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넘치는 세상에서 말들을 줄이려는 사람들은 반갑다. 그 말을 줄이려는 사람들 중에 시인이 아마 가장 앞에 서리라 생각하지만, 요즘의 시는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넘치는 말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냥 휩쓸려 가기만 한다. 길거리에 나서도 예전에는 듣기 힘들었던 말들을 이제는 무슨 혼잣소리들을 그렇게도 많이 하는지, 기계 저편의 사람들과 속닥이는 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세상에 날아다니는 말들을 채집하면 아마도 그것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리라.

 

이 많은 말들 중에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아 싹을 틔우는 말이 얼마나 될까? 씨앗이 되는 말들이 아니라, 공해를 일으키는 말들이 너무 많지는 않은가.

 

특히 정치권에서 내뱉아진 무책임한 말들, 너나 할 것 없이 남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그런 말들, 그냥 무책임하게 내던져진 말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요즘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또 김춘수의 시 "꽃"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어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언어로 시작해서 언어로 끝나는지도 모른다. 그런 언어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내던져진 말들의 홍수.

 

나를 휩쓸어가는 그 말들의 홍수를 이제는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홍수 속에서 길을 찾는 노력, 진정한 말을 찾는 노력, 시인은 그런 노력을 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여 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가 된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진정한 말을 찾는 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귀는 쓸모없는 말들, 공해에 해당하는 말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 귀가 필요한 요즘이다. 신달자의 시집을 읽기 전에 '시인의 말'을 읽고, 이게 바로 요즘 내 마음 상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종일 말하고 말의 홍수 속에 젖어 살지만, 말이 증발된 갈증의 허허한 가슴으로 고요히 침묵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진정한 말을 발견하고 싶었다. 내 귀는 소리를 듣는 귀가 아니라 진정한 말을 찾는 귀가 되기를 나는 바랐다. 영혼의 눈을 뜨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을 찾는 종교적 침묵 여행을 맨발의 정신으로 떠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볍게 혹은 무겁게 시와 한 몸이 되려는 나의 소망이었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 역시 말의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었구나. 그래서 진정한 말을 찾아 헤메었구나. 그런 결실이 시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

 

말에 관한, 진정한 말을 모르는 세상은 이 시집에 나온 '어느 폭풍의 말'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폭풍의 말

 

어디서 왔는지

다급하게 밀어닥친 바람이

숲에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나무들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병약한 나뭇가지 몇 개 꺾이고

바람과 나무 울음이 엉겨 숲을 흔들었지만

폭풍의 이름으로 휩쓸고 간 것은

일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모르기는 부드러운

바람이 나무들 머리 쓰다듬고 지나갈 때도

몰랐다

무슨 말을 하긴 했다

바람도 가슴과 다리를 다쳤다는 것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

 

바람이 아직도 바람인 것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폭풍이

난폭한 짐승인 것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

 

신달자, 오래 말하는 사이, 민음사, 2004년 1판 1쇄. 24쪽.

 

우리 세상이 아직도 어지러운 것은 우리들이 제대로 된 말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 자리를 잡고 싹을 틔울 말이 아니라 그냥 허공 중에 부유하는 말들만을 지니고 있기 때문.

 

이렇게 느껴지는 시다.

 

제대로 된 말, 진정한 말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쓸모없는 말들이 이렇게 판치지는 않겠지.

 

따라서 말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귀다. 그런 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고, 진정한 말들을 찾는 귀가 많아질수록 어지러운 말들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세상은 고요한 세상, 평화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된다. 지금처럼 말 많은, 말들만 넘치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말들이 너무 시끄럽다고, 말들의 홍수에만 휩쓸리지 말고, 시인의 말처럼 진정한 말을 찾는 귀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찾는 귀, 듣는 귀가 진정한 말을 만든다. 그러면 폭풍은 부드러운 바람이 된다. 우리의 마음을 깨우는,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그런 말들이 된다.

 

신달자의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를 읽으며 "말"에 대해서 "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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