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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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


이제 우리나라 정치에서 볼 수 없는 사람.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했던 사람.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자신에게는 큰일이라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 


더 우리 곁에 있어야 했는데, 할 일이 아직도 많았는데, 자신이 지닌 엄격한 잣대를 굽힐 수 없었던 사람.


그 사람이 생전에 한 강연과 류시민, 이정미의 추도사, 그리고 안재성의 노회찬 약전이 묶여서 책으로 나왔다. 오래 전에. 그러고보니 그가 세상을 떠난 해가 2018년이다. 


노회찬이 세상을 뜬 그 해에 책이 나왔는데, 그때는 노회찬을 잃었다는 생각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망설이지 않았다. 집에 노회찬이 한 말을 모아놓은 책이 한 권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 생각에.


'촛불 대, 정치는 우리 손으로'라는 주제로(19쪽) 그가 강연한 내용이다. 이 말을 '우리가 꿈꾸는 나라'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꿈을 꾼다. 단지 꿈만 꾸지 않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직접민주주의를 하기 힘들다고 다들 말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집단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직접민주주의가 안 된다면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라도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대의'에 있다. 내 의사를 대변해줄 사람. 


내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의사를 대변해서 의회에서 주장할 수 있고, 그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의회에 있는가? 수많은 비리에도 끄떡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있는 티끌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의원들. 그런 의원들이 자꾸 언론에 언급이 되는 이 현실.


그런 의원들을 보면서 과연 이 의회가 우리의 꿈을 대신 실현시켜 주기는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의구심을 갖는다. 


국민 숫자에 비해 의원수가 적다고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들이 왜 의원 숫자를 늘리는데 반대하겠는가? 이들이 지금까지 해온 행태들을 보면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서 국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회에서 활동을 한다. 그러니 누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안에 대해서 찬성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노회찬을 다시 떠올린다. 그와 같은 국회의원들이 많았다면, 아마도 국민들은 국민 수에 비해 국회의원이 적다고, 숫자를 늘리자고 먼저 나섰을 것이다.


그가 한 말을 몇 가지 인용해 본다. 지금도 유효한, 아직까지도 우리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과제들이 아닌가 싶다.


'저는 촛불시대의 과제를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40쪽)


'촛불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사적 과제인 불공정의 해소, 그 첫걸음은 법원과 검찰을 개혁하여 권력층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처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55쪽)


'불평등의 해소란 바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 일자리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한 만큼 제대로 받는 것 그래서 모두가 스스로 노동해서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66쪽)


'전쟁도 불사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망가뜨리자는 것일 뿐 보수하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85쪽)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국민과 지방에 나눠주는 일, 이것은 정치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민의 권한이 커질수록 정치인들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02-103쪽)


이 말들, 지금도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말들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일들이니까. 그가 갔지만, 그가 간 이후로 과연 그의 주장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아니,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우리가 못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국민의 권한이 커질수록'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국민의 권한이 쪼그라들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인다.


그가 한 강연집,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읽으니,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있어야 함을, 그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안재성이 쓴 노회찬의 약전에서 그가 죽음을 선택한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노회찬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동안 그가 해왔던 활동들을 생각하며 안재성이 한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그를 이중 잣대를 허용하지 않았던 원칙주의자이자 가장 높은 자존심을 가졌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일조차도 극도의 수치감을 느끼는, 수치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택한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말이다.' (166쪽)


덧글


빅이슈 300호를 읽다가, 빅이슈에 실린 글을 보면서 노회찬 그를 만났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을 기념하여 열린 제 1회 프라이드 갈라에서 첫번째 수상자로 그가 선정되었다는 사실. 올해 3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1회 수상자였음에도 그때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던 그. 그가 남긴 발자취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이번 빅이슈를 통해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관련기사를 링크한다.

