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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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팔로스'라는 말, 많이 쓰는 말인데, 이 말이 '배꼽' 또는 '중심'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구의 중심, 우주의 중심. 옴팔로스. 이것은 아폴론 신전이 있는 곳에 붙인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의 삶에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 중에서도 델포이를 옴팔로스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좁아지니, 세계 문명으로 확대를 하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세계 문명의 중심, 또는 발상지라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지구의 옴팔로스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너무도 익숙한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리스를 그렇게 여기기도 했을 거고. 우리 동양에서야 중국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서 가운데 중자를 써서 중국이라고 하겠지만, 동서양에서도 문명이 발달했던 나라들은 자신들의 민족에 대해서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동양이나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유럽 쪽으로 한정을 하면 그들 문명의 근원을 그리스에서 찾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 신화로 변질되고, 로마는 유럽을 제패했으니, 그 문화가 유럽 각지로 번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온 문명의 근원이 바로 그리스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의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경철이 그리스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썼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 나라의 문명을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 여행을 통해 자꾸 우리를 불러내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이 여행기는 그가 직접 그리스 전역을 돌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쓴 것이다.

 

그것도 특이하게 카잔차키스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여행기 곳곳에서 카잔차키스의 글이 나온다. 그를 수시로 불러낸다. 자신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카잔차키스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리고 크레타 섬에서 겪었던 일.

 

카잔차키스 무덤에 절을 하는 그를 보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고는, 박경철이 그는 내 영웅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물었던 사람이 자기가 택시 기사인데 내일 자기 택시로 무료로 카잔차키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다 보여주겠다고 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집에 초대에 성대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던 일화.

 

그에게도 카잔차키스는 영웅이었다는 것,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여기는 사람은 친구라는 것, 친구는 대접해야 하고 환대해야 한다는 것. 그리스 인들의 성정.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제우스법이라고... 손님은 잘 환대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리스 사람들이 친절한 것이, 동네에 숨어 있는 음식점만이 아니라 유원지 근처의 음식점도 다들 개성있고 성의있게 요리를 해서 맛집이 도처에 있다는 것.

 

이렇게 그리스 신화와 또 카잔차키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는 여행기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통해서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여행기라서 더 의미가 있다.

 

이런 것들보다 이 여행기가 더 반가운 것은 우리는 그리스 여행하면 제일 먼저 아테네와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는데, 박경철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부터 갔다는 것. 그리스에 대해서 식상하지 않은 접근을 하게 한다.

 

코린토스->네메아->올림피아->아르고스-> 스파르타

 

친숙한 이름들이다. 코린토스는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고, 철벽을 자랑하는 성벽이 있었지만 결국 여러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역사를 지닌 곳. 이곳은 아프로디테의 욕망이 잘 구현된 도시였다는 것.

 

네메아는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퇴치한 곳, 올림피아는 지금도 열리는 올림픽의 원조가 되는 곳, 아르고스는 나중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이오가 납치되는 도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스파르타 교육으로 잘 알려진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실질적 지배자, 스파르타.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곳, 그러나 멸망한 이후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그때의 영광을 찾을 수 없는 곳. 박경철의 말을 빌리면 하다못해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고대 유물들, 신전들조차 잘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니, 관광객들에게도 외면받는 곳이라고 한다.

 

과거의 영광이, 힘으로 유지되던 영광이 무너지면서 후대에 남지 못하게 된 것. 스파르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정치 체제를 지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여행기는 스파르타에서 끝난다.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가겠지. 위대한 여행자라는 칭송을 받는 카잔차키스와 계속 함께 하면서.

 

혹 나도 나중에 그리스를 여행할 일이 생기면 그때 나는 카잔차키스가 아니라 박경철이 쓴 이 책을 읽고 또 들고 가겠다. 가서 박경철이 본 그리스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그리스를 덧불이겠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물론 그 전에 카잔차키스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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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주가 그랬던가. 그의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그렇다면 60-70년대 청소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들을 키운 것은? 바로 청계천 뒷골목 또는 세운상가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못 구할 것이 없었다고 하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욕망하던 것들을 은밀하게 이곳에서 얻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세운상가를 통해서 어른이 되어갔다.

 

  아니 어른들의 세계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하던 세계를 세운상가에서 만나고, 경험하고 자란 세대들.

