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1
김영찬 외 엮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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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 다닐 때는 책받침을 많이 쓰던 때였는데, 그 때 책받침을 꾸민 것은 주로 시였다. 

서시, 별헤는 밤, 진달래꽃, 못잊어, 엄마야누나야, 조그만 사랑노래, 님의 침묵, 광야 등등 교과서에서 배우기보다는 책받침이나 공책의 표지에서 이 시들을 보곤 했다. 

거기서 본 시는 교과서를 배울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비유, 상징, 종류, 운율, 주제 등을 익히지 않아도 되고, 오직 내 마음에 드는 시만을 골라 그냥 들고 다니거나 외우면 되었으니까. 

이렇게 우리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시를 접하게 되었다. 이런 만남이 중학교 때 입시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우린 시를 외우며 지내기도 하였지. 

이 때를 생각하면 시는 억지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시는 내 맘을 열어놓는 것, 나와 남을 하나로, 나와 자연을,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것, 마음에 울림을 주어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것, 지성이 작동하기 전에 감정이 먼저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긴 시는 읽어가면서 마음보다는 이성의 힘에 의지하기에 짧은 시를 좋아한다. 간혹 긴 시를 좋아할 때가 있는데, 이 때는 어느 한 구절이 맘에 들어서이다. 시 전체보다는 그 구절 때문에 시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말처럼 내가 시에게 다가간다는 표현보다는, 시가 내게로 다가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까지 나도 시에게 다가가겠지만, 시도 내게 다가오고, 우연히 시와 내가 만나는 지점에서 큰 울림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시를 배달해주고 있다.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즉 시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배달한 시도 있고, 이런 시를 배달받은 학생들이 자신이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배달한 시도 있고, 시인과 대화를 한 내용도 있다. 시를 접하는 행위가 결코 어려운 행위가 아님을 잘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온 선생님들처럼 우리도 어느 시를 마중할지만 결정하면 된다. 내 맘에 드는 시, 그 시를 마중해서 내 맘에 담아두고, 또 시 시를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다시 배달하면 된다. 이런 일이 활발해질 때 우리 사회는 좀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인터넷에서도 문학나눔이라고 시와 문장을 배달하는 사이트가 있다. 매주 한 편의 시와 좋은 문장을 배달하는 사이트. 모든 시와 문장을 배달받고 내 것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내 맘에 드는 시, 내 맘을 울리는 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를 배달받고, 배달하면 된다.  

그럴 때 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각자의 마음에 받아들인 사례로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자기에게 다가온 시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이제 우리도 우리들의 시를 배달해 보자.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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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들끓고 있어. 

최근엔 이집트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졌지. 이집트 전에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99도까지 견디던 민중들이 한 순간 끓어올라 세상을 바꾸고 있지. 

역사는 단절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음을, 유럽에서는 1968혁명을 통해, 우리나라는 4.19, 80, 87년을 통해,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 

최규석, 좋은 작가야. 그의 작품은 소장가치가 있어. 

그가 그린 이 만화, 단지 우리나라만을 이야기할까? 그리고 단지 이 만화 과거만을 의미할까?  

우리는 한 번 100도를 겪었는데, 늘 100도일 수는 없잖아. 많이 식었는데... 

다시 끓어오르고 있지 않을까.  책 표지를 봐. 지금은 99도래.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을 모르면,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이 꼭 남 나라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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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실실 웃으면서 상대방을 놀리는 거지. 

그런데 그 웃음이 비꼼도 아니고, 자조적이지도 않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강한 사람들을 웃음거리도 만드는 것이니. 

약자가 강자를 코너로 몰아넣고 강자의 위선을 만천하에 드러낼 때 나타나는 웃음. 그 웃음으로 세상을 위악을 드러내고자 하는 행위. 이름하여 명의 보정. 제 이름, 제 정체성 찾아주기. 

다른 말로 하면 네 칼로 너를 치리라. 

하여튼 상쾌하다. 

이러한 정체성 찾아주기, 또는 올바른 이름 찾아주기는 세계 어느 나라나 가능하지만, 가끔은 법적인 조치를 당한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마치 G20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었다가 기소당할 뻔한 누구처럼. 

