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인터뷰 특강 시리즈 7
공지영 외 지음, 김용민 사회 / 한겨레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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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쁨에게 

얼마 전에 신문을 보았는데, 우리나라 성인들 한 해 평균 독서량에 대한 기사였지. 난 10권이 조금 넘는다고 보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0.8권이라는 기사도 있고, 16.6권이라는 기사도 있더구나. 어떤 기준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통계가 달라지겠지만, 많은 쪽으로 잡아도 한 해에 우리나라 성인들이 읽는 책은 17권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지. 여기에  한 해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성인이 10명 중 3.5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는데... 

한 해 17권이면 한 달에 1.5권도 채 안 된다는 얘기거든. 이것을 하루로 환산해 보면 책 한 권을 대략 300쪽이라고 하고, 한 달을 30일로 잡으면 하루에 15쪽을 읽은 셈이 되지. 하루에 15쪽이라, 보통 한 쪽을 읽는데 1분 정도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하루에 15분 정도 책을 읽은 셈이 돼. 참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데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을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령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 여자 어른들 경우를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데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직장에서 퇴근해서는 제2의 직장생활이라는 각종 회식이 기다리고 있고, 회식을 벗어난다면 온갖 승진시험에 책을 읽을 겨를이 없을 거야. 출근 시간에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으면 된다고? 어림없는 소리지. 그건 삶에 여유가 있었을 때나 가능한 소리지. 하루 종일, 사실 법에는 8시간 노동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어른들 중에 8시간 노동하는 사람들 그리 많지 않지. 특히 생산직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 시간 내기 힘들어. 힘들게 노동하고 와서 얼마 쉬지 못 하고 다음날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운이 좋아 앉게 된다면 짧은 시간 잠을 청하게 되지. 아니 잠을 청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이 감기게 돼. 서 있을 땐, 세상에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어떤지 출근시간에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거야. 책을 읽을 공간이 나지 않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치여서 간신히 자기 몸 하나 지탱하기도 힘든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가 없어.   

그럼 집에서 일을 하는 전업주부는? 역시 마찬가지지. 아침부터 남편, 아이들 챙기고, 집안 청소하고 또다시 식사 준비하고 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게 되지. 잠시 남는 시간, 곤한 몸을 쉬게 하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참 배부른 자들이나 할 수 있는 행위가 되지.  

이렇듯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 개인이 게을러서도, 책 읽기를 싫어해서도가 아니라, 책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높은 곳으로만 남들을 밟으면서 기어오르는 애벌레들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일등주의라는 괴물 때문에 생긴 일이지. 이 일등주의가 승자독식주의로 가면서 1등이 아닌 사람은 살아남지 못 한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있지. 그래서 결코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닌, 너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이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미리 고민했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말을 따온 제목처럼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냈지. 강연 내용과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어서 읽기에도 편하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 

여섯 명이 강의하고 질의, 응답을 했다는데, 한 명이 빠지고, 다섯 명의 이야기만이 실려있지. 하긴 뭐 꼭 여섯 명이 모두 책에 실려야 하는 건 아니니까 책 읽는데는 아무 상관이 없어. 

노회찬 진보신당 전대표부터 시작하여, 비클라움이라는 예스맨프로젝트를 실시했던 사람, 소설가 공지영, 일본사람 마쓰모토 하지메, 그리고 김규항까지 모두들 자기 분야에서 자신만이 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 

노회찬 부분은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말을 머리 속에서 떠올리면서 읽었어. 진보가 나름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는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거부하고, 한 사람의 천재보다는 10만 명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중요하지. 우리나라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 동아리로 나누어져 있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지만, 최근에는 진보대통합이란 말이 나오고 있으니, 진보는 힘없는 사람들, 하위계층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목표의 공통점 밑에 어떻게 그 사회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니 이것은 대동소이이고, 그러니 합치되 자신들의 색채를 잃지 않아야 하니 화이부동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진보들은 이 두 단어를 명심하고 자신들의 정책들을 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 우리는 일등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 노회찬과 관련해서는 조국,오연호의 "진보집권 플랜"이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 그리고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의 진보적인 학자 글이나, 톨스토이, 간디,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들의 책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예스맨 프로젝트의 비클바움의 글을 읽으면서는 외국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명의보정(Identity Correction)이라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냥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한 행동을 우리 사회에도 응용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 말야. 이게 그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견해낸 행동이 아닌 것이, 일본에서는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풍자니 해학이니 하는 행동들이 있었으니, 현재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다만 누가 언제 어떻게 행동에 돌입하느냐가 중요하겠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거든. 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의 행동을 그 말 그대로 보여주는 거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총연맹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들 단체의 명칭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야. 나는 실행도 못 해보고, 머리 속에서만 생각해 보고 낄낄거렸지만 혹 알아, 누군가가 나타날지. 