 

그들은 그래서 세운상가의 아이들, 또는 세운상가를 통해 사랑을 배운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서울에 살던 청소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세운상가를 통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청소년들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시집에는 그래서 뒷골목에서 이야기되던 것들과 대중문화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차마 연예인이 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연예인들을 우상으로 섬기던 청소년들이 있었음을...

 

이 시집 도처에 나오는 연예인들 이름은 그래서 그 당시에 욕망하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욕망이 과연 채워졌을까는 논외로 하자. 그렇게 욕망하던 것들을 통해 성숙이라는 길에 들어서게 된 청소년들의 모습을 이 시집에서 만날 수가 있다.

 

그렇다고 욕망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 지금은 비록 비루할지라도 이들이 꿈꾸는 모습은 저 하늘 위에 있는 별과 같은 것이었으니. 그 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꿈만 꾸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는 같은 존재.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냐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 '흑연과 다이아몬드'

 

탄소라는 같은 구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이 두 물질을 하나로 묶어 놓은 시.

 

  흑연과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같은 구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흑연은

원자의 결합 상태가 느슨하고

조직이 헝클어져 있을 뿐

 

그렇다면 혹 나도, 심신의 조직이

미세하게 헝클어진 관계로

광휘만을 숭배하는 이 인생의 광산 속에서

흑연을 닮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매순간, 자신의 육체를

값싼 종이의 여백과 기꺼이 맞바꾸고 있는,

캄캄한 흑연의 운명

 

같은 구성 원소? 물론 다아이몬드는 간단히 비웃겠지

같잖은 흑연의 광물적 몽상과 비약을,

그러나 닳아지는 살들이여, 난 끝끝내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

저, 노래의 다이아몬드를 향하여

 

유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6년 초판 3쇄. 56쪽.

 

발은 땅에 딛고 있지만 머리는 하늘을 꿈꾸는 우리 인간들 모습, 그래서 우리는 흑연처럼 살아가지만 결국은 다이아몬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세운상가 키드라는 그리 좋은 이름을 달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자라서 다이아몬드처럼 인정받는, 빛나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삶의 진창에서 허덕일지라도 우리는 밝고 빛나는 미래를 꿈꾸지 않는가. 새해, 이제 그렇게 흑연처럼 살아갈지라도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곳은 다이아몬드임을 이 시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올 한 해 '끝끝내 /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 / 저, 노래의 다아이몬드를 향하여'라고 한 구절처럼 그렇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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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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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격동기 중국 현대사를 살아온 한 노인의 이야기다. 중국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어려운 일들을 겪었는데, 그 일들을 겪는 모습이 소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제목이 [인생]인데, 예전에 나온 책은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중국어 제목이 '활착(活着)'이니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니 어떤 제목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할 수가 있는데, 이 사람의 인생에서 중국 현대사까지 겹치고 보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중국 현대사를 비판한다기보다는 사회가 아무리 변화가 심하고 사람들을 힘들게 해도 사람들은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나 싶다.

 

푸구이. 지주의 아들. 젊은 시절까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면 개차반인 인생이다.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 젊은 지주들이 빠지기 쉬운 길에 들어서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인생 전반부.

 

도박판. 결국 인생은 도박과 같다지만 아니다. 도박판은 거짓과 사기가 난무하는 현장이다. 인생은 그런 거짓과 사기를 딛고 현실에 살아가는 과정이고. 그는 전재산을 날린다. 지주에서 소작농으로 전락. 그나마 원하지 않게 군대에 끌려가는 푸구이. 국민당 군대. 얼마나 썩었는지 소설에서 국민당 군대의 중대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중국은 아무리 비판을 하더라도 국민당에 의해 유지될 수는 없는 법. 푸구이는 공산당에 포로가 되지만 그들은 자유의사를 존중해 준다.

 

여기서 위화가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에게 중국은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부패한 국민당 치하의 중국은 아니다. 장점이 많았던 공산당.

 

'은혜 갚는 건 포기하자. 대신 해방군이 잘해준 건 절대 잊지 않기로 하자.' (105쪽)

 

이 문장에 현대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난봉꾼에서 착실한 농군으로 돌아온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삶.

 

마냥 평범한 삶이 지속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세상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문화대혁명. 사람들을 비껴가지 않는다. 푸구이도 마찬가지다.

