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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옴팔로스'라는 말, 많이 쓰는 말인데, 이 말이 '배꼽' 또는 '중심'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구의 중심, 우주의 중심. 옴팔로스. 이것은 아폴론 신전이 있는 곳에 붙인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의 삶에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그리스 중에서도 델포이를 옴팔로스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좁아지니, 세계 문명으로 확대를 하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세계 문명의 중심, 또는 발상지라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지구의 옴팔로스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너무도 익숙한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리스를 그렇게 여기기도 했을 거고. 우리 동양에서야 중국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서 가운데 중자를 써서 중국이라고 하겠지만, 동서양에서도 문명이 발달했던 나라들은 자신들의 민족에 대해서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동양이나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유럽 쪽으로 한정을 하면 그들 문명의 근원을 그리스에서 찾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 신화로 변질되고, 로마는 유럽을 제패했으니, 그 문화가 유럽 각지로 번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온 문명의 근원이 바로 그리스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의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경철이 그리스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썼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 나라의 문명을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 여행을 통해 자꾸 우리를 불러내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이 여행기는 그가 직접 그리스 전역을 돌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쓴 것이다.
그것도 특이하게 카잔차키스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여행기 곳곳에서 카잔차키스의 글이 나온다. 그를 수시로 불러낸다. 자신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카잔차키스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리고 크레타 섬에서 겪었던 일.
카잔차키스 무덤에 절을 하는 그를 보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고는, 박경철이 그는 내 영웅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물었던 사람이 자기가 택시 기사인데 내일 자기 택시로 무료로 카잔차키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다 보여주겠다고 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집에 초대에 성대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던 일화.
그에게도 카잔차키스는 영웅이었다는 것,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여기는 사람은 친구라는 것, 친구는 대접해야 하고 환대해야 한다는 것. 그리스 인들의 성정.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제우스법이라고... 손님은 잘 환대해야 한다고. 그러니 그리스 사람들이 친절한 것이, 동네에 숨어 있는 음식점만이 아니라 유원지 근처의 음식점도 다들 개성있고 성의있게 요리를 해서 맛집이 도처에 있다는 것.
이렇게 그리스 신화와 또 카잔차키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는 여행기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통해서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여행기라서 더 의미가 있다.
이런 것들보다 이 여행기가 더 반가운 것은 우리는 그리스 여행하면 제일 먼저 아테네와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는데, 박경철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부터 갔다는 것. 그리스에 대해서 식상하지 않은 접근을 하게 한다.
코린토스->네메아->올림피아->아르고스-> 스파르타
친숙한 이름들이다. 코린토스는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고, 철벽을 자랑하는 성벽이 있었지만 결국 여러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역사를 지닌 곳. 이곳은 아프로디테의 욕망이 잘 구현된 도시였다는 것.
네메아는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퇴치한 곳, 올림피아는 지금도 열리는 올림픽의 원조가 되는 곳, 아르고스는 나중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이오가 납치되는 도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스파르타 교육으로 잘 알려진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실질적 지배자, 스파르타.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곳, 그러나 멸망한 이후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그때의 영광을 찾을 수 없는 곳. 박경철의 말을 빌리면 하다못해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고대 유물들, 신전들조차 잘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하니, 관광객들에게도 외면받는 곳이라고 한다.
과거의 영광이, 힘으로 유지되던 영광이 무너지면서 후대에 남지 못하게 된 것. 스파르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정치 체제를 지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여행기는 스파르타에서 끝난다.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가겠지. 위대한 여행자라는 칭송을 받는 카잔차키스와 계속 함께 하면서.
혹 나도 나중에 그리스를 여행할 일이 생기면 그때 나는 카잔차키스가 아니라 박경철이 쓴 이 책을 읽고 또 들고 가겠다. 가서 박경철이 본 그리스에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그리스를 덧불이겠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물론 그 전에 카잔차키스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