비정규직 보호법, 4대강 살리기, 한국자유총연맹,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 등 정체성이 헷갈리는 단체가 꽤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스맨 프로젝트, 아직 실행이 안 되었지 우리나라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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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인터뷰 특강 시리즈 7
공지영 외 지음, 김용민 사회 / 한겨레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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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쁨에게 

얼마 전에 신문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성인들 한 해 평균 독서량에 대한 기사였지. 난 10권이 조금 넘는다고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8권이라는 기사도 있고, 16.6권이라는 기사도 있더구나. 어떤 기준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통계가 달라지겠지만, 많은 쪽으로 잡아도 한 해에 우리나라 성인들이 읽는 책은 17권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지. 여기에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성인이 10명 중 3.5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는데... 

한 해 17권이면 한 달에 1.5권도 채 안 된다는 얘기거든. 이것을 하루로 환산해 보면 책 한 권을 대략 300쪽이라고 하고, 한 달을 30일로 잡으면 하루에 15쪽을 읽은 셈이 되지. 하루에 15쪽이라, 보통 한 쪽을 읽는데 1분 정도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하루에 15분 정도 책을 읽은 셈이 돼. 참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데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을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령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 여자 어른들 경우를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데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직장에서 퇴근해서는 제2의 직장생활이라는 각종 회식이 기다리고 있고, 회식을 벗어난다면 온갖 승진시험에 책을 읽을 겨를이 없을 거야. 출근 시간에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으면 된다고? 어림없는 소리지. 그건 삶에 여유가 있었을 때나 가능한 소리지. 하루 종일, 사실 법에는 8시간 노동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어른들 중에 8시간 노동하는 사람들 그리 많지 않지. 특히 생산직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 시간 내기 힘들어. 힘들게 노동하고 와서 얼마 쉬지 못 하고 다음날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운이 좋아 앉게 된다면 짧은 시간 잠을 청하게 되지. 아니 잠을 청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이 감기게 돼. 서 있을 땐, 세상에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어떤지 출근시간에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거야. 책을 읽을 공간이 나지 않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간신히 자기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든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가 없어.   

그럼 집에서 일을 하는 전업주부는? 역시 마찬가지지. 아침부터 남편, 아이들 챙기고, 집안 청소하고 또다시 식사 준비하고 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게 되지. 잠시 남는 시간, 곤한 몸을 쉬게 하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참 배부른 자들이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지.  

이렇듯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 개인이 게을러서도, 책 읽기를 싫어해서도가 아니라,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높은 곳으로만 남들을 밟으면서 기어오르는 애벌레들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일등주의라는 괴물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 일등주의가 승자독식주의로 가면서 1등이 아닌 사람은 살아남지 못 한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있지. 그래서 결코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너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이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미리 고민했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말을 따온 제목처럼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냈지. 강연 내용과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어서 읽기에도 편하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 

여섯 명이 강의하고 질의, 응답을 했다는데, 한 명이 빠지고, 다섯 명의 이야기만이 실려있지. 하긴 뭐 꼭 여섯 명이 모두 책에 실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책 읽는데는 아무 상관이 없어. 

노회찬 진보신당 전대표부터 시작하여, 비클라움이라는 예스맨프로젝트를 실시했던 사람, 소설가 공지영, 일본사람 마쓰모토 하지메, 그리고 김규항까지 모두들 자기 분야에서 자신만이 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 

