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가 그랬던가. 그의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그렇다면 60-70년대 청소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들을 키운 것은? 바로 청계천 뒷골목 또는 세운상가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못 구할 것이 없었다고 하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욕망하던 것들을 은밀하게 이곳에서 얻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세운상가를 통해서 어른이 되어갔다.

 

  아니 어른들의 세계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절대로 보여주지 않으려 하던 세계를 세운상가에서 만나고, 경험하고 자란 세대들.

 

그들은 그래서 세운상가의 아이들, 또는 세운상가를 통해 사랑을 배운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서울에 살던 청소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세운상가를 통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청소년들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시집에는 그래서 뒷골목에서 이야기되던 것들과 대중문화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차마 연예인이 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연예인들을 우상으로 섬기던 청소년들이 있었음을...

 

이 시집 도처에 나오는 연예인들 이름은 그래서 그 당시에 욕망하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욕망이 과연 채워졌을까는 논외로 하자. 그렇게 욕망하던 것들을 통해 성숙이라는 길에 들어서게 된 청소년들의 모습을 이 시집에서 만날 수가 있다.

 

그렇다고 욕망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 지금은 비록 비루할지라도 이들이 꿈꾸는 모습은 저 하늘 위에 있는 별과 같은 것이었으니. 그 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꿈만 꾸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는 같은 존재.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냐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 '흑연과 다이아몬드'

 

탄소라는 같은 구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이 두 물질을 하나로 묶어 놓은 시.

 

  흑연과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같은 구성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흑연은

원자의 결합 상태가 느슨하고

조직이 헝클어져 있을 뿐

 

그렇다면 혹 나도, 심신의 조직이

미세하게 헝클어진 관계로

광휘만을 숭배하는 이 인생의 광산 속에서

흑연을 닮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매순간, 자신의 육체를

값싼 종이의 여백과 기꺼이 맞바꾸고 있는,

캄캄한 흑연의 운명

 

같은 구성 원소? 물론 다아이몬드는 간단히 비웃겠지

같잖은 흑연의 광물적 몽상과 비약을,

그러나 닳아지는 살들이여, 난 끝끝내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

저, 노래의 다이아몬드를 향하여

 

유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6년 초판 3쇄. 56쪽.

 

발은 땅에 딛고 있지만 머리는 하늘을 꿈꾸는 우리 인간들 모습, 그래서 우리는 흑연처럼 살아가지만 결국은 다이아몬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세운상가 키드라는 그리 좋은 이름을 달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은 자라서 다이아몬드처럼 인정받는, 빛나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삶의 진창에서 허덕일지라도 우리는 밝고 빛나는 미래를 꿈꾸지 않는가. 새해, 이제 그렇게 흑연처럼 살아갈지라도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곳은 다이아몬드임을 이 시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올 한 해 '끝끝내 / 흑연의 영혼으로 걸어갈 것이다 / 저, 노래의 다아이몬드를 향하여'라고 한 구절처럼 그렇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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