공지영의 글을 읽으면서는 소설의 운명에 작가의 운명을 걸고 있는 그녀에게서 존경스러움을 느꼈고, 그녀의 말처럼 소설이 대중에게 영합하는 장르라면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즉 가치가 개입돼 있는 대중에의 영합이라면 참 훌륭한 작가이지 않을까 싶었고, 그녀가 쓴 소설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단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공지영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들의 삶을 드러내고 그들의 삶에서 우리의 삶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내게 하는 작가 공지영을 말이야. 그녀가 한 말 중에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신의 생각, 말, 내면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 너무도 당연한 말같지만 다시 한 번 마음에 들었지. 그래 우리가 1등만을 바라보고 살 때 나타나는 내 얼굴과, 1등이 아닌 뒤에 있는, 밑에 있는 존재들에 애정을 갖고 함께 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내 얼굴은 천양지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할까. 앞으로도 그녀가 많이 팔리는 소설(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까)을 계속 썼으면 좋겠어. 

말이 점점 길어지네. 짧게 쓰려고 했는데 말야. 이번에 마쓰모토 하지메. 이 사람이 하는 일을 우리 말로 어떻게 옮겨야 하나? 빈민운동, 가난뱅이들의 몸짓... 참 뭐라 하기 힘드네. 하지만 그가 앞서가는 사람들이 아닌 뒤쳐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 뭐라 이름붙이든 말야. 그는 운동을 진지하게 목숨걸고 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한다고 해. 운동하는 방식이 변한 거지.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하면서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이건 내 즐거운 삶이다는 생각만을 하게 되지. 우리나라 80년대까지 운동권은 희생이라는 개념을 머리속에 달고 살았거든. 그래서 변절(?)한 사람이 많았는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은 그런 희생이란 개념이 없어. 그게 좋아. 그냥 자기 삶인 거야. 즐거운, 내가 좋아서 하는. 우리나라도 이런 가난뱅이들의 역습이 있기도 하지.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서 예술 공간을 마련한다든지, 한 집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주거운동을 한다든지 말야. 이런 운동은 남에 대한 공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여유에서 온다고 생각해. 결국 1등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죽어라 달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공감과 여유가 나올 수가 없지. 이런 공감과 여유는 행복을 옆으로 옆으로 전파하는 특징이 있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자세지. 

이제 마지막 김규항이네. 이 사람, 사람들은 보통 B급 좌파라고 불러. 본인 말에도 나와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지식인(이 말이 뭐하다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그가 어느 정도 왼쪽에 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아.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냐를 보면 되고, 그의 말이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면 되지. 난 개인적으로 이 사람, 참 좋아하는데, 이 사람 글을 읽을 때마다 불편해져. 나는 아직도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못 하고 있거든. 그래서 많이 불편해. 이 사람 글을 읽으면 자신의 추악함을 비춰주는 거울을 앞에 놓은 기분이야. 들여다 보았을 때 자신이 외면하고 싶은 얼굴이 정면으로 드러나는 그런 거울. 그래도 가끔은 이 사람 책을 읽어. 불편하지만 반성할 수 있으니까. 조금은 나 자신이 변해갈 수 있으니까. 김규항은 이 책에서는 교육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 하지. 결국은 우리 자신이 우리 안에 괴물을 지니고 있다는 거고,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잡지를 운영해. 희망을 어린이에게서 발견하고, 우리 어린이들이 잘 자라서 이 사회를 이끌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다고 생각해. 이렇게 어린이와 함께 세상을 바꾸어가려는 모습을 여러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냥 독일 교육에 대해 쓴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읽든지,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을 읽든지,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을 읽든지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결국 이들이 말하는 내용은 1등이라는 한 방향만 보고 달려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정리될 수 있겠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 내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짓밟아서는 안 되는 사회겠지. 이런 사회에서도 과연 성인들이 책을 잘 안 읽을까. 아마 그러지 않을걸. 오히려 많은 책들을 읽고 많이들 토론하고 그러겠지. 그래서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쟁의 트랙에서 벗어나 나의 걸음을 걷되,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 이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소중한 책이지. 

한 번 읽어 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실천하면서. 

추신 :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박의상이란 사람이 쓴 일등육이란 시를 봐. 우린 그런 일등육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치!

일등육을 남긴 소를  / 나는 안다 / 그는 틀림없이 / 1등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것이다 / 
그리고 좋은 / 1등 목장에서 / 1등 축우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 1등 사료를 먹고 /
빈둥거리며 잘 살았을 것이다 /
그러다가 / 남들보다 빨리 / 120킬로가 되자 / 재깍 / 도축장에 끌려와 / 살이 찢기고 뼈가 쪼개졌다 / 그때 / 1등소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 1등육이다! 

              - 박의상 '일등육'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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