기도 힘든데, 언제 갑질을 하겠는가.

 

그런데 '갑질' 하는 사람은 그렇게 '울며 여쭐' 수가 없다. 그에게는 빈 호주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죽어라 죽어라 일을 해도 주머니가 비어 있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늘 꽉 찬 주머니만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힘들게, 없어서 고생을 해본 적이 없는 자식들이 어떻게 울며 아버님께 고한단 말인가? 이들은 원천적으로 자신들을 돌아볼 아버지가 없다. 돌아볼, 울며 여쭐 아버지가 없으니 제 삶을 제 잣대로만 살 수밖에.   

 

슬프다. 자신의 고단한 처지도 하소연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삶을 더 힘들게 하는 '갑질들'이 있으니 말이다.

 

하여 다시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귀한 존재,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 사람이 지닌 것으로 사람을 구분해 높고 낮음으로, 귀하고 천함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빈 호주머니들이 울며 여쭙지 않게, 지금 웃으며 살 수 있게, 서로의 주머니를 채워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그리하여 '갑질'이란 말이 사라지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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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얼음 -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
송두율 지음 / 후마니타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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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걸어서 남북 경계선을 넘는 장면. 그리고 그와 손을 잡고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북쪽으로 경계를 넘어갔다 돌아오는 장면.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남북 경계를 스스럼없이 넘는 모습. 그리고 판문점 선언. 이제 남북은 영원히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그 선언. 일제가 강제 병합함으로써 남북이 갈렸다면, 전쟁으로, 또 수많은 총격전으로 심리적인 분단까지 있었는데, 그래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전전긍긍하던 생활이었는데, 두 정상이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하겠다는 의지까지 표명을 했으니.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게 될 그 회담을 보면서, 경계선을 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 남북 평화, 남북 통일을 위해서 남과 북을 오갔던 사람들. 그래서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넘었던 그 경계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을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중 한 사람, 송두율이었다. 그가 우리나라에 돌아왔을 때, 독일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으로 그를 구속, 재판까지 한 우리나라. 그것도 인권변호사 출신 고 노무현 전대통령 때였으니, 충격이 더했다.

 

그가 구속되고 재판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나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까지, 우리나라의 민낯을 전세계에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87민주화운동이 얼마나 형식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그야말로 형식적 민주주의만 이루었고,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바로 송두율 귀국 사건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은 평화체제로 돌아서고, 남북이 자유로운 왕래를 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럴 때 송두율에 대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북한에 갔다는 것이 구속 사유가 되었고, 재판에서도 그 점은 유죄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독일 국적을 지닌 학자가 북한을 방문한 것이 죄가 된다면 우리나라에 도대체 어떤 학자들이 올 수 있단 말인가?

 

북한을 방문한 학자들은 모두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없단 말인가? 아니다. 송두율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가 지닌 국적과 상관없이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다녔고 독일로 유학가서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다.

 

독일에 있을 때 우리나라에 오지 않고 북한을 방문했고, 또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해외에서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사상이 좌익이고, 친북이고, 반체제 세력인 것이다. 이런 그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단다. 독일인 송두율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송두율이 돌아온단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거창하게 환영한단다. 이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수구세력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 수구세력을 누를 힘이 없었다.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보라. 우리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유령이 우리 곁에 늘 상존하고 있고, 그래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국가보안법이라는 필터를 거치게 된다.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송두율 역시 마찬가지다. 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그를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송두율이 싸울 수밖에... 재판을 통해, 또는 다른 길을 통해.

 

이런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책이니 말이다. 그가 태어나서 유학을 가고, 독일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과정, 북한을 왜 방문했는지, 우리나라에 와서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최근까지 세계 상황과 관련지어 쓴 글이다.

 

이 책의 첫구절이 송두율 삶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첫제목과 시작은 이렇다.

 

기억 속에 없는 어머니

 

(전략) 우리 삶의 시작이자 많은 추억의 큰 원천은 무엇보다 '어머니'일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대한 추억이 없다. 내가 두 살 반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기억의 편린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기에 나는 어머니에 대한 꿈을 한 번도 꾸어본 적이 없다.  (19쪽)

 

그렇다. 그에게 친어머니는 너무도 일찍 돌아가셨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 37년 동안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것도 오자마자 감옥에 가듯이 어머니에 해당하는 조국은 그에게 없는 존재다.