서로 달라 행복한 세상, 제1회 프라이드 갈라 개최 - 뉴스프리존 (newsfreezone.co.kr)

(빅이슈 300호. 80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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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6-14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죽음이었죠!ㅠㅠ

kinye91 2023-06-14 16:16   좋아요 2 | URL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니, 그가 더욱 생각나네요.
 
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 통권 18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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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이 재발간 되었다.  


오랫동안 구독을 하면서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녹색평론을 내 정신을 깨우는 죽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남짓 휴간한 기간 동안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좀 무뎌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재발간하고, 다시 받아서 읽어보니 역시 녹색평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해의 공백을 이번 호가 메워주고 있다고 해도 좋겠단 생각. 기후재앙과 전쟁과 평화와 민주주의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기후재앙을 막는 여러 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삶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이번 호이기도 했다.


보통 잡지가 휴간을 하면 그 휴간이 종간이 되는 수가 많다고 하는데, 격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뀌기는 했지만, 녹색평론이 계속 발행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녹색평론을 통해서나마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동을 변화시키고, 실천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가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노력을 한다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오랜만에 나온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기후재앙과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전쟁이 이리도 많은 탄소배출을 하는지 몰랐다. 단지 인명 살상만이 아니라 지구에게도 전쟁은 재앙임을, 그래서 전쟁은 기후재앙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번 호를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고.


추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통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로만 따지면 '그 양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를 차지하는데, 하나의 국가라고 치면 중국, 미국, 인도 다음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에 위치하게 된다'(94쪽)고 하니, 기후재앙에 전쟁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재앙으로 인해서 세계는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호에는 정부의 대책이 너무도 미흡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도 이번 정부 내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음 정부에 해결을 미루고 있다고 하니,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기후재앙은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다. 올해 꽃들이 피는 시기를 보라. 평년보다도 한두 주 더 빨라지지 않았던가. 또한 기후가 어떻게 될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데, 그럼에도 기후재앙이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수적이고 (전쟁이 온실가스를 그렇게 많이 배출하니), 또한 농업에 대한 (기계식 농업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정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 기후재앙을 극복할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기후재앙과 전쟁, 평화, 농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이번 호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하승수와의 대담에서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 대담에서는 지방자치의 단위를 읍,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시골이라고 하는 데서는 읍이나 면이 지방자치의 기본 단위가 되어야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하승수의 주장을 곱씹어보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웬델 베리의 삶을 소개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 농업이 우리 생명을 살리는 기본임에도 우리는 농업을 천시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학교에서는 농업을 도외시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산업주의와 농본주의를 대조하면서 농본주의가 미래를 이끌어갈 사상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농업은 너무도 적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게가 아니라 아예 안 다뤄지고 있다고 봐도 좋다.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하면 상업계와 공업계를 생각하지 농업계를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생명이 직결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대해서 과연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도시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도 농업은 교육과정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웬델 베리의 말을 이에 적용하면 우리는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IT교육, 코딩교육, 전자교과서 등등을 말하기 전에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본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기후재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생기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게 될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녹색평론, 다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 한 해에 네 번은 만날 수 있을테니, 녹색평론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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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2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열다섯, 그럴 나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나윤아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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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보통 중2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고 사춘기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2병이라고도 한다. 중2병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 많아서, 가급적 그 말은 쓰지 않으려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사실 중2가 병은 아니지 않은가. 


[열다섯, 그럴 나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편의 소설이 묶였다. 열다섯에 겪음직한 일들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이 나이 대의 사람들이 읽으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열다섯들이 그런 일들을 겪고, 또 고민하면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열다섯에 무엇을 고민하는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영웅-히어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소통을 하며(스마트폰을 이용한 SNS-톡방), 자신의 현재 모습에 실망해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고(이번 생은 망했어-이.생.망), 사이버 세계에서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게 되기도 하며(몸캠피싱), 친구관계로 고민을 하기도(인싸) 한다.


