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은 문학상이 있다. 기릴 수 있는 문인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그것이 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 이름을 걸 문인이 제법 된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노작'이라고 하면 누군가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요즘 학교에서는 국어시간 시를 가르칠 때도 시인이 쓴 호는 잘 가르치지 않는다. 호가 무엇인지 모르기도 하고.

 

  예전 사람들이 대부분 호를 사용했는데,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명한 사람들의 호는 자연스레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다. 사실 '춘원'이라고 해도 '춘원'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춘원'이 이럴진대 '횡보'는 말할 것도 없고 (춘원은 이광수, 횡보는 염상섭) '노작'은 더 먼 이름이다. 홍사용. 내겐 중학교 때 다가온 시인. 친구 중 누군가 참 구슬픈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외우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왕이라고 하는데, 그놈의 왕이 왜그리 서글프던지... 그래서 홍사용을 기억했는데, 그의 이름을 단 문학상, 그것도 1회 수상시집이다. 안도현이 받았다.

 

안도현이 받은 문학상도 많을텐데... 그가 노작문학상 1회 수상자니, 1회 수상자를 선정할 때 선정위원들이 얼마나 고민을 했겠는가.

 

그런 안도현의 시들을 싣고, 여기에 다른 시인들의 시가 함께 실려 있다. 2002년에 나온 시집이니 꽤 오래 전 시집이긴 하지만, 좋은 시들이 많다. 그 많은 시들 중에서 안도현의 '겨울 강가에서'

 

지금처럼 찬바람이 쌩쌩부는 날엔... 그것이 물리적인 날씨와 경제 날씨와 정치 날씨와 교육 날씨 등 전반적인 날씨가 겨울에 해당하는 지금에... 얼음을 차가움이 아니라 따스함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을....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동학사. 2002년.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34쪽. 

 

철없는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을 받아줄 살얼음 하나 깔지 못하는 배부른 자들이 국회라는 곳에 가 있어서, 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강도 눈을 받기 위해 얼려고 하는데, 자신을 더 차갑게 해서 그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변해 눈을 안아주려고 하는데, 도대체 그들은 국민을 대표한다는 그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이래서 비례대표가 필요한데... 젊은이들을 대표할 사람이 국회에도 있어야 하는데, 선거법 개정도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국회는 불통 국회, 철의 장막보다도 더 두껍고 견고하고, 캄캄한 암흑 장막. 추운 겨울. 더 추워지게 만드는 그들. 그들이 하는 그 차가움은 얼음도 되지 못하고, 그냥 비수가 되어 사람들 가슴을 찌르고 만다.

 

에라, 이... 이 시를 보라. 차가움이 어떻게 따뜻함이 될 수 있는지... 작고 여린 것들을 받아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하리라. 눈발과 같이 여린 존재들을 받아주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대표하게 해야 하리라. 시간이 지난다고 잊어버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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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그릇을 닦으며


풍물시장 놋그릇

무관심에 멍이 들어

푸르고 검은 딱지들로

제 몸을 덕지덕지 감싸고 있었다

수세미로 

박박 쓱쓱

닦고 닦으니

황금빛이 난다

관심 갖고 사랑 주면

이렇게 빛날 수 있는 것이

한 번 쓰고 또다시 방치하면

푸른 멍이

놋그릇 곳곳에 생기고

또 닦으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한번만으로

황금빛이 유지되지 않고

계속 닦아야만

관심을 주어야만

황금빛을 띤다고

조금 힘들다고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금세 빛이 바래는

놋그릇


우리네 삶이 바로

이 놋그릇과 같지 않을까

힘들게 놋그릇을 닦는데

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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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8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8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는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던 해다.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항목은 바로 남북관계다.

 

  전쟁의 위협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남북 단일팀부터 시작하여 철도, 도로, 강에 대한 공동조사가 이루어지고, 또 비무장지대에서 초소(소위 지피-GP-라고 하는)들을 철거하기도 했다.