노회찬 부분은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말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면서 읽었어. 진보가 나름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는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거부하고, 한 사람의 천재보다는 10만 명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중요하지. 우리나라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 동아리로 나누어져 있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지만, 최근에는 진보대통합이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진보는 힘없는 사람들, 하위계층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목표의 공통점 밑에 어떻게 그 사회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 이것은 대동소이이고, 그러니 합치되 자신들의 색채를 잃지 않아야 하니 화이부동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진보들은 이 두 단어를 명심하고 자신들의 정책들을 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 우리는 일등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노회찬과 관련해서는 조국,오연호의 "진보집권 플랜"이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 그리고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의 진보적인 학자 글이나, 톨스토이, 간디,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들의 책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예스맨 프로젝트의 비클바움의 글을 읽으면서는 외국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명의보정(Identity Correction)이라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냥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한 행동을 우리 사회에도 응용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말야. 이게 그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견해낸 행동이 아닌 것이, 일본에서는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풍자니 해학이니 하는 행동들이 있었으니, 현재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다만 누가 언제 어떻게 행동에 돌입하느냐가 중요하겠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거든. 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의 행동을 그 말 그대로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총연맹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들 단체의 명칭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야. 나는 실행도 못 해보고, 머리 속에서만 생각해 보고 낄낄거렸지만 혹 알아, 누군가가 나타날지. 

공지영의 글을 읽으면서는 소설의 운명에 작가의 운명을 걸고 있는 그녀에게서 존경스러움을 느꼈고, 그녀의 말처럼 소설이 대중에게 영합하는 장르라면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즉 가치가 개입돼 있는 대중에의 영합이라면 참 훌륭한 작가이지 않을까 싶었고, 그녀가 쓴 소설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공지영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들의 삶을 드러내고 그들의 삶에서 우리의 삶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내게 하는 작가 공지영을 말이야. 그녀가 한 말 중에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신의 생각, 말, 내면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 너무도 당연한 말같지만 다시 한 번 마음에 들었지. 그래 우리가 1등만을 바라보고 살 때 나타나는 내 얼굴과, 1등이 아닌 뒤에 있는, 밑에 있는 존재들에 애정을 갖고 함께 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내 얼굴은 천양지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할까. 앞으로도 그녀가 많이 팔리는 소설(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까)을 계속 썼으면 좋겠어. 

말이 점점 길어지네. 짧게 쓰려고 했는데 말야. 이번에 마쓰모토 하지메. 이 사람이 하는 일을 우리 말로 어떻게 옮겨야 하나? 빈민운동, 가난뱅이들의 몸짓... 참 뭐라 하기 힘드네. 하지만 그가 앞서가는 사람들이 아닌 뒤쳐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 뭐라 이름붙이든 말야. 그는 운동을 진지하게 목숨걸고 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한다고 해. 운동하는 방식이 변한 거지.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면서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이건 내 즐거운 삶이다는 생각만을 하게 되지. 우리나라 80년대까지 운동권은 희생이라는 개념을 머리속에 달고 살았거든. 그래서 변절(?)한 사람이 많았는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은 그런 희생이란 개념이 없어. 그게 좋아. 그냥 자기 삶인 거야. 즐거운, 내가 좋아서 하는. 우리나라도 이런 가난뱅이들의 역습이 있기도 하지.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서 예술 공간을 마련한다든지, 한 집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주거운동을 한다든지 말야. 이런 운동은 남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여유에서 온다고 생각해. 결국 1등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죽어라 달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공감과 여유가 나올 수가 없지. 이런 공감과 여유는 행복을 옆으로 옆으로 전파하는 특징이 있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자세지. 

이제 마지막 김규항이네. 이 사람, 사람들은 보통 B급 좌파라고 불러. 본인 말에도 나와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지식인(이 말이 뭐하다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그가 어느 정도 왼쪽에 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아.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냐를 보면 되고, 그의 말이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면 되지. 난 개인적으로 이 사람, 참 좋아하는데, 이 사람 글을 읽을 때마다 불편해져. 나는 아직도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못 하고 있거든. 그래서 많이 불편해. 이 사람 글을 읽으면 자신의 추악함을 비춰주는 거울을 앞에 놓은 기분이야. 들여다 보았을 때 자신이 외면하고 싶은 얼굴이 정면으로 드러나는 그런 거울. 그래도 가끔은 이 사람 책을 읽어. 불편하지만 반성할 수 있으니까. 조금은 나 자신이 변해갈 수 있으니까. 김규항은 이 책에서는 교육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 하지. 결국은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괴물을 지니고 있다는 거고,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를 운영해. 희망을 어린이에게서 발견하고, 우리 어린이들이 잘 자라서 이 사회를 이끌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다고 생각해. 이렇게 어린이와 함께 세상을 바꾸어가려는 모습을 여러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냥 독일 교육에 대해 쓴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읽든지,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을 읽든지,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을 읽든지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결국 이들이 말하는 내용은 1등이라는 한 방향만 보고 달려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정리될 수 있겠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 내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짓밟아서는 안 되는 사회겠지. 이런 사회에서도 과연 성인들이 책을 잘 안 읽을까. 아마 그러지 않을걸. 오히려 많은 책들을 읽고 많이들 토론하고 그러겠지. 그래서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나 나의 걸음을 걷되,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소중한 책이지. 

