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이란 말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위에 있다고 (이 위를 재산이 지닌 위치로, 권력이 지닌 위치로, 지식이 차지하는 위치로 또는 나이로 자리잡는 위치로 봐도 좋다) 막무가내로 행동하는사람들이 있다.

 

  몇 해 전에는 자식이 맞았다고 골프채를 휘두른 모 재벌이 있었고, 또 몇 해 전에는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비행기를 돌려세운 재벌가 딸이 있었고, 최근에는 광고대행업자에게 폭언과 물건을 던진 재벌가 딸이 있었다.

 

  제가 가진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막 대하는 태도, 갑질.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의 행태를 접하는 이 대목에서 왜 부처 일화가 떠오를까, 사냥꾼에게 쫓기던 새를 구하기 위해 자기 온몸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했던 부처 일화가...

 

새와 같은 동물들 목숨값도 우리 사람과 동등한데, 사람 목숨값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목숨값이 같으면 삶을 동등하게 살아간다는 얘기가 되는데...

 

지닌 것으로 사람을 차등지울 수는 없는 법인데... '갑질'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지닌 것으로 사람을 순서 매기고 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갑질'에는 사람이 빠져 있다. 그러니 자기는 '갑질'이라고 생각도 못한다면 그것은 물질에 이미 자기 정신을 맡겨버리고 만 것이다.

 

본말전도...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말을 거꾸로 '돈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돈 나지 않았다'로 바꾸어 버리는 요즘 세태. 재벌 2,3세들의 행태.

 

대다수 사람들은 돈이 없을 수밖에 없는데, 소수만이 돈을 쌓아두고 그것을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게 되니... 자기 힘으로, 소위 자수성가 했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해도 문제가 되는데, 그것도 아닌, 제 조상들이 벌어놓은 돈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남보다 너무도 앞선 출발선에서 출발했음에도, 왜 너희들은 그렇게 느리냐고 타박하는 2세, 3세들의 모습을 보면... 이 자체가 이미 '갑질'이다.

 

아무리 해도 결국 빈주머니밖에는 찰 일이 없는 그야말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를 온몸으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 처지에서는 '갑질'은 빈주머니를 더욱 비게 하는 행동일 뿐이다.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읽다가, 이 시집이 2005년에 나온 시집이니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또 변하고 있는 중임에도, 이 시를 보면서 갑자기 '갑질'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울어볼 기회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김사인이 쓴 '코스모스'란 시다.

 

  코스모스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05년 초판 2쇄. 17쪽.

 

'코스모스 피어 있는 고향역'이라는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이란 노래도 생각이 나지만, 코스모스는 또한 '우주, 질서'라는 뜻도 있으니, 결국 우리 인간이 원천으로 돌아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으로 이 시가 다가온다.

 

'누구도 핍박해 본 적 없는 자'처럼 그렇게 열심히 세상을 살아왔지만, 결국 빈 호주머니, 그러니 우리는 온 곳으로 돌아갈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다만, 열심히 살았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기까지는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까. 지금을 살기에도 힘드니... 시인은 '언제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빈 호주머니를 지닌 사람들, 이들은 '현재'를 살기에도 바쁘다. 힘들다. 남에게 '갑질'할 틈도 없다. 자기 힘든 삶을 하소연하기도 힘든데, 언제 갑질을 하겠는가.

 

그런데 '갑질' 하는 사람은 그렇게 '울며 여쭐' 수가 없다. 그에게는 빈 호주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죽어라 죽어라 일을 해도 주머니가 비어 있는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늘 꽉 찬 주머니만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힘들게, 없어서 고생을 해본 적이 없는 자식들이 어떻게 울며 아버님께 고한단 말인가? 이들은 원천적으로 자신들을 돌아볼 아버지가 없다. 돌아볼, 울며 여쭐 아버지가 없으니 제 삶을 제 잣대로만 살 수밖에.   

 

슬프다. 자신의 고단한 처지도 하소연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삶을 더 힘들게 하는 '갑질들'이 있으니 말이다.

 

하여 다시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귀한 존재,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 사람이 지닌 것으로 사람을 구분해 높고 낮음으로, 귀하고 천함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빈 호주머니들이 울며 여쭙지 않게, 지금 웃으며 살 수 있게, 서로의 주머니를 채워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그리하여 '갑질'이란 말이 사라지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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