 

  말만 비무장지대지, 사실 철저한 무장지대였던 비무장지대. 여기에서 가끔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고, 충돌이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깔려 있는 지뢰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자연이 살아났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이시우는 비무장지대를 사진으로 찍고 간단한 글을 덧붙였다. 간단한 글이라고 하지 말고 시라고 하자. 책에도 사진시집이라는 표현이 나오니.

 

비무장지대를 찍은 이유는 통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허리를 동강낸 비무장지대를 훑어가면서 이시우는 사진을 찍고 자신이 느낀 점을 시로 적어 놓았다.

 

단지 그곳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진을 통해, 시를 통해 분단 현실을 상기시킨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희망을 보여준다. 녹슨 철마 위에서도 생명을 유지해가는 들꽃들을 통해 이시우는 통일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분단 비극을 여전히 간과하지 않는다.

 

특히 도처에 있는 지뢰들... 그 지뢰들에 대해서 이시우는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총은 적과 아군을 구별합니다.                             총은 선과 악을 구별합니다.

지뢰는 적과 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지뢰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총은 전시와 평시를 구별합니다.

지뢰는 전시와 평시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진과 시들이 많다.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지뢰... 지뢰가 어디 비무장지대에만 있겠는가.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도 지뢰가 깔려 있으니... 지뢰는 적과 아군, 전시와 평시,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맞다.

 

이제 그 지뢰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지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지뢰들도. 그것이 평화로 가는, 통일로 가는 길이다.

 

이시우의 사진시집을 읽으며 비무장지대에 평화가 오는 지금 현실을 생각하고, 또 앞으로 통일로 가는 길이 성큼 가까워졌음을, 이런 작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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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대로 매혹적이다. 눈에도 잘 들어오고, 마음으로도 깊게 들어온다. 사진과 시의 융합. 말 그대로 융합이다.

 

  사실 디카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시집을 보면서 디카시 이해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는 않는 디카시라는 생각이 들고. 또 이제 시에도 새로운 형식이 생겨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단순히 사진과 시가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디카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를 떠올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림만으로 유명해졌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세한도라는 아주 작은 그림에 수많은 글들이 붙어서 명작 '세한도'를 이룬다.

 

글과 그림이 완전히 융합한 상태. 그것이 바로 '세한도'다. 디카시를 이렇게 이해했다. '세한도'와 같은 형식의 시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고.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예전 그림이 글과 문자가 조화를 이룬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똑같지는 않겠지만. 머리말에서 이들은 디카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디카시는 기존 시의 언어를 영상과 문자의 멀티언어로 지평을 넓힌 멀티언어 예술이다. 형태시처럼 문자에 사진을 보조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아니고, 포토포엠처럼 완성된 시에 사진을 덧붙이는 방식도 아니다. 디카시는 시인이 직접 자연이나 사물에서 감흥한 시적 형상을 찍고 쓰는 새로운 방식의 시이다. 

 

그렇다. 디카시는 그냥 사진과 시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사진은 시에 더 구체성을 부여해주고, 시는 사진의 마음을 글로 드러내 보인다. 그렇게 시와 사진이 하나로 합쳐진다. 이것이 디카시다.

 

많은 시들 중에서 아마도 디카시가 무엇인지, 디카시가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엄선한 작품들을 실은 시집이다. 그러니 디카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은 이 시집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디카시집을 읽으며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시들이 길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형상을 나타내는 사진이 있기 때문에, 이 사진에 들어 있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길어질 수가 없다. 또한 시상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전개할 수 있다. 그 점이 좋았다.

 

날로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로 흘로가는 요즘 경향에서 디카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과 비교할 수 있다.

 

또한 나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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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6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때든가, 언어에 이데올로기가 있을까, 없을까를 가지고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예전에 사회주의권에서도 이런 논쟁이 붙었던 걸로 알고 있다. 말이 지니는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언어 자체에 이데올로기가 있다, 아니 언어는 중립이지만 사용하는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지니게 된다는 관점이 있었다.