아마도 청소년기에 영웅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이란 세상과 동떨어진 특출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영웅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공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넘어올 수 있음을 첫번째 소설, 탁경은이 쓴 '캡틴 아메리카도 외로워'에서 만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영웅이 아닐까 하는, 그럼에도 그런 영웅은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외로움을 견뎌내고,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나이, 그 나이가 열다섯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수시로 울리는 까톡, 까똑 소리. 아마 하루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그 소리를 들을 테다. 요즘 열다섯 살 사람들은. 하지만 과연 그 카톡으로만 소통이 잘 될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대화하는 세상이 과연 좋기만 할까?


이 카톡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선주가 쓴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에 나오고 있다. 누구나 편하게 쓰는 카톡 앱을 깔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소통방법? 편한 앱인데 굳이 안 깔겠다고 하는 아이를 이해 못하는 아이들. 또 그때만 깔고 지우면 되는데도 깔지 않는 아이. 과연 어떤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까? 


소설은 끝부분에 반전이 있다. 단지 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임을, 남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나 한다. 꼭 열다섯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지금 사회관계서비스망(SNS)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열다섯의 고민을 넘어 우리 모두의 고민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당연하다. 청소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불만이 많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저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한 때.


자신이 한껏 초라해 보이고 다른 사람은 다 멋있어 보이는 그런 때, 그런 때 보이는 모습을 환상을 동원해 범유진이 '악마를 주웠는데 말이야'란 소설로 썼다.


악마가 소원을 들어준다. 고전에서 많이 나오는 설정을 활용했다. 그리고 그 소원이 결국은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랑하게 한다는 결말로 나아간다.


그렇게 부러워하는 다른 사람의 삶도 알고 보면 저마다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자신에게서 출발하라고,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악마를 동원해서라도 다른 존재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은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해도, 그 생이 바로 자신의 생이니, 여기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피싱'이라고 하는 일들. 보이스 피싱은 잘 알려져 있는데 몸캠피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 많이 붉어져서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이 몸캠피싱이 청소년들에게 행해진다는 사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현실, 그런 현실을 나윤아가 '악의와 악의'라는 소설로 썼다.


현실적이다.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의미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준다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있다.


악의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선의를 지닌 사람은 있는데, 청소년기에 세상에 대해서 지녀야 할 마음은 악의로 가득찬 세상이 아니라, 선의가 넘치는 세상이어야 한다.


어려울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악의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무엇보다 소설은 행복한 결말을 내지 않는다. 몸캠피싱이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바로 그런 일이 터졌을 때 대처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함을,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음이 중요함을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소설은 청소년기에 가장 중시하는 친구 관계다. 서로 웃고 떠들고 함께 하는 친구 사이지만, 과연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


늘 아이들 중심에 있는 아이가 어느날 사라져 버리고, 그 아이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아이들이 정작 그 아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음을 우다영이 '그 애'라는 소설로 펼쳐보인다.


또 소설을 읽다보면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 주장보다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친구 관계가 좋음을.


즉 친구를 잘 사귄다는 말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는 말이고, 소설은 사라진 그 애를 통해서 그런 자세를 가르쳐준다.


이렇게 다섯 편의 소설들이 열다섯에 겪을 만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읽으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읽으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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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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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우리나라 부를 대표하는 곳. 부자들이 사는 곳. 이곳 아파트 값이 얼마나 비싼지 보통 사람들은 전세로 들어가 살기도 힘들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하지만 강남이 처음부터 이렇게 부촌이었을까? 아니다. 강남은 강북에 비해 허허벌판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이 강남 개발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이권들이 오갔을까?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떼돈을 벌 때, 순전히 자신의 노력만이 아니라 운과 연줄이 작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강남 개발을 둘러싼 이야기. 역사 책이 아니라 소설로 만날 수 있다. 바로 이 책이다. 강남몽.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몽(夢)'자 들어가는 소설이 많은데 이는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꿈을 빌려온 것이다.


