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마을 - 외국인 노동자, 코시안, 원곡동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국경 없는' 이야기
박채란 글 사진, 한성원 그림 / 서해문집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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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마을" 이름이 좋다. 국경이라는 금이 없는 마을이라니. 국경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국경은 참 많은 제약을 가한다. 사람들에게 너니 나니 하는 구별을 하게 하고, 내국인이니 외국인이니 하는 구별을 하게 한다.

 

지구촌 시대니 세계화 시대니 하는 말들을 하면서도 자기네의 국경은 굳건히 지키려고 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국경이 사람들을 차별하는 대상으로 군림하기도 한다.

 

넌 외국인이야. 우리랑 달라. 너네 나라로 돌아가. 왜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를 힘들게 해. 

 

이런 말들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경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성과 인종, 나라에 따라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는 국경으로 인해 차별을 받아서도 안된다는 말이 된다.

 

사람은 그냥 사람일 뿐이고, 노동자는 그냥 노동자일 뿐이다. 마치 자본이 국경을 가리지 않고 흘러다니고 어느 나라에서나 쓰이고 있듯이.

 

그런데 말로는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 외국인 노동자도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다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불안에 떨면서 노동을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 특히 우리나라보다도 더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되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환경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지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우리가 하기 힘든 일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차별대우에 관한 책이 예전에 나온 "말해요 찬드라"와 "아빠, 제발 잡히지마"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우리나라에서 지내고 있는지 이 책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이 책 "국경 없는 마을"도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한 가지 관점이 아니라 때로는 일기로, 때로는 편지로, 때로는 이주노동자의 관점으로, 때로는 그곳 이주노동자 쉼터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이끌어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 안산의 원곡동이리라. 그리고 이 원곡동을 '국경 없는 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기에 그러하리라.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해서 글을 쓴 책인데... 이주노동자들의 생활이, 마음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들이 외계에서 온 생명들이 아닌, 바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그들 역시 피와 살이 있는 우리들이고,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임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도 국경이 없어야 한다.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국경으로 사람들을 분리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그냥 다 같은 사람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만나야 한다. 그래서 '국경 없는 마을'은 안산의 원곡동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터 모든 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점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람들,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임을 다시금 느끼며 읽게 되었다. 예전에 읽었던 "말해요 찬드라"와 "아빠, 제발 잡히지마"를 떠올리며 부끄러워지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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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신동흔 지음 / 우리교육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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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역사를 보면 책을 읽는 방식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혼자 속으로 읽는 방식이 없었고 책은 무조건 소리를 내어 읽어야 했다고 한다. 그 소리 내어 읽는 책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다가갔으리라.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속으로 읽는 책읽기 방식이 채택되었고, 지금은 소리내어 책을 읽는 경우는 학교에서 읽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도 된다.

 

이런 책읽기, 소리내어 책읽기,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야기하기라고도 할 수 있다. 꼭 문자로 되어 있는 책을 읽어야만 책읽기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남에게 말해주는 일, 그것 역시 일종의 책읽기다.

 

굳이 책읽기라고 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이야기하기라고 하자.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오죽하면 요즘은 스토리텔링이 대세라고 하겠는가. 우리 말로 이야기라는 좋은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말을 들여와 '스토리텔링'이라고 하고,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것인양 호들갑을 떨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하기 하면 뭔가 촌스러운 느낌이 나고 스토리텔링 하면 세련된 느낌을 주나? 하여간 이야기하기든 스토리텔링이든 이야기가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틀림이 없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 아기'로 나오는,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아기'가 지금은 특정인의 소유가 되어 '돈'을 주는 사람에게만 보여지고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이 아기'는 이야기이고, 특정인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면...