 

그렇게 기억한다. 도대체 언어는 어떤 존재인가? 언어가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언어는 이미 존재하는 순간 사람들, 사회, 환경, 즉 시공간과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언어가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지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언어를 사람이나 환경에서 떼어놓고 언어 자체만을 보면 그 언어는 생명을 잃는다. 그냥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러므로 언어에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자체에 있는지를 따지지 말고 언어는 이미 사용된 순간, 세상에 나온 순간 이데올로기를 지니게 된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요즘 자주 회자되는 '갑질'이라는 말에는 있는 자, 횡포, 약자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어떤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바로잡아야 할 일이라는 사실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언어는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나라에서 떠돌아다니는 '종북, 퍼주기'라는 말도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이러니 언어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지를 살피는 일은 언어를 잘 쓰는 지름길이 된다.

 

이 책에 쓰인 작은 제목은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다. '톺아보다'가 낯선 언어일 수도 있다. 온라인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톺아보다 : 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

 

별 도움이 안 된다. 톺아보다를 찾았는데, 톺아란 말이 또 나오니, 참... 그러면 '톺다'는 말을 찾아야 한다.

 

톺다 :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더듬어 뒤지면서 찾다.

 

이런 뜻이겠거니 한다. 톺다란 단어는 세 개가 있고, 이 중에 톺다1에 두번째 풀이가 바로 위에 찾아적은 풀이다.

 

사전도 안 친절하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가 사전을 찾아가면 어휘 공부를 하겠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제대로 된 사전을 만들면 어문 규정은 사라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어문 규정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을 통해서 말을 익혀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조차 이러니 언어 공부를 사전을 통해 하기는 힘들다.

 

어문 규정보다 사전이 필요한 이유를 대고 있는 항목이 바로 '자장면, 짜장면'이다. 현실 발음을 무시한 규정에 얽매인 그런 표준어 규정으로 사람들이 '자장면'을 쓰게 강제했던 시절이 있었다. 외래어 규정에 의하면 '자장면'으로 쓰고 [자장면]으로 발음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부분에서 줄다리기는 규정과 실제 생활 사이의, 관과 민 사이의 갈등이다. 누가 우선해야 하는가?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에서 언어생활에서 국민이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규정에 얽매여 실생활과 동떨어진 언어생활을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지금도 많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써서는 안 될 말, 그 말이 바로 '각하'라는 것. 그것도 '대통령 각하'라니... 요즘은 '대통령 님'으로 쓰고 있지만, '각하'란 말의 연원을 따지면 참 부끄러운 말이다. 왕도 아니로 겨우 신하들에게 쓰던 호칭을, 그것도 일제시대에 조선총독에게 부여되었던 칭호를 쓰다니... 이것저것 다 떠나서 '민주공화국'이라는 나라에서 신분제 사회에서나 쓸 법한 칭호를 쓰다니... 그건 안 될 말이다. 여기서 끝났으면 이 책이 제대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없었을텐데... 한발 더 나아간다.

 

그렇다. '대통령'이라는 말도 문제다. 국민의 의사를 대표한다는 사람에게 '다스린다'는 말이 들어가는 '통'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것. 그냥 사람들을 대표할 뿐인데... 그것도 특정한 기간만. 이 용어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고치지 않으면 지금처럼 촛불을 대신해서 정권을 잡은 정부조차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밖에 많은 말들이 나온다. 여성이 직업을 가졌을 때 붙이는 '여(女)-'자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으니 더 언급하지 않으련다. 다만, 그런 여성에게, 분명 남녀 모두에게 해당할 텐데도 이상하게 여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 '기혼, 미혼' 칸에 대해서 이 책이 잘 지적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언어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야 한다. 이제 언어는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언어는 밖으로 나온 순간 이데올로기를 띤다. 내가 어떤 의도를 하던 하지 않았던 언어는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잡는다. 그 자리에 이데올로기가 빠질 수가 없다. 그러니 언어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작동할지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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