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난무한다.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큰 울림을 주는 말들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만을 주는 말들.

 

상처가 깊은 사람, 상처를 헤짚는 말들.

 

나하고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하는 '유체이탈의 말들'

 

소위 막말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이 때, 진실한 말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우리들의 마음을 위무해줄 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는 요즘인데...

 

언어폭력이란 말을 쓰면서 정작 언어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언어폭력을 쓰고 있는 현실,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서 대신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들을 교묘하게 운용하여 국민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실.

 

세상사를 훤히 알고 있다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말들을 자기 구미에 맞게 변용하여 사용하고 있는지...

 

마음을 울리는 말이 그리워지는 요즘인데...

 

수다스런 말보다는 할 말을 명확히 하는 그런 간결한 말. 이시영의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하다.

그의 시는 짧아서 좋다. 말을 아끼고 아껴서 할 말만 딱 하고 만다. 그래서 읽기에 좋다. 읽은 다음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는 것도 좋다.

 

짧은 말 속에 긴 울림이 있다. 그런 그의 시집 "무늬"를 읽다가 발견한 시. 詩

 

       시(詩)

 

화살 하나가 공중을 가르고 과녁에 박혀

전신을 떨 듯이

나는 나의 언어가

바람 속을 뚫고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마구 떨리면서 깊어졌으면 좋겠다

불씨처럼

아니 온몸의 사랑의 첫 발성처럼

 

이시영, 무늬, 문학과지성사. 1994년 초판 2쇄. 64쪽

 

이런 말 어디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첫사랑의 말처럼... 처음 사랑을 보내는 그런 말처럼,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말.

 

학교에서 교사의 말 한 마디가 자신의 운명을 바꿨다는 말이 예전에는 나왔는데, 요즘은 교사의 말 한 마디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했다는 학생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에서도 말은 가슴에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당과 야당의 대표가 모여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서로 자화자찬하면서 합의했다는 정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이 나라에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너무도 드물어 천연기념물이 되어 가고 있는데...

 

그러니 마음을 울리는 말은 커녕, 누군가의 가슴까지 가지도 못하는 말들이 허공 중에 흩날리고 있는 현실이니.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는 말, 가슴을 떨리게하는 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가끔 시를 읽는지도 모른다. 시에서는 아직도 마음을 울리는 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팍팍한 시대, 헝크러진 말들의 난무 속에서 극도록 언어를 절제하고 있는 이시영의 시집을 읽어보자.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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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녹색평론이 나와?”

“여전히 나오고 있어요.”

이게 내가 '녹색평론 142호"를 읽고 있다가 다른 사람과 주고 받은 대화다.

녹색평론이 아직도 나오냐는 질문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이미 환경, 생태에 관한 이야기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또 그만큼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는 이 책은 실효성이 다하지 않았냐는.

또 녹색평론은 너무도 당연한 말들만 하니, 이제는 식상해하지 않느냐는, 그런 생태근본주의 책은 이제는 필요성이 떨어지지 않았냐는.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녹색평론이 나오지 않을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하나는 정말로 사람들이 너무도 식상해 해서, 이제는 그런 근본주의적인 소리 듣고 싶지 않다고 아우성을 칠 때, 녹색평론이 발간이 되어도 우리나라 상황에서 아무런 실효성이 없게 되면 그 때는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생태 사회로 전환이 되어 삶 자체가 생태적일 때, 그때는 평소에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공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공기와 함께 살아가듯 녹색평론이 이미 우리 삶에 녹아들었기에 더 나올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둘 다 아니다. 생태에 관한 근본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고, 또 우리 사회는 생태 사회로 전환이 되지 않았기에, 생태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우리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녹색평론은 발간되어야 한다.


그게 녹색평론이 여전히 발간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번 호 역시 생각할 거리가 많다. 특히 4월 16일, 세월호,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어쩌면 해결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그 사건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경제 구조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의 민주화, 정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이루어지기 힘듦을 이번 호에서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고나 할까?

 

세월호에 관한 글은 '세월호 참사 1년, 고통과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글이 묶여 있으며, 박 준의 시까지 하면 세 편의 글이 이번 호에 실려 있다. 물론 여는 글까지 하면 네 편이고...