 

조국이 기억 속에 있더라도 독재로 점철된 반민주적인 나라로만 기억될 뿐이다. 애틋한 기억을 유발하는 어머니가 그의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조국인 우리나라도 그에게는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책에는 그의 새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새어머니 품에서 그는 자란다. 새어머니가 그가 성장하는 동안 그를 보살펴 주었듯이 독일은 이제 그의 새어머니가 된다. 그가 자라고 제 꿈을 펼치도록 해주는 장소, 그곳은 독일이다.

 

이렇듯 가정사와 그가 살아온 삶이 연결이 된다. 이런 삶을 사는 그에게 조국이 처한 현실은 답답했을 것이다. 이런 답답함이 조국이 민주화 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하게 했을 것이다. 분단되어 있는 조국에 다른 쪽인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테고.

 

남북한이 통일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해 그는 여러 활동을 한다. 그게 비록 자신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을지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옳다고 생각했으므로.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행동이었으므로.

 

그리고 37년만의 귀향. 구속, 감옥, 집행유예를 거쳐 다시 독일로. 그에게 이미 친어머니는 없는 존재다. 조국은 없다. 그는 독일사람이다. 그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는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쪽이냐 저 쪽이냐는 이분법 논리를 벗어나 그는 이 쪽도 저 쪽도 다 아우르는 '화쟁'의 '경계인'이 되려고 한다.

 

내가 먼저 경계인이 됨으로써 다른 경계인들을 부를 수 있다고, 그래서'경계인들'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라고. 이렇게 새로운 경계인들, 바로 그들은 '불타은 얼음'이라고.

 

'계몽과 해방'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양쪽을 다 아우르는 '경계인들' 송두율은 이제 그를 꿈꾸고 있다. 그들과 함께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 '경계인들'의 모습을 이제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의 진영논리를 강요하는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이젠 그런 진영논리가 먹혀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진영논리가 얼마나 폐해를 지니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조국의 민주화 운동을 돕기 위해 활동한 것을 빌미로 그를 탄압하는 모습, 역시 진영논리이기 때문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만 강요하는, 그래서 경계인들은 억압받고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모습. 수많은 경계인들이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들 덕에 이렇게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경계를 넘을 수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송두율을 얽어매었던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남북이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돌아서는 이 시점에 구체제 망령인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존재한다면 또다시 '판문점 선언'은 선언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족속들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휘두를 수 있는 칼을 이 참에 아예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제2, 제3의 송두율이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사를, 분단의 비극을, 그 비극 속에서 비극을 희망으로 바꾸려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평화체제에 생각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경계인 송두율, 그의 삶이 우리에게 '불타는 얼음'이 되었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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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flow 2018-05-03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북 정상이 분단 경계를 손쉽게 넘나드는 걸 보며 저게 뭐라고 이렇게 멀리 싸우며 살았나 생각했습니다.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18-05-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서합니다. 저는 요즘 우리나라가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북을 가르고 있던 그 선 정말 별것 아니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으니까요.

2018-05-0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근. 권력의 상징이다. 이 남근 하나로 얼마나 군림을 했던지. 기껏 밖으로 늘어진 고깃덩어리 하나로 세상 권력을 다 쥐어야 하는 것처럼, 또는 당연히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살아온 세월이 얼마든가.

 

  지금은 좀 나아졌던가. 아니다. 겉으로 나와 있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이를 써먹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이 여전하다.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번지는' #미투 운동'을 보면 이놈의 남근이 일으킨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힘이 있을 때 얘기. 남근이 겉으로 무슨 기둥 마냥 힘을 쓸 때는 자신도 힘을 쓴다고 착각하고 살지만, 더이상 기둥을 만들지 못하고 축 처져 버렸을 때는 자신도 힘이 다했다고 삶 자체도 축 처지는 사람이 많다.

 

고깃덩어리가 권력이 되느냐 그냥 가죽 주머니가 되느냐, 그것도 힘차게 물을 뿜어대던 것에서 이제는 졸졸도 아니고 남아 있는 물줄기를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내야 되는데, 부식되고, 노폐물들이 쌓여 물도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는 남근이 되면, 삶은 이제 더욱 힘이 없어진다.