 

그가 보고 겪게 되는 문화대혁명의 모습은 중국 사회주의가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당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실행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사람들 삶의 행복은 거대한 목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소소한 일상에서 나온다. 푸구이의 삶은 그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가족이 함께 살아단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이런 행복이 끝까지 유지되면 좋겠지만, 어디 인생이 그러한가?

 

푸구이는 가족들을 모두 자신보다 먼저 떠나보낸다. 그리고 늙은 소와 함께 늙어간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듯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듯이.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는 말이 있다. 어떻게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다.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하는 그런 삶들.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길흉화복을 겪게 되겠는가. 그 어느 것도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잘나간다고 마냥 우쭐해서도 안 되고, 지금 힘들다고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도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푸구이 노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위화 특유의 경쾌한 문체, 빠른 전개로 한 노인의 인생이, 한 가족의 삶들이 소설 한 편에 실려 있다. 극심한 슬픔을 동반하는 장면에서도 해학을 잃지 않는 그의 소설 전개는 이 소설을 단숨에 읽게 만든다. 그리고 비관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지 않는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겨내는 등장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이라는 듯이. 그래 우리네 인생에는 이렇들 모든 것이 들어 있지. 어느 하나만으로 우리 인생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지. 우리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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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고른 시집이다. "눈물이라는 뼈'

 

  우리 삶에 눈물이라는 액체가 삶을 더 단단하게 하는 뼈와 같은 고체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아니,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이야기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던데, 그만큼 눈물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른 시집인데, 읽다가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박혔다. 이 시에서 제목으로 나오는 별이 '명왕성'인데, 한때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불렸던, 하지만 지금은 행성에서 뻴셈을 당한 별.

 

그 별에 대한 시 구절 중에서 '이곳은 뺄셈이 발달한 나라'('명왕성에서' 부분. 71쪽)라는 시구.

 

더하기, 곱하기만 우대받는 사회에서 빼기, 나누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괄시받은 우리나라에서 이 시구를 보자 '눈물'도 역시 뺄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집의 3부는 '명왕성에서'에서 시작해 '명왕성으로'로 끝난다.

 

그만큼 시인에게 명왕성은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는데... 명왕성이 행성에서 빠졌다는 것, 또 명왕성의 영어 이름이 pluto라는 것, pluto는 하데스의 다른 이름이니 곧 저승의 왕을 뜻한다. 저승이다. 이승에서 빼기가 된 세상. 곧 명왕성이다.

 

저승은 곧 이승을 생각하게 하므로 '명왕성에서 명왕성으로'는 '저승에서 저승으로'가 아니라 '이승에서 이승으로'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토대로 이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뺄셈이라고 생각한다.

 

빼야지만 더할 수 있다는 것. 눈물 역시 흘려야지만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더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빼기에 해당하는 눈물은 삶을 더하는 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꼭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떠나지 않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여기에 뺄셈으로 인한 덧셈이 나온다. '고독에 대한 해석'이라는 시에서 빼기가 어떻게 더하기가 되는지 알 수 있다. 

 

  고독에 대한 해석

 

구석기 시대 활을 처음 발명한 자는

한밤중 고양이가 등을 곧추세우는 걸

유심히 보아두었을지 모른다

 

저 미지를 향해

척추에 꽂아둔 공포를 힘껏 쏘아올리는

직선의 힘을

 

가진 적이 많아서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울음이

가진 적이 없어서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것만 같은 울음에게

활을 겨누던 시간들이

흐른 후

 

19세기 베를린에 살던

부슈만 씨도

한참이나 관찰했으리라

기지개를 쫘악 펴고 일어난 길고양이는

일평생 척추에 심어둔 상처로 성대가 트인다는 것을

 

버림받은 이가 버림받은 이에게

마음 여린 이가 마음 여린 이에게 내밀었던

덥썩덥썩 잡았던 손목들이

싹둑싹둑 잘려나갈 때

 

세상 만물이 궁수처럼 흔들림이 없고

사방 천지가 온통 과녁뿐이란 사실이

단지 참혹했을 때

 

그는 집에 돌아와

울음이 그칠 때까지 주름상자를 접고 접어

오로지 탄식만으로 발성하는

아코디언을 발명하게 되었으리라

 

김소연, 눈물이라는 뼈. 문학과지성사. 2018년 초판 10쇄. 110-111쪽.

