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만이라도

 

   네덜란드의 한 소년은 둑에 물이 새자 나 하나만이라도 하고 손으로 구멍을 막았다는데, 세상, 작은 구멍에 나 하나쯤이야와 나 하나만으로도는 커다란 차이가 나는데, 땅이 잠길 위기를 구한 소년은 세계의 귀감이 되어 이곳 저곳에서 배우자고, 본받자고 이야기가 되어 퍼지는데, 아직도, 아니, 단 한 번도 나 하나만이라도라고 생각해보지도 않고 왜 그래야 하는지 고민도 해보지 못한 생각없음의 전형들은 나 하나쯤이야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을, 아니 모두를 그 고귀한 생명을 갉아먹음도 알지 못하고 그냥, 뭐, 나 하난데,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고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주체성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어두운 길, 질퍽한 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성찰할 수 있는 사람, 나 하나만이라도라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 그리운 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랜만에 시원한 빗줄기가 내렸다.

 

중부지방은 장마라고 하여도 마른 장마라서, 거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각했는데... 가뭄과 더불어 무더위도 본격적으로 시작돼,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리기도 했었는데...

 

어제는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위와 가뭄을 모두 잡아주는 고마운 비라고나 할까.

 

빗소리를 들으면 부침개가 생각이 나고, 더불어 막걸리도 한 잔 생각하는데... 비와 음식이 절묘하게 연결이 되는데...

 

집에서 책장을 훑어보다가 안도현 시인의 동시집을 발견했다. 제목이 "냠냠"이다. 먹을 때 내는 맛있는 소리.

 

이 소리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돈다. 먹을 때는 자고로 이렇게 맛나게 먹어야 한다. 그냥 동시집이겠거니 했는데... 모두 음식에 관한 동시다.

 

책장을 넘기니 재미있는 시가 많다. 비와 관련해서...'빗줄기로 국수 만드는 법'

 

빗줄기로 국수 만드는 법

 

좍좍 퍼붓는 굵은 장대비로는 칼국수를 만들자

 

가랑가랑 내리는 가는 가랑비로는 소면을 만들자

 

오고 또 오는 질긴 장맛비로는 쫄면을 만들자

 

안도현, 냠냠, 비룡소. 2010년. 81쪽.

 

음식과 빗줄기가 이렇게 연결이 된다. 좋다.

 

요즘은 방송에서 음식만들기 방송을 많이 한다. 각 방송사마다 적어도 한 편씩은 음식 방송을 하는 듯하다.

 

냉장고에 쌓여 있는 음식으로 요리를 하는 방송, 도시의 편리를 떠나 재료를 구하기 힘든, 또는 재료를 손수 구해야 하는 시골에서 요리하면서 지내는 방송, 음식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남자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법을 가르치는 방송 등등...

 

요리 방송의 백가쟁명시대라고 할만큼 많은 방송들이 나오고, 사람들이 또 잘 보고, 여기에 나온 요리사들은(요즘은 요리사라는 말보다는 '셰프'라는 말을 더 잘 쓰는데... 친숙한 말보다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을 더 쳐주는 이런 언어 사용법... 글쎄...) 스타가 되고, 그들의 요리법(레시피)은 인터넷을 통해 유행하게 된다.

 

잘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어른이 되어 요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음식을 낭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런 요리 방송을 통해서 그런 일은 많이 줄게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음식에 관한 교육은 어려서부터 해야 한다. 적어도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음식을 적당히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자연도 산다. 그래서 안도현의 이 시집은 이런 요리 열풍과 더불어 읽을 만하다.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도

남기지 마라

한 숟가락 남기면

밥이 울지

밥 안 숟가락도

못 먹어 배고픈

아이들이 울지

 

안도현, 냠냠, 비룡소. 2010년. 56쪽.

 

아이들의 마음에 콕 들어와 박힐 시 아닌가. 예전에는 이렇게 밥상교육을 했다. 그래서 음식을 남긴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많은 음식이 넘쳐난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문제 아닌가. 이들을 재활용해서 비료로 쓴다고 했는데, 그도 잘 안되고 있는 실정이니... 밥상 교육, 정말 중요하다.

 

이런 도덕적인 내용 말고도 그냥 재미있는 시도 있다. 아니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은 어떤 교훈을 강조하기보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이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서, 마음 속에 담아두게 하고 있다. 그 중에 짧지만...언어 표현이 재미있는 시.

 

국수가 라면에게

 

너, 언제 미용실 가서 파마했니?

 

안도현, 냠냠, 비룡소. 2010년. 2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며칠 전 시간이 났다.

 

프리다 칼로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전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러 미술책에서만 보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쁨.

 

올림픽 공원 내에 있는 소마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

 

나같은 어른은 13,000원이다. 그리 비싸지 않다. 어떤 작품들이 왔는지 확인하지 않고, 그냥 가서 보기로 한다.

 

5전시관까지 5개로 구성되어 있는 프리다 칼로 전시회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 외에도 그와 평생을 동반자로, 동지로, 원수로 지낸 멕시코 최고의 벽화화가로 불리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도 있고, 또 멕시코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프리다 칼로를 찍은 사진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으니, 미술관련 책에서 보던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모두 전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름 볼 만한 전시였다.

 

이 중에 내 눈을 오랫동안 머루르게 한 작품은 이 둘. 자신의 남편인 디에고에게서 한 치도, 한 시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그리고 있는 작품.