황석영 역시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378쪽. 작가의 말에서)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강남몽'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를 대고 있다.


즉, 강남 개발에 뛰어들어 떼돈을 번 사람들의 삶이 가상 현실과 같다고, 그들이 사는 삶은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소설이 문제적 개인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 강남몽은 강남 개발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주요 인물이 5명이다. 이들은 서로 얽히고설킨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개발에 따르는 인물 군상을 황석영이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박선녀다.(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유흥업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박선녀는 김준의 내연녀가 되는데, 김준은 일제시대 일제의 정보원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 정보국에 붙어 지낸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얻어 은퇴한 뒤에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 이렇게 김준의 이야기가 펼쳐진 다음에는(2장 생존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동산업자가 등장한다.(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세사기에도 공인중개사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는 말들이 있는데, 당시는 더했다. 부동산업자와 짜고 땅값을 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개발과 관련된 유흥업소, 건설업자, 그리고 부동산업자가 나왔으면 다음에는 누가 나와야 할까?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듯이 조폭들이 등장한다.(5장 개와 늑대의 시간) 개발이 되면 상가가 많아지고, 이 상가를 끼고 주먹들이 진출하는 것이다. 단지 주먹만으로? 아니다. 이들 역시 권력을 끼고 활동을 한다. 


강남 개발을 둘러싼 하이에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네 주체가 나왔다. 이들의 삶은 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런 부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소설은 '몽'자를 달고 있는 역할을 하듯이 미리 손을 털고 나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몰락한다.


현실의 부귀영화가 덧없다고 하는 '몽자류' 소설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전소설의 결말을 따라가면, 이 중 누군가가 깨달아야 한다.


"아, 이것이 아니었구나!" 


현시대에 이렇게 고전소설의 주인공처럼 깨달을까? 아니다.이들은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다른 더 강한 외부 조건을 향해 가려고 할 것이다. 마치 국내 자산이 부족하면 외국 자산을 끌어오듯이.


나라 경제가 파탄났을 당시 국제 통화 기금(일명 IMF)에서 기금을 받고, 그들이 제시한 대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펼치게 된 것처럼, 현실은 고전소설에서 말하는 깨달음으로 가지 않는다. 그냥 없는 사람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소설에서까지 이렇게 현실의 비참함을 고스란히 보여주어야 할까? 황석영은 여기서 한발 나아간다. 현실을 깨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꿈 속 삶이 아닌 현실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음을.(5장 여기 사람 있어요)


마지막 장에 나오는 정아를 통해서 현실을 사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몽'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정아가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함께 갇혀 있던 박선녀가 자신이 정아 집안 사람들을 위해 다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 말.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 (338쪽) 


이 말로 황석영은 꿈이 아닌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강남 개발로 떼돈을 벌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 나온 네 사람의 삶은 '몽'에 가깝다면, 정아의 삶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렇게 꿈과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황석영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들이 나온다. 소설이라서 약간 변형을 가했지만, 강남 한복판에서 무너진 백화점이라면 누가 모르겠는가? 또한 강남 개발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이 추구했던 삶이 '몽'에 불과해야 한다고, 그런 꿈은 깨게 해야 한다고 마지막 장에서 '여기 사람 있어요'라는 말을 통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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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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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늘 같음 상태'만 유지되는 사회가 있을까?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 아마도 그런 사회가 늘 같음 상태의 사회이리라.


