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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 금기와 편견 너머, 하마스를 이해하기
헬레나 코번.라미 G. 쿠리 지음, 이준태 옮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동녘 / 2025년 6월
평점 :
_ 팔레스타인 민중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일방적 민간인 학살’이라는 잔혹한 양상은 분명 현 상황의 중심축이지만, 최소 ‘58년의 영토 강점’(팔레스타인 독립운동세력들은 영국 강점기를 포함한 107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시기부터 77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에 대한 민족해방‧독립운동으로서의 팔레스타인의 끊임없는 저항, 이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광범위한 하방연대, 이스라엘‧미국의 외교적 고립 양상 또한 이 사건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은 실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 실패할 것이다.”(186쪽)
_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 사항을 ‘세계인의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른바 ‘한미동맹’의 영향 속에서 “집단학살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인된 목표에 의도적인 허위정보와 조작정보가 이용”되고 “글로벌 북반구 혹은 서구 사람들은 점령 아래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17년간 봉쇄 속에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세부적인 내용을 거의 알지 못하는”(112쪽) 현실에 한국사회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신)식민주의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나 팔레스타인의 현 집권세력 “하마스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자 기획된 시민강좌를 모은 책 Understanding Hamas And Why That Matters를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지닌 독자를 대상으로, ‘그래도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도 문제가 있다’는 인식(또는 그로 인한 연대에 대한 망설임)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 일종의 ‘시민단체 학습 자료’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공부하는 책으로서의 느낌이 강하다(번역자 주가 상당히 건실하게 많이 추가되었는데, 도서의 성격을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다).
_ 총 5개의 강연(대담)으로 꾸려진 책이다. 대담자들은 영미권 팔레스타인(또는 이슬람 문화권) 출신으로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관련 도서 저자들에 비하면) 신진‧중견 학자들이며, 지속적으로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입장을 선명하게 강조하기보다는, 배경과 사실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오해’를 해소하고 ‘있는 그대로’의 하마스(또는 이슬람권/서아시아 사회운동세력)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마지막 강좌인 5장은 전체 내용을 포괄하면서 가장 선명한 입장을 제시한다.)
_ 책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에서 비롯한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출발, 이스라엘의 성립과 점령, 2000년대의 가자 지구 봉쇄, 하마스의 선거 집권 등 ‘기초 지식’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 조금 더 심화된 지식을 다룬다. 우리의 독립운동사와 비슷한 부분들이 참 많다. 인상 깊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①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의 핵심 권역은 서안, 가자, 해외(요르단 등 주변국가) 그리고 ‘교도소’다. 그만큼 수감자가 많다.(49쪽) ② 하마스가 집권당이 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는 산하 단위 알카삼여단의 ‘군사적 저항’과 전반적인 ‘청렴성’(특히 사회복지)이다.(82쪽) ③ 팔레스타인 내에는 1990년대에 결성된 <10개정파동맹>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며(다마스쿠스 10, ‘통일전선’), 여기에는 이슬람원리주의, 세속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가 모두 포함된다. 그동안 배제되었던 파타흐(팔레스타인자치정부 최대 정파)까지 포괄하는 범위로 이들의 연합은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베이징, 모스크바가 이들의 연결을 돕고 있다.(91쪽) ④ 2023년 10월 7일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하마스를 필두로 여러 팔레스타인 운동세력이 함께 연합하여 이스라엘 ‘본토’ 군사 시설을 “역사상 최초로 공격”한 것이다. 하마스는 이에 대해 ‘강점에 대항하는 모든 민족해방운동은 방어적으로 정당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은 무적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의외로 이스라엘 군 시설이 무너지면서 혼란이 발생했고, 이 와중에 이스라엘의 “한니발 원칙”(자국의 포로를 허용하지 않고 사살하는 명령)이 적용되면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127쪽) ⑤ 하마스의 여성 조직원들은 ‘하마스 때문에 여성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조혼, 명예혼을 반대하며, 유리천장을 허용할 수 없으며 (일부는) 여성이 이슬람 국가의 수장이 되어야 한다’고 자유롭게 주장한다. 대담자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서구적 방식의 이항대립적 인식은 적절치 않다’고 단언한다.(139쪽) ⑥ 최근의 시점에서도 하마스에 대한 지지, 알아크사 작전에 대한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도는 높은 편이다(최소 50%대). 이스라엘의 핵심 목표는 팔레스타인 운동세력의 절멸 또는 고립인데, 이는 ‘역사적 관점’에서든 ‘현실적 상황’에서든 실패하고 있다.(186쪽)
_ 이 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100여 쪽에 달하는 <부록>이다. 여러 원문 자료를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들을 도왔고, 용어 사전을 담았다(원서에 포함된 것이다). 특히 <부록5: 우리의 서사,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하마스에서 직접 작성하여 발표한 문건으로, 2023년 10월 투쟁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 제기된 쟁점들에 대한 논박과 변론을 담은 것이다. ‘독립운동세력’다운 논리를 담은 정치외교 문건이다. 팔레스타인 운동세력의 직접적인 목소리, “가자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_ 이 책은 ‘오류가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양비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 대 식민의 대결로서의 하마스 운동’을 분명히 하고, ‘오염된 정보로부터 사실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야기들은 더욱 풍부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 말하는 “우리의 서사”가 적극적으로 소개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을 극복하는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의 승리에 힘을 보태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