 

지은이는 '이 아기'의 이야기는 진행중이라고 했다. 어떻게 결말이 날지 그것은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과 늘 함께 해왔던 이야기가 특정인의 소유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아기'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의식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이 책의 지은이는 아기장수 이야기를 '태백산맥'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 그만큼 이야기는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왜 이야기가 가치 있는지, 왜 '태백산맥'이라는 대작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는지 그 이야기를 펼쳐가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야기 위에 또 이야기가 겹친 셈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그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레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도처에 이야기가 있었다. 특히 이야기는 책에 갇혀 있지 않았다. 이야기는 활자라는 옷을 입기 전에 자신의 맨몸으로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녔다. 어디서든 언제든 자유롭게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람들이 살기 바빠지면서 이야기는 옷을 입어야 했다. 활자라는 옷. 그 옷은 이야기를 책 속에 가두어버리는 역할을 했는데... 그래서 이제는 말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글자로 이야기를 보는 것이 익숙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말 속에 들어 있는 그 맛들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들은 활자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우리들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만큼 이야기는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굳이 서양 학자인 베텔하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른들에게도 중요하지만 특히 어린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지침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의식적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된다.

 

하여 이야기가 풍성한 민족은 삶도 풍성하다. 이야기 속의 삶이 이야기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실제의 삶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점을 너무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야기 위에 또 하나의 이야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록 활자라는 옷을 입고 있는 이야기에 관한 책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활자라는 옷을 입고 있어도 이야기는 이야기다.

 

그림 동화나 안데르센 동화들, 그리고 우리나라 전래 민담들이 이제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경우보다 글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 이야기가 가진 특성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야기... 우리 삶과 늘 함께 있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힘이 세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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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생각 - 창의력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 마이클 미칼코의 최신작!
마이클 미칼코 지음, 박종하 옮김 / 끌리는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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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에 관한 책인데,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알려주고 있는 책인데... 읽는 자체로 재미가 있다. 그리고 창의력이 천재들에게만 해당하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는 능력이란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창의력은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틀, 그것은 사람을 규정짓는다.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도 규정짓는다. 이렇게 틀지워진 사람은 창의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 이미 그는 크나큰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틀, 학교에서 결정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학교라는 곳은 정답을 만들어간다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찾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자기 나름대로 정답을 만들어도 학교에서는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비난을 받을 뿐이다. 하여 학교 교육을 오래 받으면 받을수록 틀은 견고하게 작동하고, 이 틀을 깨기 위해서는 힘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학교가 다 창의성을 죽인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도 창의적인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대체로 학교가 창의성을 죽인다고 할 수 있는데, 학교 교육에서도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을 해야 한다.

 

창의성을 무슨 답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답찾기처럼 찾아라 하면 안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어떻게 창의성을 교육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정답 찾기가 아니라 정답 만들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시험이라는, 객관식이라는 평가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일. 아마도 학교는 이것부터 하면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일은 좀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 대한 비판을 한 다음에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알고 있더라도 우리의 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선은 다르게 생각하기,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짓기가 떠오른다. 창의성을 살리기 위해서 쉽게 드는 예가 바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라이다. 나와 다른 사람은 나에게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것들을 연결짓는 연습을 하라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또 마찬가지로 여유를 가지라는 것.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 동떨어진 일을 할 때 그 때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듯이 창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책도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정리해주고 있을 뿐이다. 단지 알고만 있던 것들을 직접 실습해보라고 하는데서 이 책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절박해야 한다.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해야 한다. 절벽에서 두렵다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향해 한 발을 더 내디뎌야 한다. 그럴 때 창의성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알로 인식해야 한다. 아직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알. 이 알 속에는 무엇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 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노력이지만, 자신은 창의성과 관계없다고 여기는 생각부터 없애야 한다.

 

나는 알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무엇으로도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알을 싸고 있는 껍질은 내가 깨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 이 책은 많이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창의성을 살리는 연습을 하는 과제는 58개다. 이 58개를 다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기에 그냥 다 따라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과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적어도 창의성이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이 책을 학생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창의성 부족인 학생들에게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 이것은 미래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데, 그걸 떠나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데 큰 이바지를 하는 요소가 바로 창의성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연습을 하자.