질문은 나와 다름을 인식하고, 다름을 통해서 함께 하려고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다름조차도 주어진 채로 살아가는 사회라면, 그래서 질문을 할 수 없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온갖 차별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차별을 없애는 일은 좋지만, 차별이라는 명목으로 차이까지 없애는 일,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 선택조차 없애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선택이란 다름을 인식하는 일. 또한 책임을 지는 일.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은 책임을 질 일이 없다. 자신의 생명, 직업, 가족 등을 선택하지 못하고 주어진 대로만 살아가야 하는 사회. 그 사회에는 미움도 질투도 없다. 다만 사랑도 우정도 없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는 기억도 없다. 개인의 기억, 집단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 기억이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일. 기억이 있다면 늘 같음 상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바로 그런 사회다. 모든 생활이 통제되는 사회. 하다못해 사람들이 통제하기 힘든 식욕, 색욕까지도 통제하는 사회. 가장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도 위원회에서 지정해주는 사회니, 색욕이 발동할 수가 없다. 알약으로 해결해 버린다. 누구도 의문을 갖지 않은 채.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감시되고 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존재들은 '임무 해제'라고 해서 다른 세계로 보내진다. 말이 좋아 임무 해제지, 그것은 죽음이다. 그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존재들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기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기억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돌발적인 상황이 생겼을 때 과거에서 해결책을 가져오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회는 누구도 기억을 가지면 안 되지만, 단 한 사람만은 모두의 기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임무를 맡은 사람을 기억 보유자라고 한다.


그는 모든 기억을 갖고 있기에, 이 사회에서 유일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회에서 홀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은 인류가 그동안 겪어왔던 기억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기억 보유자로 선택된 조너스. 그가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깨닫게 되는 일.


그가 살고 있던 세계가 진실한 세계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임무 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하나밖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서 탈출하게 된다.


어쩌면 기억 보유자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모든 기억이 담겨 있다. 이 기억은 그만이 간직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 판도라 상자처럼 열려서는 안 된다. 이 사회는 그렇게 기억 보유자에게만 기억할 수 있는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하지만 조너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로 한다. 기억은 상자 속에 담겨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억은 각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기억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조너스는 탈출한다.


그 다음은 아마도 혼란이겠지. 고통이겠지.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고통과 용기를 수반하니까. 또한 책임을 동반하니까. 


소설은 조너스가 떠난 다음 마을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조너스가 희망을 품고 다른 세계로 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마찬가지다. 조너스가 마을을 떠날 때 겪게 되는 고통, 좌절을 마을 사람들도 겪게 되겠지.


눈 내리는 날, 언덕을 힘겹게 조너스가 오르듯이, 마을 사람들도 돌아온 기억 때문에 힘겨움을 겪게 될 터이다. 다만 조너스는 언덕에 올라 다른 세계를 본다. 다른 세계로 갈 썰매를 탄다. 마을 사람들도 아마 이 힘겨움을 겪으면서 누군가는 내리막을 달리는 썰매를 탈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문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행복'이라는 말은 있을 수 있어도 행복을 느낄 감정은 없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말은 쓰일 수가 없는 사회다. 


"절 사랑하세요?" ... "아버지 말씀은 네가 매우 일반화된 단어를 사용했다는 거야. 그 단어는 너무 무의미해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지." ... "넌 이렇게 물었어야 했어.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란다." (216-217쪽)


이런 사회다. 개인의 감정은 철저하게 감춰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 책은 필요없다. 책은 해악이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는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책의 존재조차 알리지 않는다. 기억 보유자에게만 책은 존재한다.


'늘 같음 상태'가 바로 이렇다. 하지만 기억의 저장소는 책이다. 또 늘 같음 상태에 균열을 내는 것은 예술이다. 기억 전달자가 된 전 기억 보유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조너스는 색깔을 볼 수 있는 능력(미술이라고 해도 좋겠다)이 있었다.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이 그들을 기억 보유자가 되게 한다.


하나의 세계로 달려갈 때 여러 세계를 보게 만들어주는 역할,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임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고, 책은 인류의 기억 저장소임을 말해준다.


그러니 이 소설은 과거의 소설이 아니라, 고도로 발전해 가는 세계, 앞으로 최첨단 아이티(IT) 기술이 발전해,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발전으로 디지털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삶에 대해서 생각해야 함을 제시하는 미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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