 

이은 시인 첫시집 "불쥐"를 읽다가 이 시를 보면서 힘이 없어진 남근이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는지, 결국 우리는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몸이 점점 쇠해질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가죽 주머니

 

말굽 같은 변기를 뒤로 젖히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오줌줄기를 엿보았죠

감탕처럼 고였다가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내부를

온 힘을 다해 길어 올린 아버지의 오줌 줄기가

음경 끝에서 뒤틀린 신음으로 매달린 것을

아버지는 그것을 치약처럼 둥굴게 말아 쥐어짜고 있었죠

 

변기 앞에서 주춤거리는 아버지

주름진 가죽을 내려다보는 아버지

걸쭉한 지린내가 진동했죠

등골 빠지게 길어 올린 아버지의 길이

다 말라버린 걸까요

자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오줌소리

깊은 우물에서 지하수를 길어올리듯

가늘게 뽑아 올린 물줄기가 저절로 새어나와

사타구니를 적셨죠

움켜쥔 그것을 꽉 붙들고

놓지 않는 아버지

마지막 남은 몇 방울을 위해

아버지는 몸을 둥굴게 말아봅니다

간신히 끌려 나온 오줌길에

흥건히 아버지가 젖었죠

 

이은, 불쥐, 지혜.년초판 2쇄. 26-27쪽.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력, 아버지를 더욱 권력 있게 한 남근,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삶. 

 

결국 우리는 아무리 힘이 있어도, 어떤 권력을 쥐고 있어도 나중에는 이렇게 된다. 힘이 없을 때가 온다. 그때 잘살기 위해서는 제가 힘이 있을 때 잘살아야 한다.

 

남에게 군림하지 않고 제 힘 자랑하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 남근이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남근 역시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지 않는가.

 

힘이 있을 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남근 아니던가. 단지 배설의 기쁨을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그래서 생명과 생명을 잇는 존재가 남근이다. 그런 남근이어야 한다. 

 

그런 존재도 결국은 소멸된다. 모든 존재는 사라진다. 그 사라짐의 순간을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힘이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다. 불기둥에서 가죽 주머니가 될 수밖에 없는 남근을 지닌 존재들. 현재 기둥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가죽 주머니가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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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피 공부 - 매일 언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핼 스테빈스 지음, 이지연 옮김 / 윌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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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꼭 광고에 종사하는 사람만 읽을 필요는 없다. 소설을 쓰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등등 말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꼭 말하고 관계 있다고 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말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말을 하고 사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옆에 놓고, 시간 나는 대로 아무 곳이나 펼쳐보아도 좋다. 짤막한 문구들이 1060개가 있다. 이를 경구라고 해도 좋다.

 

'279 광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근친상간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은 광고를 쓰고, 광고를 읽고, 광고를 이야기하고, 광고와 자고, 꿈에서도 광고를 본다. 그 결과 아이디어끼리 교배를 하여 신기하게도 똑같은 배치와 문구를 가진 콘셉트와 해석이 나온다.

 

280 광고는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사람들과, 자연과, 주변 세상과,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 (77쪽)

 

이런 말이 꼭 광고에만 해당하겠는가. 직장인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닌가. 오로지 자신의 직종만 생각하다 보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늘 그게 그거인 생각, 기획만 하게 된다. 이럴 때 다른 곳에 간다든지, 다른 이를 만난다든지, 다른 일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좋다고 하는 회사에서는 이렇게 딴짓하는 시간을 일부러 주고 딴짓을 권장 또는 의무로 하고 있다. 이는 생각의 근친상간을 막는 방법이다.

 

생각의 근친상간을 막는 방법, 그것은 곧 대화하는 것이다. 바로 280번 경구처럼 하면 생각의 근친상간을 막고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다.

 

광고에 딱 어울리는 말, 그러나 바로 우리 삶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

 

798 소비자가 볼 때는 머리로 보지만, 살 때는 마음으로 산다. (228쪽)

 

그렇다. 우리는 주로 머리로 판단을 한다고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음이다.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 여정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머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가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손과 발로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마음, 가슴을 거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손발을 움직일 수 없다. 광고가 그러하다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참 많은 경구들이 있다. 광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것을 다른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 삶과 연결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새겨야 한다.

 

예전에 학창시절 땡볕 운동장에서 교장 훈화를 듣던 때를 생각해 보라. 참 좋은 말,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교장이지만, 그 좋은 말이 학생들 머리로 들어가던가. 머리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말들이 어떻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교장 말은 그냥 말로써 허공에 흩어져 버리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제 행동만을 하지 않았던가. 그 길고도 길었던 교장 훈화.

 

마지막으로에 환성을 올리면 다시 끝으로가 시작되고, 끝났다 싶으면 다시 한번 말하자면으로 또 시작되던 그 지루한 말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많은 말들은 의미없다고 한다. 특히 광고에서는. 짧은 말 속에 많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말들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지나치게 장황한 말들은 결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없으니까.

 

좋았다. 그냥 한 구절, 한 구절 읽는 것이. 읽으면서 어떤 말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으니까. 

 

곁에 두고 언제든 아무 쪽이나 펼쳐 읽으며 생각에 잠기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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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2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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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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