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하워드 진.도날도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 궁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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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라고 해서 교육에 관한 글들만 실리지는 않았다. 교육 분야로 분류를 할까 사회 분야로 분류를 할까 망설이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교육은 사회의 한 분야이고, 하워드 진이 역사학자라는 생각을 하면 이 책은 단지 미국의 교육문제를 다룬 책이라기 보다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단지 미국만의 문제일까.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지식의 충족을 위해서는 아닐텐데, 우리가 미국의 교육이 이런 비판을 받기도 하고, 미국 사회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는 않을 테니까. 

대담 글도 있고, 어떤 매체에 기고한 글도 있고, 다른 책에 실렸던 글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실은 글도 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며 계속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게 됐다. 비교만이 아니라 그렇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는 학교에서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쳐 뛰어난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자본이 바라는 학생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거기서 희망을 찾는다. 즉 학교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하고 강요하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지배층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을 길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마치 그람시가 말한 지식인들 중에서도 보수적인 전통적인 지식인도 있고, 진보적인 유기적인 지식인도 존재한다는 설명과 유사하다. 그렇담 학교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역사를 가르치되,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민중들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이다. 그 예로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이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에 불과하는 사실을, 즉 역사란 사실들의 집함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라고,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고, 그런 태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미국 언론들의 문제점, 연방수사국의 문제점 등을 말하면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들이나 기관들이 얼마나 진실을 감추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지. 신문들을 보라. 일방적으로 어떤 한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신문이 얼마나 많은가. 오죽했으면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는가.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로지 그 집단의 이념만을 주장하고 있어,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처럼 객관성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철저히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그들이 지배층이 아닌 민중들의 이익을 보살피게 하려면 그들의 정체를 꾸준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그가 말하듯이 우리나라도 최근에 정치인 사찰부터 민간인 사찰까지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 있지 않았던가. 그 기관들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도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갖춰야만 할 이유가 또 한가기 생기는 것이다. 

또 텔레비전을 보라. 세상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매체에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오로지 나오는 내용은 잘사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이나, 소비행태, 그냥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시간때우기식의 내용만 나오지 않는가. 기껏 가난한 사람들 얘기가 나오면 이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구조적 문제를 집단의 힘으로, 단결해서 해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시혜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던가. 주변의 모든 것이 스스로 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지 않고 있는데, 학교 마저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오직 대학이라는 공간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때 어떻게 해야 학교 교육을 통해 비판적인 사고를 형성하게 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에서는 정확한 용어의 정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스맨 프로젝트에서 나온 명의보정이(Identity Correction)이란 말을 실천해야 한다. 보수가 무엇인지, 수구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우파와 좌파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어떻게 다른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언어가 별 것 아닌것 같지만, 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이를 경쟁이라는 말보다는 승자독식이라고 바꿔본다면 경쟁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대대수 사람들의 삶이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만는다. 얼마나 다른가? 또 사회적 사실을 예로 들면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부르는 사람과 광주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행동도 다를 것이다. 내가 어떤 사실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사실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가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참 명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이지만, 그의 글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며, 무엇이 올바른 삶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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