 

이런 연습을 통해서 어느덧 창의적인 사람으로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여기에 행복이 더불어 찾아올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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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막힐 때 Break!
알렉스 코넬 엮음, 유영훈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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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보면 여러 벽에 막힐 때가 많다. 우리의 삶을 미로 속의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하지 못한다. 오직 앞이 열려 있기에 발을 내디딜 뿐인데... 내디디다가 눈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벽을 보면 아, 이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든다.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앞에 있는 벽을 깨부수고 나아가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돌아가면 어디까지 돌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선택했던 갈라졌던 지점까지 돌아가서 그 때 가지 않은 길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더 앞으로 가야 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이것보다 더 심한 문제는 벽을 뚫었다고 해도 제대로 된 길로 접어들었다는 확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앞에 길은 열려 있는데 이 길 끝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지점이 있을지 아니면 또다른 벽이 버티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래저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지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생에서 벽에 부딪쳤을 때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은 태어나서 세 번의 기회를 갖는다고 했는데... 세 번의 기회를 갖는다는 얘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고비를 세 번 맞이한다는 뜻, 다른 말로 세 번 벽에 마주치게 된다는 얘긴데... 보통 사람도 이렇게 적어도 세 번은 벽에 부딪치는데...

 

이런 벽에 자주 부딪치는 사람이 있으니, 이들은 바로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 디자이너 등등.

 

이들은 창의력으로 승부를 거는 사람들인데, 가끔 창의력이 막힐 때가 있다고 한다. 이 때 거기서 주저앉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업세계에서도 도태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이들은 창의력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창의력을 잃지 않을까? 이런 궁금중보다는 창의력을 잃었을 때, 즉 창의장애에 직면했을 때 이를 어떻게 돌파할까 하는 의문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사람마다 위기를 벗어나는 방식이 다르듯이 자신들의 창의력이 장애물을 만나 더 이상 생각이 진척되지 않을 때 어떻게 벗어날까 하는 자신만의 방식들을 알려주고 있다. 백 사람의 방식을 모아서 책으로 냈는데...

 

이 책들에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은 이 책에서 힌트를 얻어 창의장애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테지만... 이 책의 목적이 꼭 똑같은 방식으로 하라는 얘기는 아니니까... 똑같은 방식으로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창의장애에 빠져 있는 셈이니까...

 

그냥 재미 있게 읽으면 된다. 아니, 어떤 순간에 이 책의 아무 쪽이나 펼쳐보아도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들에 나오는 사람들을 관통하고 있는 공통점은 있다. 이들이 창의장애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였기 때문이다. 너무도 몰두하여 더 이상 짜낼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이 그들에게는 창의장애다.

 

이 때 이들은 잠시 뒤로 물러선다. 뒤로 물러선다고 아예 그 문제를 잊는다는 것은 아니다. 잊은 척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 속에서, 머리 속에서 그 문제는 조용히 머물러 있다. 이 머물어 있음은 사라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한 번 나오기 위해서이다. 

 

뉴턴의 사과를 생각해 보라. 뉴턴이 어느 날 갑자기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만유인력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그는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고민을 잠시 미뤄두고 자신의 마음을 비워두었을 때 그 때 고민했던 문제의 해결책이 다가온 것이다.

 

비어있음... 그래서 우리는 여유를 가지라고 한다. 잠시 그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창의력이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다시금 창의력을 불러오는 방법은 그것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 공간은 여유에서 나온다.