 

우리 사회의 모든 면이 이 세월호에 담겨 있음을,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삶의 변화 없이는 해결이 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지 이번 호에는 경제나 민주주의에 대한 글이 많다. 민주주의,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닌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글들을 담고 있는데...

 

너무도 많은 것들을 관료나 특정 직업인들에게 위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는 시민이 되지 못하고, 국민으로 지내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하는 글들이었고...

 

이런 전체를 살필 수 있는 글 이외에 생태, 환경과 관련하여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계있는 일을 다룬 글이 있어서 충격을 주었다.

 

'대한민국 쓰레기시멘트의 비밀'이라는 최병상의 글인데... 우리나라 건물들이 쓰레기를 재활용한 시멘트로 지어졌다는 사실, 지어진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알았으니, 내 살고 있는 집 역시 쓰레기시멘트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너무 많은데도 까맣게 모르면서 좋다고 지냈으니...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기본적인 3요소가 '식,의,주'라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쓰레기시멘트로 지어졌다고 하니... 

 

이런 점에서 녹색평론의 가치가 발현된다. 경제니 정치니 하면 사람들이 먼저 귀를 막고 볼 생각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 삶과 밀접한 곳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에 관한 글과 우리 실생활 문제에 관한 글이 함께 실려 있어서 거시적인 면과 미시적인 면을 함께 살필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녹색평론이 '여전히' 나와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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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는 그런 달.

많은 날 중에서 우리들이 기념해야 할 날들이 많은 달이 바로 오월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씩 채워지고 있는 오월. 아름다운 계절이다. 물론 그 계절의 충만함은 그 동안의 비어 있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한겨울이라는 비움을 겪었기에 이 오월이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비움이 없는 채움이란 있을 수 없음을 오월의 충만함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고 있다.

 

그런 오월에 시 한 편. 정끝별의 시집 "흰 책"을 읽다가 어쩌면 이 오월에 이런 시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채워짐이 넘치는 시절에 비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시

 

속 좋은 떡갈나무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벌레들이 산다

그 속에 벗은 몸을 숨기고 깃들인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버섯과 이끼들이 산다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딱따구리들이 산다

그 속에 부리를 갈고 곤충을 쪼아먹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박쥐들이 산다

그 속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잔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올빼미들이 산다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깐다

속 빈 떡갈나무에는 오소리와 여우가 산다

그 속에 굴을 파고 집을 짓는다

 

속 빈 떡갈나무 한 그루의

속 빈 밥을 먹고

속 빈 노래를 듣고

속 빈 집에 들어 사는 모두 때문에

속 빈 채 큰 바람에도 떡 버티고

속 빈 채 큰 가뭄에도 썩 견디고

조금 처진 가지로 큰 눈들도 싹 털어내며

한세월 잘 썩어내는

세상 모든 어미들 속

 

정끝별, 흰 책. 민음사,  2000년 1판 1쇄. 20-21쪽.

 

이 시를 읽고 노자의 '도덕경'의 비움의 유용성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생각났다.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속을 비워가는, 그 비워진 속으로 자식들을 키워내는 그런 부모의 삶.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신을 비워 자식들을 길러낸다. 이 떡갈나무처럼.

 

그런데 이런 비움이 꼭 부모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적어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이들 역시 떡갈나무처럼 비워서, 자신을 비워서 다른 존재들을 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만을 채워서 사회를 오히려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 시대에, 이 시는 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

 

비움은, 없음이 아니라, 채움이고, 충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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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이 흐르는 데.

혼자서는 견딜 수 없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데

물은 흐른다.

조금이라도 낮은 곳이라면

어떤 곳이건

찾아간다.

위압적이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듯이.

 

그러나 물이 흐르는 데.

늘 낮은 곳으로 흐르나

더 낮은 곳이 없을 때에는

머물러 썩고 만다.

할 일을 망각하고

모이고 모여 생태계를 바꿔놓고 마는

거대한 댐처럼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

 

물이 흘러야 할 곳

그곳은 낮은 곳.