 

이 시에서도 무언가가 빠져나가야지만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뺄셈을 통한 덧셈이다. 이런 뺄셈으로 가게 하는 것, 뺄셈을 인식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고독 아닐까. 고독은 그래서 뺄셈이 도달한 극점이고, 이 극점에서 다시 더하기가 시작된다.

 

고독의 끝. 어쩌면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 발을 내딛는 것, 처절한 또는 과감한 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빼기는 0으로 또는 마이너스(-)로 가지 않는다. 무언가가 다시 태어난다. 만들어진다.

 

더히기, 곱하기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하는 사회가 지금 우리 사회가 아닐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빼기에 대해서, 나누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시인이 말하려고 하는 진실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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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18: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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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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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 - '정체성'이라는 질병에 대하여
김철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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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그리 편한 책은 아니다. 문학평론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사책도 아니고, 철학책도, 시류를 비판하는 책도 아니고... 어떤 쪽으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말이 솔직하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을 도서십진분류표에 따라 어디에 포함시켜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은데, 그 책 속에 여러 내용이 들어있을 때는 더 그렇다.

 

책을 쓸 때 저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다. 목적이 없더라도 글이 자신에게 왔다고 하는 저자들이 있더라도, 대개는 어느 한 분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분야, 저 분야에 모두 속하는 책들이 나올 수 있다. 아니 나와야 한다.

 

세상 일이 그렇듯이 어느 한쪽으로 반듯하게 잘리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참 다르게 이해되기도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 편향을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편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것도 한사코... 나는 불편부당한 사람이라고, 내 글은 불편부당하다고,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자신에게 여러 편향이 있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공정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양, 글도 마찬가지로 가치가 떨어지는 양 그렇게 여기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한쪽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도 어느 한쪽에 고정시키려 한다. 이 때 동원되는 것이 바로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들을 반대 편에 놓음으로써 자기 자리를 마련한다.

 

봐라, 난 이 쪽에 있다. 저들과 다르다. 이렇게 자신을 자리잡게 하기 위해 상대를 설정한다. 특히 이 상대는 자신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자신보다 못한, 아니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역시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을 끌어들인다.

 

이들을 이 책에서는 비체 -非體-(앱젝트abject) 라고 한다. 온전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 쓰레기가 되는 존재라고 한다. 이들을 자기 바깥에 규정함으로 자신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제목이 의미하는 바다.

 

'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 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러운 것, 즉 내가 배제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를 규정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우리를 지킨다는 말을 '정체성'이라고 하면 이런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내 '정체성'은 긍정적이고 도덕적이고 올바름이고 정당성이 있다. 그런데 '정체성'이란 상대를 전제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긍정적이고 도덕적, 올바름, 정당성이 있으려면 상대는 이 반대에 있어야 한다.

 

상대는 나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 안 된다. 이런 존재가 앱젝트(비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이런 존재들을 찾아낸다면 바로 '빨갱이, 친일파'일 것이다.

 

제목이 되는 글은 바로 이런 논의에서 나왔다. (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오지 않은 '전후 戰後')

 

차분히 읽어보면 수긍이 가는 면이 많다. 우리를 하나로 묶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체들을 동원했는지, 그것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즉 나는 나라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나 역시 복잡한 여러 존재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나를 우리와 묶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길이 바로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정체성' 논의는 우리가 비판하는 파시즘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다. 국가주의가 문제라고 하지만 '정체성'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국가주의' 논리에 함몰될 수 있다.

 

결국 '네 칼로 너를 치리라'라는 말은 같은 논리로 상대를 비판한다는 말이다. 굳이 니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괴물과 싸우는 이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네 칼로 치다보면 자연스레 자신도 같은 처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상대에게 모든 것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내 안에 있는 또다른 나를 보는 것, 철저하게 나를 인식하고 상대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

 

상대를 비판하기는 쉬운데 자신을 돌아보기는 힘들다. 내 밖에 있는 적을 상정하고 적을 공격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을 공격하는 자신이 적과 같아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나 역시 '정체성이라는 질병'에 걸리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점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한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분류하는 적과 나를 가르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당연하게 여기면서 더 고민을 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 문제제기, 받고, 더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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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1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명절연휴 잘 보내시고요 맛난거 많이 드십시오^^ㅋ

kinye91 2019-02-0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카알벨루치님도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