한 번 읽어 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실천하면서. 

추신 :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박의상이란 사람이 쓴 일등육이란 시를 봐. 우린 그런 일등육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치!

일등육을 남긴 소를  / 나는 안다 / 그는 틀림없이 / 1등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것이다 / 
그리고 좋은 / 1등 목장에서 / 1등 축우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 1등 사료를 먹고 /
빈둥거리며 잘 살았을 것이다 /
그러다가 / 남들보다 빨리 / 120킬로가 되자 / 재깍 / 도축장에 끌려와 / 살이 찢기고 뼈가 쪼개졌다 / 그때 / 1등소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 1등육이다! 

              - 박의상 '일등육'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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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하워드 진.도날도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 궁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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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라고 해서 교육에 관한 글들만 실리지는 않았다. 교육 분야로 분류를 할까 사회 분야로 분류를 할까 망설이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교육은 사회의 한 분야이고, 하워드 진이 역사학자라는 생각을 하면 이 책은 단지 미국의 교육문제를 다룬 책이라기 보다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단지 미국만의 문제일까.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지식의 충족을 위해서는 아닐텐데, 우리가 미국의 교육이 이런 비판을 받기도 하고, 미국 사회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는 않을 테니까. 

대담 글도 있고, 어떤 매체에 기고한 글도 있고, 다른 책에 실렸던 글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실은 글도 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며 계속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게 됐다. 비교만이 아니라 그렇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는 학교에서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쳐 뛰어난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자본이 바라는 학생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거기서 희망을 찾는다. 즉 학교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강요하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지배층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을 길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마치 그람시가 말한 지식인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전통적인 지식인도 있고, 진보적인 유기적인 지식인도 존재한다는 설명과 유사하다. 그렇담 학교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역사를 가르치되,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민중들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이다. 그 예로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이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에 불과하는 사실을, 즉 역사란 사실들의 집함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고, 그런 태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미국 언론들의 문제점, 연방수사국의 문제점 등을 말하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들이나 기관들이 얼마나 진실을 감추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지. 신문들을 보라. 일방적으로 어떤 한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신문이 얼마나 많은가. 오죽했으면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는가.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로지 그 집단의 이념만을 주장하고 있어,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처럼 객관성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철저히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그들이 지배층이 아닌 민중들의 이익을 보살피게 하려면 그들의 정체를 꾸준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그가 말하듯이 우리나라도 최근에 정치인 사찰부터 민간인 사찰까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 있지 않았던가. 그 기관들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도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갖춰야만 할 이유가 또 한가기 생기는 것이다. 

또 텔레비전을 보라. 세상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매체에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오로지 나오는 내용은 잘사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이나, 소비행태, 그냥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시간때우기식의 내용만 나오지 않는가. 기껏 가난한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이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구조적 문제를 집단의 힘으로, 단결해서 해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시혜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던가.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스로 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지 않고 있는데, 학교 마저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오직 대학이라는 공간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때 어떻게 해야 학교 교육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는 정확한 용어의 정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스맨 프로젝트에서 나온 명의보정이(Identity Correction)이란 말을 실천해야 한다. 보수가 무엇인지, 수구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우파와 좌파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언어가 별 것 아닌것 같지만, 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이를 경쟁이라는 말보다는 승자독식이라고 바꿔본다면 경쟁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대대수 사람들의 삶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는다. 얼마나 다른가? 또 사회적 사실을 예로 들면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부르는 사람과 광주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를 것이다. 내가 어떤 사실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사실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가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참 명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이지만, 그의 글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며,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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