모여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이라면

땅 속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거나

하늘을 향해 승화되는 곳

그런 곳,

법이 집행되어야 할 곳.

법은 바로 물()이 흐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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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말들을 줄이려는 사람들은 반갑다. 그 말을 줄이려는 사람들 중에 시인이 아마 가장 앞에 서리라 생각하지만, 요즘의 시는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넘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냥 휩쓸려 가기만 한다. 길거리에 나서도 예전에는 듣기 힘들었던 말들을 이제는 무슨 혼잣소리들을 그렇게도 많이 하는지, 기계 저편의 사람들과 속닥이는 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세상에 날아다니는 말들을 채집하면 아마도 그것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리라.

 

이 많은 말들 중에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아 싹을 틔우는 말이 얼마나 될까? 씨앗이 되는 말들이 아니라, 공해를 일으키는 말들이 너무 많지는 않은가.

 

특히 정치권에서 내뱉아진 무책임한 말들, 너나 할 것 없이 남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그런 말들, 그냥 무책임하게 내던져진 말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요즘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또 김춘수의 시 "꽃"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어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언어로 시작해서 언어로 끝나는지도 모른다. 그런 언어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내던져진 말들의 홍수.

 

나를 휩쓸어가는 그 말들의 홍수를 이제는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홍수 속에서 길을 찾는 노력, 진정한 말을 찾는 노력, 시인은 그런 노력을 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여 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진정한 말을 찾는 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귀는 쓸모없는 말들, 공해에 해당하는 말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 귀가 필요한 요즘이다. 신달자의 시집을 읽기 전에 '시인의 말'을 읽고, 이게 바로 요즘 내 마음 상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종일 말하고 말의 홍수 속에 젖어 살지만, 말이 증발된 갈증의 허허한 가슴으로 고요히 침묵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진정한 말을 발견하고 싶었다. 내 귀는 소리를 듣는 귀가 아니라 진정한 말을 찾는 귀가 되기를 나는 바랐다. 영혼의 눈을 뜨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을 찾는 종교적 침묵 여행을 맨발의 정신으로 떠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볍게 혹은 무겁게 시와 한 몸이 되려는 나의 소망이었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 역시 말의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었구나. 그래서 진정한 말을 찾아 헤메었구나. 그런 결실이 시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

 

말에 관한, 진정한 말을 모르는 세상은 이 시집에 나온 '어느 폭풍의 말'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폭풍의 말

 

어디서 왔는지

다급하게 밀어닥친 바람이

숲에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나무들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병약한 나뭇가지 몇 개 꺾이고

바람과 나무 울음이 엉겨 숲을 흔들었지만

폭풍의 이름으로 휩쓸고 간 것은

일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모르기는 부드러운

바람이 나무들 머리 쓰다듬고 지나갈 때도

몰랐다

무슨 말을 하긴 했다

바람도 가슴과 다리를 다쳤다는 것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

 

바람이 아직도 바람인 것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폭풍이

난폭한 짐승인 것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

 

신달자, 오래 말하는 사이, 민음사, 2004년 1판 1쇄. 24쪽.

 

우리 세상이 아직도 어지러운 것은 우리들이 제대로 된 말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울 말이 아니라 그냥 허공 중에 부유하는 말들만을 지니고 있기 때문.

 

이렇게 느껴지는 시다.

 

제대로 된 말, 진정한 말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쓸모없는 말들이 이렇게 판치지는 않겠지.

 

따라서 말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귀다. 그런 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고, 진정한 말들을 찾는 귀가 많아질수록 어지러운 말들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세상은 고요한 세상, 평화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된다. 지금처럼 말 많은, 말들만 넘치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말들이 너무 시끄럽다고, 말들의 홍수에만 휩쓸리지 말고, 시인의 말처럼 진정한 말을 찾는 귀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찾는 귀, 듣는 귀가 진정한 말을 만든다. 그러면 폭풍은 부드러운 바람이 된다. 우리의 마음을 깨우는,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그런 말들이 된다.

 

신달자의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를 읽으며 "말"에 대해서 "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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