 

이 정도 되면 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도 예민한 화가였던 그녀였기에, 이런 상태로 디에고와 지낼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오싹한 마음이 든다. 마치 스토커를 보는 듯하다.

 

이 그림보다는 좀더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그림. 마치 신화를 보는 듯한 그림.

계속 중첨된 안김, 껴안음. 우리는 이렇게 내가 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안겨 있음을, 그런 누군가도 자연에, 신에게 안겨 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서로 안고 안기면서 살고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할까.

 

세상을 한 쪽으로만 보면 안되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림이었는데... 더 큰 존재일수록 눈에 잘 띠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그런 큰 존재를 잊고, 눈에 잘 보이는 자신과 비슷한 존재에만 집중하지는 않나 하는 생각.

 

프리다 칼로. 그의 비극적 생이나, 그림의 유파 등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멕시코의 화가로 평소에 우리가 접하기 힘든 그의 그림을 직접 본다는 행위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되는 전시회니 말이다.

 

모처럼 즐거운 그림 감상이었다. 한 가지 더... 정말 우리나라 문화민족이다. 사람들이 그리 많을 줄 몰랐다. 한 줄로 서서 그 자리에만 서 있기엔 조금 미안한 그런 관람객 수였으니... 그래도 밀려가지는 않아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오래 오래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계단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히말라야 산맥과도 같습니다.’

광고 천재 이제석에 나오는 말.

지상에 발 디디고 사는 인간이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설치한

계단이 누구에게는 상승의 도구가

누구에게는 극복의 대상이 된다.

 

아무렇지도 않던 계단을

다리가 좋지 않아 힘들게 오르내리며

계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두려움으로 한 발 한 발 오르내리던,

청년 시절 하나씩은 시원찮아 두세 개씩

한꺼번에 가뿐하게 뛰어 오르내리던,

나이 들어 왕성한 혈기 사라지고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어

차분히 하나씩 오르내리게 되던,

그러다 병들거나 더 늙으면 다시

한 발 한 발 힘겹게 오르내리는 계단.

 

계단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2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높이에 벌벌 떨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계단 위로 계속 오르려 하고

계단 위에서 계속 버티려 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내려와 땅에 설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나이 듦이 계단 오르내리기를 통해 알려주는데,

한사코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것이 보수?

 

아니, 그것은 수구 꼴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올해가 해방 70년이 되는 해이다. 해방 70주년, 공자의 말에 따르면 자기의 마음을 따라도(종심從心) 부끄러움이 없는 나이인데,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벗어난 지 70년이 되었는데, 과연 부끄러움이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아마  이런 점에서 녹색평론 143호의 특집이 "해방 70년을 되돌아 본다"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 마음이 아픈 구절이 나온다. '골든 타임'이라는 말.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회자되는 단어가 등장했다. 현명하게 잘 대처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지만, 우리에게는 트라우마와 같은 용어로 되어버린 단어가 있다. '골든타임'이라는 단어다. 원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의미하는, 돈 냄새로 가득한 이 단어가 작년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무력함과 무능함, 체념의 단어로 굳어지고 있다. 메르스가 급속하게 확산된 가장 큰 아유 중의 하나도 초기의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윤병선, 한국의 농업, 농민, 농촌 70년, 녹색평론 143호 9쪽)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골든타임을 쓴 다면 우리에게 골든타임은 언제일까? 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깨어 있는 정신, 깨어 있는 눈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해방이 되고 나서 70년... 농업, 노동, 지식인, 분단, 문학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해방 직후가 우리나라가 맞이한 첫 골든타임이었다면, 그때 제대로 대처를 못했기에 독재 정권이 수립이 되었고, 국민들의 생활은 질곡에 빠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난 과거지만, 그래도 그때가 골든타임이었고, 놓친 것이 분명하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제대로 분석을 해야 한다.

 

분석을 해야 다시는 반복을 하지 않게 되는데...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골든타임이 있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IMF로 대변되는 외환위기 시대.

 

그때도 우리 경제를 재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오히려 자본의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써버렸다. 노동자들은 이제 예전보다도 더 힘든 상황에 처했고, 농민들도, 지식인들도, 문화인들도 제 자리를 잃고 헤매게 되었다.

 

두 번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또다시 골든타임이 올 것이다. 문제는 골든타임이 언제인가이다. 왔는데도 알지 못하고 보내버리면 우리는 역사를 반복하기만 하게 된다. 안 좋은 쪽으로.

 

그래서 녹색평론 143호에서 해방 70년 즈음해서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음으로.

 

녹색평론사에서 펴낸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란 제목을 연상시키는, 책을 내면서의 제목 ' 해방 70년, 비틀거리며 온 길'

 

그래 우리는 비틀거리며 왔다. 그것이 중요하다. 비틀거림 속에는 바로 걸으려는 몸부림이 있다. 해방 70년을 비틀거리며 왔다는 인식은 곧게 걸으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자신의 현재를 정확히 보는 일,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종심(從心)에 해당하는 해방 70년. 이제 우리나라가 걸어야 할 길, 바르고 곧게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녹색평론이다.

 

그 길은 쉽지 않겠지만, 비틀거릴 수 있겠지만, 가야할 길이다. 녹색평론과 함께 꾸준히 걸어가야 할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