 

이 책의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등을 꺼두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꼭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이 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벽에 부딪쳤을 때 그 벽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이 책을 활용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요즘 벽에 부딪쳤다고 느끼고 있다. 이 벽을 피해가도 또다른 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 돌파구는 내가 마련해야 한다. 나만의 돌파구가 있을테니 말이다. 자, 나만의 돌파구, 그것을 찾아야 한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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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배움은 어떻게 깊어지는가 - 배움의 공동체 수업 실천서
이시이 쥰지 지음 / 살림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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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공동체' 참 좋은 말이다.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배움을 중심에 놓고 보면 배움은 공동체의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자고로 배움에는 공동체가 필요하고, 배움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협동적일 수밖에 없는데... 배움에는 나를 중심에 놓되, 남도 나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교육에는 '배움'이 중심에 놓였다. 그리고 이런 배움은 홀로 하지 않고 함께 했왔다. 동양 고전이라는 논어의 시작이 '배움'에서 시작하는 사실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배움에 중심을 두어왔으며, 이를 교육의 중심에 놓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움'은 멀리 사라져 버리고 '교육'만이 남게 되었다. 이것도 '가르침'으로 남지 않고 단순한 전달로 남게 되었으니... 교육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교실 붕괴, 학교 붕괴. 이런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교권 붕괴라는 말이 많이 나돌고 있는데, 이 교권 붕괴를 마치 학생인권조례 탓인양 말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본말이 전도된 말일 뿐이다.

 

교권이 붕괴된 이유는 단순하다. 배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배움만이 아니라 가르침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만이 학교에서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교권은 더이상 존중받아야 할 무엇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다시 배움을 살리자고,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배움의 공동체를 널리 퍼뜨리고 다니는 일본의 사토 마나부 교수의 책 제목)을 배움에 머무르게 하자고 하는 노력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다.

 

배움의 공동체가 어디에서 뚝 떨어져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존재하던 배움의 모습을 현대에 맞게, 그것도 학교라는 공간에 맞게 구성한 것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 모형이다.

 

이를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받아들여 광범위하게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학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단지 표면상의 성공이 아니라 진정한 성공은 아이들이 배움을 즐기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단지 학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배움을 추구하는 자세를 지니게 하는 것인데...

 

베움의 공동체를 표면상 모습만 받아들였다가는 예전에 했던 열린교육이나 협동학습처럼 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일회성으로 끝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배움의 공동체가 도입된 지 10년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이런 실천 속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배움의 공동체가 형식에만 치우치는 경우도 생기기도 했을텐데... 이런 경험을 미리 한 일본에서 배움의 공동체 모형이 실제 학교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교사들은 어떻게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왜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이어야 하는지, 어째서 협동해야 하는지, 일제식 수업보다는 모둠별 수업이 더 효과적인지, 그냥 아이들의 대화만으로 끝나는 수업이 아니라 교사가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여기에 학생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점프는 어떻게 해야 일어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다만 수업의 과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 평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한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수업의 과정과 평가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이 경우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으면 배움의 공동체 모형도 정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배움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는 깊어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만들어갈 수가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처럼 시험이라는 제도가 떡 가로막고 있다면 결국 배움의 공동체는 성적을 올리는 한 수단이 될 뿐이지 진정한 배움을 추구하는 모형이 되지는 못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는 신선하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참 기분좋게 한다.

 

이것이 단지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잘 운영되고 있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은 입시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도 배움의 공동체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배움의 공동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사들이 노력을 안하는가? 아니다.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우수한 능력을 지닌 교사들이 오로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운영이 된 것은 교사들이 연구할 시간을 다른 업무로 빼앗았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교육을 살리고 싶으면, 학생들이 서로서로 돕는 배움을 만들어가게 하려면 정말로 교사들이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학생들과 교사들이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다.

 

학생들 스스로 배움을 일으키고, 학생과 교사들 간에도 배움이 일어나고, 교사들 사이에서 배움이 일어나며, 학교와 지역사회,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배움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이렇게 학교 현장에서 교실에서 이런 식의 수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도 우리만큼 입시의 중압감이 큰 나라인데도 이런 교육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멀리 볼 필요도 있지만 실천은 늘 가까이서부터이니...

 

교육의 중심은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이다. 이걸 명심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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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14-04-0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해보고 싶기는 한데...결국 엄두가 나질 않아 잠시 미뤄두고 있습니다. 아무튼 근래 들어 옳은 가르침이란 무엇인지 고민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